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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킹

[스크랩] [해외 트레킹 | 뉴질랜드 밀포드 트랙]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을 걷는 4일간의 트레킹

[해외 트레킹 | 뉴질랜드 밀포드 트랙]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을 걷는 4일간의 트레킹
영화 ‘반지의 제왕’의 배경으로 유명한 뉴질랜드의 대자연

 “아빠가 이번 연말에 직장에서 잘릴지도 몰라. 우리 베이비부머 세대는 다 그런 거야.”

과거 매년 11월은 가족들에게 예방주사를 놓던 때였다. 같은 말을 몇 년째 반복하던 어느 해였다. 가족들에게 ‘양치기소년’처럼 인식되던 아빠 앞에 진짜로 늑대가 나타났다. 30년 다닌 직장에서 ‘이제 그만’이란 통보를 받았다. 다행히 몇 해 반복된 예방주사 덕에 가족들은 담담히 받아들였다. 휴대폰에 저장된 모든 지인들에게 여유를 가장한 스팸 문자를 띄웠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저 오늘 날짜로 백수 됐습니다. 가진 게 시간밖에 없으니 자주 연락 좀 주십시오.’ 

창고 속 어딘가에서 누렇게 바랜 스크랩 뭉치를 꺼내 들었다. 주로 신문과 잡지에서 국내외 여행지를 소개하는 기사들을 오려둔 자료였다. 대충 훑어보고 마음에 들면 칼로 오려 보물처럼 소중히 쌓아둔 유물이다. 오랜 세월의 꿈이 집약된 유물인 셈이다.

나는 ‘세계 10대 트레일’을 혼자 힘으로 준비해 모두 완주하겠다는 꿈을 키워 왔다. 직장 퇴직 후 5년 안에 실천한다는, 오랜 직장 세월 동안 숨겨둔 꿈이었다.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그날 이후 지금까지 3년간 도보여행을 해왔다.

세계 10대 트레일 중 다섯 번째로 택한 목적지는 뉴질랜드 ‘그레이트 워크(Great Walks)’다. 그레이트 워크는 뉴질랜드의 대표적인 트레킹 코스 9개를 뜻하며, 그중 첫 번째인 ‘밀포드 트레킹’ 여정을 <월간山>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트레킹 이틀째, 팜플로니아 로지에서 퀸틴폭포로 이어진 클린턴 계곡길을 지난다. 오르막 경사가 본격적으로 심해지는 길목으로 들어서고 있다.
▲ 트레킹 이틀째, 팜플로니아 로지에서 퀸틴폭포로 이어진 클린턴 계곡길을 지난다. 오르막 경사가 본격적으로 심해지는 길목으로 들어서고 있다.

양떼가 노니는 밀포드 가는 길

퀸스타운은 인구 2만의 작은 호반도시다. 밀포드로 가는 사람들은 대개 ‘영국 빅토리아 여왕처럼 아름답다’는 이 도시에서 버스를 탄다. 여기서 피오르드랜드국립공원의 테아나우호수까지 두 시간 반 거리다. 퀸스타운의 상징인 와카티푸호수가 오른쪽 차창으로 스쳐 사라지고 나면 드넓은 평원이 나타난다. 한가로이 풀 뜯는 양떼의 이국적인 모습이 시야 한가득 들어온다. 녹색 캔버스에 흰색 물감 방울을 무수히 뿌려 놓은 듯한 정경이다. 

뉴질랜드는 인구가 450만이 안 되지만 양의 수는 4,000만 마리가 넘는다고 한다. 양떼들이 저렇게 열심히 풀을 뜯어 자신들의 10분의 1에 불과한 뉴질랜드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셈이다.

멀리 설산들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잠깐 졸음에 빠질 즈음 버스가 테아나우에 도착했다. 방문객센터에서 간단한 입산 절차를 마치고 선착장으로 이동해 유람선에 오른다. 테아나우호수는 넓기로 뉴질랜드에서 두 번째인, 서울 면적의 절반이 넘는 규모다. ‘바다 같은 호수’가 딱 어울리는 표현이다.

