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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기획] 칭짱 철도 타고 티베트를 가다 -한겨레

윤회의 삶터 깨운 ‘철마의 경적’
[기획] 칭짱 철도 타고 티베트를 가다
① ‘성스러운 땅’이 열리다
한겨레 이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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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월1일 개통한 칭짱(청장) 철도도 오지 티베트를 중국, 그리고 세계로 열어놓았다. 푸른 하늘과 설산으로 꽉 찬 자연 속에서 고유의 문화와 종교를 유지해온 티베트는 이제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게 됐다. 베이징에서 라싸까지의 거리가 총 4000km가 넘는 칭짱철도의 열차가 설산 옆 철교 위를 힘차게 달리고 있다. 라싸/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기획연재 : 칭짱 철도 타고 티베트를 가다
[관련기사]
철길은 세상을 잇는다. 산업화와 근대화의 상징이기도 하다. 지난 7월1일 개통한 칭짱(청장) 철도도 오지 티베트를 중국, 그리고 세계로 열어놓았다. 푸른 하늘과 설산으로 꽉 찬 자연 속에서 고유의 문화와 종교를 유지해온 티베트는 이제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게 됐다. 독립적인 현대화와 본격적인 중국화의 갈림길에 선 티베트를 네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마지막 숨은 ‘성스러운 땅’ 하늘 길 넘어 방문객 급증

티베트에는 유난히 성스러운 땅이 많다. 자치구의 수도인 라싸 자체가 ‘성스러운 땅’ ‘신의 도시’란 뜻을 가지고 있다.

티베트인들은 색감과 조형미가 뛰어나다. 아파트 창문에조차 조그마한 단청을 꾸민다. 화려한 색감은 티베트 자연의 수려한 풍광과 무관하지 않다. 현대사회에서 티베트인들 만큼 자연과 어울려 살아가는 겨레도 찾아보기 어렵다. 전통 장례인 ‘토쭌’(천장)은 죽은 이의 살과 뼈를 찢어 독수리나 물고기한테 주어 치른다. 이승을 떠난 부모형제의 살을 먹고 자란 새나 물고기를 만날 수도 있다고 믿기에 티베트인들은 새나 물고기를 사양한다. 티베트에서는 사람조차 먹이사슬의 둥근 원 안에 자리한다.

티베트인들은 한평생 ‘성스러운 땅’ 라싸를 맴돈다. 온몸을 땅바닥에 엎드리며 걸어(오체투지) 라싸까지 순례한다. 라싸에서는 달라이라마의 겨울궁전인 포탈라궁이나 유서깊은 조캉 사원(다자오쓰) 주위를 기도하며 맴돈다. 이들의 발걸음은 한평생 둥근 원을 그린다. 죽은 뒤에도 윤회의 둥근 고리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환생한다고 믿는다. 관음보살의 화신인 달라이라마나 무량광불의 화신인 판첸라마가 숨지면, 온갖 힘을 기울여 그가 환생한 어린이를 찾아낸다. 티베트에서는 삶과 죽음조차 윤회의 원 안에 있다.




» 달라이 라마 14세가 인도로 망명하기 전까지 종교와 세속적 권력의 중심이었던 포탈라궁은 티베트인들에겐 여전히 마음의 중심이다.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던 지난 12일, 중국 윈난성에서 온 티베트인들이 포탈라궁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전통복장을 준비해 와 궁 앞에서 갈아입고 사진기 앞에 섰다. 라싸/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윤회의 터전에 직선의 칭짱철도=모든 사람들이 동그라미를 그리며 살아가는 라싸에 가장 직선으로 달리는 교통수단인 열차가 지난 7월 첫 경적소리를 울렸다. 철마가 마지막으로 숨은 경건한 땅까지 들이닥쳐, 지난 200년 동안 자신이 수행했던 산업화와 근대화의 상징 구실을 마지막으로 수행한 셈이다.

