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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인연

 

인연(因緣)


사람이 한 평생을 살아가다보면 이런저런 인연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때로는 좋은 사람을 만나 도움을 받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그저 그런

사람을 만나서 그냥 스쳐지나가기도 하지만 또 어떤 때에는 악한 사람을

만나서 화를 입기도 합니다.


요즘 영안모자 백성학 회장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세상이 불황으로 허덕이는 데도 그는 우리나라 버스시장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대우버스를 인수하는가 하면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의 지게차 생산업체인

클라크사를 인수하여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기 때문입니다.


모자회사가 자동차회사를 사다니.., 사람들은 새우가 고래를 잡아먹었다고 야단을

하면서 1~2년도 못가서 파산할 것이라고 수군거렸습니다.


하지만 그는 새로운 버스를 개발하여 상하이 버스시장을 장악하는 등 회사를

급진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지금 방송이 중단 된

상태인 경인티브이를 cbs방송과 공동운영자로 참여하여 곧 방송을 재개 할

것이라는 소식입니다.


그의 인생행로는 한 편의 소설을 보는 것처럼 기구합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2월, 열 살 소년 백성학은 고향인 원산에서

피란 가는 교회 형들을 배웅하러 나갔다가 형들이 주는 과자를 받아먹으려고

배를 탄 것이 그만 어머니와 생이별을 하게 되었습니다.


묵호항에 도착한 그는 오갈 곳이 없어서 3년 동안 거지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어머니가  보고 싶어서 무작정 북쪽으로 걸어가다가 강원도 홍천에서

혹한과 굶주림에 그만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신문지에 싸서 주고 간 빵 하나로 죽을 고비를 넘긴 그는

어쩌다가 미군부대에서 잔심부름을 하는 쇼리가 되었습니다.

그때 그를 돌봐준 병사가 빌리었습니다. 빌리는 자신이 고아출신 이라서

그런지 어린 그를 따뜻하게 보살펴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북한군의 포탄이 유류 저장고에 떨어져서 폭발하는 바람에

그는 전신에 심한 화상을 입었습니다. 빌리의 도움으로 미군병원에 입원한

그는 무려 19개월간이나 치료를 받은 후에야 겨우 퇴원을 할 수 있었는데

만일 그때 빌리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그는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15세 때 서울로 올라와 모자가게 사환으로 일하다가 19세 때 독립하여

작은 모자가게를 차렸습니다. 그리고 피눈물 나는 노력을 한 결과 영안모자는

연간 1억 개의 모자를 생산하여 세계모자시장의 40% 점유하는 세계제일의

모자 회사가 되었습니다.


사업에 성공한 그는 먼저 자기의 목숨을 구해준 빌리부터 찾았습니다. 전직

FBI 요원에게 의뢰하여 미국을 샅샅이 뒤진 결과 필라델피아에서 빌딩 청소부로

일하고 있는 빌리를 찾아낸 것입니다.


빌리와 감격적인 해후를 한 그는 빌리에게 보은의 뜻으로 좋은 집과 차를 사주고

자녀들의 교육도 모두 책임지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빌리는 한마디로 거절했습니다. 그래도 보은의 기회를 달라고 조르자 그렇다면

자기의 이름을 딴 ‘빌리의 집’을 하나 지어서 불쌍한 사람들을 돌보아달라고 했습니다.


백 회장은 강원도 홍천에다 대지를 마련하고 '빌리 사랑의 집'을 지어서 사회 복지시

설인 백학마을을 건립했습니다. 그가 만든 이 마을에는 고아원, 병원, 양로원, 장애인

수용시설, 자활 공장이 들어서 있습니다.


그가 홍천에다 백학마을을 세운 것은 어머니를 찾아서 북으로 걸어가다가 혹한과

굶주림으로 길에 쓰러졌던 곳이기도 하거니와 미군부대에서 쇼리 생활을 하면서

빌리와 인연을 맺었던 곳이기 때문입니다.***




출처 : 청정남
글쓴이 : 청정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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