한 시간 이상 주변 설산들의 위용에 넋을 빼앗기다보면 어느 순간 배는 호수의 북단 선착장(Glade Wharf)에 이른다. 배에서 내리며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신발 소독. 소독제가 들어있는 넓은 용기 속에 잠시 신발을 담그고 나오면 비로소 밀포드로 들어갈 자격이 주어진다. 눈앞 녹색 이정표에 ‘Milford Track(밀포드 트랙)’이라는 노란색 글씨가 선명하다. 꿈에 그리던 바로 그 밀포드 앞에 내가 서 있다.


	퀸스타운에서 곤돌라를 타고 봅스피크로 오른다. 퀸스타운은 뉴질랜드 남섬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도시이며 밀포드로 들어가는 길목이다. 와카티푸호수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 퀸스타운에서 곤돌라를 타고 봅스피크로 오른다. 퀸스타운은 뉴질랜드 남섬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도시이며 밀포드로 들어가는 길목이다. 와카티푸호수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짙은 적갈색 흙길에 발이 닿는 느낌이 푹신하다. 숲길에는 생소한 느낌의 나무들이 가득하고 가지마다 이끼 식물들이 얽히고설켜 치렁치렁 늘어져 있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봤을 법한 묘한 분위기의 숲이 계속되다 끝나는 순간, 확 트인 초원이다.

멀리 거대한 산이 길을 막고 서 있다. 산 밑에 통나무 집 다섯 동이 가지런히 있는 풍경이 꽤 정겹다. 글레이드 하우스는 우리 같은 자유 트레커가 아닌, 가이드를 동반한 패키지 트레커들이 묵는 럭셔리한 숙소다. 숙소 앞 넓은 잔디밭 벤치에서 배낭을 내려놓고 잠시 쉬어간다. 직장 생활을 하느라 바빠 패키지여행만 하는 후배들이, 혼자 자유여행 다니는 내가 부럽다며 의례적으로 칭찬할 때가 있다. 그들에게 나는 약간의 농담을 섞어 이렇게 얘기한다.

“돈 많고 시간 없으면 패키지, 돈 적고 시간 많으면 자유여행인 거야.” 

100m 길이의 구름처럼 떠있는 다리는, 글레이드다리(Glade Bridge)다. 아래로 클린턴강이 흐른다. 내가 거슬러 따라 올라가야 할 강이다. 글레이드다리를 건너자 클린턴강이 오른쪽 발목 밑을 계속 따라 온다. 강 속의 물고기 모습까지 생생할 정도로 물은 맑다 못해 투명에 가깝다. 아주 오래전 호수였다가 물이 마르면서 지금은 수생 식물과 일반 식물들이 동거 생활을 하는 습지(Wet Land)를 돌아보고 나오자 첫날 여정이 끝났다. ‘클린턴산장(hut)까지 2분’이라는, 숙소를 알리는 이정표가 정겹다.

수용 인원 40명인 클린턴산장에 남들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다. 상대적으로 좋은 자리를 잡아 편안한 하룻밤을 보낼 수 있었다. 이른 아침 구름이 두텁게 내려앉은 뒷산을 등에 업고 산장을 나선다. 간밤 주방에 붙어 있던 글귀를 떠올리곤 마음이 더 밝아진다.

‘Long smiles make short miles(먼 길도 밝은 마음으로 웃으며 가면 짧게 느껴진다)’ 5개의 단어가 근사한 운율로 어울려 깊은 울림을 준다.

클린턴강은 두 지류로 나뉘고, 길은 서쪽 지류를 따라 이어진다. 갈림길 한복판에 6명의 트레커들이 버너를 켜고 커피를  끓여 마시고 있다. 늘 습한 곳이라 산불은 별로 문제가 안 되는 모양이다. 지나는 나에게도 당연한 듯 커피 한 잔을 권한다. 나 또한 당연한 듯 덥석 받아 마신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후한 인심이란 동서양 어디서나 마찬가지다. 보이지 않는 동료의식으로 끈끈히 이어져 있음을 느낀다.