2002년 중국 서남 열차의 종점이던 칭하이성 거얼무에서 첫삽을 뜬 칭짱철도는 지난해 10월12일 거얼무∼라싸 구간의 공사를 마친 뒤 시험 운행을 거쳐 지난 7월 1일 성대한 개통식을 열었다. 개통식에는 1988~92년 4년 동안 티베트 공산당위원회 서기를 맡았던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직접 참석했다. 평균 해발 4천m를 지나는 이 철길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고원을 운행해, 이미 ‘하늘의 길’이란 별명을 얻었다. 이 고원 열차는 칭하이성 서쪽의 거얼무에서 고원용 기관차로 머리를 바꿔단 뒤 칭짱고원을 오른다. 시닝에서 라싸까지는 26시간, 베이징에서 라싸까지는 48시간을 꼬박 달린다.

‘원형’의 문화 가로지른 ‘직선’ 어디로
“물류 비용 1/5로 줄어” 윤택한 생활 기대
중국화 가속·자연친화적 삶 파괴 우려도

» 칭짱 철도 이용한 티베트 여행 안내
고원의 절경이 요구하는 대가인 고산병=거얼무에서 퉈쥐까지 11시간 정도 달릴 동안 차창 밖에는 삭막한 황무지가 이어진다. 황허와 양쯔강의 발원지인 싼장위안, 세계에서 가장 높이 있는 해발 5072m의 탕구라산역, <서유기>의 손오공이 삼장법사를 모시고 지나갔다는 설산 등의 절경이 황량함을 달래준다.

퉈쥐를 지나 해발 4702m인 안둬에 이르면 이끼와 잔풀이 융단처럼 황무지를 감싸기 시작한다. 황무지 위로 풀빛이 짙어지면서 차창 밖에 등장하는 생명체 또한 양, 야크(들소), 노루, 까마귀 등 다양해진다. 철마가 춰나 호수를 지나면 풍광은 절정에 다가간다. 이끼와 잔풀은 고원의 바람에 나부끼며 무성해진다. 옛 서북방 민족들의 활동무대인 나취와 당슝을 지나면 눈산과 끝없는 고원, 부드러운 초원과 늪지대, 복류천과 강물 등 고원의 모든 풍광들이 한꺼번에 등장해 대단원에 이르렀음을 고한다.

평균 해발 4000m에서 연출되는 절경들은 두통과 호흡곤란, 협심증 등 고산병 증세를 대가로 요구한다. 칭짱열차는 객실 좌석마다 산소를 공급하며, 두 명의 의사가 비상 대기한다. 열차 운행 때마다 3~10여명이 산소마스크 신세를 진다. 이 철도 개통 이후 지금까지 고산병 증세로 숨진 사람은 아직 없다. 칭짱철도공사 외사판공실의 왕페이쉰(51) 주임은 “칭짱철도 개통 이후 9명이 사망했다는 일부 중국 매체의 보도는 오보”라고 밝혔다.

개발과 파괴의 두 모습, 칭짱철도=철도 개통 이전에 티베트로의 주요 교통수단은 불편한 버스나 비행기였다. 중국의 서민들은 감히 티베트 여행을 꿈꾸기 어려웠다. 화물열차가 운행되면 티베트를 오가는 물류비용은 더욱 떨어질 전망이다. 니마츠런 티베트자치구 부주석은 15일 “철도 이용 전 물류비용은 1t의 화물을 1㎞ 우송하는 데 5~6마오(약 62.5~75원)였으나, 철도를 이용할 경우는 1마오(약 12.5원)로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라싸시의 통계는 철도 개통 이후 라싸 방문객이 두 달 동안 50~60% 이상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철도의 개통이 티베트인들의 삶을 한결 윤택하게 만들어줄 것이라는 예상은 개발에 따르는 당연한 기대다. 티베트인들이 꾸려 온 자연 친화적인 삶을 파괴할 것이라는 우려 역시 따른다. 한족의 빠른 유입으로 티베트 지역의 ‘중국화’가 가속화할 것이라고 걱정하는 소리가 가장 높다. 라싸 지역에서 택시 운전기사는 80%가 한족이다. 라싸의 경제는 외지에서 온 투자자들이 쥐락펴락한다. 분명한 것은 칭짱철도가 원형의 윤회 터전인 티베트에 현대화된 직선의 삶을 옮겨올 것이라는 점이다. 그 직선의 삶이 외지인들에 의한 티베트 사회·경제 지배 현상의 심화일지, 아니면 티베트인들 스스로의 현대화된 삶일지는 두고 볼 일이다. 라싸/글 이상수 특파원 leess@hani.co.kr

