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남쪽으로 떠나는 떼제베(TGV)가 떠나는 몽빠르나스. 우리에게는 영화나 소설 속에서 자주 듣던 익숙한 지명이다. 그리고 유명한
문인이나 화가 등이 모여들어 활발한 활동을 펼쳤던 시기가 있어 파리가 잠시나마 세계문화의 중심지로 자존심을 내세울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된
곳이기도 하다.
물론 지금은 그런 유명한 예술가들의 활동무대는 사라지고 파리 사람들이 영화를 보거나 유명한 카페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 모여드는 곳으로 내려앉았다. 하지만 몽빠르나스 거리의 여기저기에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유명한 예술가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많은 장소가 널려 있어 파리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몽빠르나스'라는 이름은 그리스에 있는 섬 이름에서 왔다. 이 섬은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아폴로에게 바쳐진 섬으로 신화 속에 등장하는 이름
때문인지는 몰라도 한 때 예술의 향기가 꽃피는 문화의 거리로 자리잡기도 했던 것 같다.
몽빠르나스가 유명해 진 것은 2차 세계대전 때였다. 당시 프랑스는 독일에게 함락되었다가 연합군의 공격으로 파리를 되찾게 되는데 이 때
프랑스군 르끌레 원수가 진주하면서 몽빠르나스에 있는 한 여관 건물에 주둔군 사령부를 설치하게 되었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우리 상식으로는 그
사건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었는지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면도 있지만 미군의 진주와 나중에 70년대에 들어서면서 몽빠르나스에 밀어닥치게 되는 미국
문화의 물결과 연관시켜 보면 약간의 이해는 가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몽빠르나스가 파리 사람들에게 유명해진 사건은 1852년에 발생했었다. 몽빠르나스는 파리의
남쪽과 남서쪽에서 들어오는 기차의 종착역으로 더 이상 기차가 달릴 수 없는 종착점이 있는 곳이다. 그런데 그 당시 남쪽에서 달려오던 기차가
정차하지 못하고 종단점에 춘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이 사건을 파리 사람들은 지금까지 기억하면서 파리 여행 가이드나 파리 역사를 다루는 책에서
거르지 않고 다루고 있다.
피카소 같은 많은 아방가르드 예술가, 시인, 소설가들이 파리의 몽마르뜨나 몽빠르나스 등지에서 활약하기 시작한 것은 1912년부터. 이후
파리는 30년 가까이 이들의 활동 때문에 세계 문화의 중심지로 자리잡게 된다. 조각가 부르델이나 자디킨 등의 아뜰리에가 자리잡았던 곳으로 로뎅
등도 이 곳에서 습작의 세월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런 지역들은 1970년 개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예전의 빛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몽빠르나스에는 70년대에 들어오면서 파리 시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몽빠르나스 타워가 들어서고 주변에 고층 건물이 들어서면서
스카이라인을 바꾸기 시작했다. 지금 몽빠르나스 타워에 가면 파리의 시가지를 온통 둘러볼 수 있는 파노라마 사진 같은 장관을 구경할 수 있다.
56층에 있는 파노라마 스카이라운지 때문에 파리 사람들이나 파리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몽빠르나스 타워는 59층의 높은
건물로 고층 건물을 제도적으로 짓지 못하는 파리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고층 건물이다. 1973년 완공된 이 건물은 세워질 당시만 해도 유럽에서는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2차대전 이후 승전국이었던 미국의 문화에 유난히 후한 점수를 줬던 프랑스 사람들이 미국의 마천루(摩天樓)를 파리에 세워볼
요량으로 세우기 시작한 것이 몽빠르나스 타워였다. 그러나 이런 높고 삐죽한 건물이 파리의 경관과는 어울리지 않자 이런 큰 건물은 그 이후
건설되지 않았다. 사실 파리에 처음 방문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몽빠르나스 타워가 고풍스러운 파리의 분위기와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을 정도로 주변 경관과 어울리지 않는다.
