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사는 법, 기부문화의 정착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모금기관인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지난 12-1월 집중모금캠페인 기간동안 당초 설정한 목표액인 670억원을 크게 웃도는 금액이 모금되었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사실은 기부문화가 척박하다고 인식되어 온 우리 사회가 이제는 이웃을 돌아보고 보살피는 좀더 따뜻하고 인간미가 넘치는 방향으로 변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일 것이다.
우리나라 기부문화의 어제와 오늘
지난 몇 년간 우리는 ARS니, CMS니, 1%나눔이니 하는 말과 더불어 "기부(philanthropy)" 또는 "기부문화"에 대해 많이 들어왔다. 그러면서 모두들 다같이 우리 나라는 기부문화가 척박하고, "기부"는 왠지 외국에서 외국사람들이 하는 활동으로 우리에게는 뭔가 대단히 새로운 것인 양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나라도 예로부터 환난상휼의 정신을 바탕으로 사회적 약자를 돕고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서로 구제하는 다양한 긴급 부조활동과 향약, 두레, 계, 품앗이와 같이 각 마을 단위별로 매우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진 부조활동들이 있었다. 이러한 활동들이 시간이 흘러오면서 뜻과 내용이 조금씩 변하면서 오늘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그리고 옛날부터 지역의 유지들은 천재지변 등으로 마을이 어려움을 겪게되면 자기들의 곡간을 열어 굶주린 이웃들을 먹이고 입히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그것을 마땅히 해야할 역할의 하나로 간주하였다. 소위 오늘날 이야기하는 '기부'나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라고 하는 것들이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 문화에 한 부분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시대와 사회가 변하면서 과거의 조직적이고, 공동체적인 부조활동이 사라지고, 여름철 국가적인 재난 구조를 위한 모금활동과 연말연시 불우이웃돕기 모금활동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그래서 기부활동은 지역단위별로 조직적으로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기보다는 전국적인 단위로 부정기적으로 일어나는 기계적인 활동으로 자리잡게 되었으며, 이는 일반 시민들에게 기부는 일년에 한두 번, 다소의 강제성을 띠는 활동으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시민들을 자선모금(charity)활동에 참여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논리적인 설득보다는 감정에 호소하는 방법을 취해야했다. 이는 여전히 시민들의 대부분이 ARS모금방송을 통해 기부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과 맥을 같이 한다.
이러던 것이 1990년대 후반에 들어오면서 전문적인 모금기관들이 설립되고 보다 지속적이고 조직적인 모금활동이 시작되면서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된다. 과거의 모금활동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빵을 주는 식의 자선활동(charity)이었다면, 오늘날의 모금활동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빵을 살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하는 식의 기부활동(philanthropy)에 초점을 두고 있다. 따라서 돈을 모으는 방법에 있어서는 감정에 호소하기보다는 논리적인 설득과 보다 나은 사회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모아진 돈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는 사회적으로 보다 큰 효과나 영향력을 내는 데에 강조를 하고 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아름다운 재단, 한국여성재단, 아이들과 미래 등 대부분의 공익재단들이 모두 이 무렵에 생겨났다.
전문적인 모금기관들의 등장으로 최근 몇 년간 우리나라의 기부활동은 그 양과 질에 있어서 상당한 발전을 이루었다. 아름다운 재단이 발표한 2001년도 한국인의 기부지수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52.6%가 기부활동(종교적 기부활동 제외)에 참여하였으며, 이들이 1년간 기부한 기부액은 108,000여 원으로 전년도에 비해 9.5%가 증가한 것이다. 또한 기부활동의 기저를 이루는 자원봉사활동은 평균 5.81시간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기부의 내용을 살펴보면, 전체 응답자의 81.8%가 ARS모금과 같은 비정기적인 기부를 하고 있으며 정기적인 기부자는 전년도 16.3%보다 증가하였지만 여전히 18.2%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러 모금전문기관들은 기부활동이 시민들의 일상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히도록 하기 위해 CMS, 카드 및 핸드폰 결재방식, 급여이체 등 다양한 기부 프로그램들을 개발하여 기부자들이 쉽게 기부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1% 나눔운동을 통하여 기부는 부자만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인식을 높이고 있다. 또한 개인기부자들뿐만 아니라 기업들도 지정기탁방식이나 기업공동캠페인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사회공헌활동에 참여하도록 하고 있다.
