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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내일이 없는 ‘빈곤의 굴레’

내일이 없는 ‘빈곤의 굴레’

대물림되는 가난에 희망을 잃은 노동빈민들… 절대빈곤의 굴레는 갈수록 깊어만 간다

‘4인 가족이 26평형 아파트에 살고 월소득은 281만원.’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이 최근 제시한 평균적인 서울 시민의 모습이다. 가구당 부동산은 1억2천만원, 금융자산은 4100만원이며 31평형 아파트로 이사를 꿈꾼다. 그러나 서울의 이면에는 ‘영구임대주택 거주자 4만5천 가구, 비닐하우스촌 4100가구, 쪽방 거주자 3천명, 생활보장 대상자 17만명’이 있다. 서울의 절대빈곤층은 약 40만명이다. 눈에 잘 띄지 않을 뿐 여기저기 은폐된 채 흩어져 있는 수많은 지하 셋방과 쪽방 등에서 빈곤은 재생산되고 있다.

고층아파트에 가려진 도시의 빈곤


사진/ 도심의 달동네에서 빈곤 탈출은 꿈도 꾸지 마라. 배고픔보다 마음속 빈곤을 먼저 겪는 재개발지역의 아이들. (김종수 기자)


 

 

 

경제성장을 거치며 절대빈곤은 완전 퇴치됐고 빈부격차도 다른 나라보다 심각하지 않다는 게 우리 사회의 ‘자부심’이었다. 잊었던 빈곤은 외환위기와 함께 다시 찾아왔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 따라 생활비를 지원받는 대상자(4인가족 최저생계비인 월소득 99만원 이하, 재산기준 3600만원 이하)는 150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3.3%다. 그러나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최저생계비 기준 빈곤선 이하 인구는 전체 인구의 7.8%로 추정된다. 따라서 줄잡아 약 400만명 정도가 절대빈곤 상태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뜻밖의’ 놀라운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왜 그럴까. 무엇보다도 빈곤 양상이 사뭇 달라졌기 때문이다. 예전에 가난한 사람들은 모여 살았다. 가난은 본디 절망스럽고 팍팍하지만, 판자촌·달동네·산동네라는 저소득층 밀집지역에 모여 살았기 때문에 이웃이 있어 애환이 교차했다. 그런 산동네는 농촌을 떠나온 사람들이 도시생활에 적응해가는 완충지대로서 ‘희망이 있는 빈민지역’이었다.

그러나 달동네 등 빈곤층 집단거주지는 1980년대 중반부터 급격히 사라지고 현대식 고층아파트로 바뀌었다. 빈민들도 해체되고 뿔뿔이 흩어졌다. 서울 곳곳 지하셋방으로, 쪽방으로 숨어들었다. 대체물로 등장한 영구임대주택도 ‘잊혀진 주거지’로 남아 있다. 그렇게 도시의 빈곤은 은폐되고 개별화·파편화돼 있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 김수현 도시사회연구부장은 “사람들의 시선에서 가려진 쪽방, 영구임대주택 등에 빈곤층이 은폐되는 빈곤 집중의 예각화 현상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한해가 열린 지금, 그들에게도 미래는 알 수 없는, 그래서 달라질 수 있는 대상일까 가난은 여전히 혹독하고 가난의 냄새 또한 예전과 다르지 않다. 게다가 언제부턴가 빈곤은 대물림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요즘 빈곤층이 사는 지역은 ‘희망을 잃은 지역’이다.


사진/ "달방 있습니다." 도시 빈민들은 지하셋방이나 쪽방으로 숨어들 수 밖에 없다. (김종수 기자)


구로구 구로2동 주택가 지하셋방에 사는 강아무개(42·여)씨. 강씨는 남편과 이혼하고 아들(23), 딸(21)과 산다. 그동안 생활보호 대상자로서 아이들 학비를 보조받고 동사무소의 공공근로로 버텨왔다. 보증금 1천만원에 월세 5만원씩 내고 난방비로 한달 10만원씩 주고 나면 남는 게 없다. 골목길 담벽 아래로 작은 창이 나 있지만 햇볕은 전혀 들지 않는다. 곰팡이가 피지 않도록 여름에도 자주 보일러를 켜야 하기 때문에 난방비가 더 들어간다. 삼각형 모양의 삐죽한 작은 방은 창문조차 없다.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마치고 돈을 벌 만큼 성장하자 그나마 받던 기초생활보장비 지원도 없어졌다. 강씨는 요즘 구청에 딸린 자활후견기관에서 산후조리 교육을 받아왔다. 집 근처 구로시장에 장보러 나온 임산부들을 보면 놓치지 않고 쫓아가 “아이 낳으면 연락하라”며 산후조리원 홍보물을 건넨다. “기회가 되면 지하셋방을 벗어나 임대아파트에 들어가고 싶은데…. 아이들은 더 배우고 싶어하지만 지금의 처지로서 도리 없지 뭘. 그나저나 기관지 약한 아들이 걱정이에요.”

