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금 우울할 거라고? 9월을 기다려라"
오마이뉴스 | 기사입력 2009.02.18 10:05
[오마이뉴스 전관석 기자]
동북중고 국어교사, MBC PD, 이화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 방송사 사장까지 '인생4막'을 펼쳐온 주철환 전 OBS 경인TV 사장이 지난 16일 이임식을 끝으로 회사를 떠났다. '중도하차'. 그러나 이 인터뷰가 주철환의 '심경토로'쯤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지금 주철환이 '실패'를 자책하며 땅만 보며 가슴을 삭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그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다. OBS에서 1년 6개월이 쉽지 않았던 시기였겠지만 그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여전히 '동안'이었다. 그리고 평소 그처럼 껄껄 웃었다. "너무 자유롭다"고 했다. "할 게 너무 많다"고 했다. 그리고 강조했다.
"주철환이 지금 우울하다, 위로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이 기사가 좀 바꿔줘!"
주철환은 앞으로 또 무슨 일을 꾸밀까 궁금했다. 인터뷰 도중 간간히 OBS에 대한 민감한 질문을 툭툭 던져봤지만 그는 거의 말하지 않았다. "오해 받기 싫다. 내 얘기가 일파만파 번지고 퍼지는 게 싫다"고 했다. 하지만 OBS란 지역민방을 다루는 방송정책에 대한 서운함을 조금 드러내기는 했다.
주 전 사장은 "씨앗 뿌린 역할은 잘했다"면서 "아쉬움은 있지만 후회는 없다"고 했다. 앞으로 "소설도 쓰고 음반도 내고, 연구소도 차릴 생각"이라고 한다.
자유인 주철환으로 돌아온 그는 명랑하고 거침없었다. '떠날 때는 말없이!'라고 말하면서는 '떠~날때는 말없~이'라면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16일 오전 이임식에 다녀온 그를 붙잡아 인터뷰했다.
"씨앗 뿌린 역할은 잘 했다... 떠날 때는 말없이"
- 오전에 이취임식 있었는데 '떠나는' 말 잘 전했나? "이임사 전할 상황이 아니더라. 대신 OBS를 떠나며 사원들에게 보낸 글에 내가 하고 싶은 말 다 썼다. 시도 한 편 쓰고…."
- 오늘 오전 이취임식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만큼 OBS가 시끄러웠다. 노조에서는 새 사장이 '낙하산'이라면서 출근저지에 나섰는데...
"나도 위치가 있고 입장이 있다. 내가 지금 노조 입장을 전폭 지지한다고 할 수 있나? 아니면 노조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는 얘기를 할까? 내 말이 일파만파 번지는 거 원하지 않는다. OBS에게 필요한 것은 평화와 전진이란 말밖에 없다.
영화 제목이자 노래제목이기도 하지? '떠~날 때는 말없~이'(그는 진짜 노래도 불렀다). 오해 받기 싫다. 나 억울하게 잘린 거 아니다. 그만 둔 거다. 역도 선수 장미란에게 김연아에게 도전해 봐라. 미셸 위에게 도전해봐라 할 수 없잖아? 이건 아니더라.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방송, 학교였는데 방송경영은 또 다른 전공인 것 같다. 꼭 경영학을 전공한다고 잘 하는 게 아니고 이것저것 조율할 줄 아는 사람…."
- 그런 줄 다 알고 도전한 것 아닌가?
"미흡했다. 내가 주로 농사에 비유하는데, 난 OBS의 파종기에 필요했던 사람이다. 이제 모내기 김매기를 할 사람이 필요하다. 난 씨앗을 뿌린 사람 역할로는 잘했다고 본다. 후회도 없다. OBS란 회사 경영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 자신이 무능력하고 무기력한 사람임은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 사장 되면서부터 씨앗 뿌리는 역할 정도만 하자 그런 생각이었나?
"그렇지는 않았지. 잘 되면 내 남은 젊음을 다 바치고 싶었다. 기력 다해 일궈내고 싶다는 소망이었다."
- 그런데 후회가 없다고?
