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걸다] 다큐멘터리를 알려주마!
2003.7.6.일요일
딴지 별걸다 디벼보기 우원회
니덜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색깔이 다른 제목을 누질르면 그 영화에 대한 소개가 나옴(편집자 주). |
역시나(!) 많은 이들의 이목을 끌지 못하고 지나갔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주위에 본 사람이 많다는 사실로 괜히 기분이 좋아졌던 작품이었다.
<로저와 나(Roger And Me, 1989)>를 수업시간에 보면서 얼마나 낄낄대었던가. 마이클 무어의 작품을 강의실 안의 몇 명말고 더 많은 이들과 함께 보고 생각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꿈은 미약하나마 현실(<볼링 포 컬럼바인>은 단 두개의 스크린에서 상영되었다)로 이뤄진 것이다.
당 영화를 본 관객들 대부분은 아마도 다큐멘터리를 처음으로 극장에서 (그것도 돈까지 내고) 본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내 주변도 마찬가지고.
영화를 본 이들 대부분이 무어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영화가 끝난 후에도 생각해 볼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다큐멘터리 작가(업자들이 '독립군'이라고도 부르는)의 꿈을 키우던 예전 기억에 혼자 웃음이 지어졌다.
'그래 다큐멘터리 알고 보면 드럽게 재밌는 거걸랑'
그러던 어느 날 듣게 된 한마디.
"그거 재연이라며? 에이~씨, 완전히 속았잖아! 다큐멘터리라더니 완전 사기 당했어"
허걱! 재연... 그렇다. 사실이다. <볼링 포 컬럼바인>에는 재연한 장면들도 있고, 관련된 다른 자료를 낑겨 넣은 장면도 있다. 나는 적절한 영상을 찾을 수 없어서 재연한 것이 그리도 문제가 될 줄은 생각도 못했기에 적잖아 놀라고 말았다.
'다큐멘터리 = 진실' 이라고 잘못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리도 많다니? 그것은 너무나 커다란 착각이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TV에서 하는 동물의 왕국의 폐해가 아닐까?
아무튼 다큐멘터리에 대한 오해가 여기 저기서 너무 많은 것 같다. 이래서 다큐멘터리라는 것이 무엇인가 간략하게나마 한번 살펴봐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야 제2의 <볼링 포 컬럼바인>도 우리 극장에서 상영될 수 있을 거고, 이런 오해도 생기지 않을테니까.
다큐멘터리란 뭘까? <동물의 왕국>도 다큐멘터리고, TV서도 매일 밤 시간 때우기로도 많이 하는 것 같던데. 소위 교양물이라 불리는 프로그램 중 반은 다큐멘터리라고 하는데 정확히 함 짚어 줄 수 있었음 좋겠다.
정말 나도 그러고 싶다. 그러나 '이거야' 라고 단정지어 결론 내리기 힘든 것이 바로 다큐멘터리다. 사람마다 말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요게 가장 알맞아 보인다. 1948년 제1회 다큐멘터리 세계연맹 회의에서는 다큐멘터리를 '사실에 입각한 촬영 또는 진실하고 합리적인 재구성(재현 포함)을 통해서 현실의 상황을 기록하는 모든 방법을 가리킨다'고 정의했다.
하지만 여전히 감독마다, 학자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예술적이어야 한다는 사람도 있고, 일부 Ethno Film(민족지 영화)만이 진정한 다큐멘터리가 될 수 있다는 학자도 존재한다.
어쨌든 다큐멘터리라는 이야기 아래서 사람들은 사실과 객관성 이 두 잣대를 들이댄다. 그 것을 영상에 담아내려던 노력이 다큐멘터리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진정한 진실, 엄정한 객관성이란 것이 인간에게서 가능한 것인가라는 부분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현실 속의 무엇을 끄집어 낼 것이며, 어떻게 보고, 뭐라고 다듬어 만들어 내야 할 것인가? 다큐멘터리의 역사라는 것은 바로 이 고민의 역사다. 이 흐름을 한번 쓰~윽 훑어본다면 다큐멘터리를 어찌 봐야 할 것인지 충분히 납득이 가리라 생각한다.
