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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특집

[스크랩] 고구려.백제.신라를 하나로 잇는 철의 실크로드

고구려.백제.신라를 하나로 잇는 철의 실크로드

제국주의.사대주의 시대를 마감하고 홍익인간의 시대로!

윤복현 저널리스트
 
돌고 도는 역사란 그런 것이다. 하나의 아버지와 하나의 어머니를 가진 자식들이 흩어져 살면서 후손들을 남기고 오랜 세월이 흐르고  이주하가나 정착한 환경에 맞추어 살아가다 보니 말이 달라지고 문화가 달라지게 되었다. 나라를 세우고 생존을 위해서, 땅을 차지하기위해 서로를 죽여야 했다. 서로가 최고라며 무력을 행사했다. 패배하고 학대당한 후손들은 멸족을 당하거나 밀려나게 되고 살아남은 자들은 앙금과 원한을 가지고 오랜 세월동안 살아야 했으며, 다시 강해지면 당한 앙금과 원한을 앙갚음해야 했다. 악순환의 연속일 수 밖에 없다.
 
하늘나라에서 서로가 싸우고 죽이는 후손들을 바라 보는 한아버지와 한어머니의 마음은 몹시 아팠다. 어서 빨리 족보를 통하여 서로가 결코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려 주어야 했다. 말과 문화가 달라도 흐르는 피는 결코 다르지 않음을 족보를 통하여 알려 주어야 했다.조상의 뿌리를 담고 있는 족보는 바로 역사였다. 전쟁과 갈등과 대립이라는 상극의 역사를 종식시켜야 한다. 침략과 수탈하는 제국주의 역사를 종식시켜야만 한다. 제국주의의 노예가 되는 사대주의 역사를 종식시켜야 한다. 역사를 통하여 아시아 3태극 고구려.백제.신라가 하나로 융합하여 한국.배달.조선을 다시 회복함으로써 평화의 빛 백색을 세상에 칠하여 준다면 하늘나라의 한아버지들과 한어머니들은 매우 기뻐하실 것이다. 고로 "3신1체 한민족의 환한님이시여! 잠들어 있는 한(환)의 유전인자들을 깨워서 어두운 나라와 세상을 해처럼 환하게 비추어 온누리가 환한 나라 실현되게 하소서!"우리는 기도하며 실천해야 한다.  
 

 
한국.배달.조선.부여을 계승한 900년 정통 천제국 고고리(고구려)

한국(환국).배달(밝단).조선(주신).부여(불이야)를 계승하여 900년 동안 당당한 민족자주국가로 유라시아 강성대국을 건설했던 고구려는 대한민국 국민이 민족사적으로 매우 자랑스러워하는 한국의 미래입니다.그 만큼 사대주의를 경멸하고 민족의 자주주권시대를 갈망하는 심리적 배경이 됩니다. 

 
▲ 고고리(고구려)의 최대 영역

고추모의 고고리(고구려)는 해모수의 부여를 계승한 나라입니다. 고추모는 해모수의 직계손자입니다. 북부여 시조 해모수의 고향은 고리국인데, 이 고리국은 바로 단군조선의 제후국인 구려국입니다. 그나라 임금을 군(君)이라 하였습니다. 단군조선의 대표적인 9봉후국(태자.황족의 나라들) 중의 하나입니다. 고리국의 1대 왕은 단군한검천황의 둘째 아드님 부소태자였습니다. 단군한검천황의 태자들은 오늘날도 첫째 부루는 '부루단지'로 기억되고 있고, 학문과 무예가 매우 뛰어 났다는 막내아들 부여는 '부여'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서기전1285년부터 고씨단군 색불루 천황이 즉위하였는데, 47대단군 고열가[44대물리단군의 현손, 고씨단군의 마지막 단군]의 종실인 해모수의 고향 즉 선조의 나라가 고리국인 것입니다. 그러니 해모수와 고추모가 자신들의 선조들과 단군조선에 대하여 얼마나 자부심이 강하고 자주성과 고토회복의 의지가 강했겠습니까?
 
