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 사랑이 곧 저의 것이라”
연출 | 남상문·고영우·김기슭, 방송 | 화요일 저녁 7시 5분
긴 겨울의 주먹 속에 갇혀 있던 봄이, 순식간에 튀어 나왔다. 이런 봄날, 남도에 핀 목련을 신문 한켠의 컬러 사진으로 보는 것에 만족하게 된 지 이미 오래고, 창 없는 사무실의 답답함조차 바쁜 일상 속에 묻혀 더 이상 답답함이 아니다. 그런 정신 없는 일상의 틈에 뿌리를 내리는 화두가 있다. [트루 스토리]를 제작하는 내내 머릿속을 맴도는 단어. 그것은 바로 ‘진실(True)’이다. 진실은,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순리 같은 것, 소박한 삶의 저변을 지키는 힘이 아닐까? 진실이 있다 없다를 꼬치 꼬치 따지는 이들까지도 한편으론 말없이 꿈꿔 온 진실의 세계는 있으렷다. 여기에, 바로 그렇듯 순수히 존재하는 진실의 이야기가 있다. 뱃속까지 비추는 투명한 봄햇살처럼 진실한 이야기, 생(生)을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 이야기가 [트루 스토리]에 담겨 있다. 진솔하고 아름다운 삶의 이야기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의 시각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을 파헤쳐 경종을 울리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관점. 둘째, 소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삶의 진정성을 찾아 그 저변에 숨어 있는 힘을 보여 주고자 하는 관점. 이 두 가지의 시선은 삶을 긍정하는 방식의 두 측면이다. [트루 스토리]는 선택했다. 지나치는 일상 속에 잠시 발을 멈추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우리 이웃을 돌아보는 쪽을 말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나고 사는지.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거리에서, 영화관에서, 식당에서…. 그러나, 우리는 과연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동시대인에 대해서 연민과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는가? 이제,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의 삶을 통해 우리 사는 세상의 진실을 찾는 일을 [트루 스토리]가 하고자 한다. 실제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하는 리얼리티, 진솔하고 아름다운 삶의 이야기를 담는 휴머니즘이 [트루 스토리]를 지탱하는 축이 될 것이다. [트루 스토리]는 시청자들에게 친숙한 사람들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려 준다. 신애라, 배철수, 허수경으로 꾸려진 면면이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마치 책을 읽어 주듯 편안하게, 정제되지는 않았지만 개성 있는 오디오를 통해 화요일 저녁의 신선한 방문자가 될 것을 확신한다.
세상 구석 구석에 담긴 휴머니티를 찾아간다 신애라의 ‘시추에이션 다큐’는 어떤 대상을 지속적으로 관찰해 보는 시리즈물이다. 주어진 상황이나 어떤 목표를 향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을 그대로 보여 주는 방법을 택한다. 이는 시청자들이 관찰자적 입장에서 함께 고민하고 공감하게 하는 장점을 갖고 있다. 시추에이션 다큐란 실제 삶에서 일어난 일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담아 내되, 시트콤처럼 매주 다른 상황을 가지고 같은 인물이 주인공이 되어 시리즈로 엮어 가는 양식이다. 첫번째 이야기인 ‘세 쌍둥이네의 육아 일기’를 통해 이 코너 ‘시추에이션 다큐’가 잡아 갈 형식과 내용을 가늠하게 될 것이다. 세 쌍둥이를 키우는 젊은 부부의 육아 일기는 요즘처럼 아이 낳기를 부담스러워하는 풍조를 뒤로 하고 아이들과 ‘지지고 볶으며’ 사는 삶을 택한 부부, 그리고 그들이 아기들과 엮어 내는 즐거움을 전하려 한다. 이 집은 하루도 편안할 날이 없지만, 하루도 웃음이 사라지는 날도 없다. 얼굴이 똑같은 세 아이와, 그 아이들의 오빠, 그리고 엄마, 아빠…. 제작진은 그들의 생활에 담긴 아름다운 진실이 오랜 여운으로 남길 바란다. 배철수의 ‘트루 스토리’에서는 우리 주변에서 일어난 재미있고 기막히면서도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사연들을 시청자 제보를 통해 실화 그대로 재연한다. 단순한 사건의 소개가 아니라 그 속에 담긴 ‘휴머니즘’의 조명에 애쓰고 있다. 우리 이웃들이 겪는 리얼한 삶의 이야기가 DJ 배철수의 구수한 음성을 통해 유쾌하고 감동적으로 전해지고 있다. ‘트루 스토리’ 첫회에 방송된 돈가방 이야기를 기억하시는지. 돈가방을 잃어 버린 아내, 그것이 아내의 가방인 줄 모르고 경비실에 맡겨 둔 남편, 마침내 다시 되돌아온 돈가방… 남편의 정직한 삶이 그대로 아내에게 전해져 행복을 만든 사연이다. 돈을 찾아서라기보단 부부 간에 서로 의지할 수 있을 인간의 신뢰를 보았다는 점이 더 큰 진실의 감동을 주지 않던가. 이렇듯 ‘트루 스토리’는 인간성 상실과 충격적인 사건들로 점철돼 가고 있다는 큰 목소리 뒤에서, 우리 시대의 따뜻한 진실을 조용한 파장으로 말하려 한다. 진실 속의 휴머니즘을. 다음으론 허수경의 ‘밀착 6mm, 인. 간. 탐. 구’가 있다. 정직하게 살아가는 데 오히려 용기가 필요한 세상, 그 한복판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 코너를 통해 비춰진다. 늘 꿈꾸고 개척하는 사람들,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의 생을 살피며 기쁨을 느끼는 사람들, 절망과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 사람들의 진실 속에 희망이 뿌리내리고 있음을 믿으며 제작되는 휴먼 스토리다. 첫회의 주인공이었던 말레이시아 출신 때밀이 ‘칸’을 기억한다. 모국에서 대학까지 나온 인텔리, 그러나 그는 돈벌이를 위해 한국에 왔고, 한국 여인과 결혼했으며, 목욕탕에서 때밀이를 하고 있다. 그의 꿈은 돈 많이 벌어서 모국에 있는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 우리와 다른 피부색과 말씨 때문에 받은 설움이 만만치 않으련만, 그의 표정은 밝았고 오히려 한국인을 이해했다. 목욕탕에서 그는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일한다. 성실하고 정직한 노동으로 정직한 꿈을 꾸는 그는, 우리와 함께 사는, 우리 시대의 인간인 것이다.
따뜻한 교감의 시대를 꿈꾸며 아직 두어 발자국 내딛은 프로그램이다. 누군가한테 사랑 고백할 때의 설레임과 불안으로 제작진 모두 밤잠을 설치고 있다. 시청자들은 우리의 사랑 고백에 마음의 문을 열어 줄까, 그들 삶의 얘기를 전화로, 팩스로, 인터넷으로 우리에게 전해 올까,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가 의미 있다고 고개를 끄덕여 줄까? 오늘도 제작진의 고민은 계속된다. 창 없는 사무실에서 그렇게 밤이 가고 다시 아침이 오고 있다. 이렇듯 우리가 다시 진실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 그것은 결국, 따뜻한 의사 소통의 시대를 꿈꾸기 때문은 아닐까.
글 | 고영우· [트루 스토리] 프로듀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