다큐멘터리는 논픽션 영화의 대표적인 장르이다. 특히 일상에 카메라를 들이대서 의미를 찾으려 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뤼미에르 형제가 최초로 촬영한 영상들도 일종의 다큐멘터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의미한 활동사진인 논픽션 영화들은 단순히 신기한 그림 놀이일 뿐이었다. 뤼미에르 형제도 영화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보았다고 하지 않던가?
이 신기한 오락 거리에 꿈이 아닌 현실과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한 사람은 역시 러시아의 지가 베르토프(Dziga Vertov)와 키노 아이(Kino Eye) 그룹일 것이다. 그들은 카메라를 통해 현실을 담고 이 안에 담긴 냉철한 삶의 현장이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갈 수 있는지를 누구보다 먼저 깨달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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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함 뽀쫌킨> |
그리고 이러한 진지한 고민을 통해 다큐멘터리적인 픽션 작품들이 러시아에서 뿜어져 나왔는데, 에이젠쉬타인(Sergei Eisenstein)의 <전함 뽀쫌킨(The Battleship Potemkin)>같은 작품이 대표적이다.
미국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있었는데, 이들이 눈을 댄 곳은 미국인의 일상이 아니었다. 하루하루 살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재미로 영화를 보러 가는 노동자들에게 뻔한 자신들의 일상을 담은 영상이 장사가 될 리 없지 않은가?
그들은 미국 원주민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댈 참신한 발상을 해낸 것이다(아싸~ 위대할사 자본주의의 놀라운 능력!). 뉴스 영화, 여행 안내 영화가 아닌 원주민이 자연과 싸워나가는 생생한 삶을 담(으려 노력한)은 영화들은 관객들에게 이국적인 호기심과 함께 감동도 전해 줄 수 있었기에 극장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 수 있었다.
1922년 플래허티(Robert Flaherty)가 만든 <북극의 나누크(Nanook of The North)>는 상업적인 대성공과 함께 다큐멘터리 장르를 세상에 널리는 계기가 되었다. 1926년 플래허티의 영화를 본 존 그리어슨(John Grierson)은 'Documentaire'라는 단어에서 영감을 얻어 'Documentary'라는 지금 이바구하고 있는 장르의 이름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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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의 나누크> |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 이 시기의 다큐멘터리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장면은 플래허티의 요구에 의해 에스키모 가족이 연기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이글루가 아닌 나무 집에서 살던 에스키모들이 플래허티의 부탁으로 실재보다 훨씬 커다란 얼음집을 반 토막(거대한 카메라가 들어 갈 수 없었기에 집의 내부가 드러날 수 있도록)만 짓고 일상을 연기해 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교훈은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있어 지금까지도 가장 기본이 되는 태도에 관한 것이다.
플래허티는 몇 년을 에스키모들과 같이 먹고 자고 입으며 긴밀한 상호 신뢰관계(업자 용어로 라포(Rapport))를 형성한 후에 영상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때론 이런 원칙을 무시함으로써 새로운 결과를 얻기도 하지만, 플래허티가 임했던 자세는 향후 다큐멘터리가 타 영상물과 차별되게 만드는 가장 밑바탕이 된다.
1930년대까지 다큐멘터리史에 있어 중요한 영화들이 발표되었다. 그러나 나는 솔직히 말해서 <북극의 나누크>말고는 요 시대의 영상들을 본 게 없다. 거짓말 할 순 없잖냐. <북극의 나누크> 이 후 내가 만난 작품은 레니 리펜슈탈(Reni Riefenstahl)의 1937년 작품인 <의지의 승리(Triumph of The Will)>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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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의 승리> |
요 작품 나찌의 전당대회에서 히틀러가 연설하는 것을 담은 작품인데, 이후 정치선전 필름은 물론이고 일반 영화에서도 대중 연설 장면을 감동적으로 담을 때 두고두고 참고하는 작품이다. 엄청난 물량을 쏟아 부어 만든 거대한 크레인 샷, 트랙킹 샷, 적절하고 감동적인 음악의 삽입. 평론가들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다큐멘터리라고 꼽는 영화이기도 하다.
