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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BBC도 권위 대신 실리 택한다

英 BBC도 권위 대신 실리 택한다
Rethinking the BBC
재정 압박과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현실에 직면해 유튜브와 제휴 등 상업화 적극 모색

디지털 시대의 기준으로 봐도 이상한 결합이다. 한쪽은 권위있기로 유명한 85년 역사의 존경받는 방송사 BBC이고, 다른 한쪽은 생긴 지 얼마 안 되는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YouTube)다. 그러나 서로 이득을 본다면 연륜의 차이쯤이야 무시해도 좋다. 두 회사는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지난달 수익을 공유하는 계약을 맺었다. BBC가 유튜브에 콘텐트를 제공하고, 그 수익 중 일부를 가져가는 방식이다.

BBC는 사이버 공간의 거물급 파트너를 확보해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젊은이에게 다가가게 됐고, 유튜브는 소유주인 구글이 성가신 판권 분쟁에 휘말린 이때 양질의 콘텐트를 합법적으로 사용하게 됐다. BBC 월드와이드의 전략 책임자 루크 브래들리 존스는 “한마디로 윈-윈”이라고 말했다.

그런 승리는 요즘 BBC에 특히 중요해졌다. 2000년대 초 회사 정책을 전면 재고한 뒤 BBC 고위층은 새로운 분야(특히 사이버 공간)로의 진출에 큰 관심을 보였다. 다른 모든 세계적 미디어 그룹처럼 BBC도 내려받기가 가능한 주문형 오락 시대의 도래에 숨가쁘게 대비한다.

게다가 예산의 위기로 그 같은 변신이 더욱 시급해졌다. 해결책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브랜드 중 하나인 BBC의 상업적 잠재력을 활용하는 일이다. 전통주의자들은 눈살을 찌푸릴지 모르지만 광고조차 일정 범위 안에선 더 이상 금기시되지 않는다.

지난달 발표된 계획에 따라 BBC 월드와이드는 모회사에 1년에 2억 파운드(약 3760억원)를 벌어줄 계획이다. 그중 10%(지금의 두 배)를 디지털 미디어가 차지한다. “우리는 BBC의 브랜드 가치를 사상 초유의 방식으로 활용한다”고 브래들리 존스는 밝혔다.

이 같은 새로운 상업화의 첫 결과는 이미 나타났다. BBC 월드와이드는 원래 수익은 별로 안중에 두지 않고 BBC의 프로그램을 되파는 부수적 사업으로 출범했다. 그러나 요즘엔 7억8500만 파운드로 규모가 커졌으며 지난 2년 사이 수익이 2배 이상 늘었다(2006년 수익은 8900만 파운드).

BBC는 28개 채널과 60종에 이르는 국제적인 잡지 출판사를 활용해 해외시장 진출을 강력히 추진한다. 가장 힘든 도전에 맞서는 의지를 보여주듯 BBC는 지난달 미국의 관록있는 TV 전문가 가스 앤시어를 영입, 경쟁이 매우 치열한 미국 사업을 이끌도록 했다(앤시어는 폭스TV와 NBC에서 오락 프로 책임자로 일했다).

이제 변화의 속도는 분명히 더욱 더 빨라진다. 무엇보다 BBC로선 그런 부수적 수입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BBC는 설립취지 때문에 수입의 대부분을 영국의 모든 TV 소유 가구가 매년 내는 수신료에 의존한다. 이 수신료는 BBC와 영국 정부가 합의를 통해 결정하며 올 초 최종적으로 확정된 요금은 BBC가 바라는 액수에 크게 못 미쳤다. 앞으로 6년간 물가상승률도 못 따라갈 정도다.

그 결과 BBC의 지출 계획에서 20억 파운드가 모자란다. 영국 정치인들은 향후 BBC의 예산 삭감을 예고했다. 만일 BBC가 질을 유지하고 새로운 서비스를 추가하려 한다면 이에 드는 예산을 마련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재정 위기가 생기기 전에도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현실은 BBC가 기존의 전술을 재고하도록 압박했다. 모든 미디어 전략가는 TV·영화·음악·인쇄물을 막론하고 매체의 미래가 인터넷에 있다는 사실을 안다. BBC도 이런 추세를 피해가지 못한다. “너무도 많은 오락물이 나와 있고, 소비자가 오락물에 접할 길도 너무 많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BBC가 살아남으려면 사업방식을 다양화해야 한다”고 런던에 있는 시장조사 회사 데이터모니터의 미디어 분석가 크리스 쿠리는 말했다.