외국의 기부문화를 통해 본 우리의 과제
기부문화를 이야기할 때 전세계적으로 가장 대표적인 나라를 꼽으라면 아마 미국을 꼽을 것이다. 미국의 기부문화는 미합중국 건국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럽의 이주민들이 미국으로 건너갈 당시 미국 대륙에는 정부가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교육이나 의료와 같은 대부분의 공공서비스는 정부보다 민간인들에 의해 제공되었으며 이러한 공적인 활동을 유지하기 위해 민간차원에서 재원을 마련해야 했다. 이것이 미국에서의 기부활동, 기부문화의 시작이다. 그러던 것이 정부가 생겨나고 정부가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민간차원의 활동은 정부의 영향이 미처 미치지 못하는 영역으로 옮겨가 집중되었고 NGO활동과 기부활동을 이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현재 미국에는 수십만 개의 NGO들과 4만여 개의 재단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이들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대부분의 기부금은 개인기부자들로부터 나오고 있다. 실제 미국의 기부금 규모를 살펴보면 GDP의 2%에 달하는 1900여억 달러에 달하며 (2001년 현재), 이중 개인기부자들의 기부금이 전체의 80%이상을 차지하며, 그 뒤를 각종 재단들과 기업이 잇고 있다. 이는 미국 사회 전체에 기부문화가 굳건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돈많은 개인과 기업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에 의해 기부활동이 지탱되고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Independent Sector의 "Giving and Volunteering"조사에 따르면, 2001년 기부활동에 참여한 가구수는 전체의 89%에 이르며 이들이 1년간 기부한 금액은 1620달러로 가구수입의 3.2%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나 이를 뒷받침해준다. 또한 기업들은 자신이 속한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기업재단이나 기업의 사회공헌팀, 그리고 다른 모금기관 등을 통해서 왕성한 사회공헌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기업들은 기부활동을 단지 소비자들에 대한 기업이미지 제고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기업의 장기적인 활동을 위한 사회적 투자로 보다 적극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로 인해 미국시장에 진출한 외국기업의 경우, 미국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미국에서 본국보다 더 큰 규모의 사회공헌활동을 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하게 된다.
오늘날 급속한 정보통신기술의 발달과 미국사회의 인구통계학적 변화로 기부활동에 있어서 다양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온라인 기부활동의 활성화이다. 온라인 기부활동이 아직까지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지는 않지만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추세이다. 자선연보(Chronicle of Philanthropy)에 따르면, 기부자들이 인터넷을 통해 자선기관에 기부한 금액은 2003년 9천 6백만 달러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온라인 기부는 특히 처음 기부에 참여하는 사람들, 젊은 세대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또한 미국사회에서 점차 이민자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또 이들 이민사회에서 성공한 이민자들이 많아지면서, 특히 유대인들을 중심으로, 모국에 대한 기부(diaspora philanthropy)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 이 디아스포라 기부는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민 집단은 나름대로의 기부 메카니즘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면서 부의 이동현상이 나타나고, IT산업의 활황으로 인해 젊은 부유층이 급부상하여 기부활동에도 신세대 바람이 불고 있다. 따라서 신세대들을 기부에 참여하도록 하기 위해 과거와는 다른 모금방법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미국에서 기부문화가 꽃을 피우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 중 하나는, 카네기, 록펠러, 포드와 같이 자신의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공익활동에 앞장선 훌륭한 모델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전형은 오늘날 다시 빌 게이츠, 조지 소로우, 웨런 버핏 등에게 이어지고, 또 다시 실리콘 밸리에서 성공한 20-30대 벤처기업가들에게 이어지면서 온 국민에게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자신의 이익만이 아니라 사회전체의 이익을 생각하고 이를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 엄청난 재산을 가진 이들이 부시 대통령이 유산상속세와 증여세를 폐지한다고 할 때, 사회적 빈부격차의 심화와 기부활동의 위축 등을 이유로 대대적으로 세제폐지 반대 캠페인을 전개했던 모습은 미국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에게도 매우 깊은 인상을 남겨놓았다.
