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 앵글에 걸친 두 촬영감독들. 여유시간이 조금 있던지라 망중한을 즐긴다.
장비세팅도 끝나고, 모처럼 사내 녹화라 마음이 편한 모양이다.
오후 4시쯤 김성수총장께서 도착을 했다.
바로 이 분이 김성수총장. 이 분이 누구던가?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울림이 큰 사람이 있다. 김성수(78)총장은 바로 그런 사람이다. 언제나 만면에 웃음을 띠고 다가가 손을 내미는 사람, 소외된 이웃인 장애인들의 대부이자 우리 시대의 큰 스승, 총장직에서 은퇴하면 장애인들과 함께 여생을 보내고 싶다면서 자신의 욕심마저 덜어낸 김성수 총장의 삶은 언제나 싱싱하기만 하다.
건강이 안좋으셔서 시간 약속 받기가 엄두가 나지 않았으나 비서실에서 전해 들으셨는지 방송국까지 친히 내방을 해주셨다.
김성수총장은 뜻밖에도 가수 조영남과 윤형주 등과 교분이 깊었었는데, 조영남의 어떤 기사를 보니 자기에게 한번도 성공회 믿으라고 한 적이 없어 부담스럽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쓴 적이 있었다. 그래서 물었더니,
"인위적 선교는 생각해볼 문제지. 예수님도 그렇고 제자들도 그렇고, 돌로 맞을 것 같으면 쓱 피해 옆으로 가라 그랬는데…. 또 믿음을 강요하는 건 진짜 믿는 게 아닐 거야. 그거야 하나님이 결정해주시는 거지.” 하시며 껄껄껄 웃으신다.
"그럼, 총장님께서도 돌 맞을까봐 그러신거 아니죠?"하시며 까르르...
6월 민주항쟁 등 우리나라의 격동의 역사 속에 계셨던 종교인.
자연스럽게 소외되어있는 사람들,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몸소 체험하기 위해 탄광촌에 위장취업했던 대학생 시절.
평생 받으신 월급들을 사회의 여러 봉사시설에 쓰시느라고 집에는 생활비도 한 푼 안가져갔던 분.
영국의 장인어른께서 한 삼십년 입으신 것을 주교님께서 또 한 40년째 입고 계시다는 단벌 양복을 아직도 기워 입으시는 분.
앞으로 지체장애인들을 위한 재활병원을 설립하시는 것이 꿈이라는 주교님의 사람과세상에 대한 사랑은 끝이 없었다.
불편하신 몸으로 2시간 여 아름다운 말씀을 주신 총장님께서는 헤어질 때까지도 즐겁고 유쾌하게 해주시는 여유와 배려가 있었다.
마치, 동네 할아버지같은 총장님, 성당의 수위아저씨같은 대주교님, 가장 낮은 곳에 마음을 쓰시면서 가진 거 다 내주시는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 김성수 주교님이 건강하게, 꼭 원하시는 꿈 이루시길 기원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