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8월 18일 (금) 09:44 뉴스메이커
[커버스토리]연쇄살인범 당신 가까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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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살인범의 다음 표적은 바로 당신이 될 수 있다.’
지난 7월 초 심야에 혼자 귀가하던 20대 여성 세 명을 차량으로 납치, 살해한 20대 용의자 김모씨(26)가 경찰에 검거됐다. 김씨는 올해 5월 15일 밤 첫 범행을 한 뒤 6월 9일과 7월 1일 각각 두 번째와 세 번째 살인을 했다. 김씨는 이 과정에서 성폭행을 했고 피해여성의 손을 묶고 얼굴을 청테이프로 친친 감아 질식사시켰다. 첫 번째 시신은 불에 탔고 두 번째, 세 번째 피해여성의 시신은 성기부위가 날카로운 도구에 의해 도려내진 상태였다.
김씨는 검거 후 범행 일체를 자백했지만 피해여성의 성기를 도려낸 것은 자신이 한 짓이 아니라고 부인하고 있다. 실종신고를 받고 수사중이던 경찰은 김씨가 마지막 피해여성의 신용카드로 돈을 인출하는 장면을 폐쇄회로(CCTV)에서 확보해 김씨를 검거했다. 검거된 김씨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묻지마 연쇄살인’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30년 전만 해도 거의 발생하지 않던 연쇄살인이 요즘엔 한 해에 한 건 이상 발생하는 추세다. 2000년대에 검거한 연쇄살인범만 해도 정두영(1999~2000년 범행/9명 살해하고 8명 중상), 김해선(2000년/3명 살해), 김경훈·허재필(2002년/6명 살해), 유영철(2002년부터 2004년/20명 살해), 정남규(2004년부터 2006년까지 13명 살해, 20명 중상), 그리고 앞서 김씨까지 일곱 명에 이른다. 이제는 누가 연쇄살인범의 먹이가 될지 어느 누구도 예측하거나 예방할 수 없는 지경이다.
연쇄살인 한 해에 한 건 이상 발생
뚜렷한 동기도 없는 연쇄살인이 증가하는 데다 수법도 날로 잔혹해지고 있다. 살해방법은 물론 사체를 훼손하는 정도도 상상을 초월한다. 토막을 내고 시간(屍姦:시체를 간음함)하며 불태우고 장기를 손상시키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시신 일부를 전리품으로 소유하거나 인육을 먹는 엽기성을 띠기도 한다.
2000년 10월과 12월 전북 고창군에서 발생한 초등학교 5학년 여학생 살인에 이은 남매 살인사건. 초등학교 5학년 여학생의 시신은 양지 바른 무덤 위에 발가벗겨진 채 십자가 형태로 누운 상태로 발견됐다. 잇따라 발생한 남매 살인사건 중 누나의 시신은 교복 치마가 뒤집힌 채 가슴 위쪽까지 걷어 올려져 얼굴을 덮고 있고 두 손은 노끈에 결박된 채 소나무 밑둥에, 양쪽 발목은 각각 다른 나무에 매여 있었다. 입에는 소녀의 장갑으로 재갈을 물려놓았고 온몸이 칼로 난자돼 있었다.
강간을 포함한 온갖 고문과 추행 흔적이 발견됐는데 충격적인 것은 소녀의 오른쪽 허벅지가 가로 15㎝, 세로 20㎝ 정도 잘려나가 사라진 것이었다. 범인은 강간, 특수 절도, 폭력 등 전과 7범으로 고향에 내려와 있던 김해선(32)이다. 검거 후 경찰 조사에서 김해선은 “살점을 떼어낸 것은 기억하지만 왜 그랬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우발적으로 저지르는 일회성 살인사건과 달리 연쇄살인범들은 ‘살인’그 자체를 즐기는 경우가 많다. 2004년 9월부터 신사동, 구기동, 삼성동, 혜화동 등 고급주택가를 돌며 부유층을 상대로 무자비한 둔기 가격 살인을 계속하다가 잡힐 것이 두려워지자 범행 대상을 출장 마사지사로 바꾼 유영철. 자신의 X-레이 사진과 해부학 책까지 구해 독학하며 이를 피해자들의 시신을 토막 내는 데 백분 활용한 그는 시신을 토막낼 때 클래식 음악을 들었고 일을 마치면 시를 썼다고 한다. 절단한 시신을 간음까지 했다고 한다.