둘째는, 이처럼 공동체를 돌보고 공익을 위해 기부하는 전통을 후 세대에게 물려주기 위해 매우 세심한 노력을 한다는 점이다. 최근에 미국 록펠러 재단은 IT와 금융부문에서 성공한 젊은 세대 사업가들을 대상으로 기부활동(philanthropy)에 대해 교육하는 워크샵 프로그램을 시작하였다. 이유인즉, 이들 젊은이들은 미처 기부활동에 대한 경험을 쌓기도 전에 엄청난 부를 획득하였기 때문에 갑자기 거머쥔 부를 어떻게 건강하게 사용할 것인지, 또 어떻게 기부활동에 참여할 것인지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부활동 경험이 많은 선배 실업가들과 만나 기부활동에 대해 배우고, 향후 기부활동을 계획하고, 또 공익활동에 대한 많은 생각들을 키울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이와 유사한 프로그램들이 실리콘 밸리를 중심으로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셋째는, 기부활동을 촉진시키는 세제환경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기부금품모집규제법으로 3억원 이상을 모금할 경우 행정자치부의 사전허가를 받아야하고, 모금비용도 모금액의 2%안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되어있는데 비해 미국의 경우 모금활동에 대한 이러한 법률이 우리보다는 훨씬 완화되어 있으며 모금비용도 법률에 의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대략 20-30%정도 수준에서 자율적으로 정하고 있다. 또한 기부를 한 당사자에 대해서 우리나라는 개인에게 10%, 업체에 대해서는 5%를 감면해주는 데 비해 미국은 개인의 경우 50%, 기업의 경우 10%의 세금감면 혜택을 주어 기부에 대한 인센티브가 매우 크다.
넷째는 전문적인 모금기관들의 활동이 투명하고 효율적인 지를 철저하게 모니터하고 그 정보를 일반에게 알리는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다. 따라서 기부자들은 투명하게 운영되는 기관에 기부를 하게 되고, 기관에 대한 기부자들의 신뢰는 지속적인 기부활동으로 이어지게 된다.
건강한 기부문화 정착을 바라며
지난 몇 년간 우리 나라는 현대적 의미의 기부활동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짧은 기간이지만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많은 성장을 이뤄온 것이 사실이지만 우리사회를 보다 건강하고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원동력으로서 기부활동이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기부자들이 기부활동은 '빵을 주는' 행위가 아니라 '빵을 살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라는 점, 그래서 그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얼마만큼 인내해야 한다는 점, 이를 위해 지속적으로 해야한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들 기부자들이 믿고 기부할 수 있도록 기부처들이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운영되어야 하며, 이를 모니터하고 그 정보를 기부자들에게 제공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또한 기부자들이 의미를 가지고 쉽게 기부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이 개발되어야 할 것이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기부활동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기부자들의 노력이 존중되고, 격려되는 문화가 형성되어야 하며, 또한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고무할 수 있는 세금감면헤택과 같은 법적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이러한 노력을 바탕으로 우리사회에 건강한 기부문화가 정착되어 보다 건강한 사회를 이루기 위한 에너지가 우리 안에 충만해지길 기대해본다.
김정린(한국여성재단 기획홍보팀장)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모금기관인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지난 12-1월 집중모금캠페인 기간동안 당초 설정한 목표액인 670억원을 크게 웃도는 금액이 모금되었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사실은 기부문화가 척박하다고 인식되어 온 우리 사회가 이제는 이웃을 돌아보고 보살피는 좀더 따뜻하고 인간미가 넘치는 방향으로 변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일 것이다.
우리나라 기부문화의 어제와 오늘
지난 몇 년간 우리는 ARS니, CMS니, 1%나눔이니 하는 말과 더불어 "기부(philanthropy)" 또는 "기부문화"에 대해 많이 들어왔다. 그러면서 모두들 다같이 우리 나라는 기부문화가 척박하고, "기부"는 왠지 외국에서 외국사람들이 하는 활동으로 우리에게는 뭔가 대단히 새로운 것인 양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나라도 예로부터 환난상휼의 정신을 바탕으로 사회적 약자를 돕고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서로 구제하는 다양한 긴급 부조활동과 향약, 두레, 계, 품앗이와 같이 각 마을 단위별로 매우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진 부조활동들이 있었다. 이러한 활동들이 시간이 흘러오면서 뜻과 내용이 조금씩 변하면서 오늘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그리고 옛날부터 지역의 유지들은 천재지변 등으로 마을이 어려움을 겪게되면 자기들의 곡간을 열어 굶주린 이웃들을 먹이고 입히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그것을 마땅히 해야할 역할의 하나로 간주하였다. 소위 오늘날 이야기하는 '기부'나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라고 하는 것들이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 문화에 한 부분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시대와 사회가 변하면서 과거의 조직적이고, 공동체적인 부조활동이 사라지고, 여름철 국가적인 재난 구조를 위한 모금활동과 연말연시 불우이웃돕기 모금활동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그래서 기부활동은 지역단위별로 조직적으로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기보다는 전국적인 단위로 부정기적으로 일어나는 기계적인 활동으로 자리잡게 되었으며, 이는 일반 시민들에게 기부는 일년에 한두 번, 다소의 강제성을 띠는 활동으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시민들을 자선모금(charity)활동에 참여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논리적인 설득보다는 감정에 호소하는 방법을 취해야했다. 이는 여전히 시민들의 대부분이 ARS모금방송을 통해 기부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과 맥을 같이 한다.