나찌가 돈을 대고 리펜슈탈이 감독한 영화 중 또 하나의 걸작이 있는데, 바로 <올림피아(Olympia,1938)>다. 손기정 선수의 쾌거도 담겨있는 베를린 올림픽 공식 기록영화다. 이 다큐멘터리 역시 지금까지도 엄청난 파급력을 가지고 있다.
제목이 기억 안 나는 1988년 서울 올림픽 기록영화도 거의 <올림피아>의 컬러판 수준이었다면, 매년 공식 필름으로 나오는 슈퍼볼 필름도 기본적으로 <올림피아>의 선수들의 몸놀림을 잡는 것에 기초(어디까지나 기초다!!!)하고 있다면, 이 작품이 얼마나 선구적인 것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거 완전히 히틀러 만세, 나찌 만쉐이 하는 영화가 아닌가. 과학은 전쟁을 통해 발전 한다나? 다큐멘터리의 진화에 있어서도 요런 슬픈 과거가 있었다. 그러나 고냥 요대로 다큐멘터리가 주저앉지는 않았다.
과거의 다큐멘터리가 철저히 계획된 각본을 먼저 짠 후에 마치 신이라도 된 양 현실에 접근했던 이유는 다큐멘터리 감독(개인적으로 작가라는 표현을 좋아한다)들의 성향 문제도 있겠지만 그 보다는 장비의 고충이 컸었다.
앞서도 말한 것처럼 작가가 어느 사회에 들어가 완전히 라포를 형성하고 자연스럽게 카메라를 들이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하더라도 거대한 장비와 수많은 인원이 동원된 촬영팀이 10분에서 잘해야 15분밖에 담을 수 없는 필름(필름 한번 갈기 위해서는 서 너 명이 달려들어 카메라 전체를 열고 닫아야 할 뿐 아니라 시간도 꽤나 오래 소요된다)을 가지고 촬영을 진행한다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 모든 과정을 가장 편리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미리 플롯을 짜고 연기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는 말 그대로 논픽션을 가장한 픽션이고 두고두고 윤리적인 비난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1950년대 드뎌 기다리고 기다리던 어깨에 메고 돌아다닐 수 있으며 동시녹음도 쬐끄만 장비로 한 큐에 끝낼 수 있는 기술의 혁신이 이뤄진 것이다. 맘 맞는 두 사람이 전기 문제만 해결(차에 실을 수 있는 소형 발전기도 개발 되었지롱~) 된다면 어디라도 달려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이제 결말까지 모두 정해놓고 촬영에 들어가며 '이거 다큐멘터리야... 끄응' 하는 양심에서 조금은 자유로워 질 수 있어진 것이다. 촬영에 앞서 자료와 현지 조사를 통해 시각을 얻어 낸 후, 카메라와 함께 다큐멘터리 작가는 사건이 흘러가는 대로 시간에 구속받지 않으며 카메라를 들이 댈 수 있어졌기 때문이다.
이는 무엇보다 TV붐과 함께 TV뉴스 제작에게 희소식이었다. 동시에 다큐멘터리 작가들에게도...