» 지난 7월 첫 기적소리를 울린 칭짱철도가 티베트를 변화시키고 있다. 라싸 인근의 당슝 지역의 티베트 주민들이 철교 옆 들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라싸/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 티베트의 성스러운 3대 호수 중 하나인 나무춰 호수가 설산으로 둘러쌓여 있다. 해발 4718m에 위치한 이 호수는 서울 면적의 세 배 가까이 되며, 중국에서 두번째로 큰 소금호수이자,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소금호수이다. 라싸/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 티베트의 사원과 궁전, 산과 호수와 강, 마을과 가정집 지붕에는 ‘타쭤’라 불리는 오색찬란한 기도문이 만국기처럼 걸려있다. ‘타쭤’는 기도문이나 경전의 내용을 오색의 천에 새겨 줄로 꿴 것이다. 라싸/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 티베트의 산에는 양들과 야크가 부족한 풀을 뜯기 위해 이곳저곳을 휘젖고 있다. 라싸 인근 4000여m 고원에서 목동이 풀먹는 양떼들을 지켜보고 있다. 라싸/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 달라이 라마 14세가 인도로 망명하기 전까지 종교와 권력의 중심지였던 포탈라궁. 라싸/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 기차 안에서 본 강. 하늘인지 강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색깔이 비숫하다. 라싸/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 하늘에서 본 티베트. 굽이 굽이 산 능선을 따라 길들이 보이고, 그 길을 따라 민가들이 듬성듬성 보인다. 라싸/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인터뷰] 니마츠런 티베트자치구 부주석
관광산업 진흥시킬 계기 내년 인도국경까지 연장
한겨레 이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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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마츠런 티베트자치구 부주석.
  기획연재 : 칭짱 철도 타고 티베트를 가다
니마츠런 티베트짱족자치구 부주석은 “티베트의 관광산업을 더욱 적극 발전시킬 계획”이라며 칭짱철도 개통 이후의 목표를 주저없이 말했다. 15일 만난 니마츠런 부주석은 “관광산업은 다른 산업에 대한 부대 효과가 4~5배에 이른다”며 “푸른 하늘과 흰 설산, 무성한 삼림과 맑은 물, 푸른 초원과 흰 양떼는 티베트 최고의 관광 자원”이라고 말했다.

-칭짱철도 개통이 티베트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다방면에 걸쳐 전면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거얼무에서 라싸까지 유통비용 원가가 크게 줄어 관광산업을 진흥시킬 계기가 마련됐다. 티베트의 생산품은 이전엔 물류비용 때문에 다른 곳에 가면 경쟁력이 없었다. 열차로 실어나르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다.

-칭짱철도 연장 계획은?

=7월1일 거얼무에서 열린 개통식 때 후진타오 주석은 내년부터 라싸와 르카즈를 연결하는 칭짱철도 연장공사를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르카즈는 인도와 매우 가까운 국경도시다. 올해 중·인 두 나라는 40년만에 국경무역을 재개했다. 르카즈까지 칭짱철도가 연장되면 국경무역 또한 촉진될 것이다. 앞으로 동남아와도 철도로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티베트에 한족 진출이 증가하는 데 대해 우려하는 티베트인들도 있다.