▲ 위 지도  김(금)나라 영역 중 임황이 바로 서압록하로 해모수.고추모의 선조나라 고리국이다  
고리국은 구려하(九黎河) 건너 서안평을 가리킵니다. 서기전108년경의 구려하와 서안평이 어디인지를 알면 옛 고리국 즉 구려국이 어디인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단군조선 시대 구려국은 원래의 고죽국과 가까운 곳에 있었다고 보이는데, 옛 서안평은 요나라 때 수도인 임황입니다. 대진국(발해) 시대에 임황은 옛 서안평이며, 구려하는 서요하이므로 지금의 요동반도 서쪽에 붙은 요하가 아니라 그 보다 더 서쪽에 있었던 요하이므로 즉 서안평은 지금의 요동반도 바로 서쪽이 아니라 그보다도 큰 강을 건너 서쪽에 있었던 것이 됩니다. 즉, 지금으로 따지면 북경의 북쪽과 요동반도 사이에 발해만 북쪽에 있었으며, 지금의 요하의 상류쪽에 해당한다 할 것입니다. 즉 단군조선 당시 번조선의 북쪽지역에 있었던 것입니다.

 
단군조선의 영역(흑룡강에서 양자강까지.흑룡강에서 일본열도까지)을 회복하고, 널리 모두를 이롭게 하겠다는 홍익인간이념을 실현하겠다는 고추모의 다물정신을 계승하여 수 많은 고고리 태왕들의 서진.융합정책을 통하여 비로소 광개토태왕.장수태왕.문자명태왕 시기에는 고고리 영토와 영향권이 사마르칸트.티벳.연해주.양자강.흑룡강.한반도.일본열도까지 미쳤습니다. 고고리의 상징인 삼족오 문양은 당시 수 많은 고고리 벽화에 최고로 많이 그려 졌으며, 고고리(고구려)가 세계의 중심임을 선언했습니다.

▲ 진시황때부터 건설하여 명나라때 완성된 만리장성. 동쪽 끝은 본래 요서지역의 갈석산(상)인데,식민사관.동북공정론자들은 한4군을 한반도북부로 끌여 들인 이병도의 일제 식민사관적 역사논리에 따라 한반도북부까지가 만리장성 동쪽 끝이라고 주장한다(하)    
고고리인들은 지역마다 경당을 만들어서 학문과 무예에 열중했습니다. 고구려는 결코 단순하게 전쟁놀이만 하는 그런 나라가 아니였습니다. 국민 모두가 책읽기에 열중했고 알기에 힘쓰는 지성의 나라였습니다. 그러했기에 100-200만의 지나국의 침략에도 대동단결하여 지략으로 물리쳤던 것입니다. 지나지역을 통일한 수나라와 당나라는 당시 세계 최강대국으로 100-200만의 대군을 동원하여 번번히 고고리를 침략하였으나, 을지문덕.연개소문 등의 고고리 영웅들이 버티고 있는 고구려를 정벌하지는 못하고 돌아 갔고 고구려를 침략한 선비족의 나라 전연.북위.수나라 모두 몇 몇백년을 못 가고 내부분열로 망하고 말았습니다.그에 비해 고고리는 지나지역에 수십 개의 나라가 난립하는 역사에도 불구하고 900년을 이은 세계의 중심국가였습니다. 연개소문이후 후계자 문제로 내분에 휩싸인 고고리가 결국 지나의 수.당나라와의 전쟁의 휴유증과 함께 신라.당나라 협공으로 무너지고 말았으나, 1천년이 지난 지금 다시 고고리의 부활을 위하여 삼족오는 날개짓을 하고 있습니다. 역사의식과 민족혼만 있으면 당당했던 민족자주국가 고고리는 다시 부활하는 것입니다.
 