	(위)테아나우호수는 뉴질랜드 전체에서 두 번째, 남섬에서는 가장 큰 호수이다. 피오르드랜드국립공원에 속해 있다. / 테아나우호수 한가운데에 있는 퀸틴매키논경의 수중 묘비. 130년 전 밀포드 트랙을 세상에 처음 알렸으며 이 호수에서 사고로 사망했다.
▲ (위)테아나우호수는 뉴질랜드 전체에서 두 번째, 남섬에서는 가장 큰 호수이다. 피오르드랜드국립공원에 속해 있다. / 테아나우호수 한가운데에 있는 퀸틴매키논경의 수중 묘비. 130년 전 밀포드 트랙을 세상에 처음 알렸으며 이 호수에서 사고로 사망했다.

트레킹의 정점, 매키논패스

울창한 숲길이 끝나면 확 트인 시야 양편에 거대한 산들이 나타난다. 깎아지른 절벽 봉우리들이 하나같이 흰 눈을 뒤집어썼다. 한참 걸어 가까이 가면 높고 굵은 폭포 앞이다. 히레레(Hirere)쉼터 지붕 밑에서 바라보는 히레레폭포의 위용이 꽤 거세고 힘차다.

버스가 올 일이 없는 산속에 ‘Bus Stop’ 팻말도 보인다. 시골버스 정류장 같은 조그만 양철 지붕 밑,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잠시 앉아 숨을 고른다. 숲도 사라졌고 나무들 키도 낮아졌다. 고도가 높아졌음을 알 수 있다.

크고 작은 돌더미들이 큰 강처럼 가로막는 곳을 건너 오르고 오르니 다시 폭포 앞이다. 퀸틴폭포(St. Quintin Falls)다. 히레레폭포보다 위용은 덜하지만, 많은 땀을 흘렸기에 시원함은 훨씬 더하다. 기다란 철재 다리 건너 다시 장대한 물줄기의 폭포를 지나 급격한 오르막을 견뎌내자 반가운 이정표다. ‘민타로 산장까지 2분, 매키논패스까지 2시간 30분’

초저녁부터 내린 비는 밤새 그치지 않았다. 꿈결 같은 빗소리가 어릴 적 어머니 자장가처럼 부드럽고 아련했다. 고추장을 잔뜩 버무린 누룽지로 아침을 먹고,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으나  오전 9시가 넘도록 그칠 낌새가 없다. 별 수 없이 우비로 전신무장을 하고 길을 나선다. 사실 밀포드 트랙의 4일 일정 동안 비가 오지 않을 확률은 높지 않다. 특히 정상에서 비나 눈을 만날 확률이 가장 높다고 한다.


	정상인 매키논패스에서 바라 본 모습. 11월 한여름(남반구)인데도 산에 온통 흰 눈이 쌓여 있다. 밀포드 트랙 전 구간 중 가장 험난한 곳이다.
▲ 정상인 매키논패스에서 바라 본 모습. 11월 한여름(남반구)인데도 산에 온통 흰 눈이 쌓여 있다. 밀포드 트랙 전 구간 중 가장 험난한 곳이다.
“내일 비가 많이 온다고 하니, 힘 있으면 오늘 정상을 다녀오는 게 좋을 것”이라는, 산장 주인의 조언을 따르길 잘했다. 배낭을 내려놓고 정상인 매키논패스(Mackinnon Pass)까지 날아갈 듯 뛰어 올랐다. 탁 트인 고개 정상에서 30분가량 지나온 날을 추억하는 뜻 깊은 시간을 가졌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매키논패스에 올랐다. 어제는 맨몸인 데다 날씨가 좋았었다. 오늘은 배낭과 비 때문인지 어제보다 훨씬 힘들다. 고개 정상에 다시 서니 우비 속의 온몸이 땀으로 흥건하다. 빗물인지 땀인지 구분이 어렵다.

정상을 에워싼 주변 봉우리들은 11월 여름(뉴질랜드는 남반구)인데도 흰 눈으로 덮여 있다. 십자가를 꽂은 석탑 주변은 인적 없이 고요하고 장엄한 분위기였던 어제 오후와는 사뭇 다르다. 먼저 도착한 많은 트레커들이 빗속에서도 석탑을 배경으로 인증사진 찍기에 시끌벅적 여념이 없다. 석탑 50m 뒤로는 1,000m에 이르는 수직 낭떠러지가 입을 벌리고 있다. 위험 표지판이 사람들을 서늘하게 한다.