=한족과 티베트족은 같은 중화민족이다. 아직도 티베트 인구의 절대 다수인 92%가 티베트인이다. 다른 민족의 티베트 이주를 제한할 필요는 느끼지 못한다. 한족들은 대체로 사업을 위해 티베트에 온다. 이들은 티베트 산업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라싸/이상수 특파원

핸드폰 든 승려들 옆 오체투지 신도 물결
칭짱철도 따고 티베트를 가다 ②
변하는 티베트 변하지 않는 티베트
한겨레 이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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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싸 시내에 있는 라모체사원에서 티베트 불교 승려들이 한꺼번에 밖으로 나오고 있다. 이들은 많은 신도들 앞에서도 스스럼없이 어깨동무를 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라싸/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기획연재 : 칭짱 철도 타고 티베트를 가다
티베트에 대해 외부인들은 매우 종교적인 땅이라는 인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최근 4~5년 새 티베트의 도시 지역은 빠른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티베트의 성도 라싸의 젊은이들은 이미 전통 절기보다 밸런타인데이, 성탄절 등 서구 명절을 더 즐긴다. 밤마다 라싸의 디스코텍과 노래방에는 젊은이들이 넘쳐난다. 칭짱철도 개통은 라싸의 변신을 가속화시킬 전망이다. 맥도널드, 케이에프시(KFC), 스타벅스 등 대표적인 다국적 패스트푸드 체인점들은 칭짱철도 개통 이후 라싸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디스코텍·맥도널드·스타벅스…라싸는 변신중
경건한 신심도 여전…물질문명 파도 견뎌낼까?

벼락부자가 된 ‘살아있는 부처’=티베트의 변화는 이곳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불교 승려들의 겉모습에서도 느껴진다. 선글라스에 번쩍이는 구두를 신고 핸드폰을 받으며 상점을 기웃거리는 승려들의 모습에선 경건함을 찾아보기 힘들다. 노지심을 연상시키는 이 승려들은 관광객을 만나면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한다. 사진이라도 찍으면 그 대가를 내놓으라고 손을 벌린다.

» 이마와 팔꿈치, 무릎을 땅에 닿게 하는 오체투지는 한없이 자신을 낮춰 상대방에게 최대의 존경을 표하는 큰절이다. 라싸의 성지 조캉사원 앞에는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수많은 순례자들이 오체투지를 하며, 교만과 오만을 씻어내고 있다. 라싸/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티베트 불교는 ‘살아있는 부처’란 뜻의 ‘활불(린포체)’ 제도를 이어오고 있다. 티베트 전역에 160여명의 활불이 있으며, 이들이 입적하면 3~5년 뒤 어린이 가운데서 그의 환생을 찾아내어 대를 이어간다. 14일 티베트자치구 인민정부 민족종교사무위원회 사무실에서 만난 활불인 나다아왕 간쩡(66) 중국불교협회 티베트분회 부회장은 활불이 죽은 뒤 3~5살의 어린이 후보들 가운데서 활불의 환생을 뽑는 의식에 대해 설명했다. 성스러운 호수에 데려가 얼마나 마음이 진정되는지, 티베트 역법에 따라 계산할 때 입적한 활불이 다시 수태돼 어린이로 태어나기까지 시간이 맞는지 등을 살펴본 뒤, 병 속에 후보 어린이들의 이름을 적어 넣은 쪽지를 넣고 추첨해 결정한다.