최근 지나국은 만리장성의 동쪽 끝이 요서지역의 갈석산이 아니라, 기존에 주장해 오던 요녕(遼寧)성 신빈(新賓)보다 10.9㎞ 더 동쪽인 퉁화현 임이 입증됐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한반도와 근접한 퉁화현은 인근 지안(集安)과 함께 고고리(고구려) 대표적 유적지로 2006년 고고리 초기 것으로 추정되는 대형 고분군 2기가 발견된 지역입니다. 당시 지나국 학계는 이를 근거로 기원전 37년 고추모가 고구려를 개국한 터는 당초 알려진 환인(桓仁)현이 아니라 퉁화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 혼강위로 보이는 골본성.고추모가 처음 고구려의 터를 잡은 산이다
고구려개국과 관련하여 고추모의 고구려는 동부여에서 망명한 해모수의 손자 고추모가 고두막의 골본부여(북부여)의 3대 단군직에 오르자 이에 반대한 한 고두막세력이 고추모세력을 권력에서 내 몰아 버리자, 이에 고추모세력은 골본에서 이주하여 골본천(심양방면)에 이르니 토지가 비옥하고 강산이 험고(險固)함을 보고 드디어 도읍하려 하였으나,미처 궁실을 지을 겨를이 없어 우선 비류수(혼강) 산꼭대기(골본성 * 현 오녀산성)에 살며 국호를 고구려라 하고 해씨를 성으로 삼았으며, 후에 해씨는 태조대제때 고씨로 바뀌었다. 고고리(고구려)는 초기부터 결코 강한 나라가 아니였습니다. 숱한 시련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강하게 성장하였고 마침내 강력한 철제무기와 개마무사로 무장한 자주국방력을 통하여 주변국가들을 복속.융합해 갔으며, 선조의 고향인 요서지역(서요하지역=고리국 위치=요나라 도읍지 임황)으로 진출하고 지나대륙을 지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나국이 만리장성 북쪽 동단을 고구려 영토 내로 더 연장한 이유는 '고구려는 지나국의 지방정권'이라는 동북공정의 논리를 굳히려는 의도입니다. 이 처럼 역사전쟁은 곧 영토전쟁이라는 사실을 정부와 국민은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아시아 바다지배한 해상제국 백제=온조.비류.구태세력의 통합국가

▲ 아시아 로마제국 백제의 영향권이 미친 22담로지역(빨강색 라인)
고추모와 소서노의 아들 온조는 발해만 연안 요동지역 어하라(비류세력)을 떠나 마한(한반도)땅으로 들어와 마한진왕의 승인을 얻어 경기도지역을 영역으로 서울 한강변에'십제'를 개국했습니다. 이후 비류세력은 십제에 통합되었습니다. 동부여에서 망명해 온 고추모가 소서노와 혼인하고 북부여(골본부여) 고무서 단군의 사위가 되어 단군에 오르자, 이에 반대한 고두막세력이 고추모세력을 부여권력에서 몰아내 버린 후에 골본천(심양지역)에서 성장한 고추모의 고구려와 부여정통성을 놓고 패권전쟁을 벌이게 되는데, 고두막(동명성왕 *진짜 동명성왕은 한나라의 요서지역침략을 물리치고 당시 부여영웅이 되었던 고두막)후예 구태세력이 고구려와 전쟁을 벌이던 과정에서 후한과 연합하여 고고리(고구려)후미를 치기위해 요동지역에서 발해만을 건너 황해도지역(대방의 옛땅:지나지역을 대방.인방이라고 하는 배경에는 소호금천씨 등 고대 한국인들이 한반도지역에서 지나지역으로 이주해서 정착한 배경에서 연유함으로 마땅히 대방의 옛땅은 한반도가 됩니다)에 백제를 건설합니다. 온조의 십제는 10명의 신하가 나라를 개국했다고 하여 붙여진 국호명이고, 구태의 백제는 100가족이 바다(발해=밝해)을 건넜다(百家濟海)는데서 연유한 국호명입니다. 해상을 통하여 한강변의 온조 '십제'를 통합하고 서남해지역의 해상세력(왜)와 연합하여 일본열도까지 진출합니다. 그리고 한강과 금강을 통하여 서남해를 장악한 백제는 마한과 가야을 완전히 복속한 근초고황때부터 지나국 동남부지역과 동남아시아 지역에 이르는 광대한 해상에 22담로를 설치하고 황족출신들을 총독으로 파견하여 해상무역을 관장하고 지역을 통치했습니다.


