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TV 바로보기

[테마기획] - 도전

            도전
물러서지 않고 생의 핵심 속으로 뛰어들기

세상 앞에 마음 문을 열어제친 영웅의 도전
“모두가 똑같이 날개가 달려 날아다니지 않는 한, 죽을 때까지 저는 혼자일 거 같아요.” 영웅이 내게 맨 처음 한 말이었다. 지난 겨울, 왜소증 장애인 대학생들이 또래의 보통 학생들과 함께하는 호주 여행을 취재했었다. 그 여행에서 유난히 키가 작고 휠체어 없이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지만 표정엔 하나 가득 설레임을 머금고 있던 영웅을 만났다. 올해 스물두 살의 영웅은 중증 왜소증 장애인. 선천성 염색체 이상으로 보통 키가 1미터 이상 자라지 않고, 성장하면서 척추가 휘어 내장 기관에 이상이 생기는, 따라서 오래 살지도 못하는 천형과도 같은 병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영웅에게 13박 14일의 여행은 무모해 보이기까지 한 것이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고, 몇 발자국을 걷는 것도 고통스러워하던 영웅. 호주의 파란 하늘과 드넓은 초원 앞에서 오히려 그는 날이 갈수록 움츠러들었다. 불편한 몸이 마음까지 휠체어에 붙들어맨 듯했다. 설상가상으로 여행 일 주일 만에 그의 전동 휠체어는 망가져 버렸고, 휠체어 위에서 그는 완전히 혼자였다. 하지만 영웅이 변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 때부터였다.
남의 도움이 부담스럽다며 스스로 외톨이가 되곤 했던 영웅이가 먼저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색해하던 친구들은 기꺼이 영웅의 다리가 되어 주었고, 그들의 등에 번갈아 업혀 가며 이어지는 여행 속에서 영웅은 비로소 또래의 밝은 표정을 되찾는 듯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친구들과 나를 놀라게 했던 건 여행이 끝나갈 즈음 수영장에서였다. 신체적인 이유로 한 번도 수영을 해 보지 못했다던 영웅이 스스로 그 곳에 나타난 것이었다. 처음, 물 속에 몸을 담그던 그의 표정엔 두려움이 스쳤지만 이내 편안해졌고, 물 위를 떠다니는 그의 몸은 비록 초라했지만 세상 누구보다 자유로워 보였다. 비로소 스물두 살 영웅이 세상을 향해, 그리고 자기 자신을 향해 마음을 열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집 앞의 구멍 가게를 가기 위해, 한 끼의 밥을 스스로 먹기 위해 먼저 한참 동안 마음의 준비를 하곤 했다는 영웅. 그에게 있어 삶은 매 순간이 힘겨운 도전이었다. 하지만 영웅은 더 이상 움츠러들지 않았다. 숨이 막힐 정도로 조여 오는 ‘혼자라는 생각’도, 스스로에 대한 지독한 열등감도 더 이상 피해 가지 않을 거라고 했다. 도전할 수 있는 힘이 있는 한 당당히 맞서 극복할 거라고 했다.
영웅은 그 ‘도전’을 통해서 불편한 몸으로부터, 더 불편했던 마음으로부터 매 순간, 조금 더 자유로워지고 있었다.

김미영·1995년 방송 작가로 입문해, [기아 체험 24시간] [생방송 행복 찾기] 및 타 방송사의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해 왔다. 최근까지 구성했던 [휴먼 TV 아름다운 세상]의 ‘키 작은 나무들의 세상 나들이’ 편(2002년 1월 29일)에서 만난 김영웅의 모습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갈라진 허스키 보이스, 하지만 경림은 너무 예뻤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누구나 예쁜 여자를 원한다. 그것은 아무리 세월이 흐른다 해도 변하지 않는 진리다. 그런 내게서 그 원리를 뒤엎은 이가 있었으니, 바로 박경림이었다. 프로그램 회의로 처음 만난 경림은 역시 내 기대를 무너뜨리지 않았다. 그 동안 텔레비전에서 보아 오던 모습 그대로, 지금은 매력 포인트(?)가 되어 버린 네모난 얼굴에 예의 허스키한 음성. 그러나 만난 지 10분 만에 내가 깨닫게 된 건 다른 무엇도 아닌 그녀의 엄청난 열정, 바로 그것이었다. ‘박고테’ 역시 그 열정의 결실이었음은 두말 할 여지가 없다.
라디오에서 시작된 ‘박고테’ 프로젝트! ‘박 남매 고속 도로 테이프 만들기’의 준말이다. 그런데… 박경림이 노래를 한다구? 고속 도로 테이프라는 컨셉트에 일견 다행이다 싶긴 했지만, 여전히 갸우뚱거리는 내게 그녀는 자신이 내놓은 그 코너 아이디어를 설득해 왔다. 그래도 여전히 미심쩍어 하는 날 움직인 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그녀의 한 마디. “선생님, 나 같은 애가 노래룰 할 수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어요. 나 같은 애가….” 그것이 바로 우리의 억지성 도전 프로젝트, ‘박고테’의 시작이 된 것이다.
박경림의 콤플렉스 극복기! 우리의 슬로건은 다름 아닌 “네 시작은 미미하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였으니. 성대 검사 결과 다행히 경림은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판정을 받았다. 우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밀어붙였다. 그리고 하루, 이틀, 일 주일, 한 달, 두 달…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경림의 도전은 계속되었다. 처음엔 서너 갈래의 목소리를 ‘깡’으로 질러 내더니, 이제 거기에는 ‘열정’을 넘어 어떤 ‘진심’을 담아 내기 시작한다. 나 같은 아이도 할 수 있다는, 아마도 가슴 저 안쪽에서 우러나오는 어떤 집념이었을까? 그러한 경림의 노력에는 주영훈, 남궁연, 김장훈, 캔, 유리 상자, 이기찬, 장나라 등의 ‘박고테 패밀리!’가 있었으니, 이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마도 이 무모해 보이는 도전은 실현될 수 없었으리라.
이젠 ‘박고테’ 프로젝트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그 간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한 차례 ‘박고테 콘서트’를 가졌고(경림은 심지어 댄스까지 선보였다!) 곧 앨범 출시도 앞두고 있다. 이 앨범 수익금을 모두 불우한 어린이에게 보내려는 경림과 ‘박고테 패밀리’의 진심을 위해서라도, 나는 이 도전의 결과를 성공에 매어 놓고 싶다(어쩌면 정말로 앨범이 대박날지도 모른다. 아니, 그러기만 고대한다고나 할까). 물론 이 코너를 진행하며 프로듀서로서 시청률에 신경 쓰였던 건 사실이지만, 한편으론 ‘경림의 도전’과 ‘시청률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불안 반 기대 반으로 좇는 스릴을 즐겼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경림이 내게 가르쳐 준 교훈이 아니었을까 싶다. “예쁜 것만이 아름다운 건 아니다!” 어쩌면 나는 지금 그녀라는 늪, 그 기분 좋은 늪에 빠져 버린 건 아닐까?