활불은 티베트인들의 정신적 기둥이다. 그러나 최근 티베트 불교계의 한 모퉁이에서는 활불의 타락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15일 라싸 조캉사원(다자오쓰)에서 만난 한 티베트 승려는 “활불이 막대한 부를 끌어 모으는가 하면 정치활동에 앞장서 신도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부주석인 파파라 거례랑제같은 인물이 대표적이다. 이 승려에 따르면 활불인 그는 라싸 서민들 사이에서 “티베트 최고의 갑부”로 알려져 있다. 나취현 샤오덩사원의 활불 주캉 투덩커주 7세 또한 정협 상무위원 겸 티베트 정협 부주석 자리에 앉아 있고, 활불 자례 뤄쌍단쩡은 티베트자치구 부주석이다. 이 승려는 “활불에게는 수많은 신도들이 막대한 헌금을 바치기 때문에 손쉽게 치부를 할 수 있다”며 “활불의 치부는 티베트 불교 타락상의 단면도”라고 말했다.

» 티베트 불교의 개요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고행=칭짱철도의 개통으로 티베트는 격변을 강요받고 있다. 그러나 티베트 불교의 전통이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라싸의 대표적 사찰 조캉사원이나 라모체사원 앞에서 오체투지하는 신도들의 물결은 이들의 신심이 여전히 강함을 보여준다.

올해 서른네살의 런바잠추는 2004년 중국 간쑤성 샤허 라브랑쓰를 출발해 라싸까지 2년 동안 오체투지 삼보일배하며 왔다. 샤허에서 라싸까지는 직선거리로 2400㎞가 넘는다. 그는 1㎞쯤 앞에 먼저 짐을 끌어다 놓은 뒤 원래 지점으로 돌아가 짐 있는 곳까지 삼보일배하며 가는 방식으로 라싸까지 왔다. 이렇게 하면 하루 5㎞밖에 전진할 수 없다. 그가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이 고행에 나선 동기는 아버지와 형의 갑작스런 죽음이다. 2004년 그는 티베트 전통 방식에 따라 아버지와 형의 주검을 독수리에게 먹이는 ‘토쭌’(천장)으로 장례지낸 뒤 두개골의 이마 부분 뼈 두 개를 자신의 옷 가슴섶에 꿰매고 순례의 길에 올랐다. 자신이 절할 때마다 두 머리뼈도 함께 절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티베트 불교는 유목민의 불교다. 며칠 몇달 걸려 성지를 순례하는 건 그다지 큰일에 속하지 않는다. 중국정부는 티베트 유목민들을 정착시키기 위해 정착 지원금을 주는 등 ‘정주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칭짱철도의 개통도 새로운 도전이다. 이런 물질의 자극이 과연 윤회의 수레바퀴 자국을 따라 걷는 티베트인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할 수 있을까.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도 라싸 순례에 오르는 이들이 끝없이 재생산되는 걸 보면, 1천년 이상 이어져온 이들의 삶의 방식이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라싸/이상수 특파원 leess@hani.co.kr




티베트 불교의 개요

△불교 전래 이전 = 티베트 원시종교인 ‘번보’(번교) 신앙. 창시자는 ‘신라오미워차’(‘가장 걸출한 법사’란 뜻). 하늘·땅·해·달·별·번개·눈·우박·산천·계곡·돌·초목·금수 등 일체 만물에 얼이 있다고 믿는 일종의 ‘물활론’ 신앙. 티베트 창두에 번교 사원인 쯔주사 등이 남아 있고, 경전도 전해지고 있음.

△불교의 전래= 서기 5세기 하늘에서 여섯 가지 책이 내려왔으나 아무도 해독을 못해 잘 보관해서 후세인에게 전했다는 전설이 전해옴. 이 시기 불경이 이미 전래됐으나 번교 세력에 눌린 것으로 해석. 7세기 티베트를 통일하고 토번왕조를 연 첫 국왕 송찬간포 불교 받아들이고 12개의 사찰 세움.

