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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아파트 공화국




[한겨레] 1970년 정부 주도로 건설된 서울의 소형 아파트단지는 20여군데로 모두 강북에 있었다. 아파트는 전체 세대의 4%에 불과했다. 서울에는 아파트가 없는 지역이 없고 2005년 현재 아파트 비중은 전체 주택수의 52.7%이 이른다. 수천세대의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곳곳에 있고 심지어는 ‘신도시’라는 이름의 ‘아파트도시’가 서울을 둘러싸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타워팰리스’라는 초호화 초고층 ‘닫힌 공간’이 생겨나기도 했다.

옛 서울은 스카이라인이 낮고, 상가와 주거지역이 구분됐으며 대로와 골목길이 구분됐다. 1958년 성북구 종암동에 지어진 5층짜리 3개동 152세대를 시작으로 한 아파트라는 ‘물건’은 1964년 마포교도소 자리에 조성된 6층 10개동 단지 낙성식에 대통령이 참석해 그 의미를 역설할 만큼 썩 좋지 않은 이미지를 주었다. 그러던 것이 50년이 지난 지금 도시와 주민생활을 뿌리째 바꿔놓았다. 개나쇠나, 물불 가리지 않고, 미친듯이, 몰려들어, 서울 인구의 1/3 이상이 거주하게 된 것. 이 희한함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아파트공화국>(후마니타스)는 그에 대한 본격적인 답을 구하고자 한다. 답변자는 희한하게도 프랑스의 젊은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 그는 1993년 서울을 처음으로 방문해 프랑스에서는 슬럼화해 골치가 된 아파트가 한국에서는 거대한 군집을 이루어 번창하고 있음에 놀랐다. 연구대상으로 삼은 일곱개의 아파트단지 중 한군데에 거주해 ‘불란서 학생’으로 불리며 설문과 조사를 한 결과를 바탕으로 소르본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층계를 오르내리며 초인종을 누르면 “바빠요”라는 문전박대를 당하기 일쑤였고 ‘왜 아파트냐’는 질문에 정책담당자들은 “좁은 땅에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스테레오타이프 답을 하고 사용자들은 “편하고 깨끗하잖아요”라는 모호한 답을 할 뿐이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그럼 그게 정답이 아니란 말인가? 라고 반문할 것이다. 이 프랑스 여성은 한국인 스스로 묻고 답하지 못한 아파트공화국의 본질과 문제점을 말해준다.

결과물로 소르본대학 박사학위

마포구의 한 재개발아파트 단지에서 경비로 일하는 50대의 전씨. 재개발 전 달동네에 집을 한채 소유했고 벽돌공으로 일했다. 1980년 재개발조합이 결성되었을 때 조합원으로 가입했고 38평 아파트를 분양받을 권리를 얻었다. 공사 중에는 15평 단독주택으로 이사했다. 건설사가 지원한 이주비용과 저금, 친지한테 빌린 돈을 합쳐 전세금 4000만원을 치렀다. 아파트 잔금도 빌려서 해결했다. 93년 아파트가 완공되자 젊은 부부한테 7500만원에 전세를 주었다. 그것으로 빌린 돈을 갚은 그는 그곳 경비로 취직했다. 전씨는 “운이 좋아” 아파트를 소유하게 되었지만 실제로는 그곳에 거주하지 못하고 더도덜도 아닌 ‘하인’이 되어있다. 그렇지만 아파트값은 엄청 뛰어올라 매우 만족스럽다.

예로 든 전씨의 사례는 아파트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아파트는 곧 돈. 돈있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공간이며 역으로 부의 창출공간이라는 것. 또 아파트 분양은 경제적인 수혜이고 이는 중간계급으로 편입되는 통로라는 것이다.

한국에는 진정한 국민주택이 없다. 지은이의 가혹한 평가다. 프랑스의 국민주택 정책은 노동자 계층에게 주거지를 마련해줌으로써 그들을 국가 안으로 통합하려 하고 국가가 간여함으로써 부의 이전 및 재분배를 꾀한 반면 한국에는 전혀 그렇지 않다. 소형은 있어도 소수에 불과하고 그나마 지불능력이 있는 평균소득 이상자들에게 돌아간다. 임대주택의 비율은 아주 미미하고 그나마 거주자들은 왕따를 당한다. 아파트의 인구밀도는 높아지고 단독주택의 인구밀도는 낮아지는 현상은 아파트의 건설이 중산층 이상을 대상으로 했음을 보여준다. ‘한강의 기적’을 과시해 정권을 재창출하고 싶은 정부, 끊임없이 부수고 지음으로써 주머니를 불려온 재벌. 청약제도라는 일종의 도박으로 일약 중산층으로 편입돼 정부 지지층으로 변모하는 사람들. 그 한 가운데 아파트가 존재하고 그 주변부에 전씨와 같은 헛배 부른 사람들이 몰려있는 모양새다.

이런 가운데 한국 지식인들은 무얼 했는가. 아파트에는 건축 및 도시계획적 철학은 반영되지 않고 단지 단기간에 대량의 주택을 공급하려는 기술적 방법론만 횡행했을 뿐이다. 김중업이나 김수근 등 고상한 건축가들이 손을 댈 만큼 고상한 분야가 아니었던 터. 한강변 동부이촌동의 초기 아파트 건설 당시 대한주택공사는 1000여가구의 생활을 어떻게 꾸릴까에 대한 아무런 지식도 통계도 없었다. 이때 한 도시계획 전공 교수가 제시한 1920년대 페리의 근린주구 개념이 부랴부랴 도입됐다. 한마디로 아파트 건축의 개념은 ‘그때그때 달라요’였다. 초기 한강맨션은 독일 노동자 아파트 ‘지들룽’ 판박이였고 마포단지는 미국인 고문이 참여해 영국 셰필드 단지를 본떴다. 토지구획정리 절차와 기법과 아파트 내부공간의 구성원칙, 즉 거실 식당 부엌이 연결되어 열려있는 LDK(Living, Dining, Kitchen) 원칙은 일본에서 들여왔다.

관리사무소는 병영초소 연상

아파트 단지는 저급한 주거공간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이 아니다. 통행로나 소방도로를 효율적으로 내고 3~4층으로의 재개발로도 가능하다. 아파트화는 가장 저렴하고 가장 이윤을 남기는 방식일 뿐이다. 거기에 아파트는 깨끗한 도시사람, 단독은 너절한 촌사람의 공간이라는 정부와 업자가 조작한 이미지가 한몫 거들고 있다는 게 지은이의 진단이다.

병영초소를 연상시키는 관리소와 폐쇄회로 티브이, 반상회, 계모임 등 남성이 배제된 일상생활, 행상트럭이 생필품을 공급하는 풍경, 한옥의 장독대 모습이 재현된 베란다, 고정식탁과 접이식 상이 공존하는 식습관 등 프랑스 여성의 꼼꼼한 눈을 통한 우리 아파트의 풍경은 무척 낯설다.

외국인이 한국의 아파트를 깊이있게 연구하는 동안 한국의 전문가들은 무엇을 했는가. 이제라도 제 나라의 가장 덩치 큰 ‘물건’을 제 눈으로 보고 천착하여 기록할 사람은 과연 없는가. <아파트공화국>이 던지는 가장 큰 메시지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펌
출처 : 허니대디의 옹달샘
글쓴이 : 허니대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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