빈곤 탈출구 막혀… 마음마저 가난하다


사진/ 도시의 빈곤은 고층건물에 가려지고 있다. 빈곤층 거주지역에 현대식 고층아파트가 들어서도 도시빈민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류우종 기자)


 

 

 

지하셋방은 감춰진 가난의 두께와 넓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공간이다. 지하셋방은 80년대 중반 이후 빈곤층의 새로운 주거공간으로 등장했다. 한국도시연구소 홍인옥 연구원은 “영구임대주택이 집단화돼 있는 데 비해 연립주택·단독주택의 지하 한칸짜리 셋방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지하에 은폐, 분산돼 있기 때문에 문제가 전혀 드러나지 않고 있다”며 “이들은 지하에 산다는 사실만으로 자신감을 잃고 스스로 위축되고 있다”고 말했다.

빈곤은 세대를 넘어 확대재생산된다. 빈곤가구 아이들은 집, 사교육, 정보화 격차에서 오는, 배고픔보다 더한 마음속 빈곤을 먼저 겪는다. 빈곤의 굴레를 일찌감치 깨닫고, 성급한 좌절로 이어진다. 강서구 가양4단지 영구임대아파트에 사는 김아무개(16)양. 6년 전 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지면서 소녀가장이 됐다. 병원 가고 약 먹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못하는 엄마와 중학교 2학년 남동생과 같이 사는 그는 종합고등학교에 다닌다. 공부를 썩 좋아했던 건 아니지만 실업고 진학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가난 때문이다. 동사무소에서 타는 기초생계비는 멀리 떨어져 사는 큰아버지가 관리한다. 만화 그리기를 좋아해 동네 미술학원에 다니고 싶지만 큰아버지한테 달라는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다. 학급에서 학원에 다니지 않는 아이는 자신을 포함해 둘뿐인데 학교를 마치면 바깥에서 둘이서 한참 놀다 집에 들어간다. 김성희(가양4종합사회복지관)씨는 “이 애는 별다른 꿈도 희망도 없고 자기 표현도 안 하는데, 빈곤하지 않은 다른 세계를 경험하지 못해서 그런지 미래의 희망조차 잘 그리지 못하는 것 같다”며 “애니메이션학과가 적성에 맞는데도 정보를 잘 몰라 엉뚱한 정보통신사이버학과에 들어갔다”고 안타까워했다.

빈곤의 전형은 지하셋방, 영구임대주택뿐 아니라 쪽방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주로 매매춘업소 주변 여인숙, 여관을 고치거나 창고를 개조해 만든 1평 남짓한 쪽방은 최하층 위태로운 삶들의 마지막 안식처다. 서울 시내에는 인력시장, 기차역, 재래시장 근처를 중심으로 약 5천개의 쪽방이 있다. 고단하고 술에 찌든 삶 한켠으로 따스한 겨울철 오후의 햇살이 잠깐 여유로운 일상을 연출하지만, 그래도 빈곤은 생존과의 힘겨운 싸움이다.


사진/ 한 노인이 재활용품을 손수레에 싣고 힘겹게 이동하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기자)


서울역 주변에 있는 힐튼호텔 뒤 쪽방에 사는 김아무개(52·여)씨. 22살에 막일하는 남편(55)과 결혼한 뒤 30년째 쪽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소득은 나이 들어 건설현장 막일을 접고 대신 동사무소 취로사업으로 한달 20만원씩 버는 남편의 돈벌이가 전부다. 김씨도 몇년간 포장마차를 끌었으나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은 뒤 1평 쪽방에 몸져누웠다. 아팠지만 큰돈이 들까봐 입원을 미뤘는데, 그러다 결국 수술까지 이르고 말았다. 수술 뒤에는 요양도 못한 채 바로 퇴원했다. 한달 15만원을 방세로 내고 나면 쓸 돈이 없기 때문이다. 가끔 쪽방상담소에서 쌀을 가져다 먹기도 한다. 몸부림쳐도 빈곤 탈출의 희망은 없고, 우뚝우뚝 치솟은 도심 빌딩에 가려진 쪽방사람들은 경제적 풍요 속에서 소외라는 또 다른 박탈감에 짓눌리고 있다.

