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를 최첨단 예술로 승화시킨 혁명가, 잭슨 폴록(artist, 1912~1956)
이 시기에 폴록은 캔버스를 바닥에 고정하는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이젤을 거부했으며, 이젤 안에 표현되는 위와 아래, 왼쪽과 오른쪽으로 이루어진 질서 정연한 우주를 거부했다. 폴록은 캔버스 주위를 옮겨 다니면서, 때로는 캔버스를 가로질러 다니면서 다양한 각도에서 물감을 방울져 떨어뜨리거나 마구 뿌리고 휙 던질 때마다 끊임없이 생겨나는 실처럼 가는 선들로 캔버스를 채워나갔다. 눈부실 정도로 명쾌한 작품 속에서 에너지와 선들이 나타났다. 불편하기만 했던 전통적인 작업 도구들에서 해방되자 폴록은 캔버스, 합금판, 카드 보드, 금속 같은 다양한 표면 위에 여러 가지 물감 사용법을 실험했다. 그는 자신이 창조한 이미지들이 그것의 내용이나 개념과 거리를 두게 하려고 작품에 제목을 붙이는 대신 번호를 매겼다. 폴록의 인기는 꾸준히 올라갔다.
그의 예술적 후원자인 존 D. 록펠러 부인도 여러 작품을 구입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공과 예술적 자유도 폴록을 자유롭게 해주지는 못했다. 크레이스너와 별거 중이던 1956년, 밤새도록 술을 마신 폴록은 자신의 정부, 절친한 친구와 함께 차에 올라탔다. 이 자동차 사고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그의 정부뿐이었다. 미국의 미술을 최첨단 예술로 발전시킨 주인공은 그렇게 눈을 감았지만 우리에게 엄청난 유산을 남겼다. 거대한 캔버스 위에 인간의 마음을 담은 명료한 풍경화 <폭발 직전(Simmering Substance)>과 <푸른 기둥들(Blue Poles)>도 그 가운데 속한다. 이제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미국 미술가로 확실하게 자리 잡은 폴록은 요즘도 심심찮게 언론에 등장한다. 폴록의 이름이 등장하는 뉴스 제목에는 대개 달러 표시가 따라다닌다. 지난해 11월 할리우드 미디어 재벌 데이비드 게펜이 소장하던 폴록의 초기 작품 <넘버 5>가 무려 1억4천만 달러에 팔렸다. 미술 작품 매매 사상 최고가였다. |
새로운 건축을 향하여, 르 코르뷔지에(architect, 1887~1965)
장식을 배제한 르 코르뷔지에의 주거 공간에는 강철, 콘크리트, 유리판같이 규모가 크고 잘 사용되지 않던 재료들을 과감하게 사용했으며, 건물을 지면에서 분리하기 위해 ‘필로티’나 각주를 사용했다. 또 천장과 바닥의 높이를 다양하게 함으로써 자유와 뜻밖의 놀라움을 선사했다. 건축가들에게 건축 미학을 넘어 유기적 실체로 도시를 이해할 것을 촉구한 르 코르뷔지에의 성명서는 오늘날의 도시화를 예견했다. 1914년 조립식 부품을 이용해 실험적인 대량 주택 건설을 계획했던 ‘도미노 프로젝트’는 르 코르뷔지에에게 부와 함께 세계적인 성공을 안겨주었다. 호리호리한 체격에 안경을 쓰고 옷과 예의범절에 지나칠 정도로 까다로웠던 이 건축 천재의 영향력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하지만, 정작 본인은 성공 가도를 달리면서도 화가로서의 야망 때문에 좌절하곤 했다. 그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화가로서의 야망은 그가 세운 롱샹 교회의 날개 지붕처럼 더 많은 건물들이 솟아오르기를 희망했는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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