한경진·1992년 MBC에 입사, [특종 연예 시티] [김승현의 잠 못 이루는 밤] 등을 연출하고 97년 SBS로 자리를 옮겨 [좋은 세상 만들기] [좋은 친구들] [로드 쇼 힘나는 일요일] [남희석의 색다른 밤] [기분 좋은 밤] 등을 연출했다. 현재는 [아름다운 밤]을 연출하고 있다.

언제나 삶의 ‘현역’을 꿈꾸는 아름다운 노년
지난 여름, 어머니를 모시고 간 제주도 여행에서였다. 햇살은 아직 따사로운 9월, 제주는 여름의 마지막 끝자락을 붙잡고 있었다. 어머니를 모시고 간 수영장에서 난 그녀와 살아온 삼십 년 만에 처음으로 수영복 입으신 모습을 보았다. 가만 가만 물 속을 걸어다니시는 어머니의 모습, 아! 한때 흑단 같았을 그 머리는 지금 햇살 아래 하얗게 바래져 있지 않은가? 또 저 입가의 웃음 주위로 모여든 주름살들은… 인정하기 싫지만 이제 그녀는 ‘아줌마’가 아닌 ‘할머니’가 되어 있었다. 그 한 달쯤 후, 난 [마음은 언제나 청춘]을 만났고 이제 다섯 달이 되어 간다.
이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 처음에 느낀 당혹스러움은 내가 실버 세대라는 층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남들 따라 하긴 싫었지만 그렇다고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던 거다. 그 때 아마 난 불현듯 어머니를 떠올렸나 보다. 육십 평생 처음으로 수영이란 걸 하며 이를 드러내고 웃으시던 어머니. 평생 매어 있던 살림살이로부터 벗어나 다른 일을 하면서 즐거워하시던 그 모습 말이다. ‘어머니께 난 무얼 해 드릴 수 있을까?’ 그렇다! 어둡고 쓸쓸한 파고다 공원이 아닌 젊고 밝게 살아가는 이들의 세계로 안내하는 거다. 생의 뒤안에서 소외되고 힘든 분들께 은빛으로 빛나는 실버 세대의 웃음을 보여 주는 것, 그것이 내가 이 프로그램을 통해 말해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내가 [마음은 언제나 청춘]에서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코너들이 ‘아름다운 실버’와 ‘현역이 좋아’인 것도 바로 그런 이유일 것이다. ‘아름다운 실버’는 요즈음 각 구마다 무료로 운영되고 있는 노인 종합 복지관을 찾아 댄스, 포켓볼, 게이트볼 등의 동아리 활동에 열심인 분들을 주로 소개하고 있고, ‘현역이 좋아’에서는 사회 일선에서 열정적으로 제2의 인생을 살고 계신 분들을 찾아간다. 아흔이 넘으신 물고기 박사 최기철 선생님, 한국 주례인 협회 홍진구 회장님, 사진 작가 남기승 선생님, 우리 나라 여성 세무사 1호로 지금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신 임신빈 선생님 등, 많은 어른들이 계셨다. 그분들의 가장 큰 공통점 하나. 지금까지 해 온 것보다 앞으로 해 나가야 할 일들에 더 열정적으로 임하고 계시다는 것이었다. 그 목소리에 충만했던 열의라니… 그건 바로 한창 나이의 우리조차도 쉽게 따라갈 수 없는 열정과 도전 정신이 아닌가.
아름다운 노년이란 어떤 것일까? 절망 섞인 체념도, 그렇다고 나이를 잊은 경박함도 물론 아닐 것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사람은 각자 세월에 알맞은 미덕과 아름다움이 있다고, 그 아름다움을 찾는 노력을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말이다. ‘실버’라는 단어는 뒤떨어진 세대에 대한 비유가 아닌, 오히려 큰 강물처럼 속 깊은 경험과 연륜의 상징으로 읽혀져야 할 것이다. 내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그러한 아름다움을 갖추는 것은 결국 각자의 몫임을, 아직도 최선을 다해 삶을 살고 계시는 아름다운 노인들에게서 보게 되는 그 열정과 도전 정신만이 아름다운 삶으로 이끌 수 있다는 것에 다름 아닐 것이다.

송경희·1995년 SBS에 입사, 2000년 6월부터 라디오 프로듀서로 활동해 오고 있으며 현재 [마음은 언제나 청춘] [명의에게 듣는다] [조경철의 자동차 24시] 등의 프로그램을 연출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