"아쉬움은 있다. 후회는 없다. 후회는 '여기'(OBS)에 괜히 왔다는 생각이 든다는 건데, 그건 아니다. 그냥 교수로 있었으면 평화롭게 지낼 순 있었겠지. 하지만 나는 인생을 재미있게 살다가 의미있게 죽자는 사람이다. OBS 사장 하면서 굉장히 재미있었다. 새로운 도전 아닌가.
주철환을 생각해 봐라. 인생 4막을 거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어디있을까. 좋은 기회를 많이 가졌다. 물론 OBS에서 초반기에 팍 성공해서 '미라클 메이커'가 됐으면, 그럼 멋있을 수는 있었겠지… 하지만 난 다시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하고 있다. 오연호 사장에게 < 오마이뉴스 > 기자 시켜달라고 할 수도 있다. 아마 시켜줄 걸. 하하"
- 그렇게 자유로운 사람이 왜 방송사 사장이란 막중한 자리에 갔나? '미라클 메이커'에 대한 욕심은 없었나?
"방송 블루벨트와 시청자 지상주의를 생각했다. 시청자가 주인공인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고 싶었다. 최진실 김혜자 등 연예인 등 초기 과정으로 필요했다. 하지만 계속 그런 식으로 가려 하진 않았다. 포부는 있었지. 제대로 된 방송 만들고 싶다. 새 방송사에서 지상파가 자극받는 방송 만들고 싶었다."
"200명 정도는 계속 형제처럼 지낼 자신 있다"
이때 OBS 모 기자가 주 전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주 전 사장 손전화에 번호도 저장되어 있었다. 그는 회사 직원 250여 명의 이름을 거의 외우기로 유명했고 '사원들과의 대화' 자리를 만든다든지 이메일 편지를 보낸다든지 하는 이른바 '스킨십'에 능했다. 직원들에게 "형이라고 부르라"고 '반강요'한다는 얘기도 있었는데, 진짜였다. 주철환 본인이 먼저 "형이야"라고 했다.
"어, XX아. 형이야… 어… 악수도 하고 그러고 나오고 싶었는데 분위기 살벌해서 그냥 총총히 나왔다. 나중에 만나자. 당분간은 쉴 거야."
- 진짜 형이라 부르라고 하나 보다.
"회사라는 조직에서 사장이 뭐가 좋냐. 사장이라고 부르는 게 좋아? 좋지 않다. 사장이란 건 제도권 이익 사회에서의 시스템을 통해 이뤄진 것이다. 내가 직원들에게 그랬다. OBS에서 나를 지워라. 다만 날 형처럼 생각했던 사람은 형제처럼 지내는 거라고 했다… 나 OBS에서 좋은 사람 많이 만났다. 정직원 200명 정도는 계속 형제처럼 지낼 자신 있다. 짝사랑일 수도 있고…."
- 쉽지 않았을 텐데?
"주철환의 장점이다. 내가 회사에 처음 갔을 때 삭막하고 건조했다. 불안 불신 불만, 이 3불을 내가 3사로 바꾸겠다고 했다. 감사 찬사 봉사로… 내가 전도사가 되겠다고… 처음에는 사람들이 의심을 하더니 나중에는 친해졌다. 나의 리더십의 정체는 브라더후드다. 직원들하고 술 마실때도 내가 브라보 하면 직원들이 브라더 하면서 마셨다. 하하."
- 나이든 사람 중에는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거다.
"그랬겠지. 사장이면 사장답게 이런 대한민국 고정관념이 있잖아. 낯설고 싫어할 수 있겠지. 난 무시했다. 모든 사람이 날 좋아할 수는 없다. 인생은 그런 것이다. 이해해주고 수용해 주는 사람이 고마운 것이다."
- 사장 사퇴 만류한 사람도 있었다고 하고, 이렇게 전화 오는 것처럼 서운해 하는 것 같은데.
"서운함이라는 것은 일종의… 사랑의 변종 아닌가. 행복한 거지. 난 참 행복한 사장이었다."
- 솔직히 역외재송신이 잘 안 풀리고 방송 광고 시장 역시 OBS에게 불리했다. 거의 지상파와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했어야 했는데 정책적으로 문제 있다는 생각은 안 했나?