△티베트 불교의 종파= 11세기부터 닝마, 까당, 샤카, 까쥐, 거루, 시제, 줴우, 줴낭, 궈자, 샤루 등 10개 종파 등장, 이 가운데 닝마, 까당, 샤카, 까쥐, 거루파 등 다섯 유력 종파가 오늘날까지 이어짐. 닝마파는 가장 오래된 종파란 뜻이고, 까당파는 가르침과 계율을 동시에 중시한다. 샤카파와 까쥐파는 둘 다 밀교를 중시하지만, 까쥐파는 특히 스승과 제자의 구전 가르침을 중시한다. 거루파는 다섯 종파 가운데 형성 시기가 가장 늦지만 계율 엄수를 강조해 티베트 불교의 혁신을 꾀했다.

△활불(린포체)= ‘살아있는 부처’란 뜻의 활불 화신제도는 티베트 불교의 특징 가운데 하나. 13세기 말 까마까쥐파에서 시작된 이래 다른 종파에도 퍼져 티베트 불교의 특징으로 자리 잡음. 달라이라마는 관음보살의 환생, 반찬라마는 무량광불의 환생으로 믿음. 티베트 전역에 160여명의 활불이 있으며 라싸에만 20여명이 있음.

△달라이라마= 16세기 거루파의 지도자에 대한 존칭에서 시작돼 티베트 최고 종교·정치 지도자의 명칭으로 뜻이 확대됨. ‘달라이’는 몽골어로 ‘큰 바다’, ‘라마’는 티베트어로 ‘큰 스승’의 뜻. 활불제도와 결합해 달라이라마가 죽으면 그로부터 3~5년 뒤 그의 환생을 찾아 계승하도록 함. 현재 14대 달라이라마인 단쩡자초(71)는 1959년 티베트 독립 봉기 실패 이후 망명해 망명정부를 이끌어왔음.

△반찬라마= 1645년 자스룬포사 주지에 ‘대학자’라는 뜻의 이 호칭을 내린 데서 비롯. 무량광불의 화신으로 신앙됨. 달라이라마는 정치·종교 지도자, 반찬라마는 종교 지도자. 달라이라마 공석일 때 반찬라마가 공백을 메움. 1989년 10세 반찬라마 입적 뒤 1995년 중국 정부 주도로 11세 반찬라마 확정.

△기념일= 티베트 역법에 따른 새해맞이 ‘전소법회’가 있고, 4월초파일 석가모니의 탄생과 성불을 기념하는 ‘석가절’, 티베트 역법 6월30일 하안거가 끝나는 날의 ‘설둔절’ 등이 중요한 기념일임.

» 집에도 들에도 걸려있는 타쭤는 해발 4,718m의 나무춰 호수에서도 나부끼고 있다.라싸/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 조캉사원에 수천개의 버터촛불이 불을 밝히고 있다. 조캉은 티베트인들에게 가장 성스러운 곳으로 순례자의 종착점이다.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 깊고 푸른 하늘속에 빛나는 태양을 타쭤를 묵은 줄이 가로지르고 있다.라싸/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 순례자들이 조캉사원에 마련된 큰 버터향로에 버터를 넣고 있다. 라싸/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 티베트인들의 불심은 각별하다. 라싸 인근 시골마을의 여성이 아침에 집에 모셔놓은 불상앞에 차를 올리고 있다.라싸/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 라싸 시내에 있는 라모체사원에서 티베트 불교 승려들. 라싸/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운명이 맺어준 인연 성지순례로 다져요”
[인터뷰] 라싸 불교사원 앞에서 만난 금발 아내·티베트 남편
한겨레 이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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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아달 카쌍잠초 부부. 김종수 기자
  기획연재 : 칭짱 철도 타고 티베트를 가다
지난 11일부터 19일까지 라싸의 성지 조캉사원 앞 신도들의 인파 속에서 눈에 띄는 이가 있었다. 오체투지하는 금발의 서양인은 라싸에서도 낯선 풍경이기 때문이다.

