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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와 한국 재벌의 차이

빌 게이츠와 한국 재벌의 차이
[시사저널 2006-07-06 10:29]    
ⓒ연합뉴스현대자동차 그룹은 정몽구 회장이 검찰 소환 위기에 몰리자 정회장 부자가 1조원을 사회에 환원한다고 발표 했다(위).

워렌 버핏 회장이 전재산의 85%를 사회에 환원한다는 소식에 세계가 놀랐다.이를 계기로 한국 부자들의 사회 환원 문화가 덩달아 화제가 되고 있다.빌 게이츠나 워렌 버핏 반열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세계 자산 부호 100위권에 진입하는 등 ‘탈한국’ 부자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재벌 오너들이 사재를 출연했다는 미담 뉴스도 해마다 들린다.천억원 대가 넘는 기부 사례도 있어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한국 재벌의 재산 환원 문화는 빌 게이츠·워렌 베핏 방식과 적어도 두 가지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첫 번째는 기부 시기, 즉 타이밍의 문제다.하지만 거액의 기부가 이루어질 때는, 그 전에 항상 기부자의 선의를 의심케 하는 사건 혹은 정황이 있었다.올해 2월7일 삼성그룹은 이건희 회장이 재산 등 8천억원을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발표했다.당시 X파일 사건 관련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었고, 이 회장은 외국에 나가 장기간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지난 4월19일 현대자동차 그룹은 ‘정몽구 회장 부자의 사재 1조원을 사회 단체에 기부한다’고 발표했다.마침 정몽구 회장이 검찰 수사로 구속 초읽기에 몰려 있던 때였다.

워렌 버핏 회장도 2004년 미국 뉴욕 주 검찰 수사를 받은 적이 있다.2005년에는 세무조사를 받았다.부자가 검찰과 세무 당국에 시달리는 일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다르지 않다.하지만 버핏 회장은 이런 위기 상황에 놓여 있을 때는 기부 발표 같은 것을 하지 않았다.

검찰 수사를 받은 것은 아니지만 현대백화점이 최근 발표한 사회 환원 계획도 순수성에 물음표를 달 구석이 있다.현대백화점 그룹은 지난 6월7일 정지선 부회장이 소유한 계열사 HDSI를 청산하고 100억원의 청산 자금을 신설되는 현대백화점 복지재단에 기부한다고 발표했다.이 소식은 경제 신문 등에 미담 사례로 소개되었다.다음날인 6월8일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는 성명을 발표했다.‘회사기회 편취의 문제를 인정하고 시정한 것은 긍정적’이지만, ‘부당이득은 재단에 출연할 것이 아니라 계열사에 반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100억원 사회 환원 뒤에 숨은 사연은 이렇다.HDSI는 4년 전인 2002년 7월 설립된 정보기술(IT) 회사로, 정지선 부회장이 70%, 현대쇼핑이 30%의 지분을 가지고 있었다.이 회사는 현대백화점·현대쇼핑 등 그룹 내 주요 계열사와 거래하며 급성장했다.(주)HDSI 매출 가운데 95%가 계열사와의 거래에서 발생했고 지난해 당기순이익이 29억원(매출 2백45억원)에 이르렀다.

참여연대는 올해 4월 ‘38개 기업집단 지배주주일가의 주식거래에 관한 보고서’를 통해 재벌 오너들이 비상장 회사를 소유하면서 계열사 내부 거래로 회사 이익을 편취하는 사례를 폭로한 바 있다.국세청 조사2과는 5월 말 현대쇼핑에 대한 세무조사를 벌였다.사회 기부 발표 시점치고는 묘한 때이다.

버핏은 개인 돈, 한국 재벌은 회사 돈 출연

HDSI 청산으로 정지선 부회장의 동생인 정교산 상무가 이득을 보게 되었다는 분석도 있다.HDSI가 보유하고 있던 현대H&S 주식이, HDSI가 없어지면서 고스란히 정교선 상무에게 팔렸다.정상무의 현대 H&S 지분은 10%에서 11.43%로 늘어났다.현대H&S는 HDSI의 직원과 영업권을 양도받는 회사로 현대백화점 처지에서 보면 오른쪽 주머니가 왼쪽 주머니로 갔을 뿐 달라진 점은 없다.

ⓒ연합뉴스삼성 이건희 장학재단 출연금은 이건희 회장 일가와 삼성 그룹 계열사가 거의 절반씩 부담했다.

이런 논란들에 대해 현대백화점 그룹 홍보실은 “국세청 조사에서 아무 문제가 없었다.HDSI가 하던 일은 그전부터 외주 업체가 하던 일이라 억지로 몰아주기 위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현대백화점의 한 관계자는 “지분 구조상 나중에 논란이 있을 수도 있어 사회 환원하면 ‘속 편하겠다’고 생각한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외부의 압력이 아니라 자발적 판단에 따른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국 재벌 기부 방식의 두 번째 특징은, 회사의 기부와 개인의 기부가 구별되지 않는다는 점이다.워렌 버핏은 사회 공헌으로 유명하지만 그가 운영하는 버크셔 해서웨이 사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물론 버크셔 해서웨이가 투자 회사여서 대중에게 소구하는 광고가 필요 없기는 하지만, 선진국에서는 오너의 기부 행위를 기업의 사회 기부와 분리해 평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빌 게이츠 회장은 마이크로소프트 사와 관계없이 자신의 사재를 100% 출연해 재단을 만들었다.공식 이름은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으로 마이크로소프트 사와 관련된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한국의 경우는 다르다.2002년 7월 설립된 흔히 ‘이건희 장학금’으로 불리는 장학재단의 공식 명칭은 ‘삼성 이건희 장학재단’이다.이 재단의 출연금 4천5백억원 가운데는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상무가 각각 1천3백억원· 1천1백억원을 내는 등 오너 일가 자금이 들어 있다.하지만 삼성전자 등 10여 개 계열사도 2천1백억원을 출연했다.다른 대규모 기업 집단도 자선 단체를 만들 때 계열사 출연금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설사 재벌 오너가 100% 사재를 출연해 만든 재단이라 하더라도 기업 이름을 앞에 붙여서 홍보 효과를 노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2006년 3월 미국의 경제 월간지 <포브스>에 따르면 이건희 회장의 재산은 워렌 버핏 회장의 7분의 1(약6조3천억원)가량 된다.이건희 회장이 자신의 가족과도 무관하고 삼성그룹과도 상관없는 자선 단체에 재산의 85%(5조3천억원)를 기부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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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