"OBS가 힘을 쌓으면 될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계속 사장하면서 좀 더 버티고 그랬으면 그런 것들이 해결됐을까? 역외재송신 문제… 솔직히 관대하게 개방해서 공정 경쟁할 수 있도록 했었으면… 하지만 원망하고 그런 건 없다. < 춘향전 > 의 수원수구(誰怨誰咎) 있잖아…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탓하리오… 모든 이해 당사자들의 입장이 있을 텐데 설득의 작업이 필요하고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공정하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지. OBS란 아이가 태어났는데 알아서 기저귀 차고 알아서 걸어 하는 건 옳지 않다. 이 회사가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나? 안타깝긴 하다."
- 외부압력은 없었나?
"내가 MBC에 다니면서 농담처럼 ' < 이제는 말할 수 있다 > 가 뭐냐. 그때 말했어야지'했었다. 하하. 물론 그 시대에는 그럴 상황이 있었겠지. 그런데 내가 지금 이 상황에서 억울하다… 외압 있었다… 이렇게 얘기할까? 난 안한다. 비굴하게 뭐냐. 만일 그런 일이 있으면 그때 해결했어야지. < 도전 골든벨 > 보면 '문제가 남느냐 내가 남느냐'라고 하잖아? OBS는 결국 문제가 남았다. 빨리 풀리길 바라고 상처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해결되겠지. 난 어찌 할 줄 몰라 나온 사람이다. 벌써 구시대 인물이야. 그런데 자꾸 (OBS에 대해) 뭐라고 얘기하는 것 자체가 좋지 않은 일이다."
- 지난해 7~8월에도 자신감이 넘쳤었는데?
"난 항상 자신감이 있다. 지금도 그렇고. 그런데 중요한 게 적재 적소 적시잖아. 초라하게 쓸쓸하게 부끄럽게 퇴장하기 싫었다. 내 인생은 드라마고, 내가 연출한다. 주철환만의 약간의 달란트가 있다. 그걸 발휘해야지. 이제…."
이때 또 다른 OBS 직원에게 전화가 왔다. "응. ○○이구나. 난 괜찮아. 너무 건강 버리지 말고… 응… 그래…" 그에게도 주철환은 형이었다.
"주철환 5막? 9월을 기대해 달라, 짠 하고 나타날 거다"
- 주철환의 달란트… 기대된다. 그래 앞으로 뭐 할 건가? 이화여대는 휴직중인가? "이대는 예전에 사직했고… 개인 연구소 차릴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 주철환 개인 연구소?
"일단 내 이름을 따서 'C & H'연구소. 변화(C)와 희망(H). 창조(C)와 인간(H), 상식(C)과 유머(H), 도전(C)과 배려(H)… 이런 것들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고 컨설팅 할 수 있는 그리고 교육까지 담당할 수 있는 '주철환 C & H 개인 연구소'. 다음번 만날때는 이 명함을 갖고 나올 거다."
- 또 다른 계획은?
"소설도 내고 싶다. 음반도 내고 싶고… 나를 불러주는 학교에서 강의를 할 수도 있고…."
- 소설과 음반?
"대학 다닐 때 습작도 해왔고 MBC 다닐 때 사보에 < 잊고 산 것들 > 이란 소설을 연재한 적도 있다. 방송 드라마도 써보고 싶고… 이어령씨가 나보다 21살 더 많은데 < 젊음의 탄생 > 이란 책을 썼다. 너무 훌륭하잖나. 내가 74학번이고 78년부터 선생을 했다. 그때 제자들에게 노래 들려준 거 있다. 걔들이 증인들이다. 아직도 기억하더라고. 그리고 < 모여라 꿈동산 > < 퀴즈 아카데미 > 이런데 삽입된 노래들 내가 작사 작곡했고… 나는 음악에 대한 욕구가 굉장히 높다."
- 주철환에게 어떤 DNA가 있는 건가?
