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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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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열풍에 휩싸인 중국

CRAIG SIMONS 기자

CRAIG SIMONS 기자

A Tibetan Love Affair

바이마단젠(42)은 문화혁명이 한창일 때 베이징에서 성장했다. 불교 신자였던 그의 아버지는 때때로 승려들의 독경(讀經) 테이프를 들었다. 그러나 자신은 불교에 관해 완전 문외한이었다. 1989년 그는 중국의 고대 심신수련법인 기공을 배우기 위해 티베트의 불교사원에 들어갔다.

그 사원은 쓰촨(四川)성 서부의 오지 세르타르에 있었다. 수천명의 승려들과 함께 생활하며 곧 불교에 빠져들었다. “그들의 가르침을 통해 참 삶을 깨우쳤다”고 바이마단젠은 말했다. 그 경험은 티베트에 대한 그의 관점도 바꿔놓았다. “내 부모 세대는 티베트를 해방하고 개혁하려 했다. 그러나 이제 젊은 세대는 배움을 얻기 위해 티베트를 찾아간다.” 현재 여행사 직원으로 일하는 그는 티베트식 이름을 사용한다.

실제로 바이마단젠과 같은 목적으로 티베트를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티베트 고승의 발치에서 도를 구한 한족이 수만명에 달한다. 컬럼비아대의 로버트 서먼 교수(인도-티베트 종교학)에 따르면 세르타르에서 수학한 한족의 남녀 승려만 해도 3천명을 웃돈다. 티베트를 찾는 한족 관광객도 크게 늘었다. 2003년 티베트를 방문한 중국인은 87만7천명. 전년에 비해 21% 증가했으며 1993년에 비해서는 일곱배나 된다.

중국에 티베트 열풍이 불고 있다. 베이징에서 활동하는 티베트 태생의 작곡가 한훙(韓紅)은 ‘눈의 땅’을 노래해 하루 아침에 스타덤에 올랐다. 티베트 관련 서적도 급증했다. 베이징에서 활동하는 작가 원푸린(溫普林)이 티베트에서의 생활을 서술한 ‘생불’(遇見巴伽活佛)은 1백만부 이상 팔렸다. “티베트를 여행할 때 그 책을 가져가는 사람이 많다”고 그는 말했다.

심지어 공산당 고위층에서도 티베트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정부 관료들은 티베트 불교를 공부하고 있다고는 말하지 않겠지만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이 큰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만은 안다”고 정부와 가까운 한 학자는 말했다. 실제로 장이 간쑤(甘肅)성의 사원단지를 복원하라고 정부 기금 3천6백만달러의 지급을 보증한 적도 있다고 청두(成都)에서 사는 한 티베트인은 전했다.

그런 티베트 열풍이 티베트 문화의 보존에 도움을 주고 있다. 불과 30년 전 문화혁명 기간중 중국인들은 티베트로 몰려가 봉건주의와 미신의 상징이라며 사원들을 때려부쉈다. 그러나 지금은 새로운 사원의 복원에 자금을 대고 있다. 만주족인 원푸린은 쓰촨성의 사원 건설을 위해 6만달러를 기부했다. 한 한족 사업가는 티베트 불교 스승이 사원 복원에 도움을 요청하자 50만달러를 선뜻 내놓더라고 청두에서 살고 있는 티베트인 발라는 전했다.

이같은 태도 변화에는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도 적지 않이 작용했다. 1980년 이전에는 대다수 중국인들이 오로지 중국 정부의 선전물을 통해 티베트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이제 중국인들은 티베트를 방문할 수 있고 외국 미디어도 접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이 티베트 불교뿐 아니라 그밖의 종교들을 수용하는 것은 마오쩌둥(毛澤東)주의 몰락으로 생긴 이념적 공백을 메우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중국은 불교의 뿌리가 깊기 때문에 다른 종교보다 티베트 철학이 한족에 더 가깝게 느껴지는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티베트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다면 이제 인도 다람살라에 망명 중인 달라이 라마의 귀국길이 열릴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것이 궁극적으로 티베트 자치의 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최근 10년에 가까운 단절을 끝내고 달라이 라마의 고위 사절단 수명이 베이징을 방문했다. 달라이 라마 자신도 지난해 여름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사회의 광범위한 변화가 티베트인들에게 유익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피력했다. “상황이 발전적인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중국 지식인·기업가·예술가들 중 티베트 문화와 불교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중국 정부는 티베트 열풍이 급속도로 번지는 추세를 경계하고 있다. 1980년에는 세르타르 사원에 학생이 거의 없었지만 그후 1만명 이상으로 급증했다. 그러자 2001년 중국 당국이 한족 학생들을 강제로 귀향시켰다. 그러나 티베트 열풍은 막기가 어려울 것이다. 베이징 태생의 황메이는 29세이던 1996년 미국에서 달라이 라마를 보고는 눈물을 흘렸다.

1년 후 티베트 여행을 다녀온 그녀는 뉴욕시의 회계사 일을 그만두고 라싸로 떠났다. 그녀를 찾아갔다가 그대로 눌러앉은 한족 친구도 여럿이다. “인생 최고의 목표는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바이마단젠은 자신의 믿음을 친구들에게 설파한다. 그리고 그 믿음은 전염성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신앙을 갖는 한족이 늘어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바로 거기에 티베트의 미래가 달려 있는지도 모른다.

티베트 철학이 한족에 더 가깝게 느껴지는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티베트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다면 이제 인도 다람살라에 망명 중인 달라이 라마의 귀국길이 열릴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것이 궁극적으로 티베트 자치의 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최근 10년에 가까운 단절을 끝내고 달라이 라마의 고위 사절단 수명이 베이징을 방문했다. 달라이 라마 자신도 지난해 여름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사회의 광범위한 변화가 티베트인들에게 유익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피력했다. “상황이 발전적인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중국 지식인·기업가·예술가들 중 티베트 문화와 불교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중국 정부는 티베트 열풍이 급속도로 번지는 추세를 경계하고 있다. 1980년에는 세르타르 사원에 학생이 거의 없었지만 그후 1만명 이상으로 급증했다. 그러자 2001년 중국 당국이 한족 학생들을 강제로 귀향시켰다. 그러나 티베트 열풍은 막기가 어려울 것이다. 베이징 태생의 황메이는 29세이던 1996년 미국에서 달라이 라마를 보고는 눈물을 흘렸다. 1년 후 티베트 여행을 다녀온 그녀는 뉴욕시의 회계사 일을 그만두고 라싸로 떠났다. 그녀를 찾아갔다가 그대로 눌러앉은 한족 친구도 여럿이다. “인생 최고의 목표는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바이마단젠은 자신의 믿음을 친구들에게 설파한다. 그리고 그 믿음은 전염성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신앙을 갖는 한족이 늘어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바로 거기에 티베트의 미래가 달려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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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네팔사랑
글쓴이 : 히말라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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