도박중독자가 도박을 하지 않으면, 알코올중독자가 술을 마시지 못하면 ‘금단증세’가 나타나듯 묻지마 연쇄살인범은 살인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 살인에 이르는 흥분상태가 소멸될 정도의 시간적 공백을 둔 후 그들은 다음 먹잇감을 찾아 두리번거린다. 2004년부터 2006년 4월까지 3년 간 쇠망치를 이용해 모두 13명을 살해하고 20명에게 중상을 입힌 정남규(37)도 지난 달 서울 남부지법에서 열린 첫 공판에서 “담배를 피우고 싶은 것처럼 사람을 죽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며 “지금도 살인 충동을 느끼는데 독방에 갇혀 있어 살인하지 못해 답답하고 조급하다”고 말해 세상을 경악케 했다.
아직까지 미해결된 엽기적 사건으로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의 모티브가 된 1980년대의 ‘화성부녀자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에 대해 유영철이 한 말은 의미심장하다. 유영철은 “그는 다른 사건으로 오래 전부터 교도소에 수감돼 있거나 이미 죽었을 것”이라며 “그렇지 않다면 살인행각을 멈출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연쇄살인범들이 느끼는 ‘살인유희’가 결코 끊을 수 없는 ‘중독’임을 자기 경험에 비추어 지적한 것이다.
해부학책 구해 독학하며 시신 토막
경기대 이수정 교수(범죄심리학)는 “미국에서는 연쇄살인범을 가리켜 ‘포식동물(Predator)’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며 “동물세계와 마찬가지로 인간세계에도 길거리에 널린 먹잇감을 사냥하는 포식동물이 있는데 그들이 바로 연쇄살인범”이라고 설명했다. 양육강식의 생태계에서 먹잇감을 사냥해 먹는 것이므로 그들에게는 ‘죄의식’이 있을 리 없다는 것이다. 정남규도 첫 공판에서 “피해자의 고통은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죄의식이나 피해자의 고통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범죄자를 ‘사이코패스(psychopath:반사회 인격장애)’라고 부른다. 하지만 모든 연쇄살인범이 사이코패스는 아니다.
살인과 살인 사이 심리적 냉각기를 거치는 연쇄살인범의 특징은 살인자가 시간적 공백 없이 두 곳 이상의 장소에서 한 건의 살인이 이루어지는 ‘연속살인’과는 구분된다.
연간 대략 35명 정도의 연쇄살인범에 의해 약 5000명이 살해되고 있는 미국에서는 동일범에 의한 살인이 시차를 두고 세 건 이상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것을 연쇄살인으로 정의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동일범에 의해 몇 건의 살인이 자행돼야 연쇄살인으로 정의하느냐에 대한 합의가 내려지지 않았으나 일반적으로 두 건 이상이면 연쇄 살인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표창원 경찰대 교수(범죄학·범죄심리학·피해자학)는 “일반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살인의 동기나 계산 없이 살인에 이르는 흥분 상태가 소멸될 정도의 시간적 공백을 두고 2회 이상 살인을 저지르는 행위를 한국형 연쇄살인으로 규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회를 거듭할수록 연쇄살인범의 범행수법도 지능화한다. 신문이나 인터넷을 통해 자신이 벌인 살인사건에 대한 경찰의 대응을 꼼꼼히 체크하고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 다음 살인을 할 땐 변화를 준다. 유영철은 CCTV에 찍힌 자신의 뒷모습이 전국에 배포되자 가정집에 침투해 살인하는 것을 중지하고 피해자를 자신의 집으로 유인, 살해했다. 정남규도 처음에는 거리에서 귀가중이던 부녀자를 흉기로 살해했으나 2005년 이후 범행 장소를 가정집으로 바꾸고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 여러 켤레의 운동화를 바꿔 신었다. 조은경 한림대 교수(범죄심리학)는 “회를 거듭하면서 수법이 진화하는 것은 연쇄살인범이 범죄를 즐기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동시에 범죄에 더 몰입돼 있음을 보여준다”며 “연쇄살인범은 완전범죄를 노리는 것이고 수사하는 경찰은 범인의 완전범죄 시도를 앞서가야 검거할 수 있는데 이를 예측하기는 상당히 어렵다”고 말했다.
