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그들은 왜 ‘살인 유희’에 빠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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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연쇄살인범이 되는 것인가. 무엇이 그들을 잔혹한 연쇄살인범으로 만드는 것인가. 타고 난 운명의 존재인가. 아니면 자기 선택에 의한 범행인가. 그들을 한눈에 알아봐 피해를 방지할 방법은 없는 것인가.
20세기 초 범죄학에서 범죄와 관상 또는 골상을 연관하려는 시도가 일었다. 당시 이탈리아의 외과의사 롬브로조(Lombroso)는 수많은 범죄자를 관찰한 후 ‘생래적 범죄자’ 이론을 창출했다. 그에 따르면 범죄자는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팔다리가 지나치게 길고 가슴이 발달하고 털이 많은 특징이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김대두, 정두영, 유영철 등 한국의 연쇄살인범은 물론 제프리 대머, 테드 번디 등 외국의 연쇄살인범도 이에 부합되지 않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그래서 현대 범죄학자들의 결론은 “외모와 범죄는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표창원 경찰대 교수(범죄학·범죄심리학·피해자학)는 “얼굴이나 체격 등 신체적 특징으로는 연쇄살인범을 절대로 구분할 수 없다”며 “그보다는 오히려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성격적 특성과 자라온 환경, 성적 취향, 범죄 경력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연쇄살인의 가능성을 타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성호르몬 분비량 등 차이’ 학계 보고
표 교수는 특히 “같은 조건에서도 살인을 저지르지 않는 사람이 많으므로 단정적으로 특정요인에 의해서만 연쇄살인범을 규정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중요 고비 때 개인이 어떤 선택을 하는가”라고 말했다.
범죄자의 가계에 대한 연구도 진행됐으나 범죄성이 유전된다는 증거도 뚜렷하게 그렇다는 결론을 얻지 못했다.
주목할 점은 연쇄살인범 등 특히 폭력적인 범죄자는 뇌구조와 기능, 특정 신경전달물질 생성체계, 또는 성호르몬 분비량 등이 다르다는 보고가 최근 학계에 자주 보고되고 있는 점이다. 2004년 캘리포니아대의 아드리안 레인과 베데스다의 메서디스트병원(NYMH)의 제임스 블레어는 충동적인 살인자의 뇌와 사전에 치밀히 계획된 살인을 범하는 연쇄살인범의 뇌적 이상이 다르다는 것을 밝혀냈다. MRI를 통해 충동적 살인자의 뇌는 전두엽피질의 활동이 저하된 반면 연쇄살인범의 경우엔 전두엽은 지극히 정상적으로 작동했으나 편도체의 활동이 저하됐다. 대뇌 피질 측두엽의 왼쪽에 위치한 편도체는 두려움을 발생시키는 곳이며 다른 사람의 두려움을 감지하고 처벌에 따라 태도를 바꾸게 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편도체가 비정상적인 연쇄살인범은 두려움도 타인과의 공감도 없다. 피해자가 자신의 엽기적 행각으로 얼마나 큰 고통을 느끼는지 정작 본인은 전혀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반면 전두엽의 활동이 저하된 사람은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고 비정상적으로 화를 내며 공격적이다.
표창원 교수는 “뇌기능의 문제는 임신 중 엄마의 상태와 관련이 있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많다”며 “뇌에 산소가 충분히 공급돼야 뇌의 각 기능이 정상적으로 형성되는데 산모의 흡연이나 각종 스트레스로 아기에게 산소가 원활히 공급되지 않으면 아기의 뇌기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연쇄살인범은 하루아침에 살인범은 되는 게 아니라 어린시절부터 독특한 특성을 갖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어린시절 고통스러운 경험을 한 적이 있으며 장기간의 사회적 박탈 및 심리적인 학대 상태에 놓여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 연쇄살인범 가족 중 정신질환이나 알코올중독, 폭력 등을 휘두르는 사람이 있으며 심각한 정서적 학대를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국내 연쇄살인범들의 어린시절은 정서적으로 불우한 환경에서 성장한 경우가 많았다. 1975년 17명을 살해하고 3명에게 중상을 입혔으며 한 명은 미수에 그친 김대두(25)는 영양실조와 애정결핍, 불안, 스트레스 등으로 몸이 허약하고 다소 발달 장애를 겪었다. 심영구, 조경수와 김태화, 지춘길, 황영동, 지존파, 온보현, 정두영, 김경훈, 유영철, 정남규 등 연쇄살인범 대다수가 궁핍하고 폭력적인 환경에서 성장하거나 어머니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2000년 10월부터 12월까지 3명을 살해한 김해선(32)은 어린시절 아버지에게 허리띠 등으로 무수히 폭행을 당하고 알몸으로 쫓겨나기 일쑤였고 1999년부터 2000년까지 9명을 살해하고 8명에 중상을 입힌 정두영(31)은 어린시절 두 번이나 엄마에게 버림받아 고아원에 맡겨졌다. 정남규는 초등학교 고학년 때 성인 남자로부터 변태적인 성폭행을 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유영철·정남규 등 폭력적 환경에서 성장
이수정 경기대 교수는 “정남규는 이후 여자화장실을 숨어들어가는 등 관음증이 생겼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남의 집에 들어가 있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며 “그 시기 누군가 그를 돌봐주었다면 연쇄살인범까지 되지는 않았을 텐데 고등학생 때와 군대, 그리고 교도소에서도 성폭행 또는 성추행을 계속 당하면서 스스로 비정상적 정신세계를 갖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실제 정남규는 올 7월 7일 열린 첫 공판에서 “살아오면서 즐거웠거나 행복했던 적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표창원 교수는 “자아 정체감과 성격이 형성되는 열두 살 이전의 학대 등 충격적 경험은 연쇄살인범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요인”이라며 “하지만 수많은 아동학대 피해자가 역경을 딛고 모범적인 성인으로 성장하는 현실을 보면 다른 추가적 요인이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연쇄살인범 중에는 어린시절 이미 잔혹성을 보인 경우도 적잖다. 김해선은 중학교 때 동네 길가에 매어둔 소를 낫으로 찍어 죽이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짓는 등 남달리 가학적이고 폭력적이었다. 유영철 역시 어린시절부터 쥐나 강아지 등 작은 동물에게 가학행위를 자주 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어린시절 학대 등 충격적 경험이 제대로 치유되지 않은 채 청소년기나 성인이 되어 실직 등 경제적 어려움, 이혼이나 구애의 실패, 범죄행위로 인한 수감생활 등 사회적 제재 등 외부적 스트레스가 더해지면 다양한 형태의 일탈행위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그중 극히 일부는 연쇄살인범이 된다.