석탑에는 ‘1888년 이 길을 개척하고 1892년 테아나우호수에서 사망한 퀸틴 매키논 경을 기리며 이 기념비를 세운다’는 글귀가 있다. 석탑 주변을 감싼 짙은 회색 구름과 어울려 한층 더 영적인 기운을 불러오는 것 같다. 첫날 테아나우호수에서 느꼈던 영적인 기운과 오버랩되면서 더욱 그러했다.

호수를 건너는 배 위에서 주변 설산들 위용에 넋을 잃던 어느 순간, 수면 위에 떠있는 십자가에 눈길이 꽂혔다. 묘한 분위기의 수중 묘비였다. 퀸틴 매키논 경의 수중 묘비인 것이다. 100여 년 전에 살았던 한 사람의 개척정신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전 세계의 트레커들을 이곳으로 불러들이고 있다.

	밀포드 트랙은 연중 6개월에 걸쳐 하루 입산 인원을 90명 이내로 철저하게 제한하고 있다. 가이드를 따라 가는 패키지 트레킹 방식과 개별 자유 트레킹 방식이 있다.
▲ 밀포드 트랙은 연중 6개월에 걸쳐 하루 입산 인원을 90명 이내로 철저하게 제한하고 있다. 가이드를 따라 가는 패키지 트레킹 방식과 개별 자유 트레킹 방식이 있다.
매키논패스 정상부터는 아더계곡을 따라 아더 강 하류에 이르는 길이다. 아더 강의 발원지는 퀼호수(Lake Quill)이며, 밀포드 트랙을 벗어나 한참을 가야 만날 수 있는 호수다. 호수 앞에는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높다는, 낙차 580m의 서덜랜드 폭포(Sutherland Falls)가 웅장한 자태로 폭포수를 쏟아내고 있다. 이 폭포를 처음  발견한 도널드 서덜랜드의 이름이 곧바로 폭포 이름이 되었다.

정상에서 평지로 내려온 트레커들이 퀸틴 로지(Quintin Lodge) 옆 휴게소에 배낭을 내려놓고 퀼호수까지 왕복 한 시간 반 거리를 다녀오는 이유가 바로 이 거대한 폭포를 만나기 위함이다. 비 오는 날의 폭포는 몬스터처럼 사납다. 강풍에 날려 오는 폭포수 방울들로 가까운 접근도 어려우며, 제대로 된 사진 한 장도 허락하질 않는다.

흡혈 곤충 샌드플라이 

밤 사이 비가 그쳤다. 자욱한 안개 속에서 아침 일찍 눈을 깬 새들의 지저귐이 싱그럽다. 아더강은 숲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왼쪽 어딘가에서 거센 강물을 하류로 쏟아 내는 듯 요란하게 자신의 존재를 알려 온다.

빗물과 이슬을 잔뜩 머금은 잡초의 감촉이 등산화 바닥을 거쳐 발바닥에 고스란히 전해 온다. 간밤 덤플링산장에서 지정된 침대를 놔두고 주방 난로 옆에 침낭을 깔아 잤다. 현명한 선택이었다. 물속에 담갔다 건져낸 듯했던 등산화와 옷가지들이 난로 옆에서 기분 좋게 바싹 말랐다.

그동안 밤마다 잠든 얼굴을 공격해 왔던 샌드플라이(Sandfly)들도 어제 밤은 공격을 멈췄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서의 밤은 빈대류인 베드버그(bedbug)가 귀찮은 존재였다면, 이곳에서는 흡혈성 파리인 샌드플라이가 그런 존재다. 둘 다 흡혈성 곤충인 만큼 물린 후의 가려움증이 꽤 성가시다. 밀포드의 아름다움에 취해 쉽게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얼른 쫓아내기 위해 마오리족 여신이 악명 높은 이 곤충들을 풀어놨다는 얘기가 있다.