한국형 연쇄살인은 2회 이상으로 규정
연쇄살인범이 노리는 피해자가 불특정 다수라는 점도 범인 검거를 어렵게 만든다. 서울시경 과학수사계 윤외출 계장은 “국내 살인사건의 99%는 범인이 검거되는데 이유는 범인이 대부분 피해자와 관계있는 사람인 데다 현장에 증거가 남기 때문”이라며 “반면 연쇄살인범은 자신과 관계가 없는 불특정 다수를 범행대상으로 하고 치밀한 계획하에 범행하기 때문에 검거가 어렵다”고 말했다.
문제는 더 많은 제2, 제3의 유영철, 정남규가 우리 사회에 쏟아질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이는 청소년범죄가 날로 흉포화하고 있는 현실로 예측할 수 있다. 올 경찰청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소년범은 2004년보다 3.8% 감소한 8만3523명이다. 그러나 살인과 강간, 방화는 전년도에 비해 각각 18.5%, 0.9%, 79.2% 증가했다. 경찰청은 사회불만 증가 등으로 소년범죄의 유형이 흉포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는 “대부분의 범죄가 절도 등 경범죄로 시작하다가 상해, 강간 등으로 발전해 어떤 계기로 살인까지 하게 되고 결국 연쇄살인범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최초 연쇄살인범은 소아기호증 이관규 국내 언론에 연쇄살인에 해당하는 사건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29년이다. 일제 식민치하이던 그해 여름 한 달 간격으로 남자 어린이 두 명이 같은 수법으로 성폭행 후 살해당한 것이다. 사건 발생 1년 반 후 검거된 범인은 ‘소아기호증적 성범죄자’인 이관규(39)였다. 소아기호증은 열여섯 살 이상의 성인이 자기보다 적어도 다섯 살 이하인 사춘기 이전의 어린이(13세 이하)와 성행위를 하거나,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할 정도로 이와 관련한 공상이나 충동, 혹은 욕구를 느끼는 증상을 말한다. 2001년 서울 중랑천 뚝방길에서 네 살짜리 여자아이를 유괴, 성추행 후 토막 살해한 최인구(40)도 소아기호증적 성범죄자였다. 그는 이 사건 전에도 다섯 살짜리 여자아이를 성추행하다 붙잡혀 2년6개월 복역하고 2000년 출옥했지만 또 다시 여자아이를 대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표창원 경찰대 교수는 “최인구는 경찰에 검거되지 않았다면 사회의 이목을 피해 숨어 지내며 제2, 제3의 피해자를 찾아 범행을 저지르는 연쇄살인범이 되었을 것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
김대두·지존파 등 한국의 연쇄살인범들
유영철, 정남규 만큼이나 범죄양상이 잔혹하고 엽기적이며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무동기의 연쇄살인을 저지른 인물로 김대두(25)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1975년 전국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장본인이다. 무려 열일곱 명을 살해하고 세 명에게 중상을 입혔으며 한 명은 미수에 그친 ‘살인기계’였다. 이는 2004년 유영철 사건이 발생할 때까지 30년 동안 한국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살해한 기록이다. 