"일단 호기심이란 DNA가 있다. 사람을 좋아하지. 그와 친구가 되고 싶은 열정이 굉장히 강하다. 특히 뭔가 젊은 사람들하고 어울리고 싶다. 그럼 좋고 즐겁다. 유전은 아닌 것 같고… 어릴 때부터 난 내가 서바이벌 하는 방법이 '귀여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울한 애를 누가 귀여워해. 난 우울한 사람에게 명랑 바이러스 퍼뜨리는 사람이다. 명랑은 사회를 밝게 한다. 명랑은 희망이다."
- 우울할 때는 어떻게 하나?
"난 우울한 일이 별로 없다. 각 방송사 시사 프로그램 봐라. 그렇게 불행한 사람들이 많은데 나같은 사람들이 우울한 일이 뭐가 있냐고. '그래도 주철환이 지금은 힘들거야' 이렇게 말하는 것도 쓸데없는 관심이다. 제발 그러지 마라. 난 절대 우울하지 않다. 이 기사가 좀 바꿔달라. 난 철없이 살다가 철없이 죽고 싶은 사람이다. 다만 OBS에 조금 마음이 무거운 건, 지금 직원들이 행복한 상태가 아닌 것이지. 내가 책임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까. 하지만 내가 있어 해결될 일 아니었다."
- 재밌게 사는 비결이나 주특기는 뭔가?
"내 이력중에 명예 청소년 상담사란 타이틀이 있다. 우리나라에 이 타이틀을 가진 사람이 많지가 않다. 청소년들에게 상담 잘 할 수 있다. 청소년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상담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또다른 무릎팍 도사가 될 수 있다는 거다. 제안하고 상담하고 말하고 얘기하고 이게 나의 주특기다."
- 주철환의 '5막'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
"우유와 요구르트의 차이. 우유를 그냥 두면 썩지. 잘 관리하면 요구르트가 된다. 부패와 발효의 차이인데… 난 유산균 발효유가 되고 싶다. 살이 좀 쪘는데 한 4kg정도 빼고 충전도 하고… 9월을 기대해 달라. 주철환이 짠 하고 나타날 거다. 주철환이 잘 할 수 있는 거, 행복할 수 있는 거 들고 나타날 거다. i'm still young!하면서"
- 최근에 < 주철환의 사자성어 > 란 책 냈는데, 지금의 주철환에 맞는 사자성어는?
"심기일전(心機一轉)!!! 마음 다잡아서 새로운 전환점 맞이해야 하니까."
할 말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주철환은 그냥 웃었다. 껄껄 웃었다. 재미있었고 행복했단다. OBS를 향해서는 "주철환이란 사람은 떠나도 나를 사랑했던 사람들의 마음 속에 오래도록 남아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사장을 그만둔 바로 그날부터 '앞으론 뭐하며 재미나게 놀까' 고민했다. 나이 거꾸로 먹는 사람 주철환이 50대 중반에 펼칠 제5막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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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다. OBS에서 1년 6개월이 쉽지 않았던 시기였겠지만 그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여전히 '동안'이었다. 그리고 평소 그처럼 껄껄 웃었다. "너무 자유롭다"고 했다. "할 게 너무 많다"고 했다. 그리고 강조했다.
"주철환이 지금 우울하다, 위로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이 기사가 좀 바꿔줘!"
주철환은 앞으로 또 무슨 일을 꾸밀까 궁금했다. 인터뷰 도중 간간히 OBS에 대한 민감한 질문을 툭툭 던져봤지만 그는 거의 말하지 않았다. "오해 받기 싫다. 내 얘기가 일파만파 번지고 퍼지는 게 싫다"고 했다. 하지만 OBS란 지역민방을 다루는 방송정책에 대한 서운함을 조금 드러내기는 했다.
주 전 사장은 "씨앗 뿌린 역할은 잘했다"면서 "아쉬움은 있지만 후회는 없다"고 했다. 앞으로 "소설도 쓰고 음반도 내고, 연구소도 차릴 생각"이라고 한다.
자유인 주철환으로 돌아온 그는 명랑하고 거침없었다. '떠날 때는 말없이!'라고 말하면서는 '떠~날때는 말없~이'라면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16일 오전 이임식에 다녀온 그를 붙잡아 인터뷰했다.