▲ 세계최대규모의 서울 한강변 전방후원분-발굴을 통하여 역사의 진실을 밝혀야 할 것이다

요하문명의 적석총(피라미드)을 계승한 고구려의 줄기나라 온조의 '십제' 무덤은 피라미드양식이였고, 구태나라 백제의 황제들의 무덤은 전방후원분 양식입니다. 현재 서울 한강변에서 발견된 세계최대규모의 전방후원분 무덤은 백제가 고고리의 공격으로 한성백제가 무너진 후 웅진으로 천도하기 전까지 백제황제들의 무덤들이 틀림없다 할 것입니다. 한성백제가 멸망한 후에 많은 백제황족들이 미리 개척해 놓은 일본열도로 가서 무덤을 남기니 현재 일본열도의 거대한 전방후원분들입니다. 웅진으로 천도하면서 '무녕황릉'으로 대변되는 석실무덤양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왜 대한민국 문화재청은 세계최대규모의 한강변 전방후원분 무덤들에 대한 발굴작업을 하지 않을 것일까요? 그건 일본왕실의 뿌리가 바로 백제라는 사실이 만 천하에 드러나는 결정적인 역사의 증거가 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반드시 발굴하여 역사의 진실을 알려야 할 것입니다.

신라=진조선유민+부여유민+흉노유민+선비족

▲신라의 최대영역. 나당연합으로 인하여 지나지역에 존재한 고구려.백제의 광대한 영토가 당나라에 넘어 갔고, 신라 또한 나당밀약에 따라 대동강이남에 만족했다. 그러나 [만주원류고]의 기록과 당시 국제정세와 관련하여 토번의 공격으로 당나라 국력이 한반도와 요동지역에 미치지 못하자 신라는 대동강이북지역과 요동지역까지 확보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진국(발해)의 성장으로 대진국이 거란에 망할 때까지 압록강으로 국경이 좁혀 졌다.  
진조선유민들이 진시황노역을 피하여 한반도로 망명하여 경주지역에 사로6촌을 건설하고 부여에서 망명온 북부여 황손 박혁거세을 내세워 사로국을 건설.
4세기이후 고구려를 침략한 선비나라 전연군대의 일부가 고구려군에 쫓겨 동해안을 타고 경주지역으로 들어와 사로국을 무너뜨리고 한족화된 흉노계김알지세력과 연합하여 권력을 장악하니 신라.현재 경주지역의 적석목곽분 주인이 선비족.법흥왕 이름은 선비족의 '모진'입니다. 김알지의 김씨 성으로 바꾼 것입니다. 그러니까 김춘추.김인문 등은 모두 자신의 조상이 선비족인 셈입니다. 자신의 성을 바꾸어 조상을 바꾼 것입니다. 그것이 당시 공격을 당하여 태왕의 무덤을 훼손시키고 황후가 인질로 끌고 가고 나라을 쑷대밭으로 만들었던 선비족에 대한 적개심이 강했던 고구려와의 외교관계에도 좋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구려의 남하을 방어하기위해 백제와 신라가 불가피하게 동맹관계를 맺었고, 진흥왕때에 이를 신라가 위반하고 고구려와 야합하여 한강유역을 차지(사적:북한산의 진흥왕 순수비)하게 되니 분노한 백제가 신라를 맹공하여 신라의 국운이 풍전등화가 되었고, 전쟁과정에서 백제 성황이 신라군에게 목이 잘려 경주 신작로에 묻혀 신라인들로 하여금 밟고 다니게 만들었고, 이에 분개한 백제역시 김춘추의 사위와 딸을 대야성에서 목을 잘라 백제궁궐에 묻여 밟고 다녔습니다. 당시 신라의 국정운영에 있어 최고 위치에 있었던 김춘추는 분노했고 반드시 원수를 갚겠다는 다급한 심정으로 왜와 고구려에게 구원군을 요청하나 백제의 담로국인 왜나 신라에게 한반도북부 동해안 영토를 빼앗긴 고구려가 들어줄 리 만무했습니다. 신라는 결국 당나라에게 머리를 숙이고 나당연합군대로 백제를 치고 고구려를 협공하니 결국 고구려.백제는 공멸하고 말았습니다.