	[해외 트레킹 | 뉴질랜드 밀포드 트랙]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을 걷는 4일간의 트레킹
성가신 흡혈곤충이라기보다는, 이곳 아름다움이 훼손되지 않고 잘보존되도록 도움을 청하는, 전설 속 여신의 특사인 것이다. 오늘의 종착지 이름도 ‘샌드플라이 포인트’인 것을 보면 더욱 더 그러해 보인다.

꿈속의 장면처럼 신비로운 밀포드사운드의 풍광

아더강을 가로지르는 구름다리를 건너고, 매케이 계곡과 포세이돈계곡의 구름다리도 건넌다. 밀포드 홍보 사진에 등장해 유명해진 자이언트폭포 구름다리에서는 여러 번 카메라 셔터를 눌러보지만 홍보사진만큼의 구도가 나오지 않는다. 이윽고 눈앞에 멋진 지붕이 나타난다. 지붕 밑으로 발을 들이면 노란 문이 보인다. 왼쪽 문에는 ‘Welcome to Sandfly Point’란 환영 문구와 함께 ‘Independent Walkers’란 글씨가 뚜렷하다. 나 같은 개별 자유 여행가를 위한 휴게실이다. 오른쪽 문에는 ‘Guided Walks’라 적혀 있다. 가이드를 동반한 패키지 여행자를 위한 고급 휴게실이다.

소박한 일반실로 들어가면 의자만 썰렁하게 놓여 있다. 반가운 건 한 장의 영어 편지다. ‘밀포드 트랙을 종주한 특별한(distinguished) 사람들 대열에 이제 당신도 합류하게 되었다. 스스로 자부심을 가져도 될 것이다’고 적혀 있다. ‘그래, 자부심을 가지자’ 1년에 1만 6,000명밖에 안 되는 사람들에게만 입산이 허락되는 밀포드이기에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3박4일 동안의 모든 아름다움을 눈과 마음에 오롯이 담았기에, 자부심을 가져도 괜찮겠다는 은근한 오만도 생긴다.

샌드플라이포인트를 떠나기까지 1시간 남았다. 트레킹을 마친 트레커는 30여 명. 잠시 후 오후면 배를 타고 건너편 밀포드사운드선착장에 내릴 것이다. 산속 퀼호수에서 시작된 아더강물은 아다호수(Lake Ada)를 거쳐 여기 밀포드사운드(Miford Sound)로 흘러왔다. 일부는 이곳에 머물고 일부는 조수를 따라 타즈만해(Tasman Sea)로 흘러나가 남태평양이나 인도양 넓은 바다와 만날 것이다.

휴게실을 나와 선착장 앞 푸른 잔디밭에 배낭을 내려놓는다. 그러고 보니 참 화창한 날씨다. 여느 트레커들처럼 등산화와 양말을 벗어 풀 위에 늘어놓는다. 맨발로 풀밭에 큰 대자로 드러눕는다. 따스한 햇살의 감촉이 좋기만 하다. 편안한 행복감과 느긋한 졸음이 밀려온다. 선착장 너머 밀포드협만에 둥둥 떠 있는 거대한 설산들, 햇빛에 반짝이며 꿈속의 한 장면처럼 가물가물 신비롭다. 이 풍경을 열심히 사진에 담는 주변 사람들의 셔터소리가 점차 자장가로 변하며 스르르 눈이 감긴다.


	뉴질랜드 밀포드 난이도
밀포드 트레킹 상세 가이드

테아나우(Te Anau)호수를 배로 건너 호수 북단의 글레이드 워프(Glade Wharf) 선착장부터 시작되는 트레킹 코스다. 밀포드 협만(Milford Sound)의 샌드플라이포인트(Sandfly Point)까지 강과 계곡을 끼고 걷는 54km 길이다. 개척자인 퀸틴 매키논(Quintin Mackinnon)의 이름을 딴 해발 1,154m의 매키논패스(Mackinnon Pass)를 정점으로 이틀 동안 오르고 이틀 동안 내려오는 코스다.

퀸스타운에서 버스로 3시간 거리인 테아나우에서 입산 신고를 마치고 호수를 건너는 배에 오르면서 여정이 시작된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란 수식어에 걸맞게 보존이 잘되어 있다.