하나, 다이렉트 씨네마 둘이면 작업 끝이라는 공식을 직접적으로 행한 메이즐스 형제(Al Maysles, David Maysles)는 이동이 자유롭고 가벼워진 카메라를 통해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즉 어떤 현장에 들어가고 그들이 카메라에 신경을 쓰지 않을 때까지 대상들과 융화되려 노력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행동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그 사회, 사람들의 진실이 포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사고 방식에서 나온 놀라운 결과물이 바로 롤링스톤즈의 공연 현장을 담은 <Gimme A Shelter>이다. 이 영화에는 메이즐스 형제 이외에도 여러 대의 카메라가 공연장 곳곳을 헤집고 다닌다. 이미 밴드와 충분한 교감을 가진 메이즐스 팀은 무대, 공연장 어디서도 롤링스톤즈의 무대, 스텝, 관객을 자연스럽게 촬영한다(공연 진행 중이라 촬영에 신경 쓸 틈도 없겠지만). 그리고 이러한 공연장을 넘나드는 촬영 속에서 롤링스톤즈의 보디 가드팀인 헬스 엔젤스의 살인 장면을 담아낸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들이 뉴스 기자가 아니라 사회 문화의 밑바닥에 숨은 진실을 찾는 다큐멘터리 작가였다는 것이다. 그들은 살인 장면을 충격 특종 효과로 몰아가지 않았다. 1960년대를 휩쓴 청년 저항 문화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시기에 도달했음을 끌어낸 것이다. |
일상은 사건의 연속이다. 사건 밑바닥에는 사회, 문화적인 이유가 깔려있다. 기다려라. 또 기다려라. 카메라맨은 공기다. 그들 속에서 완전히 녹아라. 이것이 다이렉트 씨네마다.
우리가 TV에서 접하는 다큐멘터리에서도 다이렉트 씨네마 비슷하게 흉내내고 있는 면이 있긴 하지만 솔직히 내용에 있어선 플래허티(와 그의 방법론)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감히 말하겠다.
라포는 무슨 라포, 사전 현지 조사도 없이 그 지역 사람 하나를 코디로 임명하고는 마구잡이로 카메라를 들이대거나 카메라에 굴복(일주일 내내 누가 나를 찍는다고 생각해봐, 나중엔 카메라 앞에서 방귀도 뿡뿡 뀔걸?) 시키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데...
둘, 씨네마 베리떼 프랑스의 인류학자 장 르슈(Jean Rouch)는 오랫동안 아프리카에서 원주민들의 삶을 영상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카메라의 존재가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 깨달았다. 파리로 돌아온 그는 사회학자 에드가 모랭(Edgar Morin)과 함께 알제리와의 전쟁으로 인한 파리 시민들의 심리를 정확히 영상으로 옮길 방법을 모색한다. 몇 명의 학자들이 카메라를 앞에 두고 어떻게 사람들에게 접근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장면에서 시작하는 <어떤 여름의 기록(Chronicle of a Summer, 1961)>는 이렇게 해서 탄생한다. 진실영화(씨네마 베리떼)를 만들기 위해서는 카메라의 존재를 작가와 대상이 모두 인지해야 하며, 둘 사이의 상호 작용(인터뷰)을 통해 진실이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이다. 솔직히 프랑스 말을 전혀 알지 못할 뿐더러 여러 번 복사한 관계로 자막(그나마도 영어였다...)마저 뭉개져서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었지만 작가가 무작위로 선정한 인터뷰하는 시민들의 표정과 목소리가 점차 격해지며 속내를 드러내는 과정이 적나라하게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다큐멘터리 뿐 아니라 씨네마 베리떼는 트뤼포(Truffaut), 고다르(Godard)같은 프랑스 영화 감독들에게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다큐멘터리 작가들이 고민 끝에 만들어 낸 다양한 촬영 방법론은 영화에서 끊임없이 차용되어 왔다. 특히 이 시기의 원초적인 들고 찍기(업자 용어로 핸드 헬드 기법)는 지금까지도 영화에 있어 사실감, 현실감 부여를 위해 사용되고 있다. |
카메라의 경량화와 조작의 간편화는 다큐멘터리 작가들로 하여금 수많은 실험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물 중 하나가 민족지(Ethnography)의 영상화다(장 르슈도 아프리카에서 이를 실험했던 것이다).