"씨앗 뿌린 역할은 잘 했다... 떠날 때는 말없이"
- 오전에 이취임식 있었는데 '떠나는' 말 잘 전했나? "이임사 전할 상황이 아니더라. 대신 OBS를 떠나며 사원들에게 보낸 글에 내가 하고 싶은 말 다 썼다. 시도 한 편 쓰고…."
- 오늘 오전 이취임식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만큼 OBS가 시끄러웠다. 노조에서는 새 사장이 '낙하산'이라면서 출근저지에 나섰는데...
"나도 위치가 있고 입장이 있다. 내가 지금 노조 입장을 전폭 지지한다고 할 수 있나? 아니면 노조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는 얘기를 할까? 내 말이 일파만파 번지는 거 원하지 않는다. OBS에게 필요한 것은 평화와 전진이란 말밖에 없다.
영화 제목이자 노래제목이기도 하지? '떠~날 때는 말없~이'(그는 진짜 노래도 불렀다). 오해 받기 싫다. 나 억울하게 잘린 거 아니다. 그만 둔 거다. 역도 선수 장미란에게 김연아에게 도전해 봐라. 미셸 위에게 도전해봐라 할 수 없잖아? 이건 아니더라.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방송, 학교였는데 방송경영은 또 다른 전공인 것 같다. 꼭 경영학을 전공한다고 잘 하는 게 아니고 이것저것 조율할 줄 아는 사람…."
- 그런 줄 다 알고 도전한 것 아닌가?
"미흡했다. 내가 주로 농사에 비유하는데, 난 OBS의 파종기에 필요했던 사람이다. 이제 모내기 김매기를 할 사람이 필요하다. 난 씨앗을 뿌린 사람 역할로는 잘했다고 본다. 후회도 없다. OBS란 회사 경영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 자신이 무능력하고 무기력한 사람임은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 사장 되면서부터 씨앗 뿌리는 역할 정도만 하자 그런 생각이었나?
"그렇지는 않았지. 잘 되면 내 남은 젊음을 다 바치고 싶었다. 기력 다해 일궈내고 싶다는 소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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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은 있다. 후회는 없다. 후회는 '여기'(OBS)에 괜히 왔다는 생각이 든다는 건데, 그건 아니다. 그냥 교수로 있었으면 평화롭게 지낼 순 있었겠지. 하지만 나는 인생을 재미있게 살다가 의미있게 죽자는 사람이다. OBS 사장 하면서 굉장히 재미있었다. 새로운 도전 아닌가.
주철환을 생각해 봐라. 인생 4막을 거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어디있을까. 좋은 기회를 많이 가졌다. 물론 OBS에서 초반기에 팍 성공해서 '미라클 메이커'가 됐으면, 그럼 멋있을 수는 있었겠지… 하지만 난 다시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하고 있다. 오연호 사장에게 < 오마이뉴스 > 기자 시켜달라고 할 수도 있다. 아마 시켜줄 걸. 하하"
- 그렇게 자유로운 사람이 왜 방송사 사장이란 막중한 자리에 갔나? '미라클 메이커'에 대한 욕심은 없었나?
"방송 블루벨트와 시청자 지상주의를 생각했다. 시청자가 주인공인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고 싶었다. 최진실 김혜자 등 연예인 등 초기 과정으로 필요했다. 하지만 계속 그런 식으로 가려 하진 않았다. 포부는 있었지. 제대로 된 방송 만들고 싶다. 새 방송사에서 지상파가 자극받는 방송 만들고 싶었다."
"200명 정도는 계속 형제처럼 지낼 자신 있다"
이때 OBS 모 기자가 주 전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주 전 사장 손전화에 번호도 저장되어 있었다. 그는 회사 직원 250여 명의 이름을 거의 외우기로 유명했고 '사원들과의 대화' 자리를 만든다든지 이메일 편지를 보낸다든지 하는 이른바 '스킨십'에 능했다. 직원들에게 "형이라고 부르라"고 '반강요'한다는 얘기도 있었는데, 진짜였다. 주철환 본인이 먼저 "형이야"라고 했다.
