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시국(市國)관광을 마친 우리는 점심을 먹기위해 이탈리아로 다시 돌아 왔다.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중국식당이다.
점심을 먹은 우리는 새로 합류한 인상 좋은 아저씨같은 이탈리아 현지인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아이스크림을 먹던 그 유명한 스페인광장으로 가기위해 지하철을 타야 했다. 지하철을 타고 내리는 동안에도
가장 신경쓰이는 것은 역시 소매치기다. 이탈리아인 가이드는 우리를 보호하고 낙오되는 일행이 없도록 하기위해 무척 애 쓰는 것
같다. 스페인 광장에는 완만한 언덕을 잘 이용한 136계단이 있다. 그 언덕 위에는 삼위일체 성당이라고 부르는
트리니타 디몬티(Trinita dei Monti)교회가 있는데 오늘은 수리중이다. 계단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 앉아있다. 오드리
헵번이 앉아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던 자리에 아내를 앉게하고 사진을 찍어본다. 계단아래에는 베르니니 작품인 바르카치아분수(조각배 분수)가
있다. 스페인 광장이라는 이름은 스페인의 교황청 대사관이 이 부근에 있었던 것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스페인 계단은 18세기초 당시 프랑스 대사의 원조로 만들어졌다. 당시 이 부근은 로마 교통의 거점으로서, 외국인들을 위한
호텔과 점포가 줄을 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광장 주변에는 영국풍의 찻집들이 남아 있는데 왕년에는 스탕달, 발자크, 바그너, 리스트,
브라우닝 등의 예술가들이 즐겨 찾았다고 한다. 스페인계단 전면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품거리인 콘도티거리가
뻗어있다. 우리는 아이쇼핑이라도 하기위해 거닐어 보는데 중간에 사람이 온통 하얀 모습으로 분장하여 대리석 조각품처럼
서있다. 스페인 광장을 뒤로하고 인도와 차도의 구분이 없는 좁은 도로를 통해 로마의 또하나의 명물인
트레비 분수에 이르렀다. 여기도 역시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 있다. 소지품을 주의하라고 하기에 우리는 배낭을 앞으로 매고
다녔다. 트레비 분수는 퀴리날레 언덕에 있는 샘으로 콜로세움,스페인계단과 함께 로마의 3대 명소이며
트레비란 3갈래 길이 모이는 곳이라는 뜻이다. 교황 클레멘스 12세의 분수 설계 공모전에서 당선된 니콜라 살비(Nicola
Salvi)의 작품으로 1732년에 착공, 1762년에 완공되었다. 분수는 폴리 궁전의 벽면을 이용한 조각으로 이루어져있다.
로마시대에서 볼 수 있는 바로크 양식의 마지막 걸작품이라고 할 수 있으며 수많은 로마의 분수중 가장 아름답다. 또 바다의
신 넵투누스가 반인반수(半人半獸)의 해신(海神) 트리톤이 이끄는 전차 위에 서 있는 모습이 역동적으로 조각되어 있는데 이 조각은 브란치의
작품이다. 이 분수의 물은 "처녀의 샘"이라고 불리우는데, 이는 전쟁에서 돌아온 목마른 병사에게 한 처녀가 샘이
있는 곳을 알려주었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는 샘에서 물을 끌어 왔기 때문이다. 또한 이 분수에 등뒤로 동전을 던져 한번 던지면 로마를 다시
찾을 수 있고, 두 번 던지면 사랑이 이루어지고, 세 번 던지면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한다는 전설이 있어 많은 방문객들이 동전을
던지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이곳의 동전은 정기적으로 수거하여 자선사업에 쓰인다. 우리 일행도 각자 동전을 하나
씩 뒤로 던지며 다시오게 되길 기원했다. 그런데 트래비 분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데 로마병사 차림의 이탈리아 사람이 동료를 나무
칼로 겨누고 그 장면을 사진을 찍으라고 한다. 또 우리 일행들도 함께 포즈 잡도록 하면서 친절하게 사진도 찍어준다. 나는 이들이
관광을 위한 도우민 줄 알고 관광 이벤트가 잘되어있다고 순진하게 고맙다고 그라찌에 하였더니 나무칼에 10유로라는 가격표시를 보여주면서
도리어 땡큐 땡큐한다. 돈 달라는 것인데 이놈들 완전히 칼든 도둑놈 들이다. 여행오기전에 내가 미리 이런 정보를 알지 못했던 게
실수다. 일행과 나는 찝집한 기분을 달래기 위해 그 자리를 벗어나 젤라또를 사 먹으로 갔다. 마침 화장실을 가고
