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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런 프로그램 ‘베껴주세요’

» 김영희/편집3팀 기자
어릴 적엔 <마징가Z>가 일본 만화인 줄 몰랐다 하면 요즘 청소년들은 “설마~” 할지 모른다. 이젠 간덩이가 붓지 않고서야 몰래 일본 콘텐츠를 베끼기도 쉽지 않다. 한두 차례 검색으로 자막 달린 일본 방송을 거의 시차 없이 볼 수 있는 시대이니. 인터넷이 아니더라도 일본 콘텐츠는 ‘당당히’ 들어오고 있다. 방영 초부터 화제인 드라마 <하얀 거탑>은 아직까진 -더 화려해진 병원 외엔- 일본 원작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락프로그램엔 코너 구성 등만 빌려오는 ‘포맷 수입’도 적지 않다. 가요계엔 일본 노래 번안곡이 부쩍 늘었다.

‘일본 문화 침투’를 심각하게 운운할 생각은 없다. 문화란 조금씩 베끼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만들어지는 것 아닌가. 다만 기왕 벤치마킹을 하려면 좀더 ‘신선한 자극’이 어떨까.

일본의 한 공중파 황금시간대에 <오타 히카리의 내가 총리가 된다면…비서 다나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진행자는 ‘폭소문제’ 콤비로 19년째 활동 중인 인기 코미디언 오타 히카리. 지난해 ‘무사도’ ‘품격’ 같은 보수 냄새 폴폴 풍기는 단어들이 유행한 일본 출판계에서도 평화헌법의 소중함을 강조한 그의 대담집 <헌법 9조를 세계유산으로>는 32만권이나 팔렸다. <뉴욕 타임스>에도 크게 소개됐다.

오타가 총리가 돼 매회 공약을 내놓는데 내용이 파격적이다. ‘가사를 하지 않는 남자와는 이혼해도 좋다’ ‘이지메를 없애자라는 슬로건 금지’ ‘북한 핵을 일본이 사들인다’ ‘의무교육 폐지’ ‘1년간 미국과 국교 단절’ 등등. 패널에는 배우·언론인·전문가부터 현역 의원들까지 포함된다. 신랄성은 미국의 <데일리쇼>보다 떨어지지만, 코미디언 오타가 자신의 ‘일본 개혁 프로그램’을 들고 나와 웃음을 섞어가며 벌이는 토론엔 일본 사회의 스펙트럼이 망라돼 있다. 한국에도 몇몇 ‘가벼움’을 표방하는 토론토크가 있지만, ‘시시껄렁한’ 주제는 연예인이, ‘깊이 있는’ 내용은 전문가가 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되레 굳히기도 한다. <오타 히카리의…>는 다르다. 우파의 전형 이시바 시게루 전 방위청 장관 같은 거물이 고정 패널로 나와 성인화보 모델과 동등하게 자기 주장을 펼친다.

그는 우파도 딱히 좌파도 아니다. “100년 전 세상은 전쟁에서 사람을 죽이는 걸 당연시했다. 사무라이가 길 가던 사람을 칼로 베고도 미안하다고 하면 그뿐이었던 것처럼. 보통 국가의 헌법으로 생각되지 않는 이 헌법이 100년 뒤에는 당연한 게 될지 모른다.” ‘현실주의’에 젖은 정치인이나 학자들은 ‘이상주의’라고 무시할 얘기다. 어찌 보면 ‘돈키호테’에 가깝다.

그렇지만 좀더 들어보자. 그는 동아시아 국가와의 과거사에 대해 “일본은 어떤 형식이나 돈으로 해결됐다고 하지만 정치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독일도 일본도 국가로 존속하는 한 껴안아야 할 과제”라고 말한다. “매번 총리가 ‘부전의 결의’를 반복하지만 이웃나라가 못 미더워 하는 건 당연하다… 정말 진심이라면 그들이 믿을 수 있는 용어로 바꾸면 되지 않나.” 현실주의자의 머리에선 나오지 못할 발상이다. 오타는 이런 정신이 일본 전통의 풍자·해학에 닿아 있다고 한다. “무사도 한편엔 ‘잠깐!’ 하며 그걸 농하는 문화가 있었다. 라쿠고(1인 만담 형식의 전통예술)의 웃음은 인간을 극단으로 몰거나 영웅시하는 걸 막는 일종의 억지력이다.”

“정치 하실 거죠?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하지만 정말 세상을 바꾸고 싶으면 코미디를 할 일이다.” 인기가 검증된 것들만 들여오는 걸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이런 ‘자유로운 정신’과 콘텐츠를 벤치마킹하는 일이라면 더더욱 환영이다.

김영희/편집3팀 기자

출처 : 작은畵室
글쓴이 : 독일병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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