시계 바늘은 5시를 가리키고 있다. 네 시간도 채 못 잤지만 정신은 온전하고 몸은 1시간 전에 일어난 사람마냥 가볍고 편안하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서울의 위성도시인 부천에 있는 집에서라면 어림없는 일인데, 역시 사람은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에서 살아야 한다고 중얼거리며 두 대의 카메라, 니콘 F4s와 미놀타 하이매틱 7S II에 필름을 장착했다. 대포항.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이 항구는 정말 정겹고 포근하다. 설악산이 바로 코 앞인데다 7번 국도변에 위치해 오기도 쉽고, 또한 자연산
활어회를 값싸게 즐길 수 있는 수많은 활어 난전과 횟집들이 가득 들어서 있어 사시사철 외지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지만 아직까지 풋풋한
인정을 잃지 않은 채 맑은 눈빛으로 관광객을 맞이하는 곳이 바로 대포항이다. 삶이 고단하여, 그래서 사람의 향기가 그리워 숨도 쉬기 힘들어질 때
나는 언제나 이곳을 찾는다. 1977년 8월에 발매한 미놀타 하이매틱 7S II는 미놀타社가 1961년부터 발매하기 시작하여 이후 20년이란 장구한 세월동안 생산한
하이매틱 시리즈의 완결판이다. 콤팩트하면서도 깔끔한 디자인으로 설계한 이 7S II 모델은 매우 정숙한 리프(leaf) 셔터와 더불어 셔터
스피드 우선식 AE와 수동 조작의 M 모드로 조작 가능한 거리계 연동식 카메라이다. 은색 크롬으로 도금한 것과 블랙 에나멜 페인트로 도장한 블랙
모델 두 가지가 있으며, 현재 국내외 시장에서 제품 상태와 도색 종류에 따라 15만원에서 30만원이 조금 넘는 선에서 거래하고 있다. 란탄은 20세기 유럽의 유명 카메라 제조 회사에서 고급 렌즈 제작에 많이 사용했으며, 당시 일본에서 생산한 렌즈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은 최상급의 렌즈 재료로 알려져 있다. 일설에 따르면, 1973년 11월에 라이카로 많이 알려진 라이쯔 社와 미놀타 社가 합작하여 생산한 렌즈 교환식의 고급형 레인지파인더 카메라인 CL 용 Rokkor 40mm/f2와 7S II에 장착한 렌즈가 동일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CL 용 렌즈 또한 란탄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므로 상기한 일설이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미놀타 하이매틱 7S II 사용자들은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고가의 Leitz Minolta CL에 버금갈 만큼 우수한 렌즈 성능을 갖춘 레인지파인더 카메라를 가진 상대적인 우월감을 느낄 수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조만간 대포항은 대규모 관광 어항으로 변모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 같은 계획의 추진 여부를 두고 대포항을 삶의 근거지로 둔 사람들은 현재
두 갈래로 나뉘어져 있다. 대포항 내에 횟집이나 상점을 열고 있는 이들은 대부분 대형 주차장이나 주변 위락시설 조성 등으로 더 많은 관광객들을
유치할 것이라 믿으며 대규모 관광 어항 조성에 찬성하는 편이나 이와는 반대로 대포항의 실질적 주인격인 활어 난전 상인들은 주변에 속초항과 동명항
등 대규모 항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현재의 포구를 매립하면서까지 대규모 어항을 조성할 이유가 없으며, 그러한 시도가 오히려 관광객을 분산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음을 이유로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일년에 두 차례 이상 발걸음 하기가 쉽지 않은 타지 사람이 왈가왈부할 문제는
아니지만, 나는 대포항이 현재처럼 소담하고 정겨운 포구로 남아있길 바란다. 굳이 대형이란 단어와 국내, 또는 세계 최대란 수식어 달기를 좋아하는
대한민국 지자체 의원들과 이에 멋도 모르고 휘둘려지는 안타까운 국민성과 세태를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대포항의 소탈하지만 아름답기 그지없는 포구를
허여멀건한 시멘트로 포장하면, 비단 동해안 뿐만 아니라 전국 유명 관광지의 비수기 때처럼 삶의 향기는커녕 인적마저 끊어진 그런 을씨년스러운
풍경이 될 것만 같아 두렵기 때문이다. 일년 365일 쉴새 없이 활어 난전과 공판장을 흘러 넘치는 맑은 바닷물을 장화발로 첨벙거리며 활어를 실어 나르는 가슴 벅찬 노동의 나날이 방파제 너머 끓어 넘치는 파도가 되기도 하는 곳, 대포항. 언제나 해가 뜨기만 할 뿐 단 한 차례도 해가 지지 않는 이 곳에 가면 소쿠리 가득히 담아주는 활어회 만큼이나 싱싱하고 담백한 대포항 주민들의 가식 없는 인정을 맛볼 수 있고 고단한 노동에도 아랑곳 없이 풍요롭고 향기로운 삶의 모습들로 가득한 아름다운 풍경을 만날 수 있다.[Edition 40, 200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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