싶기도 해서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러 지하에 있는 화장실을 먼저 이용한후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 먹는다. 한개에 1.2유로 인데 정말이지
그 맛이 너무 좋다. 주변을 살펴보니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사 먹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맛에 감탄 들을 한다. 나는 지금도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꼭 다시 먹고 싶다. 다시한번 인원점검을 끝낸 우리는 다시 도보로 콜로세움을 보기위해
이동한다. 이쯤되니 다리가 좀 아파오고 발바닥이 후끈거리기 시작한다. 우리는 고대로마의 정치·경제의 중심지이며
공회장이었던 포로 로마노 유적이 보이는 지역에 도달 했다. 2000년 정도의 역사를 가진 세계적 유물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먼저 고대로마의 시장을 구경하고 콜로세움을 향하여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콜로세움을 가는 길에는 기념품을 파는
노점상들이 있는데 한국말로 <안 비싸요 >한다. 우리가 한국인들임을 알고 호객하는 것이다.
콜로세움!세계 7대 불가사의중 하나다. 콜로세움은 원래는 플라비아누스 원형경기장이라고 불렸다. 네로황제의 황금궁전
자리에 서기70~72년 베스파시아누스(플라비아누스)황제 때 예루살렘을 정벌하여 데리고 온 4만명의 노예들을 일시적으로 동원하여 공사를
시작해 서기 80년 그 의 아들인 티투스 황제 때 100일간의 경기가 포함된 제전을 위해 공식적으로 헌정되었다. 서기82년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최상층을 덧붙여 공사를 완성했다. 실로 10년만의 단기간에 완성시킨 초고속 공사였다. 돌과 콘크리트로 세운
완전한 독립구조물로서 가로, 세로가 각각 190m, 155m에 이르며 5만 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었다. 1900여년 전에 이런
규모의 경기장을 만들었다 하니 어찌 불가사의한 일이 아니겠는가? 이 경기장에서 는 수천 회에 걸친 검투사 시합과, 맹수들과 인간의 싸움,
모의 해전 같은 대규모 전투장면이 실연되었다. 로마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자주 보았던 검투사들의 처절하던 싸움과 그 것을
즐기던 당시 로마시민들의 잔인한 함성들이 들이 들려오는 듯 한다.
콜로세움 입구에서 조금 내려가면 길가에 콘스탄티누스대제 개선문이 있다. 서기315년에 세워진 것이다. 콘스탄티누스의 어머니는
그리스도교의 신자였지만, 그는 태양신을 신봉하였다.그런데 황제 계승권 쟁탈을 위하여 막센티우스와 결전을 벌이기 위해 로마로 향하고
있는 도중에 대낮에 갑자기 하늘에 십자가가 나타나 "이것으로 이기리라." 라는 문구가 나타남을 그의 군대와 함께 보았다. 그리고
그 날 밤 꿈에서도 똑같은 광경이 나타나 계시를 받은 후 막센티우스 군대와의 접전에 대승 로마에 입성 하게 되고 다음해인 312년에
밀라노 칙령을 통해 그리스도교를 공인하였다고 전해진다. 원로원과 로마시민들은 밀비오 다리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 개선문
건립하였고. 1689년이 지난 현재까지 거의 완벽한 본래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높이 21미터, 너비 25m의
세개의 아치형 문이 있고, 코린트 양식의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나라의 독립문을 비롯하여, 인도 델리의 인디아 게이트 등은 모두
파리의 개선문을 모방한 것인데, 파리 개선문의 원조가 된 것이 바로 이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개선문이다. 우리는
개선문과 콜로세움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잠시 무거운 다리를 쉬고 있다. 여기저기서 힘들 다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침10시부터 시작한
도보여행이고보니 피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다시 오던길을 다시 돌아 가고 있다. 포로로마노를 보기
위해서다. 가는 도중에 아까 그냥 스쳐 지나갔던 건물벽에 조각으로 그려놓은 로마제국의 지도에 대해 가이드로 부터 설명을 듣는다.
