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오지뉘성' 최종 결선에 오른 3명의 모습. 후난 위성 TV 화면 촬영. [사진=온기홍 프리랜서 기자] | 지난 19일 금요일 저녁, 중국 베이징의 남쪽 따싱취에 사는 중학생 란란(15·여)은 저녁에 집에 돌아와 식사를 하자마자 TV 앞에 앉았다. 란란은 요즘 매주 금요일 저녁만 되면 TV로 달려가는 습관이 생겼다.
베이징 북쪽 회롱관에 사는 왕푸롄(20·여)도 마찬가지다. 이날 저녁 평소보다 일찍 귀가해 서둘러 TV를 켰다. 그의 부모도 식사를 마치고 TV 앞에 같이 둘러앉았다.
이들이 만사 제쳐 두고 TV를 붙들고 앉은 까닭은 그 동안 목 빠지게 기다려온 한 오락 프로그램 때문. 이들은 그 TV프로그램이 저녁 8시 30분부터 자정을 넘겨 무려 4시간가량 진행되는 동안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베이징 하이뎬취에서 꽃가게를 운영하는 쑨이에(29)는 “오늘 이 TV오락 프로그램을 손에 땀을 쥐면서 너무 재미있게 봤다”며 “다음 주에 방송될 마지막 회가 벌써부터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최근 중국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는 TV 오락프로그램은 다름 아닌 '차오지뉘성'이다. 13억 중국 대륙을 강타하고 있는 이 프로그램은 중국 후난(湖南)위성TV에서 방송하는 여성 신인가수 발굴을 위한 리얼리티 쇼다. 지금 중국 대륙 전역이 ‘차오지뉘성’ 열풍에 휩싸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국 시청률 3위...젊은 여성들, "죽음 무릅쓰고라도 TV에 꼭 나가고 싶다"
◆중국 전역에 부는‘차오지뉘성’ 열풍 = '자유롭게 노래하고 말하세요'라는 구호를 내세운 ‘차오지뉘성’은 2002년 중국에 소개된 미국의 TV 쇼 프로그램 아메리칸 아이돌(American Idol)을 본 따서 지난해 상반기 후난TV방송그룹이 첫 제작, 후난 지역에서만 방영됐다. 그러다가 5·1 노동절 연휴기간에 중국 전역을 가시청권으로 하는 후난위성TV를 통해 전국적으로 전파를 타면서 큰 반향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올해 들어서는 후난위성TV와 중국 ‘멍뉴’ 유업그룹이 공동으로 후난성의 창샤 뿐 아니라 광저우, 청두, 항저우, 정저우 등지에서 예선, 결선 대회를 실시하는 등 전국적인 오락프로그램으로 발돋움했다.
후난위성TV 제작책임자인 리리는 “CVSC-소프레스 미디어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시청률이 8%에 이르고 같은 방송 시간대에서도 2~3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말 낮 재방송 시청률도 전국 수위를 차지하고 있다.
5개 지역의 결선은 전국 같은 시간대 방송프로그램 중 시청률 3위 안에 들고 있다. 지난 5월 6일 광저우 지역 결선 때는 무려 2억 1000만 명에 이르는 중국 시청자가 채널을 ‘차오지뉘성’에 맞춘 것으로 집계되기도 했다. 이 같은 열풍은 오는 8월 넷째 주 금요일 저녁에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2005 차오지뉘성 결선’ 때 더 고조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와 맞물려 5개 성 지역별 예선에는 10~20대 여성이 구름처럼 몰렸다. 지역별로 1만~4만 명이 참가 신청을 했다. 지금까지 12만 명에 이르는 젊은 여성들이 참가했다. 참가 신청을 위해 하루 종일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은 다반사다. 몇 시간씩 땡볕 아래서 기다리기는 진풍경도 펼쳐진다.
쓰촨성에서 참가한 져우 팅은 “나는 죽음까지 무릅쓰고라도 TV에 꼭 나올 것이다”고 의지를 내비칠 정도다. 져우 팅 같은 수많은 청소년들이 ‘차오지뉘성’을 발판 삼아 스타 가수가 되는 꿈을 꾸고 있다. 올해 ‘2005 차오! 지뉘성 결선’에 진출한 3명의 참가자들 역시 갓 스무 살을 넘긴 신세대다.
지역별 결선에 오른 참가자들에게는 벌써부터 팬클럽도 생겨났다. 이번에 전국 5강에 진출한 참가자들의 경우, 위미(玉米), 량펀(凉粉) 등 팬클럽이 생기는 등 ‘스타’ 대접을 받고 있다. 팬들은 자발적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참가자를 위해 치열한 장외 득표활동을 벌이고 있다.
중국의 대형 인터넷 포털 사이트도 ‘차오지뉘성’으로 들끓고 있다. 특집 페이지를 별도로 만들어 관련 뉴스와 뒷이야기들을 소개하고 있다. 또 인터넷에서는 이 프로그램 참가자들의 이름을 딴 속어가 범람하고 있다.
신문들도 ‘차오지뉘성’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해 세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베이징에서 발행되는 신징바오는 5강 대회가 열린 19일자에 12쪽에 이르는 ‘차오지뉘성’ 특집 섹션을 펴내기도 했다.
'스타 꿈' 실현할 수 있는 발판...출연자 중 일부는 벌써 스타 대접
|
현재 시청자 휴대전화 투표 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리위춘. TV 화면 촬영. [사진=온기홍 프리랜서 기자] | ◆ '차오지뉘성', 왜 뜨나= ‘차오지뉘성’이 전국적인 영향력을 갖게 된 배경으로는 먼저 ‘스타 열병’을 앓는 젊은 여성들에게 ‘스타 꿈’을 실현할 수 있는 '등용문'이 되고 있다는 점이 꼽힌다. 수만 명에 이르는 참가 신청자의 절반 이상이 TV화면에 30초가량 나올 수 있기 때문에 ‘TV 데뷔’의 기회가 주어진다.