루트번 트랙과 캐플러 트랙을 포함한 피오르드랜드의 3개 트랙은 매년 10월 말에 오픈해서 이듬해 4월 말까지만 개방하고 이후 6개월은 폐쇄한다. 우리와는 정반대 계절인 만큼 늦은 봄에서 초가을까지만 개장하고 나머지 동절기를 포함하는 기간은 입산 금지된다.

밀포드 트레킹에 참여하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가이드를 동반한 패키지 트레킹(Guided Walk)과 개별적으로 혼자 하는 자유 트레킹(Independent Walk)이 있다.

두 코스 모두 3박에 해당하는 3개 숙소가 있는데, 전자는 글레이드 하우스, 팜플로나 로지 그리고 퀸틴 로지이고 후자는 클린톤 헛, 민타로 헛 그리고 덤플링 헛이다. 전자의 패키지 트레킹을 위한 숙소(로지 : Lodge)들이 후자(헛 : Hut)들보다 럭셔리하다. 레스토랑과 침구 등 숙박 시설을 모두 갖춘 소규모 호텔급 수준이다.

후자의 헛들은 넓은 건물 안에 2층짜리 침대들만 나란히 놓여 있고 주방에는 물과 가스만 공급된다. 전등도 없고 전기 시설도 없기 때문에 전자기기 충전도 불가능하고 와이파이 등 통신시설도 전무하다. 식품이나 물건을 살 수 있는 곳도 전혀 없기 때문에 3박4일 동안은 전적으로 본인이 배낭에 지참한 음식들로만 조리해 먹을 수 있다. 당연히 개인 침낭도 필수다.

	[해외 트레킹 | 뉴질랜드 밀포드 트랙]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을 걷는 4일간의 트레킹
밀포드 트레킹은 3박이 필수다. 발이 빠르다고 해서 이틀 만에 둘러보고 오거나 할 수 없다. 지정된 6개 숙소 외에 개별적인 비박과 야영은 허가되지 않는다. 비용이 많이 차이 나는 만큼 패키지 트레킹은 식사, 숙박, 길 안내와 다양한 정보 등을 가이드에 의존할 수 있어 편하다. 반면 자유 트레킹은 전적으로 개인 스스로가 모든 걸 해결해야 한다. 약간의 경험만 있다면 저비용으로 하는 자유 트레킹이 훨씬 만족도가 높다.

밀포드 입산 인원은 하루 90명 이내로 제한된다. 6개 숙박지의 하루 수용 인원도 모두 합쳐 90명이다. 가이드 트레킹을 위한 고급 숙박지인 3개의 로지(Lodge)가 각각 최대 수용인원 50명, 개별 자유 트레커들을 위한 3개의 헛(Hut) 각각의 수용인원은 40명이다. 따라서 오픈 기간 6개월에 180일이면 연간 입산 인원은 1만 6,000명 수준을 넘지 못한다. 이런 입산 제한 때문에 매년 6월 중에 실시하는 인터넷 예약 접수는 대부분은 단기일 내에 만료된다.

한국에서 밀포드 트레킹만을 목적으로 뉴질랜드에 간다면, 최소 소요 기간은 8박 9일 정도이다. 왕복 항공기에서 2박, 거점인 퀸스타운에서 2박, 밀포드 트레킹 3박 그리고 여유 1박이다. 12시간 가까운 비행시간과 100만 원 넘는 항공료를 감안한다면 밀포드 외에 루트번이나 캐플러 트랙 또는 마운트쿡 라운드 트랙 등을 함께 묶은 2주 정도의 여정이 합리적이다.

필자 이영철 여행 작가

한솔제지에서 30년 근무 후 2011년 퇴직해 평소 꿈꾸었던 여행작가를 목표로 국내외 여러 곳을 여행하고 있다. 세계 10대 트레일을 2016년까지 완주한다는 목표이며, 여행 후 글 사진을 남겨 두 권의 여행 서적을 출판했다. <안나푸르나에서 산티아고까지>, <동해안 해파랑길, 걷는자의 행복>.

올해 영국 횡단 트레킹과 남미 페루 트레킹을 할 예정이다. nudles7768@hanmail.net


출처 : 전라북도 산악연맹
글쓴이 : 나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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