이러던 것이 1990년대 후반에 들어오면서 전문적인 모금기관들이 설립되고 보다 지속적이고 조직적인 모금활동이 시작되면서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된다. 과거의 모금활동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빵을 주는 식의 자선활동(charity)이었다면, 오늘날의 모금활동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빵을 살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하는 식의 기부활동(philanthropy)에 초점을 두고 있다. 따라서 돈을 모으는 방법에 있어서는 감정에 호소하기보다는 논리적인 설득과 보다 나은 사회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모아진 돈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는 사회적으로 보다 큰 효과나 영향력을 내는 데에 강조를 하고 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아름다운 재단, 한국여성재단, 아이들과 미래 등 대부분의 공익재단들이 모두 이 무렵에 생겨났다.
전문적인 모금기관들의 등장으로 최근 몇 년간 우리나라의 기부활동은 그 양과 질에 있어서 상당한 발전을 이루었다. 아름다운 재단이 발표한 2001년도 한국인의 기부지수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52.6%가 기부활동(종교적 기부활동 제외)에 참여하였으며, 이들이 1년간 기부한 기부액은 108,000여 원으로 전년도에 비해 9.5%가 증가한 것이다. 또한 기부활동의 기저를 이루는 자원봉사활동은 평균 5.81시간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기부의 내용을 살펴보면, 전체 응답자의 81.8%가 ARS모금과 같은 비정기적인 기부를 하고 있으며 정기적인 기부자는 전년도 16.3%보다 증가하였지만 여전히 18.2%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러 모금전문기관들은 기부활동이 시민들의 일상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히도록 하기 위해 CMS, 카드 및 핸드폰 결재방식, 급여이체 등 다양한 기부 프로그램들을 개발하여 기부자들이 쉽게 기부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1% 나눔운동을 통하여 기부는 부자만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인식을 높이고 있다. 또한 개인기부자들뿐만 아니라 기업들도 지정기탁방식이나 기업공동캠페인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사회공헌활동에 참여하도록 하고 있다.
외국의 기부문화를 통해 본 우리의 과제
기부문화를 이야기할 때 전세계적으로 가장 대표적인 나라를 꼽으라면 아마 미국을 꼽을 것이다. 미국의 기부문화는 미합중국 건국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럽의 이주민들이 미국으로 건너갈 당시 미국 대륙에는 정부가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교육이나 의료와 같은 대부분의 공공서비스는 정부보다 민간인들에 의해 제공되었으며 이러한 공적인 활동을 유지하기 위해 민간차원에서 재원을 마련해야 했다. 이것이 미국에서의 기부활동, 기부문화의 시작이다. 그러던 것이 정부가 생겨나고 정부가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민간차원의 활동은 정부의 영향이 미처 미치지 못하는 영역으로 옮겨가 집중되었고 NGO활동과 기부활동을 이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현재 미국에는 수십만 개의 NGO들과 4만여 개의 재단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이들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대부분의 기부금은 개인기부자들로부터 나오고 있다. 실제 미국의 기부금 규모를 살펴보면 GDP의 2%에 달하는 1900여억 달러에 달하며 (2001년 현재), 이중 개인기부자들의 기부금이 전체의 80%이상을 차지하며, 그 뒤를 각종 재단들과 기업이 잇고 있다. 이는 미국 사회 전체에 기부문화가 굳건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돈많은 개인과 기업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에 의해 기부활동이 지탱되고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Independent Sector의 "Giving and Volunteering"조사에 따르면, 2001년 기부활동에 참여한 가구수는 전체의 89%에 이르며 이들이 1년간 기부한 금액은 1620달러로 가구수입의 3.2%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나 이를 뒷받침해준다. 또한 기업들은 자신이 속한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기업재단이나 기업의 사회공헌팀, 그리고 다른 모금기관 등을 통해서 왕성한 사회공헌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기업들은 기부활동을 단지 소비자들에 대한 기업이미지 제고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기업의 장기적인 활동을 위한 사회적 투자로 보다 적극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로 인해 미국시장에 진출한 외국기업의 경우, 미국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미국에서 본국보다 더 큰 규모의 사회공헌활동을 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하게 된다.