이렇게 아주 작은 고대도시국가 로마에서 부터 지중해를 호수로 삼았던 광대한 로마제국시대 영토의 지도를 벽화로 만든것은 무솔리니가
옛 영광을 재현해 보고 싶어서 였다고 한다.그 의 꿈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천만 다행이다. 지도자의 야망은 국민을 괴롭힌다.
우리는 약간 높은 언덕에 올라 포로 로마노(Foro Romano)를 굽어 보고있다. "Foro"란 말은 고대
로마 사회의 집회용 중앙광장을 뜻하며 고대로마의 정치·경제의 중심지이며 공회장이다. 지금의 포로 로마노는 완전히 폐허가 되어 있던 것을
발굴한 것이다. 현재 원로원, 안토니우스 황제와 파우스티나 황후의 신전, 로물루스 신전, 2개의 개선문이 과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밖의 건물은 기둥이나 초석 등이 남아 있는 정도이지만 이곳에서 열변을 토했던 위대한 정치가요 군인이었던 율리우스
카이사르(시이저)의 음성이 들려오는듯 하다. 그 는 2048년전 원로원에서 "브루투스, 너마저" 하는 유명한 말을 남기며 암살 당한다.
로마투어의 마지막 장소인 베네치아 광장이다. 이 베네치아광장 에는 1870년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한
이탈리아왕국의 초대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이 있다. 또 이곳은 무명전사의 무덤이 있어 우리나라의 현충원 국립묘지같은 역할을
한다고 한다. 흰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건물이며 로마시민은 <세계 최대의 타이프라이터> 또는 <크리스마스케이크>라 부르고
있다 베네치아 광장에 있는 베네치아 궁은 르네상스 초기때 축조된 것으로 광장과 건물의 이름은 주 교황청 베네치아
공화국 사절단이 이 궁을 사용했던 인연에서 비롯된다.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이 건물은 무쏠리니 정권때에는 그의 집무실로
쓰여졌었는데 광장에 면해 있는 중앙의 조그마한 발코니는 무솔리니가 2차 세계대전 참전 선포를 비롯 군중집회의 연설을 한곳으로
유명하다. 우리는 광장을 바라보며 그저 사진만 찍을 뿐 이다. 해도 저물어가고 로마투어도 끝나 가고 있다. 우리는
로마에서의 마지막 저녁식사를 위해 고려정이라는 식당을 가려고 한다. 그 곳을 가기 위해서는 트램(tram)을 타고 가야한다.
트램은 시가전차(市街電車)로 지하철 대신 지상으로 차량을 두대정도 달고 다니는 일종의 경전철이다. 전차 모양이 예쁘고 버스보다
편리 한것 같다. 트램에서 내려 한 참을 걸어 식당에 당도한 우리는 어느때 보다 맛있게 식사를 했다.
모두들 포만감을 안고 이제 호텔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어두운 로마 밤거리를 다시 이동한다. 길을 몇 번
건너고 7,8분 정도를 걸어 가니 거리 한 쪽 구석에 우리들의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피곤해 지친 몸을
더운 물에 담근후 푸근한 침대위에 편히 쉬게 했다. 이렇게 로마에서의 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그러나 로마는 결코 하루 아침에
이루워 지지 않았다는것을 실감한 날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미군에 의해 폭격을 당하였으나, 연합군이 북상할 때는 무방비도시를
선언해서 전쟁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귀중한 문화재가 전화로 파괴되는 것을 모면할 수 있었으며 오늘날 세계제1의 관광도시가 된 것이다.
유물을 파괴하는 전쟁은 후손에 큰 죄를 짓는 것이리라. 영원의 도시 로마여 영원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