당시 파리에서는 미국 샐러리맨들의 도회적인 생활 패턴을 모방하는 것이 유행이었는데
이런 유행도 몽빠르나스 타워를 세우는데 한 몫 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지금 몽빠르나스 타워는 59개 층 가운데 52개
층이 사무실로 사용되는 오피스 빌딩이다.
파리 시내에서 가장 많은 영화관이 모여 있는 몽빠르나스 타워 근처는 파리 사람들이 문화의 향기를 그리워하며 모여드는 곳이다. 몇 개의
지하철과 시내버스 노선이 교차하고 파리 남쪽 근교에서 들어오는 철도와 연결되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저녁시간이나 주말에는 많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보고 즐기는 즐거움이 가득한 곳으로 변한다.
이렇듯 도시적인 분위기가 가득 넘쳐나는 몽빠르나스 이지만 문화적인 향기가 남아 있는 박물관과 묘지, 떼아뜨르, 유서깊은 카페 등이 주변에
아직 많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몽빠르나스 타워의 서쪽에는 우표수집가들에게는 환영 받을만한 우표박물관과 로뎅이
습작시절을 보내고 그의 젊은 시절 작품도 볼 수 있는 부르델 박물관 등 두 개의 박물관이 있다. 몽빠르나스 역 남쪽 바로 인접해 있는 곳에는
세계 제2차 대전 때 레지스탕스 활동으로 영웅이 된 필드 마샬 르클레(Field Marshal Leclerc)와 쟝 모우린(Jean
Moulin)을 기념하는 두 개의 박물관도 있다.
몽빠르나스 타워에서 시내쪽(북서쪽)을 바라보았을 때 오른편(남동쪽)으로 유명한 카페가 들이 모여 있는 브래스리(Brasserie) 거리가
있다. 이 구역이 바로 바벵교차로(carrefour Vavin) 부근이다. 이곳은 1차대전과 2차 대전 사이에 많은 문인과 예술가들이 몽빠르나스
거리에 모여들면서 유명해진 카페들이 남아 있는 곳으로 지금도 파리 사람들과 파리를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안내책자를 보고 들르는 곳이다.
이 거리에 있는 카페들은 예전에는 카페+레스토랑+시낭송 등이 열리는 복합적인 공간으로 문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곳이었다. 그러나
몽빠르나스가 예전의 분위기를 잃어버리면서 많이 문을 닫았고 지금은 몇몇 카페들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데 돔, 호똥드, 꾸뽈, 셀렉트 등이 바로
그런 유명한 카페이다.
몽빠르나스 대로 아래 있는 에드가 뀌네(Edgar Quinet) 광장과 게떼
거리에는 카페들이 줄지어 있고 댄스 홀 등 엔터테인먼트를 위한 다양한 점포들이 늘어서 있다. 특히 게떼 거리에는 지금은 몇 안되지만 게떼
몽빠르나스, 데아뜨르 몽빠르나스 등, 이탈리안 코메디 등을 공연하는 떼아뜨르(극장)들이 남아 있다. 뮤지컬로 유명한 보비노나 1868년부터
지금까지 문을 열고 있는 연극 공간인 게떼 몽빠르나스 등도 유명한 떼아뜨르다.
그러나 이런 떼아뜨르는 이미 뒷골목에서 명맥만을 유지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고 큰 길가에 자리잡은 큰 영화관의 그늘에 가려 초라한 모습이다.
현재 몽빠르나스는 파리에서 영화관이 많이 모여 있는 영화의 거리로 자리잡고 있는데 이런 현상은 아마 떼아뜨르가 모여 있었던 곳이었기 때문이라는
추측도 어느 정도는 가능하다. 다만 떼아뜨르(Theatre)가 씨어러(theater)로 바뀐 것은 아닐까? 프랑스영화 보다는 헐리우드 영화가
판을 치는 프랑스 영화 시장의 현주소를 몽빠르나스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현재 몽빠르나스 거리에는 엠뀌아드(MK2) 라는 대형화된 체인
영화관 등 크고 작은 영화관이 성업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