오늘날 급속한 정보통신기술의 발달과 미국사회의 인구통계학적 변화로 기부활동에 있어서 다양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온라인 기부활동의 활성화이다. 온라인 기부활동이 아직까지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지는 않지만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추세이다. 자선연보(Chronicle of Philanthropy)에 따르면, 기부자들이 인터넷을 통해 자선기관에 기부한 금액은 2003년 9천 6백만 달러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온라인 기부는 특히 처음 기부에 참여하는 사람들, 젊은 세대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또한 미국사회에서 점차 이민자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또 이들 이민사회에서 성공한 이민자들이 많아지면서, 특히 유대인들을 중심으로, 모국에 대한 기부(diaspora philanthropy)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 이 디아스포라 기부는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민 집단은 나름대로의 기부 메카니즘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면서 부의 이동현상이 나타나고, IT산업의 활황으로 인해 젊은 부유층이 급부상하여 기부활동에도 신세대 바람이 불고 있다. 따라서 신세대들을 기부에 참여하도록 하기 위해 과거와는 다른 모금방법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미국에서 기부문화가 꽃을 피우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 중 하나는, 카네기, 록펠러, 포드와 같이 자신의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공익활동에 앞장선 훌륭한 모델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전형은 오늘날 다시 빌 게이츠, 조지 소로우, 웨런 버핏 등에게 이어지고, 또 다시 실리콘 밸리에서 성공한 20-30대 벤처기업가들에게 이어지면서 온 국민에게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자신의 이익만이 아니라 사회전체의 이익을 생각하고 이를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 엄청난 재산을 가진 이들이 부시 대통령이 유산상속세와 증여세를 폐지한다고 할 때, 사회적 빈부격차의 심화와 기부활동의 위축 등을 이유로 대대적으로 세제폐지 반대 캠페인을 전개했던 모습은 미국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에게도 매우 깊은 인상을 남겨놓았다.
둘째는, 이처럼 공동체를 돌보고 공익을 위해 기부하는 전통을 후 세대에게 물려주기 위해 매우 세심한 노력을 한다는 점이다. 최근에 미국 록펠러 재단은 IT와 금융부문에서 성공한 젊은 세대 사업가들을 대상으로 기부활동(philanthropy)에 대해 교육하는 워크샵 프로그램을 시작하였다. 이유인즉, 이들 젊은이들은 미처 기부활동에 대한 경험을 쌓기도 전에 엄청난 부를 획득하였기 때문에 갑자기 거머쥔 부를 어떻게 건강하게 사용할 것인지, 또 어떻게 기부활동에 참여할 것인지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부활동 경험이 많은 선배 실업가들과 만나 기부활동에 대해 배우고, 향후 기부활동을 계획하고, 또 공익활동에 대한 많은 생각들을 키울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이와 유사한 프로그램들이 실리콘 밸리를 중심으로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셋째는, 기부활동을 촉진시키는 세제환경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기부금품모집규제법으로 3억원 이상을 모금할 경우 행정자치부의 사전허가를 받아야하고, 모금비용도 모금액의 2%안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되어있는데 비해 미국의 경우 모금활동에 대한 이러한 법률이 우리보다는 훨씬 완화되어 있으며 모금비용도 법률에 의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대략 20-30%정도 수준에서 자율적으로 정하고 있다. 또한 기부를 한 당사자에 대해서 우리나라는 개인에게 10%, 업체에 대해서는 5%를 감면해주는 데 비해 미국은 개인의 경우 50%, 기업의 경우 10%의 세금감면 혜택을 주어 기부에 대한 인센티브가 매우 크다.
넷째는 전문적인 모금기관들의 활동이 투명하고 효율적인 지를 철저하게 모니터하고 그 정보를 일반에게 알리는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다. 따라서 기부자들은 투명하게 운영되는 기관에 기부를 하게 되고, 기관에 대한 기부자들의 신뢰는 지속적인 기부활동으로 이어지게 된다.
건강한 기부문화 정착을 바라며
지난 몇 년간 우리 나라는 현대적 의미의 기부활동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짧은 기간이지만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많은 성장을 이뤄온 것이 사실이지만 우리사회를 보다 건강하고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원동력으로서 기부활동이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기부자들이 기부활동은 '빵을 주는' 행위가 아니라 '빵을 살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라는 점, 그래서 그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얼마만큼 인내해야 한다는 점, 이를 위해 지속적으로 해야한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들 기부자들이 믿고 기부할 수 있도록 기부처들이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운영되어야 하며, 이를 모니터하고 그 정보를 기부자들에게 제공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또한 기부자들이 의미를 가지고 쉽게 기부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이 개발되어야 할 것이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기부활동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기부자들의 노력이 존중되고, 격려되는 문화가 형성되어야 하며, 또한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고무할 수 있는 세금감면헤택과 같은 법적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이러한 노력을 바탕으로 우리사회에 건강한 기부문화가 정착되어 보다 건강한 사회를 이루기 위한 에너지가 우리 안에 충만해지길 기대해본다.
김정린(한국여성재단 기획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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