국내 연쇄살인범 대부분은 젊은 시절 대부분을 교도소에서 보낸 전과자다. 대다수가 출소한 지 6개월 이내에 연쇄살인 범행한다. 표창원 교수는 “가령 이웃집에서 아이가 학대를 당했을 때 돌봐주거나 경찰에 신고를 해주는 것만으로도 아이에게는 도움이 되고 어떤 아이든 학교에서도 집단 따돌림 당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는 “일반적으로 초범은 초등학교 고학년 때 벌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이 경범 수준의 잘못을 저질렀을 때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관심과 배려를 하는 게 중요하다”며 “하지만 우리 사회는 문제를 일으킨 아이나 어른에 대한 시선이 차가워 그들이 양지로 다시 나올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조은경 한림대 교수(범죄심리학)는 “단편적으로 현 시점에서만 보면 그들의 행태가 도저히 이해되지 않겠지만 그들의 일생을 들여다보면 성장배경이나 타고 난 결함 등 살인에 목적의식과 쾌락이 도착하게 된 기제가 반드시 존재한다”며 “그 결과 그들에게는 보통사람이 발달시키는 욕구체계나 도덕성이 결여돼 있음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심각한 심리·성격적 문제를 가진 사람이 거듭되는 좌절과 실패, 거절 등 스트레스 환경에 놓인다고 다 연쇄살인범이 되는 것은 아니다. 연쇄살인을 계획하게 만드는 촉발요인이 존재하게 마련이다. 유영철의 경우는 교도소로 날아든 아내의 이혼통고가, 정두영은 10억 원을 마련해 동거녀와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욕망이, 지존파는 당시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입시부정 등 가진 자의 부정부패가 촉발요인이라고 주장했다.
거짓말 잘 하고 성적 비행행위 ‘공통점’
이웅혁 경찰대 교수(범죄학·경찰행정학)는 “우리 사회는 연쇄살인범이 싹트기에 매우 비옥한 토양”이라고 단언했다. 이혼 급증 등 가정해체 현상이 급속히 이뤄지고 그로 인해 거리에 내몰리는 아이들과 독신자 가구가 증가하고 있으며 정치든 경제든 변칙이 횡행하는 구조, 황금만능주의 사상 등이 연쇄살인범을 키우는 동력이라는 주장이다. 이 교수는 “특히 사회 기본구조는 가정이고 그곳에서 기본적인 규칙학습과 애착관계가 형성돼야 하는데 가정이 무너지면서 자녀들의 인성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며 부모의 역할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미국에서 연쇄살인범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196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 역시 가정해체 현상 등 사회적으로 큰 혼란기였다.
이외에도 상당수 연쇄살인범에게서 나타나는 공통적 특징은 거짓말을 잘 한다는 점, 성(性)적 비행행위가 있다는 점 등이다. 김대두, 황영동, 온보현, 김해선, 김경훈과 허재필, 유영철, 김모씨 등은 여성 피해자를 강간했다.
그렇다면 살인하는 순간 연쇄살인범의 심리상태는 어떨까. 전문가들은 “금품 탈취 등이 목적이 아니라 동기도 없이 묻지마 연쇄살인을 하는 살인마들이 살인을 멈추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살인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는 그 순간만큼은 짜릿한 흥분과 희열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남규는 “다른 것엔 관심이 없고 오직 살인에 대한 욕구를 강하게 느낀다”며 “살해한 뒤 죽은 사람을 보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환희를 느꼈고 타오르는 불을 보면 황홀했다”고 말했다. 정남규는 자신이 살인을 저지른 장소를 다시 찾아가 살인 당시의 희열을 재음미하는 행태를 보였다.
이웅혁 교수는 “가정과 사회에서 외면당한 그들이 살인에 이르는 순간만큼은 몰입에서 오는 쾌감과 성취감, 피해자를 제압하는 데에서 오는 우월감을 느끼게 돼 살인행각을 계속하게 된다”며 “그들에게 어느덧 연쇄살인은 자기 삶의 가장 중요한 중심이 된다”고 말했다. 상당수 연쇄살인범이 성폭력을 동반하는 건 단순히 성적욕구 해소 차원이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표창원 교수는 “일부 남성들에게 성행위는 여성을 정복하고 남성다움을 과시하는 것으로 왜곡돼 있고, 특히 살인 외에는 일생을 통해 별다른 성취감을 느껴보지 못한 대다수 연쇄살인범은 여성 피해자를 강간함으로써 정복감과 지배감, 소유감을 만끽하게 된다”고 해석했다.
<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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