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무역센터 붕괴 뒤 사람들이 떠난 남부 맨해튼, 다양한 개발의 시동이 걸렸다
▣ 뉴욕=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10월15일, 간간이 빗방울이 떨어지는 가운데 뉴욕 맨해튼의 차이나타운은 금요일 저녁인데도 거리가 한산하다. 이 지역의 유명한 중국 음식점인 ‘호프키’도 예전처럼 손님들이 북적대지는 않았다. 십여년 동안 이곳에서 점원으로 일해온 중국인은 “9·11 이후 손님들이 많이 줄었다. 차이나타운 가게들도 문 닫은 곳이 많다”며 한숨지었다.
△ 한산한
맨해튼의 차이나거리. 9·11 뒤 많은 상점이 문을 닫았으나 최근 남부 맨해튼 개발로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진 뒤 그라운드 제로에서 발생하는 먼지와 악취, 테러에 대한 공포 등으로 많은 거주자들과 사무실이 남부 맨해튼을 떠났다. 남부 맨해튼은 테러의 악몽과 함께 경제 침체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최근 뉴욕시는 남부 맨해튼에 사람들을 다시 불러모으는 대대적인 작업에 나서고 있다.
남부맨해튼개발공사(LMDC·Lower Manhattan Development Corporation) 사무실은 그라운드 제로의 전경이 한눈에 들여다보이는 건물에 자리잡고 있다. 9·11 테러 직후 뉴욕 주지사와 뉴욕시장은 남부 맨해튼 재건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기기 위해 LMDC를 창립했다. 지역대표로 구성되는 LMDC의 이사회는 반은 뉴욕주지사가 나머지 반은 뉴욕시장이 임명한다. 공군에서 일하다 LMDC에서 미디어담당으로 일하는 새러 스벤드라는 건물 창 너머 그라운드 제로를 가리키며 “남부 맨해튼 재건은 매우 오랜 시일이 걸리는 계획이고 아직 시작 단계다”라고 말했다.
남부 맨해튼 개발은 그라운드 제로에서부터 시작된다. 지난 7월4일 뉴욕시장과 주지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뉴욕주의 산맥에서 채굴한 20t의 화강암 초석이 세계무역센터를 대신할 프리덤 타워 공사 현장에 설치됐다. “2001년 9월11일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기리고 기억하기 위해, 그리고 부단한 자유의 정신에 대한 헌정으로”라고 적혀 있는 초석과 함께 프리덤 타워 건설이 시작됐다. 세계무역센터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는 부동산업자 때문에 중간에 설계자가 바뀌는 등 처음부터 논란이 끊이지 않았지만, 프리덤 타워 건설은 천천히 진행 중이다. 프리덤 타워의 철골은 2006년까지 올라가고, 본격적인 이주는 2008년에 시작될 예정이다. 프리덤 타워에는 지상 72층까지 사무실 등이 들어서고, 애초 세계무역센터에는 없던 뉴욕 지하철의 연결통로도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그라운드 제로를 화려하게 채워라
프리덤 타워 옆에 상업시설이 배제된 추모 공간도 들어설 예정이다. 이곳은 2004년 1월 마이클 아라드와 피터 워커의 설계안이 통과된 상태다. 2006년까지로 완공 기간을 잡고 있다. 프리덤 타워와 추모 공간 주변으로 거대한 교통 허브도 만들 계획이다. ‘펄튼가 트랜짓 센터’로 이름지어질 이 허브는 엄청난 크기의 유리돔 건물이다. 남부 맨해튼과 남부 맨해튼을 잇는 8개의 지하철 라인이 겹쳐지면서, 맨해튼 도심의 30만 지하철 이용자들이 이 허브를 거쳐간다면 남부 맨해튼도 활기를 띨 성싶다. 이곳도 2006년에 완공될 예정이다.
△ 그라운드
제로를 바라봄 개발 계획을 설명하는 LMDC의 미디어담당 새러
스벤드라. |
그 외에 2004년 봄 남부 맨해튼 주변으로 12개 이상의 공원을 만드는 계획이 공개됐다. 2004년 6월에는 세계무역센터 자리에 시행될 문화 프로그램들을 선정하는 작업이 진행됐고, 세계무역센터 환경영향평가가 완료됐다. 2004년 말에는 라구아디아 공항에서 시작되는 고속 페리선 서비스가 시작될 예정이고, 인근 스테이튼섬 페리선 터미널도 열릴 계획이다.
2005년에도 할 일은 쌓여 있다. ‘펄튼가 트랜짓 센터’가 건설을 시작하고, 2007년 완공을 목표로 페리선 터미널과 지하철을 잇는 작업도 진행되며, 서부 산책로도 개발을 시작한다.
남부 맨해튼의 기존 상업지구 개발도 시동이 걸렸다. 대표적인 것이 차이나타운이다. 차이나타운에 방문객들을 불러모으기 위해 LMDC는 지난 5월10일 ‘차이나타운 탐험’(Explore chinatown)이라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2년 동안의 캠페인을 통해 차이나타운의 관광과 문화적 가치의 중요성을 부각시킨다는 계획이다. 9·11 뒤 차이나타운은 이윤의 50%가 감소했다. 조지 파타키 뉴욕주지사는 “이런 관광 활성화 계획이 지역의 경제 회복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지역 사업주와 비영리 문화단체들에 지원을 해주는 방안과 새로운 거주자들에게 거부 비용을 대주는 방안이 나오고 있다. 또한 지역 축제들을 활성화하고 각종 안내소들을 설치하여 처음 오는 방문객들에게 차이나타운의 쇼핑명소와 문화행사들을 소개할 예정이다.
물론 남부 맨해튼 개발이라는 거대한 계획에는 곳곳에 암초들이 도사리고 있다. 스벤드라는 사업을 진행하면서 부딪치는 가장 어려운 문제점으로 시민들과의 합의 과정을 꼽았다. 원래 뉴욕시에서 건축이나 개발을 진행할 때는 지역주민이나 시민단체들과의 협상이 필수적이다. 건축회사 KPF에서 건축설계사로 일하는 김진석(31)씨는 “뉴욕 건축가들은 시민자문위원회의 동의를 얻는 일을 힘들어한다”고 말했다. 한국과 달리 지역주민들이 건설 과정에 직접 개입하여, 지역 환경을 보호하려 한다는 것이다. 때로는 건물에 주민 편의 공간을 확충하며 주민들에게 건설허가를 받는 ‘거래’를 하기도 한다. 이런 뉴욕의 풍토에서, 대규모의 개발계획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더구나 남부 맨해튼 개발에는 희생자 유가족 단체, 개발업자와 사업주, 시민단체들의 이해와 요구가 계속 부딪친다.
△ 재건된
그라운드 제로 주변을 시민들이 거니는 상상도. |
시민과의 합의 과정 어려워
남부 맨해튼 개발은 오랫동안의 연구와 토론 과정을 거치며 매우 더디게 진행 중이다. 따라서 현재의 계획이 일부 수정될 가능성도 매우 높다. 스벤드라는 이 모든 난관에도 “남부 맨해튼의 경제적·문화적 가치가 매우 높기 때문에 재건과 개발 사업 또한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현재 LMDC는 주민들과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공항과 지하철 등 주요 시설 가판대마다 LMDC가 마련한 대여섯종의 남부 맨해튼 소개책자와 개발 안내 책자들이 비치돼 있다. 주민들과 합동으로 대형 페스티벌이나 문화행사를 개최하기도 한다. 뉴욕시가 남부 맨해튼 개발을 추진하며 외치는 구호는 오직 하나다. “남부 맨해튼으로 다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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