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실크로드를 가다] 7. 이란 |
입력: 2006년 02월 22일 17:4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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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도시 석회암 절벽에 굴을 뚫고 사는 캔도반 마을은 터키의 카파도키아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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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은
1979년 팔레비 왕을 쫓아낸 혁명 이후 회교원리주의를 강조하면서 외부로부터 빗장을 걸어잠그다시피했다. 취재비자를 받는 데만 2개월이나 걸렸다.
서울에서 신청한 비자는 아프가니스탄에 가서야 받을 수 있었다. 기업이나 공장이 아니라 시민들이 찾는 주택가의 공원이나 시장도 따로 촬영 허가를
요구했다. 심지어는 우리의 남대문이나 남산타워 격인 테헤란 한복판의 아자디(이란문)를 찍다가 잠복해있던 사복경찰의 제지를
받았다.
이란의 아시안 하이웨이는 2,103㎞. 도가룬~마샤드~사브제바르~담한~세만~테헤란~카즈빈~이베오글루~바자그란 등 주요
도시를 연결한다. 아프간 국경 인근의 마샤드에서 테헤란까지는 꼬박 하룻길. 흙먼지가 가득한 아프가니스탄에 비해 도심엔 가로수도 많고 기후도
쾌적하다. 도로는 대부분 왕복 4차선. 해발 1,200m 고지에 있는 고원도시 테헤란을 둘러싼 산자락은 아직도 눈으로 덮여있다. 사계절이 뚜렷한
기후. 택시 기사에게 이만하면 살기 좋겠다고 했더니 정부에 대한 비난을 쏟아냈다. 팔레비 국왕 시절엔 환율이 1달러에 60리얄 정도였다. 지금은
1달러에 9,000리얄이니 화폐가치가 150분의 1로 떨어진 셈이다.
#천연자원 부국 “복받은 낙원”
이란
경제는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발전 속도가 느렸다. 테헤란 도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이란 차 페이칸은 1970년대 중반 현대
포니와 비슷한 시기에 나온 모델이다. 한국의 자동차산업은 비약적인 발전을 했지만 이란의 페이칸이 단종된 것은 불과 2년 전이다. 그렇다고 외국
차가 많이 수입된 것도 아니다. 대한무역진흥공사 자료에 따르면 차량 수입 조건이 까다로워 2003년에 수입된 외국 차는 BMW 5대였다고 한다.
대신 기아 프라이드 베타가 국민차가 됐다. 부품을 한국으로부터 수입, 조립 생산하고 있는데 연간 25만~30만대라고 한다.
상류층의
부패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도 높다.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은 상을 당한 신자들을 위해 묘지에서 경을 읽어주며 생계를 유지할 정도로 가난했던 성직자
출신. 하지만 퇴임후 그의 가족들은 항공사와 정유회사를 거느린 재벌로 바뀌었다고 시민들은 말한다.
경제 사정은 당연히 좋지 않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진단한 2006년 인플레율은 13%, 실업률은 11% 수준. 전체 수출물량 가운데 원유가 차지하는 비율이 85%다.
2005년 이란 중앙은행이 발표한 경제활동인구는 고작 31%에 불과하다. 다행히 원유가격의 폭등으로 올해 성장률은 6%로
예상된다.
이란 경제의 숨통을 이어주는 것은 막대한 자원. 가이드 다니엘은 “한마디로 복받은 낙원”이라고 했다. 원유생산량은 세계
4위, 천연가스 매장량 세계 2위, 대리석 생산량 세계 2위다. 휘발유 값은 ℓ당 100원 정도에 불과하다. 광물자원도 풍부하며, 땅은 비옥하고
기름지다. 터키로 이어진 고속도로를 달리다보면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농장을 볼 수 있다. 식량도 자급자족을 할 수 있을
정도.
이란인들은 자원을 노리는 열강들이 많았던 탓에 서양인에 대한 반감이 심한 편이다. 외국인은 물론 이란 여성과 결혼한 외국인도
영주권을 주지 않는다. 터키의 한 관료는 “이란이 핵개발에 뛰어든 것도 이런 자원을 지키기 위한 자위권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한국과의 관계는 좋은 편. 이란의 수출액은 20004년 기준 20억달러 정도. 두바이로 가는 수출량의 40%가 다시
이란으로 들어가는 것을 감안하면 중동 최대의 수출국이나 다름없다. 이란은 한국의 4대 원유수입국이다. 서방세계에 대한 반감은 높지만 아시아에
대해서는 호의적이다. 동양인을 보면 먼저 악수를 청해오는 시민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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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공예 배우는 여성들 바자르 상가내에서 꽃공예를 배우고 있는 이란 여성들.
엄격한 이슬람국가인 이란에서 여성들이 즐길거리가 많지 않다.
| #젊은 남녀
연애 ‘허가증’ 받아야
경기 침체나 불황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을 덮는 것은 종교와 신앙. 팔레비 국왕 시절에는 테헤란이 ‘중동의
파리’로 불렸다. 배꼽티와 미니스커트가 유행했을 정도. 지금은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여자들은 공항에서도 차도르를 써야 한다. 공항엔 이맘
호메니이의 사진과 글이 아직도 걸려 있고, 국제공항 남자 화장실에는 남성용 소변기조차 없다. 현지인들은 ‘앉아서 용변을 보는 것이 더
이슬람적’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젊은 남녀가 데이트를 하려면 결혼을 약속했다는 부모의 동의서를 경찰서에 낸 뒤 일종의 ‘연애 허가증’를 받아야
한다. 그러다보니 차이하네라고 불리는 물담뱃집에서 몰래 데이트를 하는 젊은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아시안 하이웨이의 주요 길목인
이란. 도로 사정은 좋지만 핵문제 등 대외적인 걸림돌이 아직은 많다. 아시아 각국은 이란이 세계를 껴안기 위해 팔을 벌리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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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 기도 모스크 내에서 기도하는 이란인들. 이슬람은 하루 5번
기도한다.
| 〈이란|글·사진
최병준기자 bj@kyunghyag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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