 
당나라는 신라까지 욕심이 나서 신라까지 삼키려 들었습니다. 그러나, 티벳지역의 토번이 서안을 점령하는 등 당나라의 국운이 위급해지자 한반도에서 군대를 철수함으로써 당나라의 힘이 미치지 못한 사이, 신라는 한반도를 넘어서 요동지역까지 진출하여 영토를 확보하였습니다[청나라의 황실역사서-만주 원류고]. 그러나, 고구려부흥운동을 통하여 일어나 대진국(밝해=발해)의 부흥으로 국경선은 코란(코리안=클안=클한=거란=궐안)에게 대진국(단군3조선의 중앙 통치국 진조선을 계승했다는 국호/외교문서에서는 고려)이 망할 때까지 압록강지역으로 국한되었습니다.

3국 연합군에 의한 당나라 정벌을 거부한 신라 김춘추

▲ 경주 호우총에서 발견된 제기용 청동그릇.'광개토태왕'이란 글자가 보인다.신라가 광개토태왕에게 제사를 지낸 제기그릇이다.
[한단고기]" 먼저 백제의 상좌평과 함께 의를 세웠습다. 또 신라의 사신 김춘추에게 청하여 자기의 집에 머무리도록 하며 말하기를, 신라의 사신 김춘추에게 청하여 자기의 집에 머무리도록 하며 말하기를, 당나라 사람들은 패역하기를 짐승에 가깝습니다. 청컨대 우리나 그대들은 반드시 사사로운 원수를 잊고 지금부터 삼국은 백성들의 뜻을 모으고 힘을 합쳐 곧바로 당나라 서울 장안(서안)을 쳐 들어가 도륙한다면 당나라 괴수를 사로 잡을 수 있을 것이오! 전승의 뒤에 옛 영토에 따라서 연정을 실시하고 인의로써 함께 다스려 약속하여 서로 침범하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을 영구준수의 계획으로 함이 어떻겠소?"라고 하며 이를 재삼 권하였으나, 김춘추는 종래 듣지 않았으니 애처롭고 가석할 일이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친일숭미사대주의적인 우리가남이가정치세력은 평화적 민족통일의 기반으로써의 남북합의를 위반하고 미국의 대북노선을 따라 가니 신라의 사대주의 외교노선이나 다를 바가 없다 할 것입니다.

3국 통합은 광개토태왕시절에 고고리(고구려)가 이미 했었다

부여의 정통성을 놓고 고구려와 패권을 다투던 백제는 아신왕 때 광개토태왕에게 항복했고, 백제의 속국이였던 왜(:한반도와 일본열도의 해상세력)의 침략으로 국운이 풍전등화상태가 되자, 고구려에 5만의 군대을 요청하여 나라를 구한 신라는 광개토태왕을 주군으로 삼고 제사지냈다. 단지 자치권을 부여함으로써 식민통치를 하지 않았을 뿐이지, 당시 백제와 신라,그리고 일본열도는 완전히 고구려에 복속당하였습니다.