고용불안·저임금의 수렁에서 ‘허우적’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고개를 든다. 실업률은 외환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했는데 빈곤율은 왜 정체상태에 있는 것일까. 해답은 ‘신빈곤 현상’으로 불리는 이른바 ‘노동빈민’(the working poor)에 있다. 보건사회연구원 박찬용 연구원은 “외환위기 이후 빈곤의 특징은 일을 하는 근로자가구 안에서도 빈곤율이 높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열심히 일하면 빈곤에 떨어지지 않고, 또 빈곤에서 탈출할 수 있다고 믿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일해서 버는데도 자꾸만 빈곤에 가까워진다. 자신의 노력과 기술이, 아내를 돈벌이에 내몰지 않고 자녀들을 교육시킬 만큼의 충분한 소득을 보장하지 못하는 것이다. 고용불안·저임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전체 노동자의 58%)은 빈곤위험에 처해 있거나 실제로 빈곤한 가구의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그런 점에서 (준)빈곤층은 두껍고, 빈곤은 특정소수의 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의 문제다.


사진/ 빈곤은 생존과의 힘겨운 싸움이다. 인력시장에서 일감을 구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사람들. (김종수 기자)


전북대 구인회 전임강사(사회복지학)의 분석(자료: 노동연구원 <한국노동패널>) 결과 외환위기 이후 비노인가구 빈곤층의 40.7%는 가구주가 완전취업 상태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외환위기 이전에는 근로능력이 없는 전통적 취약집단(노인가구, 한부모가구, 장애인가구 등)이 빈곤층의 주류를 이뤘지만 그 뒤 근로능력 있는 빈곤층이 다수집단으로 새로 등장한 것이다. 전체 빈곤율 증가를 주도한 것도 노동대중의 빈곤화였다. 구씨는 “다수의 완전취업 빈곤층의 존재는 취업 자체가 반드시 빈곤 탈출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며 “이들의 빈곤 진입에는 실업보다 근로소득 감소가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빈곤층 발생의 주요 경로가 실업에서 근로소득 감소나 고용불안으로 이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빈곤상담연구소 류정순 소장의 연구(자료: 통계청 <도시가계조사>) 역시 노동빈민의 형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취약집단(빈곤선 이하로 떨어진 가구가 20%를 넘는 집단)의 가구주를 보면 97년의 경우 무직, 65살 이상 등 2개 집단뿐이었으나 98년에는 고교입학-고졸, 판매서비스직, 기능공, 단순노무직 등 무려 10개 집단으로 늘었다. 판매서비스직, 기능공, 단순노무직 등 일자리를 갖고 있는 계층들이 대거 빈곤층으로 유입된 것이다. 한국도시연구소 신명호 부소장은 “신빈곤 현상의 특징은 빈곤이 발생하는 경로와 집단이 다양하며, 소득 외에 신분이동의 기회 및 문화적 혜택 등 모든 영역에서 고착화된 불평등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일자리도 탈빈곤을 보장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세대를 거듭하면서 자식들이 부모보다 더 나은 교육을 받고 더 높은 소득을 올려 빈곤에서 탈피할 수 있었다. 저임금 노동자와 근로빈곤 계층이 과거에도 다수 존재했지만, 일자리를 갖는 한 안정적 수입을 발판으로 사회이동이 가능했다. 그러나 요즘 대학을 졸업한 딸은 점원 노릇 하면서, 어머니가 공장노동자로 받았던 저임금을 그대로 벌거나 아예 실업자로 전락한다. 그만큼 노동과 탈빈곤의 연결고리는 헐거워졌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노대명 연구원은 “열심히 일하고 있음에도, 심지어는 동시에 몇 가지 일을 하고 있음에도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절망감이 신빈곤 현상”이라며 “이는 비정규직 차별에서 보이듯 제도적인 배제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말했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http://h21.hani.co.kr/section-021003000/2003/01/021003000200301080442037.html


 

출처 : 의자수리
글쓴이 : 넥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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