인류학자 존 마샬(John Marshall)은 아프리카 부쉬맨 사회에 들어가 몇 년을 함께 살며 백인들의 문화가 그들의 전통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에 관한 주목할 만한 연작을 만들었다. 후기에 와서 그의 작품 속 목소리는 작가가 아닌 부쉬맨의 것으로 바뀌었고 영어로 번역된 자막이 실렸다. 이 또한 좀 더 현실에 가까운 영상을 만들어 내려 했던 노력의 결과다.
영상 인류학자(Visual Anthropologist)들은 좀 더 실험적인 모험도 감행했는데, 바로 그 대상이 되는 사람들에게 카메라를 맡기고 스스로 자신들의 영상을 만들도록 한 것이다.
카메라의 조작이 단순해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데, 이를 통해 전문적인 촬영기사의 눈이 아닌 대상(여기서는 나바호 인디언)의 눈으로 자신들을 바라보게 함으로서 그들 문화만의 특별한 사물을 바라보는 방법을 찾고자 했다.
결과는 역시 영상 촬영 미숙으로 인해 실패(인디언 언어 속에 자주 등장하는 '길' 위에서의 롱테이크 촬영이 많긴 했지만 그것이 기술 부족인지 의도된 것인지를 증명할 길이 없었다)로 돌아가긴 했지만 기술의 발달은 다큐멘터리 작가들로 하여금 수많은 실험을 해 볼 수 있게 했다고 한다. 사실 나도 보지는 못했다.
놀라운 기술의 발전은 카메라 뿐 아니라 편집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이제 다큐멘터리를 혼자서 혹은 소수의 인원이 간단한 도구만 가지고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어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작가들은 더 이상 완벽한 진실은 불가능하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다이렉트 씨네마, 씨네마 베리떼의 시기를 거친 것이다. 이미 카메라를 들이대는 순간 작가는 수많은 현실 중에서 어느 한 장면만을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작가가 선택한 장면들도 편집 과정에서 작가의 주제에 맞게 압축되어진다. 그렇다면 가장 진실하게 영상을 만들 방법은 무엇인가?
고민 끝에 생각해 낸 것이 바로 다큐멘터리 작가인 '나'를 드러내는 것이다. 내가 어디서 나서 어떤 성장 과정을 거쳤으며 무엇을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인지 영상물 내부에 드러내는 것이다.
'나는 요러 요러한 사람이라 이러 이러한 부분에 관심을 갖고 여기에서 저기까정 보여주는 거시여' 뭐 요런 말이 되겠다. 이런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흐름을 성찰(Reflexion)적 다큐멘터리라고 부른다. 이는 1980년대 이후 제작된 다큐멘터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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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부루스 웨버(Bruce Weber)의
때론 과거의 장면을 재연하기도 한다. 물론 이 방법은 다큐멘터리의 초창기, <북극의 나누크>부터 이미 사용되었지만 최근의 경향은 좀 더 극적이다. 글로만 남아있는 인터뷰의 전문 배우와 고증에 의한 재연에서부터 주인공의 과거 이야기에 기초해 작가가 영상을 만들기도 하고, 주인공과 작가가 함께 그 장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심지어 재연된 장면에 대해 주인공이 나레이션을 입힌다).
다큐멘터리는 딱딱하다구? 최근 다큐멘터리는 점점 유연해지고있다. 바바라 트렌트(Barbara Trent)의 <파나마 사기극(The Panama Deception, 1992)>에서는 미군에 의해 자행된 끔찍한 학살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지만 어둡지 만은 않은 시선을 견제한다. 미국의 언론이 일반인들을 어떻게 속이고 있는지를 교차편집을 통해 가슴에는 강하게 남되 감정에만 빠지지 않도록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마이클 무어의 작품들로 돌아와 보자. 섬찟한 이야기임에도 그다지 머리 아프지 않다. 적절한 자료의 인용과 음악(역설적인 가사의 노래들, 다양한 영상들의 조각모음과 함께 무어 영화의 백미다), 그리고 무어 자신의 이야기들을 함께 풀어내 그의 사고 방식에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따라가고 이해하게 만드는 것이다.