BBC는 그런 도전에 대응하는 대담한 계획을 세웠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계획은 해외 이용자를 겨냥해 확대 개편한 웹사이트다(영국 내 이용자는 제외하고 해외 이용자만 겨냥한 광고로 운영자금을 확보한다). 현 사이트도 이미 영국 밖에서 매달 4000만 명의 이용자를 끌어들인다.

그러나 전략가들은 더 많은 프로그램을 인터넷으로 제공하면 더 많은 방문객이 찾으리라 예상한다. 아직 승인을 기다리는 그 계획은 단일한 플랫폼을 통해 다양하고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요리법부터 자동차 스포츠에 이르는 광범한 분야가 포함된다. BBC 월드와이드의 최고경영자 존 스미스는 “이용자가 관심을 가진 모든 분야를 주문형으로, 그리고 멋지게 포장된 상태로 찾게 되는 고품격 디지털 델리를 연상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럴 듯하게 들리는 말이다. 그러나 BBC는 자신의 강점을 유지하면서도 자신이 가장 뛰어난 분야를 강조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지난 수십년간 BBC는 가벼운 코미디부터 무거운 다큐멘터리까지 75만 시간에 해당하는 오디오와 비디오 콘텐트를 제작했다. 총 제작량은 1년에 3만 시간씩 늘어난다. 런던에 위치한 미디어 조사회사인 스크린 다이제스트의 아라시 아멜은 “BBC는 세계 최대의 콘텐트를 확보하고도 활용은 잘 못한다”고 말했다.

새로운 기술과 파트너십을 향한 영리한 방법은 그 같은 보물에의 접근을 보다 용이하게 한다. BBC의 마크 톰슨 회장은 지난해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회장과 미래의 협력을 다짐한 비망록에 서명했다. 그리고 올해엔 iPlayer가 출시된다. iPlayer는 BBC가 그간 제작한 모든 프로를 매우 빠른 속도로 내려받는 소프트웨어로, 이 서비스는 연말께 영국 국민에게 무료로 제공된다. 미국과 호주 등 주요 해외시장에선 일정 금액만 내면 서비스 이용이 가능하다.

문제는 BBC의 특수한 지위와 명성이 디지털 시대에 적응하는 과정에 도움도 되지만 장애가 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수신료를 둘러싼 최근의 갈등은 BBC의 성격 자체와 목적에 관한 보다 폭넓은 논쟁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영국의 민간분야 경쟁사들은 상업적 압박이 전혀 없는 공기업으로부터의 불공정한 경쟁에 분개한다.

전통주의자들은 BBC가 기존의 공적 목표에서 크게 벗어났으며 새로운 사업에 필요한 추가 수입을 노려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자체 웹사이트에 광고를 허용하겠다는 BBC의 제안엔 많은 비판이 쏟아진다. BBC의 이 같은 제안이 전통적으로 수익에 구애받지 않는 회사 방침과 양립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해 그 계획이 발표되자 BBC 기자 200명 이상이 우려를 표시하며 탄원서에 서명했다.

그들의 눈에는 광고주와의 어떤 거래도 BBC의 명성을 훼손하고 BBC의 힘을 떨어뜨릴 위험이 있다. 보수당 의원이자 전직 방송인인 로저 게일은 “BBC는 매우 특별한 브랜드이기 때문에 어떤 마케팅 전문가도 당연히 BBC의 모든 가치를 이용하려는 유혹을 느낀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그러나 그런 행동은 마치 왕족을 활용하는 행위와 비슷하다. 여왕도 초콜릿 바를 많이 팔기야 하겠지만 그런 행동에 나서진 않는다.” 그러나 그런 논리가 BBC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의 의지를 꺾지는 못할 듯하다. 그들은 올해 안에 최종결정을 내려야 한다.

사실 광고 수입은 인기있는 BBC 월드 TV 채널의 운영에 필요한 자금 마련에 도움을 줬다. 가장 존경받는 제도도 시간이 지나면 바뀌어야 한다. 과연 그럴까? 여왕에게 물어 보자.
WILLIAM UNDERHILL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