그리고 지역 예선을 통과해 몇 차례 방송을 타면 사람들이 알아보고 사인 공세를 벌인다. 전국 '6강'에 오르면 매니저들이 붙고 음반회사와 계약을 통해 가수와 모델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특히 언론으로부터 인터뷰 공세와 함께 집중 조명을 받게 된다. 팬클럽이 생기는 것은 물론이다. 순식간에 전국적인 지명도를 갖춘 스타로 ‘뜨는’ 셈이다.
불과 10대 중반의 나이로 지난해 ‘2004 차오지뉘성’ 결선에서 3위에 오른 장한윈(16)의 경우 최근 첫 노래 앨범을 냈다. 또 중국 유명 ‘멍니우’ 우유의 TV광고 모델로 활약하는 등 일약 스타로 변신했다. 장한위는 스타를 꿈꾸는 일반 청소년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중국의 기존 TV 쇼 프로그램들과 차별화된 색다른 심사방식도 ‘차오지뉘성’의 인기 비결 가운데 하나다. 특히 시청자들이 심사에 직접 참여하는 파격적인 심사방식으로 오락의 '민주화'를 이끌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심사는 전문 심사위원(3명)외에 일반 대중 심사위원(35명)과 시청자 이동전화 투표로 이뤄진다. 따라서 시청자들은 방송국에 가지 않고도 휴대전화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에게 투표(1인당 최대 15개)할 수 있다.
그래서 시청자와 출연자의 팬들은 '차오지뉘성' 방송 시간이 시작하면 쉴새 없이 손가락을 움직여 문자 메시지 보내기에 열중한다.
중국의 한 방직공장 여성 근로자는 중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문자 메시지를 통한 투표시간이 되면 내가 심사위원이 된 듯한 느낌이 든다”면서 “차오지뉘성이 나에게 참여와 발언의 권리를 부여했다”고 말했다.
단계별로 참가자들을 탈락시켜가는 방식을 채택한 이 프로그램에서 시청자 휴대전화 투표 최저득표자와 전문 심사위원의 최저득점자 2명이 벌이는 ‘부활전’(일명 PK)도 이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다. 가족·친구·팬들의 열띤 응원전 속에 두 사람의 노래가 끝나면, 스튜디오에 나온 35명의 일반 심사위원들이 투표를 통해 한 명을 ‘구제’하게 된다.
이처럼 ‘차오지뉘성’은 시청자와 일반인들에게 전례 없는 ‘권력’을 부여함으로써 기존의 ‘스타 오락’이 아닌 ‘평민 오락’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일반사람도 휴대전화로 심사 참가...일반인에게 '권력' 부여한 '평민오락' 의 시초
◆ 방송사와 이동통신사 수익증대로 ‘즐거운 비명’= ‘차오지뉘성’ 프로그램을 통해 가장 많은 재미를 보는 곳은 후난위성TV. 프로그램 시청률이 높다 보니, 프로그램 앞뒤와 중간에 광고가 많이 붙고 있다. 차오지뉘성의 브랜드 가치는 이미 수억 위안에 달하는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특히 TV와 이동전화의 결합은 ‘차오지뉘성’의 성공 요소로 지목되고 있다. ‘2005년 최종 결선’에 오른 세 사람이 지금까지 받은 이동전화 메시지 득표수는 400만 표를 웃돈다. 메시지 투표 건당 0.5위안에서 3위안(400원)인 것을 감안하면 후난위성TV와 이동통신회사들은 톡톡히 재미를 본 셈이다.
‘차오지뉘성’ 프로그램 후원사인 ‘멍뉴’ 유업도 TV프로그램이 인기가 치솟으면서 ‘차오지뉘성’ 광고를 실은 우유 제품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이 때문에 ‘차오지뉘성’은 일반 대중의 주목을 끌어 경제적 이익을 얻는 경제활동인 ‘주목경제'의 성공 사례로까지 평가 받고 있다.
젊은이들 개성 발산..."휴대전화 통한 민주주의 실현" 분석도
◆"새로운 문화현상 만들어내"= '차오지뉘성'은 이미 올해 중국 문화 분야 10대 유행어 중 하나에 선정됐다. 중국 매스컴의 집중 조명도 한 몸에 받고 있다. 신문들은 거의 매일 기사와 칼럼을 통해 ‘차오지뉘성’ 내용을 다루고 있다.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차오지뉘성'의 시청여부를 유행 민감도를 재는 척도로 삼는다. 한마디로 ‘차오지뉘성’을 모르고서는 대화가 안 될 정도다.
중국 영자지 차이나데일리와는 “중국은 그 동안 국민들에게 집단주의를 강조해 왔지만 ‘차오지뉘성’은 젊은이들에게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고 가치를 실현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 인기 주간신문 난팡줘모어도 최신호에서 “차오지뉘성이 단순한 오락프로그램에 그치지 않고, 중국인들의 생활에 깊숙이 파고들어 참여의식을 일깨우고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일반인들이 직접 참여 하는 심사 방식 등이 청소년들의 민주의식을 계몽하는 역할도 한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중국 일간지 동팡자오바오는 “중국 시청자들은 지금까지 한 번도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자율적으로 투표할 권한이 없었다”며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통한 투표는 민주주의 실현이라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신문은 또 “이러한 방식들은 대부분 젊은 층인 참가자와 시청자들의 민주의식과 행위 습관을 키우면서 향후 중국의 제도의 변화에 영향을 줄 것이다”라고 전망해 눈길을 끌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