▲ 3국의 앙금과 원한의 기운은 현재까지도 여전히 남아 정치.경제.문화적 통합을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

백제가 망한 후에 백제의 담로였던 일본열도로 이주한 백제황족은 현재 일본왕실을 구성하고 천무왕 때 국호를 '일본'으로 바꾸고, '담로'에서 일본이 시작한다고 명백히 밝히고 있는[일본서기]를 편찬하여 역사도 백제중심사관에서 일본열도사관으로 바꾸었으니 현재 일본은 백제나 마찬가지이고, 핵으로 무장하고 당나라와 비유되는 세계 초강대국 미국과 맞짱을 뜨겠다는 북한은 고구려와 같고, 당나라와 비유되는 미국에 의지하여 45년간 영남권력이 마치 자기들 나라인양 장악해 온 남한은 신라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러한 3나라를 철로를 통하여 정치경제문화적으로 이롭게 하려고 했던 단군한검천황같은 대통령이 한반도에서 나왔으니 바로 한반도와 일본, 그리고 유라시아를 연결하는 철로를 통하여 한반도를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무역.정보.문화의 중심지로 삼아 인류중심국가로  건설하겠다는 김대중의 철의 실크로드 노선입니다. 과히 고구려 광개토태왕의 통합적 노선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하겠습니다. 동아시아와 유라시아를 품에 안는 큰 그릇을 가진 통치자가 바로 한민족이 그토록 바라던 단군한검천황이요, 광개토태왕이라 할 것입니다. 한민족은 더 이상 한반도에 갇혀서 미국과 소련이 주입시켜 놓은 이념과 체제로 서로 다투며 민족적 에너지를 낭비하는 시대는 마감해야 합니다. 남북한 권력은 독점욕을 완전히 포기하고 6.15/10.4남북합의에 충실하여 평화적인 민족통일에 헌신해야 할 것입니다.

 
지정학적 여건을 최대한 민족의 국익으로 연결할 수 있는 철의 실크로드 노선만이 유라시아와 아메리카로 뻗어 나가는 길이고, 세계에 흩어져 있는 한민족의 핏줄을 잇고 인류가 더불어 살아가는 홍익인간세상을 여는 지름길이기도 합니다.고로 한ㅁ민족의 대통합을 가로 막는 모든 집단적이고 지역적인 패거리주의와 독식주의,그리고 소수 부유층과 기득권층의 특권의식자체를 국민과 민족와 역사의 이름으로 철퇴를 가해야 합니다. 

 
지나국의 동북공정은 9천년 전 한국.배달.조선의 요하문명까지 지나역사로 만들고, 나가 고구려까지 지나역사로 집어 삼켜 결과적으로 고구려의 영토였던 한반도이북까지 지나국의 영토였다는 것을 주장하고 먹으려는 속셈인 것이다. 요서지역의 갈석산이 만리장성의 동쪽 끝인 만리장성의 길이 조작도 그러한 배경이라 할 수 있다.
 
남북한은 '우리 민족끼리 민족자주 민족대단결"이라는 6.15남북공동정신에 입각하여 이러한 지나국의 역사왜곡행위에 대해 공동대응해야 하고, 대륙과 해양세력이 만나는 한반도의 세력균형을 위해서도 미국을 지나국의 팽창주의에 대항하여 만주를 회복할 때 까지 자주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남한의 민족민주세력은 미국에게 대북압박노선을 폐기하고 대북화해협력노선을 지향하는 길이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과 미국의 국익에도 이롭고 한반도평화에도 이롭다는 사실을 계속적으로 강조하고, 미국과 북한이 미군을 일본으로 철군하는 것을 전제로 한반도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나가 북미경제협력이 실현될 수 있도록 남한의 민족민주세력은 한민족의 어머니와 같은 심정으로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또한 남북한이 공동번영할 수 있는 6.15/10.4남북합의가 이행되도록 이명박정부를 압박하고 북한이 지속적으로 이행할 수 있도록 6.15남측위원회같은 민간단체차원에서 적극 중간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출처 : 한국사랑
글쓴이 : 무궁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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