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루브르에서 개선문, 에펠탑까지 (1) [2004.7.16 (금)] |
루부르 박물관 -> 오르세 미술관 -> 콩코드 광장 -> 샹젤리제 거리 -> 개선문 -> 숙소 -> 노트르담 대성당 -> 에펠탑 |
루브르 박물관으로 출발 아침에 일찍 출발하려 했는데 항상 그렇지 않은가 계획과 실행이 항상 같지 않다는 것이....... 조금은 두려운 마음과 함께 설레는 가슴을 안고 자신 있게 민박집을 나섰다. Lilas 11번 메트로 종점, 우리는 먼저 르부르 박물관을 보기위해 출발했다. 기차표는 까르네로 어른 열장과 어린이(막내것) 10장을 샀다. 그런데 표받고 돈주고 잔돈받고 열차노선도(지하철역에서 달라고 하면 된다.) 받고 우왕좌왕 하다 보니 어느 것이 어린이 표고 어느 것이 어른 표인지도 헷갈린다. 여행의 시작은 항시 당황하지만, 이런 것까지 헷갈릴 줄이야....... 지하철의 역사가 오래된 것은 알지만 완전히 시골길 신작로를 달리는 트럭 같았다. 우리나라의 지하철은 여기에 비하면 하늘이었다. 갑자기 우리나라도 오래 되면 지하철이 이렇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아닐거라고 자신 있게 얘기하고 싶다. 우리나라는 눈에 보이는 것은 예쁘게 잘 만드니까.......ㅎㅎ 프랑스의 지하철은 정말 잘 되어 있는 것 같다. 시설이 아니라 이용의 편리성이....... 또한, 도시가 크지않아 변두리에서 시내 중심까지 15분이면 들어 올수 있다. 따라서 숙소를 정할때 굳이 프랑스 시내 중심부에 정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다른 책자에도 정보가 있지만, 프랑스의 지하철은 문은 수동(자동도 있다)이라 내리고자 하는 사람이나 타고자 하는 사람이 문을 열어야 한다. 버튼형태도 있고 고리형태도 있는데, 당연히 내리거나 타는 사람이 없으면 문이 열리지 않는다. 이럴 때는 당황할 필요 없이 버튼을 누르거나 고리를 풀면 열리게 되는데, 초행길에는 이것도 왠지 부담스러울수 있다. 이럴경우 타는 사람이나 내리는 사람 뒤에 서 있다가 눈치껏 따라하자. 그리고 우연히 보게된 것이지만 지하철 바퀴가 쇠가 아니라 자동차 타이어로 되어 있는 것이 재미 있었다. |
[자동차 타이어인 고무바퀴 지하철] |
[루브르의
작품] |
지하철은 10여분 만에 시내까지 들어왔다. 1번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hotel de vilige 역에서 환승을 시도했다. 분명히 환승 이정표를 열심히 따라갔는데, 다시 개찰구가 나온다. 내부에서 환승한 것이 아니라 그냥 바깥으로 빠져나온 것 같았다. 다시 표를 개찰하고 들어갔다. (이건 내가 생각해도 양심적인 것 같다. 돈 안내고 타는 사람도 많은데....... 혹시 바보는 아닌가) 잠시 후 루브르에 내렸다. 민박집 아주머니가 열심히 설명해준 것은 마음의 위안뿐이었다. 항상 그러지 않았던가. 설명은 참조라고....... 지하철에서 한국 대학생을 만나 길을 물었더니 마찬가지다. 그래도 감각적으로 루브르 피라밋 밑에 도착했다. 여행 자료에는 입장권을 사기 위해 시간씩 기다려야 한다고 했는데 다행이 길지 않았다. 티켓은 3일 뮤지엄 패스를 2장 구매했다. 아이들은 18세 미만이라 입장권이 필요없다. (3일정도면 뮤지엄 패스 절대 권장, 경제적으로 시간적으로) 하나에 36유로. 두장 사서 집어넣고 우리는 박물관으로 당당하게 출발했다. 드농관부터 보기로 하고.....여기서 얘기하고 싶은 것은 정말 루브르 박물관 구조에 대해 공부 많이 하고 가면 모를까 웬만큼 봐서는 필요 없는 것 같다. 솔직히 말해 헤매지 않으면 기억나는 것이 없는 것이 사실 아닌가. (어쩌면 나에게만 해당되는지도 모르지만, 여행지에 대한 지리감은 그 여행지를 떠날 때가 되어야 들어온다.) |
루브르 박물관에서 열심히 찾아다니는데 사진에서 본 것들이 참 많다. 막내도 로마신화 만화에서 본 것이 많다고 흥분한다. 그렇게 쫓아다니길 한 시간여 막내가 목이 마르다고 한다. 맞아! 그러고 보니 우린 물도 준비하지 않고 그냥 박물관을 향하여 맹목적인 돌격만 했다. 참으로 미안했다. 달래고 또 달래고 ....... |