성찰적 다큐멘터리는 작가를 낱낱이 드러내기 때문에 오히려 객관적이 된다. 영화 속 장면은 이미 자신의 성향을 드러낸 작가의 선택이라는 것을 관객들도 알고 있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다큐멘터리는 자신이 공기인 것처럼, 혹은 대상과 격렬하게 부딪히면서 그 안에서 어느 순간 결론이 튀어나오는 형식들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결말에 이르게 된다.
즉, 모든 판단의 주체가 영화 자체에서 관객 스스로의 몫으로 넘어오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비난을 완벽하게 면할 순 없다. 앞서도 이야기 한 것처럼 관객이 판단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료인 화면조차 편집된 작가의 색채로 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소한 작가 자신도 까발렸다는 양심의 통로 하나를 가지게 된 것은 분명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다.
TV를 켜면 쏟아져 나오는 재연프로그램. 특히 <신기한 떼레비 써뿌라이즈>, <잠깐 포착 와따 이런일이>, <떼레비 특종 눈깔 나오는 세상> 등등 이들도 모두 다큐멘터리인가?
그래, 재현도 표현 수단이라고 다큐멘터리 세계연맹 회의서도 이야기한 바 있으니, 넓게 아주 아주 넓은 시각에서 본다면 그렇다고도 볼 수 있다. 아니 그보다는 다큐멘터리의 기법 일부를 떼어간 이도 저도 아닌 프로그램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 프로그램들을 보면서 어떤 다큐멘터리 작가의 시선이 느껴지나? 아니, 작가가 있기나 한 것인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재연이라고 하는 수단을 쓴 것일까? 감동 스또리를 전해주기 위해서? 그래서 어설픈 연기자들이 등장, 책 읽는 수준의 대사와 퀵 줌을 이용해서 드라마와 뉴스 중간쯤 되는 영상을 연예인들의 입담과 함께 보여주는 거야?
어디에도 '신기하지? 놀랬지?' 이외의 다른 고민의 흔적도, 노력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촬영 대상이 되는 주인공의 경험을 어떻게 하면 더 무섭고 신기하고 웃기게 만들 것인가만 관심사인 것처럼 보인다. 누가 봐도 어설프기 이를 데 없는, 초등학생들이 연극하는 거 같은, 요 재연들을 진실을 찾으려 노력하는 작가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할 수 있을까?
말 많았던 장면 중 하나인 <볼링 포 컬럼바인>의 도입부를 살펴보자. 무어는 은행 직원들과 촬영 몇 달 전에 이미 촬영을 위한 서류상의 문제를 모두 해결했고, 몇 시간에 걸쳐 그 장면의 인터뷰와 촬영을 했다.
실제로는 은행 소유의 총기 창고에 가서 총을 지급 받지만 영화에서는 은행에서 받는 것처럼 편집이 되었다. 이런 장면을 두고, 혹자는 마이클 무어 이너마 거짓말쟁이라고 한다.
그래, 시간을 조금 늘려서 은행 계좌를 만든 후 차를 달려 창고에 가서 총을 받는 장면을 집어넣었다고 한들 영화 내용에 무슨 변화가 생길까? 작가가 꼭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은행서도 계좌만 만들면 총기를 준다'는 충격적인 사실 아닐까?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 장면의 윤리성, 선정성 등을 들먹이며 비난의 칼을 들이댄다.
고발성 프로그램의 재연장면은 비슷한 맥락 아니냐구?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고것을 알려주마>, <추적 61분>같은 프로그램서 흔히 나오는 대사들. '범인이 만든 것과 동일한 방법으로 만들어 직접 실험을 해봤습니다' 요런 이야기들 좋다, 그런 접근도 필요하다.