"어, XX아. 형이야… 어… 악수도 하고 그러고 나오고 싶었는데 분위기 살벌해서 그냥 총총히 나왔다. 나중에 만나자. 당분간은 쉴 거야."
- 진짜 형이라 부르라고 하나 보다.
"회사라는 조직에서 사장이 뭐가 좋냐. 사장이라고 부르는 게 좋아? 좋지 않다. 사장이란 건 제도권 이익 사회에서의 시스템을 통해 이뤄진 것이다. 내가 직원들에게 그랬다. OBS에서 나를 지워라. 다만 날 형처럼 생각했던 사람은 형제처럼 지내는 거라고 했다… 나 OBS에서 좋은 사람 많이 만났다. 정직원 200명 정도는 계속 형제처럼 지낼 자신 있다. 짝사랑일 수도 있고…."
- 쉽지 않았을 텐데?
"주철환의 장점이다. 내가 회사에 처음 갔을 때 삭막하고 건조했다. 불안 불신 불만, 이 3불을 내가 3사로 바꾸겠다고 했다. 감사 찬사 봉사로… 내가 전도사가 되겠다고… 처음에는 사람들이 의심을 하더니 나중에는 친해졌다. 나의 리더십의 정체는 브라더후드다. 직원들하고 술 마실때도 내가 브라보 하면 직원들이 브라더 하면서 마셨다. 하하."
- 나이든 사람 중에는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거다.
"그랬겠지. 사장이면 사장답게 이런 대한민국 고정관념이 있잖아. 낯설고 싫어할 수 있겠지. 난 무시했다. 모든 사람이 날 좋아할 수는 없다. 인생은 그런 것이다. 이해해주고 수용해 주는 사람이 고마운 것이다."
- 사장 사퇴 만류한 사람도 있었다고 하고, 이렇게 전화 오는 것처럼 서운해 하는 것 같은데.
"서운함이라는 것은 일종의… 사랑의 변종 아닌가. 행복한 거지. 난 참 행복한 사장이었다."
- 솔직히 역외재송신이 잘 안 풀리고 방송 광고 시장 역시 OBS에게 불리했다. 거의 지상파와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했어야 했는데 정책적으로 문제 있다는 생각은 안 했나?
"OBS가 힘을 쌓으면 될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계속 사장하면서 좀 더 버티고 그랬으면 그런 것들이 해결됐을까? 역외재송신 문제… 솔직히 관대하게 개방해서 공정 경쟁할 수 있도록 했었으면… 하지만 원망하고 그런 건 없다. < 춘향전 > 의 수원수구(誰怨誰咎) 있잖아…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탓하리오… 모든 이해 당사자들의 입장이 있을 텐데 설득의 작업이 필요하고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공정하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지. OBS란 아이가 태어났는데 알아서 기저귀 차고 알아서 걸어 하는 건 옳지 않다. 이 회사가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나? 안타깝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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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MBC에 다니면서 농담처럼 ' < 이제는 말할 수 있다 > 가 뭐냐. 그때 말했어야지'했었다. 하하. 물론 그 시대에는 그럴 상황이 있었겠지. 그런데 내가 지금 이 상황에서 억울하다… 외압 있었다… 이렇게 얘기할까? 난 안한다. 비굴하게 뭐냐. 만일 그런 일이 있으면 그때 해결했어야지. < 도전 골든벨 > 보면 '문제가 남느냐 내가 남느냐'라고 하잖아? OBS는 결국 문제가 남았다. 빨리 풀리길 바라고 상처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해결되겠지. 난 어찌 할 줄 몰라 나온 사람이다. 벌써 구시대 인물이야. 그런데 자꾸 (OBS에 대해) 뭐라고 얘기하는 것 자체가 좋지 않은 일이다."
- 지난해 7~8월에도 자신감이 넘쳤었는데?
"난 항상 자신감이 있다. 지금도 그렇고. 그런데 중요한 게 적재 적소 적시잖아. 초라하게 쓸쓸하게 부끄럽게 퇴장하기 싫었다. 내 인생은 드라마고, 내가 연출한다. 주철환만의 약간의 달란트가 있다. 그걸 발휘해야지. 이제…."