[아름다운 독일 여인] |
[정말 오랫만에 만난 두
사람] |
[아름다운 독일 여인]이라는 제목으로 널리 알려진 이 조상은
고행하는 자를 뜻하는 "참회하는 막달라"를 묘사한 작품이다. 이 작품이 머리 부분만 덮인 모습으로 표현된 이유는 천사들이 하늘로 올라가는 성모
승천 장면을 상상해서 에르하르트가 설정했기 때문이다. 르네상스적이기 보다 마니에리즘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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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사먹으러 간다는 것이 시간이 아까워 나갈 수가 없다. 솔직히
길 찾는 것도 고민스러웠지만 ........ |
[오달리스크의 나른한 포즈]] |
[루브르의 조각상 |
[오달리스크의 나른한 포즈]는 르네상스적이기 보다 마니에리즘에
가깝다. 비평가들은 지나치게 머리가 작고 비정상적으로 등이 길어 비판했지만 앵그르는 그녀의 관능적인 우아함을 강조하기 위해 그녀를 늘린
것. |
하여간 우리는 작품을 보고, 사진을 찍고.......
아마 누군가 이글을 보면 이렇게 얘기할 것이다. 한국 사람들 사진
찍기 위해 여행 한다고....... |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
[우리아이나 프랑스 아이나 힘들기는 마찬가지] |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 프랑스 공화국의 표상이
되어버린 작품으로 샤를 10세의 절대주의 체제에 대한 파리 민중의 항거와 루이 필리프를 중심으로 하는 프랑스 국민 전체의 대화합에 대한
표현 |
다만, 여행을 하고 나면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여행지와 본 사물에 대한 관심도가 훨씬 커진다. 그래서 여행에서 느낄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여행 중에 느끼지 못하는 것은 나중에 지식을 습득하는 방법을 많이 취한다. 지난번 “여행기를 올리기 전에”란 글에도 언급했지만, 여행은 아는 것 만큼 보이고 아는 것 만큼 감동이 덜하다는 얘기를 한바 있다. 물론 그렇지 않을 경우도 있을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데 그것이 감동이 올까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여행의 큰 틀을 보면 그렇다는 얘기다. |
[베로네세의 가나안 혼인잔치] |
[메두사 호의 뗏목] |
[가나안 혼인잔치]를 그린 베로네세는 르네상스 후기 건축의 대가 팔라디오가 산 조르조 마지오레 교회 부속 수도원 건축을 의뢰 받았을 때, 수도원 식당을 위한 그림으로 '가나의 혼인잔치'를 주문받았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이 밀라노의 한 수도원 식당의 벽면을 장식했던 것처럼, 대개 수도원 식당에는 '가나의 혼인 잔치'나 '최후의 만찬' 같은 그리스도와의 성찬 장면이 그려졌다. |
보충 설명을 좀 한다면 우리 가족은 작은 아이 6살경 미국 서부 렌터카 여행을 다녀왔다. 처음에는 데려가서 서로 고생할 필요 있냐고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럴수는 없지 않는가 (이글을 읽는 대다수 분들도 그렇게 느끼겠지만 가족중 누구하나를 빼고 여행을 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하여간, 그 당시에도 과연 이 아이 머릿속에 무엇이 남을까 고민이 되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이 비디오와 사진촬영을 해 잊어버릴만하면 사진 보여주고, 정기적으로 여행을 서로 얘기하고 그랬더니 지금도 거의 잊어버린 것 없이 기억하고 있다. |