하지만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사건을 재구성 해봤습니다', 요건 좀 너무하지 않은가? 주민들의 인터뷰만으로도 가능한 장면을 굳이 어설프게 영상으로 만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 더, 영상으로 보여 주겠다면서 굳이 그 장면들을 사회자들이 차근차근 다 설명을 해주는 것은 또 무슨 요상한 짓거리인가? 좋은 다큐멘터리에도 물론 나레이션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것이 눈으로 보고 있는 영상을 다시 한번 얘기로 잘근잘근 씹어주는 것이 아니다.
자꾸 들먹여 미안하지만 <볼링 포 컬럼바인>을 보자. 마이클 무어, 계속 떠들어댄다. 그러나 찬찬히 뜯어보면, 요건 무슨 장면이다 하며 영상을 설명하는 대목은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의 목소리는 대부분 질문들이다. 대답은 영상과 등장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통해 해결된다. 아니 무어의 의문에 대한 답은 정확히 이거다라고 보여지지 않는다. 관객들이 스스로 판단해 볼 수 있게 만드는 몇몇 '꺼리'의 제공이 다다.
솔직히 다큐에 있어서 재연이라는 거, 아직도 논란거리이다. 아예 다큐드라마라고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기도 한다. 정말 필요한 장면을 충실한 고증에 의해 집어넣는다는 것은 글과 달리 눈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영상이라는 한계를 돌파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인 것이다.
요점 분명히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작가가 충실한 사전조사, 다양한 인터뷰를 통해서도 해결할 수 없는 벽 앞에서 생각해야 할 부분이지, 제작에 임할 때부터 뭘 재연해 볼지 찾는 것은 분명 아니다.
앞서도 이야기 한 것처럼 재연에 있어서도 좀 더 노력이 필요하다. 몇 사람의 얘기만 끄적 듣고 쓱싹 만들 것이 아니라 좀 더 정확한 재연, 그리고 당사자들의 검증, 작가와 대상 사이의 재연을 두고 나누는 의견 조율 등등 재연의 가치를 높일 방법은 생각해보면 많이 있지 않은가?
그렇게 다큐멘터리처럼 보이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속이 시원한 PD들이여~ 아예 <개를 문 사나이(Man Bites Dog)>, <이것이 스파이널 탭이다(This is Spinal Tap)>같이 허구를 다큐멘터리인 것처럼, 다큐멘터리의 요소를 끌어들여 만든 모큐멘터리(Mockumentary) TV프로를 만드는 게 어떨런지? 아! 벌써 비스무래한 프로그램이 있네, 재연 장면을 보여주며 진실인지 거짓인지 찾는... 으아~
숨가쁘게 다큐멘터리가 어떤 방향으로 진화되었는지를 살펴봤다. 아주 희미하게나마 다큐멘터리를 어떻게 봐야 할 것인지도 짐작 할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 최근의 다큐멘터리는 작가와 관객 사이에 영상을 통해 이야기 나누려는 노력이다. '나 누구야. 요번에 요런 사건 난 요렇게 보걸랑. 자 봐봐 내가 요러 요러한 사람을 이리 이리 만나서 저런 저런 얘기했어. 함 같이 생각해 보자구'.
대화를 두려워하지 마라. 다큐멘터리는 오늘 TV에 나오는 동물의 왕국처럼 신이 만드는(동물의 생각도 얘기해주더라)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상한 경험 무서운 얘기 어설프게 보여주는 영역도 아니다. 너무나도 인간적인 영역이다. 작가가 느끼는 현실을 영상으로 이야기 하고 관객은 그의 의견과 나의 생각이 만나고 부딪히기도 하고 동화되기도 하는 열린 영상인 것이다.
참고문헌 마이클 래비커(조재홍, 홍형숙 옮김) <다큐멘터리> 1997, 지호 에릭바누 (이상모 옮김) <세계 다큐멘터리 영화사> 2000, 다락방 휴 배들리(최창섭, 최하원 옮김) <기록영화 제작기법> 1982 (3쇄), 한국영화진흥공사 칼 하이더(이문웅 옮김) <민족지 영화 영상인류학에의 초대>1992, 일신사 John Collier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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