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 : 문화/생활 2006.2.17(금) 03:06 편집 |
[커버스토리]우리 음식의 재발견 ①청·국·장
몸에 좋다는 것 누가 모르랴. 하지만 코를 자극하는 그 냄새는 또 어쩌랴.
직장인 김성미(28·서울 중랑구) 씨는 1년째 아침저녁으로 그와 친하게 지내고 있다. 떠먹는 요구르트에 청국장 분말 서너 스푼을 섞어 먹는다. 출근 뒤에는 작은 알약처럼 생긴 청국장 환(丸)도 틈틈이 먹는다. 냄새가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 하지만 김 씨는 되살아나는 ‘S자 라인’의 몸매를 보면서 친하게 지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유모(29) 씨는 남성으로는 드물게 로제 화장품의 ‘청국장 화장품’ 팩을 쓰고 있다. 팩을 사용한 덕분인지 거칠었던 피부도 생기를 찾았다고 한다. 이 화장품은 미국식품의약국(FDA)의 피부 안전성 테스트를 통과해 미국 시장 진출을 앞두고 있다.
도대체 청국장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 청국장의 진화(進化)
지난달 설 선물에서 인기 상품의 하나가 청국장, 환, 가루가 함께 포장된 청국장 세트였다. 인터넷 쇼핑몰 ‘CJ몰’에서는 청국장 제조기가 매일 70∼80개 판매되고, 청국장을 끓이지 않고 그대로 먹는 인터넷 동호회 ‘청국장닷컴’(www.chungkookjang.com)의 회원이 1만 명을 넘어섰다.
청국장에 대한 시선을 바꾼 것은 전통적인 소비연령층인 중년이 아니라 10대, 20대들이다. 이들은 청국장을 뚝배기에서 보글보글 끓는 찌게가 아니라 건강과 미용을 함께 가져다 주는 '다이어트 식품'으로 여긴다.
푸드 칼럼니스트 이진랑(39) 씨는 “맛은 살리고, 특유의 냄새를 약하게 한 청국장 관련 상품들이 등장하면서 청국장이 참살이의 대표 음식으로 재조명되고 있다”고 말했다.
풀무원은 청국장 시장규모를 최대 400억 원대로 파악하고 있다. 류인택 홍보팀장은 “최근 청국장 시장에서 생으로 먹는 환, 가루, 생청국장의 소비가 크게 늘고 있다”며 “아직 큰 규모는 아니지만 참살이 바람을 감안하면 시장이 계속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에서 출시한 ‘청국쌈장’의 지난해 매출은 12억5000만 원으로 전년 대비 49.4% 증가했다.
그러나 냄새를 없앤 청국장에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10일 서울 종로구 공평동의 청국장 전문점 ‘하나로’에서 만난 오미나(22) 씨는 “청국장은 큰 거부감 없이 먹을 수 있고, 냄새도 그리 심한 게 아니다”며 “냄새가 나지 않는 청국장은 아무래도 청국장답지 않다”고 말했다.
○ 청국장의 재발견
청국장의 유래는 14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옛 고구려와 발해 땅이었던 만주 지방에서 콩을 삶아 말안장 아래에 넣고 다니며 수시로 먹었다. 이때 말의 체온(37∼40도) 때문에 삶은 콩이 자연 발효된 게 청국장의 원조다.
청국장은 ‘삼국사기’에 ‘시(P)’라는 이름으로 나오며 683년 신라 31대 신문왕이 왕비를 맞을 때 폐백 품목에 포함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청국장은 볏짚이나 공기 중에 있는 바실루스 균에 의해 발효된다. 청국장의 퀴퀴한 냄새는 이것 때문이다.
청국장에 대한 영양 평가는 높다. 콩은 삶거나 볶을 경우 단백질의 소화 흡수율이 70%에 못 미친다. 반면 콩을 가공한 청국장은 인체 흡수율이 98%로 올라간다. 생콩에 비해 비타민 B2, B12, K의 함량도 높다.
최근 콩과 관련된 음식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추세다. 식품 관련 학회에서는 콩에 관한 연구가 쏟아지고 있다.