이때 또 다른 OBS 직원에게 전화가 왔다. "응. ○○이구나. 난 괜찮아. 너무 건강 버리지 말고… 응… 그래…" 그에게도 주철환은 형이었다.
"주철환 5막? 9월을 기대해 달라, 짠 하고 나타날 거다"
- 주철환의 달란트… 기대된다. 그래 앞으로 뭐 할 건가? 이화여대는 휴직중인가? "이대는 예전에 사직했고… 개인 연구소 차릴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 주철환 개인 연구소?
"일단 내 이름을 따서 'C & H'연구소. 변화(C)와 희망(H). 창조(C)와 인간(H), 상식(C)과 유머(H), 도전(C)과 배려(H)… 이런 것들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고 컨설팅 할 수 있는 그리고 교육까지 담당할 수 있는 '주철환 C & H 개인 연구소'. 다음번 만날때는 이 명함을 갖고 나올 거다."
- 또 다른 계획은?
"소설도 내고 싶다. 음반도 내고 싶고… 나를 불러주는 학교에서 강의를 할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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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다닐 때 습작도 해왔고 MBC 다닐 때 사보에 < 잊고 산 것들 > 이란 소설을 연재한 적도 있다. 방송 드라마도 써보고 싶고… 이어령씨가 나보다 21살 더 많은데 < 젊음의 탄생 > 이란 책을 썼다. 너무 훌륭하잖나. 내가 74학번이고 78년부터 선생을 했다. 그때 제자들에게 노래 들려준 거 있다. 걔들이 증인들이다. 아직도 기억하더라고. 그리고 < 모여라 꿈동산 > < 퀴즈 아카데미 > 이런데 삽입된 노래들 내가 작사 작곡했고… 나는 음악에 대한 욕구가 굉장히 높다."
- 주철환에게 어떤 DNA가 있는 건가?
"일단 호기심이란 DNA가 있다. 사람을 좋아하지. 그와 친구가 되고 싶은 열정이 굉장히 강하다. 특히 뭔가 젊은 사람들하고 어울리고 싶다. 그럼 좋고 즐겁다. 유전은 아닌 것 같고… 어릴 때부터 난 내가 서바이벌 하는 방법이 '귀여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울한 애를 누가 귀여워해. 난 우울한 사람에게 명랑 바이러스 퍼뜨리는 사람이다. 명랑은 사회를 밝게 한다. 명랑은 희망이다."
- 우울할 때는 어떻게 하나?
"난 우울한 일이 별로 없다. 각 방송사 시사 프로그램 봐라. 그렇게 불행한 사람들이 많은데 나같은 사람들이 우울한 일이 뭐가 있냐고. '그래도 주철환이 지금은 힘들거야' 이렇게 말하는 것도 쓸데없는 관심이다. 제발 그러지 마라. 난 절대 우울하지 않다. 이 기사가 좀 바꿔달라. 난 철없이 살다가 철없이 죽고 싶은 사람이다. 다만 OBS에 조금 마음이 무거운 건, 지금 직원들이 행복한 상태가 아닌 것이지. 내가 책임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까. 하지만 내가 있어 해결될 일 아니었다."
- 재밌게 사는 비결이나 주특기는 뭔가?
"내 이력중에 명예 청소년 상담사란 타이틀이 있다. 우리나라에 이 타이틀을 가진 사람이 많지가 않다. 청소년들에게 상담 잘 할 수 있다. 청소년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상담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또다른 무릎팍 도사가 될 수 있다는 거다. 제안하고 상담하고 말하고 얘기하고 이게 나의 주특기다."
- 주철환의 '5막'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
"우유와 요구르트의 차이. 우유를 그냥 두면 썩지. 잘 관리하면 요구르트가 된다. 부패와 발효의 차이인데… 난 유산균 발효유가 되고 싶다. 살이 좀 쪘는데 한 4kg정도 빼고 충전도 하고… 9월을 기대해 달라. 주철환이 짠 하고 나타날 거다. 주철환이 잘 할 수 있는 거, 행복할 수 있는 거 들고 나타날 거다. i'm still young!하면서"
- 최근에 < 주철환의 사자성어 > 란 책 냈는데, 지금의 주철환에 맞는 사자성어는?