[절름발이 소년] |
[루브르의 회화작품들] |
[절름발이 소년]은 쓸모없어진 낡은 무기를 든 것 같은
지팡이를 집고 있으며 "당신이 신의 축복을 받으려거든 나에게 동냥을 해주세요"라는 문구가 들어간 팻말을 들고
있다. |
아마 여행객 중에 "우리만큼 장비 많이 가져 다니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라고 할 만큼 비디오카메라, 노트북, 디지털카메라는 꼭 챙긴다. “나도 다 가져가는데”라고 하시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지만 내 장비는 크기가 좀 큰 편이다. ㅎㅎ 그런데, 이렇게 장비를 잘 챙기는 내가 어이없게도 배터리 충전을
하지 않았다. 정말 돌진만 했지. 첫 날부터 이게 무슨 꼴이람....... |
[사비니 여인들의 중재] |
[루부르에서 건너편 루브르를 보며] |
[사비니 여인들의 중재]는 로마를 건국한 로물루스가 인구
증가를 위해 로마인을 이끌고 이웃나라를 침략해 사비니 여인들을 유괴하고 강탈한 사건이 있었다. 그림의 장면은 여인들이 강탈 되어간 3년 후,
사비니 남자들이 타티우스의 주도하에 반격에 나서 대치하는 순간이다. 당시에는 두 리더가 결투를 벌이는 것이 관례로 화면 중앙에 로물루스와
타티우스가 대결을 벌이고 있다. |
첫날부터 너무 버벅되는 것 같다. 박물관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왔던데 또 오고, 갔던데 또 가고. 조금 전에 마주쳤던 한국 학생들 만나고 또 만나고, 민박집에서 보았던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어디 갔었냐고 물으니 자기네들도 모른단다. 무작정 보고 또 봤다. 나중에는 목말라 죽겠다는 막내에게 약을 쳤다. 이건 교육적으로 비도덕적이긴 하지만 잘 참으면 5유로 준다고, 그런데 효과는 정말 좋다. 하지만, 이게 할 짓인가. 나도 목말라 죽겠는데....... |
[그리스 니케의 승리의 여신]] |
[나폴레옹의 대관식] |
[그리스 니케의 승리의 여신]은 1863년 프랑스 영사
샹푸아소가 사모트라케 섬에서 캐닌 니케는 100토막이 넘게 산산조각 난 돌무더기에 불과했으나 루부르 복원실에서 복원되었으며 뱃머리에 올라 서
있는 자세로 있었던 조각상이다. [나폴레옹은 대관식]은 나폴에옹이 대관식에 앞서 다비드에게 그날의 장면을 네 개의 캔버스에 커다랗게 그리라고
했지만, 다비드가 나폴레옹이 돈을 지불할 평편이 못되는 것을 알고 두점만
그렸다. |
5유로의 효과로 막내는 목말라 죽겠다더니 2시간 이상을 죽지 않고 잘 버티었다. 그래도 그게 어딘가.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나도 견딜 수 없다. 체력이 바닥나는 것 같아 함무라비 법전만 보고 가자고 아내에게 얘기하니 그러자고 했다. 그런데 이건 또 어디에 있는 거야. 하여간 미로 찾기 게임 같았다. 내려가 보고, 올라가 보고, 나중에 물어보니 문을 닫았다고 한다. (진작 물어볼 걸) 나오려고 하는데, 갑자가 생각이 난다. 밀로의 비너스 상을 못 본 것이.......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을 안보고 간다는 것은 용납이 안된다. 힘들어 하는 아이들에게 얘기하니 그래도 흔쾌히 보고가자고 한다. 고마웠다. 위치를 물어보니 반대쪽에 있다. 어쩔수 없이 무거운 몸을 이끌고 움직이는데 아침에 본 대학생들이 보여 물어봤다. 보긴 봤는데 어디인지는 모른다고 한다. 그냥 헤매다 보니 앞에 있었다나. 그래 그렇겠지. 난 그 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 하면서 전진 또 전진 한다. 그래도 아이들이 잘 따라 온다. 그중에도 막내는 무척이나 힘들텐데....... |
[다빈치 코드로 더욱 유명해진 암굴의
성모] |
[루부르의 외벽의 조각상] |
[암굴의 성모]는 레오나르도가 밀라노에서 처음 그린 작품이다.