지난해 미국 텍사스대 암센터가 발표한 조사에서는 청국장 등 식물성 에스트로겐이 많이 들어 있는 음식을 먹은 사람의 경우 폐암 위험이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식물성 에스트로겐은 암세포를 억제하는데 두부 된장 청국장 등 콩 식품에 많다.
최춘언(전 한국식품과학회장) 씨는 “콩의 배아에 많이 함유된 ‘이소플라본’은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과 유사한 효과가 있어 골다공증, 갱년기 장애, 유방암 등 여성 질환을 완화시킨다”고 밝혔다.
○ 청국장과 사람들
청국장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아직 상당 부분 숙제로 남아 있다.
10여 년간 청국장을 연구해 온 김한복(48·호서대 생명공학부) 교수는 생청국장 신드롬의 주인공이다.
그는 저서 ‘청국장 다이어트 & 건강법’에서 청국장이 고혈압 당뇨 위장장애 암 등에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청국장의 다이어트 효과를 몸으로 보여 줬다.
산부인과 전문의 홍영재(62) 씨는 청국장과 특별한 인연을 맺고 있다. 2001년 10월 대장암 3기 판정을 받은 그는 수술을 앞두고 신장에서도 암 덩어리를 발견했다.
“수술에서 대장의 4분의 1과 왼쪽 신장을 떼냈습니다. 항암 치료가 시작되자 입에 넣는 음식은 모두 토했고 체중이 15kg이나 줄었어요. 그때 다른 음식은 먹을 수 없었지만 청국장만은 목으로 넘어갔습니다.”
그는 죽음과의 싸움에서 만난 청국장을 공부했고, 지난해에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홍영재 장수 청국장’이라는 레스토랑을 냈다. 이곳 한구석에는 ‘슬로 푸드 슬로 라이프(Slow food slow life), 패스트 푸드 패스트 라이프(Fast food fast life)’라는 문구가 있다.
그는 “콩으로 만든 청국장이나 두부 같은 슬로 푸드를 먹으면 ‘늦게 가고’, 패스트 푸드를 즐기면 그만큼 ‘빨리 간다’는 얘기”라며 웃었다.
김정화(60·경기 파주시) 씨도 청국장과 뗄 수 없는 사연을 갖고 있다. 김 씨는 1999년 대장암 3기 판정을 받았다. 항암 치료의 고통 속에서 그가 떠올린 것이 청국장이었다. 전북 김제가 고향인 그는 아픈 몸으로 손수 청국장을 만들어 먹었다. 지난해 말 치료를 더 받지 않아도 된다는 병원의 통보를 받았다.
김 씨는 청국장을 가까운 친구들에게 나눠 주다가 2004년에 ‘가마솥 청국장’을 설립해 팔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시루에서 청국장을 만들었으나, 판매량이 늘어나 요즘에는 서너 평짜리 황토방 2개를 지어 그곳에서 만들고 있다.
그는 “누가 뭐래도 ‘어머니의 손맛’, 청국장이 나를 살린 것 같다”며 전통적인 방식의 청국장 만들기를 직접 보여 줬다.
묘하게도 청국장은 국산 콩과 농약을 치지 않은 볏짚을 써야 제맛이 난다고 한다. 일단 국산 콩을 한나절 물에 불린 뒤 5시간 동안 삶는다. 삶은 콩을 시루에 담은 뒤 깨끗이 씻은 볏짚을 10cm 간격으로 꽂았다. 이래야 콩이 숨쉬면서 제대로 발효한다고 했다. 다시 흰 광목으로 시루를 덮은 뒤 이불을 덮는다. 하루가 지나면 벌써 끈끈하게 보이는 흰 실(뮤신)이 나오고, 3, 4일이 지나면 실이 무성해지고, 다시 2, 3일 뒤에는 실이 콩 속으로 스며든다.
이 과정에서 청국장의 맛을 좌우하는 것은 ‘온도’이다.
“방이 뜨겁지 않고 ‘엉덩이’가 알맞게 데워지는 따뜻한 상태가 가장 좋아요. 너무 뜨거우면 청국장에서 독한 기운이 나요.”
몇 차례 물어봤지만 그는 “정확한 온도는 비밀”이라며 입을 닫았다.
글=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사진=변영욱 기자 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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