"심기일전(心機一轉)!!! 마음 다잡아서 새로운 전환점 맞이해야 하니까."
할 말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주철환은 그냥 웃었다. 껄껄 웃었다. 재미있었고 행복했단다. OBS를 향해서는 "주철환이란 사람은 떠나도 나를 사랑했던 사람들의 마음 속에 오래도록 남아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사장을 그만둔 바로 그날부터 '앞으론 뭐하며 재미나게 놀까' 고민했다. 나이 거꾸로 먹는 사람 주철환이 50대 중반에 펼칠 제5막이 기대된다.
[주철환의 마지막 편지] 'OBS를 떠나며' |
주철환 전 사장은 지난 13일 OBS 사원들에게 '마지막 편지'를 보냈다. 주 전 사장은 그동안 수차례 사원들에게 편지를 띄웠었다. 주 전 사장은 < 오마이뉴스 > 와의 인터뷰 초반에도 "그 편지에 내 심정을 다 밝혔다. 시도 한 수 지어넣었다"고 했다. 그는 편지에서 '다 지나간다'는 제목의 자작시를 선보이면서 '우정의 무대'가 끝났다고 우정이 끝나는 건 아니다"라며 인연의 소중함을 강조했다. 본인의 양해를 얻어 싣는다. 잠 못 드는 밤에 비는 내리고 뒤척이다 깨어 달력을 보니 오늘은 13일의 금요일입니다. 어제는 제게 무척 긴 하루였습니다. 이사회, 주주총회,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전화.. '홀가분하지?'라고 묻는 내용이 많았고 대답 역시 '당연하지'였지만 걸음은 무거웠고 마음은 개운하지 않았습니다. OBS에 오기 전까지 저의 사자성어는 희희낙락(喜喜樂樂)이었습니다. OBS에 머물며 인생이 희로애락(喜怒哀樂)이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분노와 슬픔은 잠시뿐 지금 저는 다시 희망과 기쁨을 작곡중입니다. OBS가 산(山)이었다면 지금 저는 하산하는 등산객이고 OBS가 병원이었다면 이제 저는 퇴원하는 환자입니다. OBS가 학교였다면 저는 조기졸업하는 학생이고 OBS가 군대였다면 저는 제대하는 군인입니다. OBS가 감옥이었다면 저는 출소하는 죄수입니다. 많은 게 바뀌었고 저 자신 많이 달라졌습니다. 많은 걸 배웠고 많이 강해졌고 많이 반성했습니다. 희나리(신입사원) 한 명이 송사(送辭)를 보내주었는데 읽으면서 '난 참 행복하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잘 것 없는 저를 이렇듯 사랑해주다니.. 사랑을 받은 자가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감사하고 보답해야죠. '우정의 무대' 녹화를 마치고 부대를 떠나오던 풍경이 생각납니다. 환호하던 병사들이 줄 맞춰 막사로 향하며 손 흔들어 인사했었죠. 며칠 동안 부대에 머물며 정들었던 병사들이 안쓰러웠습니다. 우정의 무대가 끝났다고 우정이 끝나는 건 아닙니다. 그리움이 넘칠 때 언제든 연락하십시오. 활짝 웃으며 형처럼 친구처럼 달려가겠습니다. < 다 지나간다 > 라는 제목의 책 광고를 보다가 저도 같은 제목으로 시를 지어보았습니다. 마지막 4연은 여러분이 완성해 주시기 바랍니다. 기쁨도 슬픔도 다 지나간다. 웃음도 눈물도 다 지나간다. 햇살도 빗물도 무지개마저도 다 지나간다. 하지만 연극이 끝나도 의자가 남듯이 기차가 떠나도 레일이 남듯이 13일의 금요일 다음날은 14일의 토요일입니다. 14일의 토요일 다음날은 15일의 일요일입니다. 살아있는 한 희망이 있고 희망이 있는 한 삶은 빛납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변함없이 사랑합니다. 2009. 2. 13 주철환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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