1483년 작성된 계약서에는 성모자와 천사, 예언자 둘을 그려 넣기로 되어 있었으나 예언자를 빼고 대신 아기 요한이 들어갔다. 마리아는 손을
내밀어 아기 요한의 어깨를 감싸고 있으며 요한을 발견한 아기 예수는 오른손을 들어 보인다. 검지와 중지 두 손가락을 들고 다른 손가락을 접어서
들어 올리는 자세는 축복을 의미한다. |
정말. 이 순간만큼은 우리 아이들이 자랑스럽다. 비록 5유로를 주었을지라도 정말 대단했다. 어차피 그 돈이나 내 돈이나 똑같은 우리가족 돈이니 이론상 성공한 장사였다. 하지만 교육상으로는 잘못되었다는 것은 이후 계속 안타까움으로 남았다. 우린 30여분을 다른 작품 구경하며 찾아 헤맨 이후에야, 박물관의 지리감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안내도에 나와 있는 방 번호와 작품들을 확인하며 가는데 100미터 전방에 자랑스럽게 서있는 비너스가 보인다. 그동안 안내도를 봐도 이해가 잘 되지 않았는데, 다 끝나가는 이제서야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역시 인간은 경험이 중요하다니까....... 비너스 옆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관람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팬은 모나리자와 비교되지는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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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이 필요없는 아니 너무나 필요한 모나리자와
비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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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가운데 여유를 찾아 비너스를 둘러보며, 난 오늘 행복감에 빠졌다. 아름다움을 얘기할 때 결코 빠질 수 없는 두 여자. 모나리자와 비너스. 이 두 여자를 만났으니, 그것도 하루에 둘 다, 더구나 이 머난먼 이국땅에서....... 모나리자를 보기 위해 사람들 사이에 머리 들이밀고 비벼대 가며 보았고, 비너스를 보기위해서는 나가던 발길을 돌려 30여분의 시간을 할애한 후에서야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더 좋은 것일까. 오늘 이 둘 외에도 정말 많은 작품들을 만났으니 누군가가 "어떠했냐고 ?" 묻는다면 “좋았다.”라는 말 외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을 것 같다. 세상의 아름다운 미사여구를 붙인다면 더 좋은 표현이 되겠지만, "그냥 좋았다는데....." 작품처럼 간결하지 않는가. 비너스 관람을 마지막으로 루브르를 나와 피라미드 앞에서 기념사진 한 장 찍고, 우리가족은 루브르에게 기약 없는 이별을 고했다. |
[루브르 박물관 전경] |
[카르젤
개선문] |
[카르젤 개선문]은1805년 나폴레옹 1세의 전승을 기념하기
위해 지어졌으며, 붉은 색이 감도는 대리석의 원기둥으로 3개의 아치를 만들었고, 각각의 표면에는 승리를 기념하는 부조가 새겨져있다. 정상에는
나폴레옹이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사원에서 가지고 온 4마리의 황금 마상이 놓여 있었지만, 1815년에 베네치아로 반환되었으며, 이 개선문의
크기가 너무 작다고 나폴레옹이 불평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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