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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엘 콘도르 파사

전기작가이자 소설가인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 '광기와 우연의 역사'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아메리카 대륙을 처음 발견한 콜럼버스가 의기양양하게 귀국해 세빌리아와 바르셀로나 거리를 지나며 행진을 하는 동안에 갖가지 진귀한 보물들을 쏟아놓았다. 그 보물들 중에 사람들을 흥분시킨 건 단연 황금이었다. 그리고 곧 콜럼버스는 황금을 위해 두 번째 항해를 계획하고 대대적인 선원 모집에 들어갔다. 이 소식은 스페인 전국을 열광시켰다. 그 중에 바스코 누데즈 데 발보아라는 이도 포함돼 있었다. 그는 세계 최초로 태평양을 발견한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한낱 건달에 불과했다. 빚에 쪼들리다 벼락부자를 꿈꾸며 배에 몰래 올라탄 그는 신대륙에 도착하자마자 총독의 치안 책임자를 죽이고 자신이 직접 그 땅의 주인이 되고자 했다.
그는 황금을 원했다. 그러나 스페인 본국에서 반역의 죄를 처벌하러 배를 보냈다는
소식이 들렸다. 다급해진 발보아는 원주민으로부터 들은 '맨손으로도 금을 파낼 수
가 있다'는 페루의 '엘도라도'를 찾아 고난의 행군을 감행한다. 그러나 발보아는 엘
도라도를 찾지 못하고 새로운 바다 태평양을 발견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발보아가
만든 '전설적인 황금나라의 흔적'은 프란치스코 피자로라는 군인이 쉽게 잉카 제국
을 점령할 수 있는 지름길을 터준 격이었다.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는 이렇게 한낱
건달에 불과한 발보아 같은 이들에게 점령되면서 모순으로 점철된 것이었다.
월드 뮤직이라는 말 속에는 서구 중심의 오만한 역사관이 포함돼 있다. 곧 '가장 훌
륭한 클래식 음악' 뒤편에 있는 '이국풍'의 음악이라는 뜻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이는 어떻게 보면 예술도 권력의 세기에 의해 주류와 비주류로 나눠진다는 것을 의
미한다. 저마다의 삶의 방식은 나름대로의 의미를 가지는 법이다. 그러나 힘으로 상
징되는 모든 것들이 개입되면 타인의 삶이란 못마땅한 것일 뿐이다. 바로 여기에
서유럽 이데올로기의 오만함이 서려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믿는 종교를
강요하고, 자신들의 문화만이 최고라는 생각으로 타자를 억압하고 착취해 왔다. 외
적인 것뿐만 아니라 정신까지도 그들에게 맞춰야 한다고 강요했다.

애절한 울림의 투명한 공명

그러나 끈질긴 생명력은 월드 뮤직의 숨겨진 이면의 뜻을 거세하고도 남는다. 세계
각국의 대중음악 형태와 민속음악 형태를 접속시킨 월드뮤직은 이제 일종의 붐을
넘어 '대안'의 음악으로 추앙받고 있다. 이 가운데 안데스 산맥을 중심으로 모여 잉
카 제국 문명을 이뤘던 인디오들의 음악은 자연에 순응하며 조화를 이룰 줄 알았던
자신들만의 독특한 생활 양식을 관악기의 선율에 담아내는 게 특징이다.
이번에 새롭게 선보인 음반 '엘 콘도르 파사'(웅대한 콘도르는 머리위로 날고)는 인
디오의 팬플루트와 플루트 음악을 담고 있다. 특히 이 음반은 사이먼과 가펑클이
불렀던 노래처럼 유명한 음악인들에 의해 작업이 이루어진 게 아니라 그들 전통을
계승하려는 조엘 프란시스코 페리, 프로젝트 그룹 아콩카쿠아, 우카마우, 아요파야
만타 등의 인디오들에 의해 녹음되었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이 음반에 흐르는 곡들
은 시쿠, 바스토스, 삼포냐, 론다도르, 케나, 핀키요 등의 이름을 가진 그들의 전통
악기로 연주되고 있다. 이들 악기의 공통점은 바람을 가르는 소리처럼 들리는 투명
한 공명이다. '이별' '오엔타이'는 허전한 듯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애절한 울림을
주는 곡들로 이들 악기가 주로 어떤 소리를 내는지 알 수 있다. '내가 태어난 곳으
로 돌아가고 싶다/내 잉카의 형제들과 함께할 수 있는 곳으로/그것이 내가 가장 꿈
꾸는 것이다'라는 가사를 가지고 있는 '엘 콘도르 파사'는 생존을 위해 고향을 등져
야만 했던 인디오들의 슬픔을 노래한 곡이다. 이 노래를 '철새는 날아가고'라는 제
목으로 히트시킨 사이먼과 가펑클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애절함이 깃들어 있다.
흔히 인디오 음악을 '영혼의 음악'이라고 한다. 노래는 신에게서 받은 것이며 신을
존경하면 할수록 더 많은 노래를 부를 수 있다고 믿었다. 이들에게 노래는 초자연
과의 교감이었던 것이다. 서구 유럽의 음악과 민속음악이 혼합된 라틴 아메리카의
음악 룸바, 맘보, 볼레로, 탱고 등도 물론 이들의 역사를 반영하고 있지만, 아메리카
의 원주민이었던 인디오의 음악만큼 남미의 역사를 절실하게 반영하는 것도 없을
것 같다.
출처 : 문화, 우리 시대
글쓴이 : 겨울나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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