폭력 전과 2범이던 그는 교도소에서 출소한 지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연쇄살인의 서막을 알렸다. 1975년 8월 13일 전남 광산군의 외딴집에서 잠자던 노부부를 칼과 둔기를 이용해 무참히 살해하는 것을 시작으로 전남 무안군과 경기도 평택군, 양주군, 시흥군, 수원 등을 돌며 주로 외딴집에 거주하는 피해자를 대상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돈을 훔쳤다. 사건 현장은 한결같이 처참했다. 둔기로 마구 가격하거나 어린 소녀와 젊은 여성은 성폭행 당한 후 역시 둔기와 칼로 무참히 살해됐다. 두 손을 결박해 나무에 매달아놓기도 했다. 심지어 엄마와 함께 생후 3개월짜리 갓난아기도 흉기로 살해했다. 김대두는 피해자의 피가 범벅된 청바지를 벗겨내 세탁소에 맡겼다가 덜미를 잡혔다. 김대두는 경찰에서 “무슨 짓을 해서라도 돈을 벌어 잘살아 보겠다”는 결심에서 범행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열일곱 명의 무고한 생명을 빼앗고 챙긴 돈은 고작 3만여 원에 불과했다.
화성부녀자연쇄살인사건과 함께 1980년대의 빼놓을 수 없는 연쇄살인은 1989년 5월부터 12월까지 8개월 동안 서울과 성남, 구리 등 수도권 도심 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칼로 마구 찔러 여덟 명을 살해하고 세 명에게 중상을 입힌 심영구에 의해 자행됐다. 살인의 목적은 돈이었다. 돈이 떨어지면 범행 대상을 찾아다녔고 살인 후 피해자의 몸을 뒤져 돈을 훔쳤다. 이에 앞서 1986년부터 1988년까지 친아버지와 친동생, 자신에게 돈을 빌려준 이웃 등 모두 다섯 명을 청산가리를 이용해 독살하고 한 명은 미수에 그친 희대의 여성 연쇄 독살범 김선자(49)도 있다. 이 역시 살해목적은 돈이었다.
특수 절도·강도·살인미수죄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교도소에서 복역한 조경수(24)와 김태화(22)는 1989년 12월 말 함께 출소했다. 이들은 ‘강도짓을 해서 3000만원이 모이면 함께 술집을 차리자’고 의기투합해 연쇄살인범이 된 경우다. 전남 광주의 한 술집에서 여종업원을 칼로 찔러 살해한 것을 시작으로 모두 다섯 명을 무참히 살해하고 한 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지춘길(47)은 1990년 3월부터 같은 해 11월까지 주로 노인들이 사는 외딴집에 침입해 노인 여섯 명을 살해하고 불을 질렀다. 이 과정에 네 명에게는 중상을 입혔다.
아예 ‘살인공장’까지 차린 광기어린 살인집단도 있었다. 1994년 9월 국내는 물론 전세계의 방송까지 주목한 ‘지존파’다. ‘살인공장’까지 차려놓고 다섯 명을 연쇄 살해한 것은 물론 시체를 소각로에 태어버린 광기어린 살인마들의 모습은 온 국민을 경악케 했다. 그들은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압구정동 야타족들, 돈 없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놈들은 다 죽이고 싶었다” “시작도 못하고 여기서 끝난 게 안타깝다”고 자신의 범죄를 합리화하며 큰소리쳤다. 그러나 그들에게 억울하게 죽은 피해자들은 한결같이 선량한 시민들이었다.
1994년 “내 나이만큼 사람을 죽이겠다”며 살인일기까지 기록한 가짜 택시운전사 온보현(37)과 2002년 택시에 여성피해자들의 사체를 싣고 또 다른 피해여성을 살해한 역시 가짜 택시운전사인 김경훈(29)과 허재필(24)은 시민의 발인 택시를 이용한 살인자다.
<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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