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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 피플

미 국방부 “한국전쟁 때 소련 끌려간 국군포로 소환없었다”

미 국방부 “한국전쟁 때 소련 끌려간 국군포로 소환없었다”
강상호 전 북한군총정치국장·나고스키 기자 진술서 공개
입력 :2007-04-13 10:23:00  
[데일리서프라이즈 김혜영 기자] 미국 국방부는 12일 한국전쟁 당시 국군포로 수천 명이 북한에서 소련으로 끌려가 정전 협정 후 있었던 포로교환 당시 송환되지 않았다는 내용의 문서를 공개했다. 또한 한국전쟁 당시 남한 주요 인사들의 납북 상황 등을 담은 美 중앙정보국(CIA)의 비밀해제 문서도 함께 공개돼 충격을 더하고 있다.

미국 국방부가 공개한 포로교환 당시 미 송환 보고서는 한국전쟁 당시 미군 포로의 러시아 생존 여부 확인 및 유해 발굴·반환을 위해 미국과 러시아가 공동으로 만든 ‘전쟁포로 및 실종자 위원회’가 조사활동을 펼치던 중 사실로 밝혀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사실은 지난 1993년 ‘한국전쟁 포로들의 소련 이동 보고서’에서 확인됐으며, 강상호 전 북한 군총정치국장과 당시 美 에스콰이어지의 자이그먼트 나고스키 기자의 진술을 토대로 작성된 것.

이 내용을 진술한 강 씨는 해방 후 소련 공산당에 의해 북한에 파견돼 한국전을 치르고 군사정전위 북측 수석대표도 역임했다. 그는 92년 11월 진술에서 “수천 명의 한국군 포로들을 소련의 300~400개 수용소로 이송하는 것을 지원했다”고 밝히고 “수용소는 대부분 타이가 지역이나 중앙아시아지역에 있기도 했다”고 전했다.

한편 보고서에 따르면 강 씨는 한국군 포로들의 압송 사실만 알고 있다고 진술했으나 정황으로 미루어볼 때 미군을 포함한 다수의 유엔군들도 수용소로 보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지난 1953년 5월 이같은 내용을 집중 취재·보도한 美 에스콰이어지 나고스키 기자는 국군 포로 등의 소련 압송 경로와 생활상을 진술했으며, 이는 소련 내무부 요원 2명과 시베리아 횡단 철도 직원으로부터 정보를 입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고스키 기자는 이에 대해 “지난 1951년 11월부터 1952년 4월까지 태평양 해안과 타타르 해협이 얼어있을 때 기차로 ‘몰로토프’로 옮겨졌다”며 “반면 얼음이 녹았을 때에는 해상 경로를 이용해 이뤄졌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의하면 당시 포로들의 대부분은 국군과 남한 정치인들로 소련 극동항구로 이송된 후 야쿠츠크 주변의 콜리마 수용소 등으로 보내졌다. 또한 추크치해 지역으로 이송된 포로들은 최소 1만 2천명에 달하며, 도로공사와 비장장 건설 등에 동원되면서 상당수가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고서에서 진술한 강씨는 북한내 소련파 숙청 움직임에 반발해 59년 소련으로 귀환했고 2000년 12월12일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91세로 사망했다.

이처럼 미국 국방부 비밀해제 문서가 사실일 경우, 한국전 포로 송환 문제를 구체적으로 검토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편 1951년 8월8일자에 작성된 美 중앙정보국의 비밀해제 문서 ‘만포진 포로에 대한 북한인들의 취급 첩보 보고서’에 따르면 독립운동가 박 모씨는 1950년 9월 남한의 4천 600여명을 북한으로 집단 납북했고, 납북자가 10월 19일 만포진에 도착한 이후 대다수 수용소에 감금했거나, 일부는 압록강을 건너 만주공안경찰에게 넘겨진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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