한국 이름이 ‘시이달’이라는 금발의 미국 여성 시다 바우 새지는 1996년부터 대구에서 탈춤과 택견을 배운 독특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봉산탈춤으로 연세대 국제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그는, 2000년 제1회 안동 국제 탈춤축제에서 티베트의 춤꾼 카쌍잠초 새지와 만나 결국 2005년 결혼했다. 한국이 인연을 맺어준 미국과 티베트 부부인 셈이다.

“나, 한눈에 한국사람으로 보이지 않아요?”라며 능청을 떠는 시이달은 카쌍잠초와 결혼하기까지 “모든 게 운명”이라고 말한다. 시이달은 중국어를, 카쌍잠초는 영어를 아직 배우기 전인 까닭에 의사소통이 어려웠던 두 사람은, 안동에서 만난 지 두 시간만에 카쌍잠초가 시이달 숙소로 전화를 걸어 무작정 “아이 러브 유”라고 고백하는 바람에 인연이 이어졌다. 이후 시이달의 근거지인 한국과 카쌍잠초의 고향인 중국 간쑤성 간난저우 마취현 아완창향을 오가며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문화와 언어를 접근시켰다. 2005년 8월 간난저우에서 티베트 전통 방식으로 혼례를 올린 두 사람은 “티베트의 전통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지난 6월25일 고향을 걸어서 출발했다. 많은 티베트 젊은이들이 오체투지 순례 전 우선 걸어서 라싸까지 가며 ‘훈련’을 한다. “2600㎞를 걸으면서 우리는 서로에게 영어와 티베트어를 가르쳐줬고, 전설·고향·별 이야기 등 수없이 많은 대화를 나눴어요. 티베트 불교의 성지순례 관습이 없었더라면 우린 이렇게 행복한 시간을 가질 수 없었을 겁니다.”

11일 라싸에 도착한 시이달 부부는 19일까지 조캉사원에서 매일 오체투지하다 고향으로 돌아갔다. 두 사람은 라싸까지 오는 길에서 만난 수많은 이들의 이야기를 수첩에 빼곡히 기록했다. “순례의 기록이 충분히 쌓이면 책으로 펴내 티베트인들의 삶을 세상에 알리는” 게 이들의 꿈이다. 라싸/이상수 특파원

발닿는 곳곳 ‘예부터 중국땅’ 주문
서남공정이 가져온 역사 왜곡 흔적들
사자상에도, 당안관에도 티베트는 없었다
한겨레 이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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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이징과 라싸를 잇는 칭짱철도는 티베트의 중국화를 가속화할 게 분명하다. 라싸에서 자동차로 3시간 정도 떨어진 당슝지역의 철로 옆에 사는 어린이들이 망원경으로 긴 철길을 살펴보고 있다. 라싸/김종수 기자
  기획연재 : 칭짱 철도 타고 티베트를 가다
[칭짱철도타고 티베트를 가다]
③ 티베트에서 본 동북공정의 미래

티베트의 상징인 포탈라궁은 199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해발 3600m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지역에 위치한 궁전인 포탈라궁은 건축 양식과 문양에서 티베트 특유의 섬세함과 화려함, 장엄함이 배어나온다.

뜬금없는 사자 석상=포탈라궁 앞에는 중국의 한족들이 좋아하는 사자 석상이 두 개 놓여 있다. 이 사자 석상은 중국 중앙정부가 소수민족의 문화유산을 ‘중국화’하기 위한 세심한 배려에서 배치한 것이다. 중국 랴오닝성 펑청시에 있는 고구려 산성인 봉황산성 입구에도 랴오닝성 정부가 성을 복원하면서 가져다 놓은 사자 석상이 있다.(〈한겨레〉 8월4일치) 포탈라궁 앞의 사자 석상과 마찬가지 맥락이다.

두 곳의 공통분모는 사자 석상에 그치지 않는다. 라싸의 포탈라궁에서 택시로 10분 거리에 있는 티베트박물관에 가면, 지안박물관에서 읽어본 듯한 설명문이 티베트의 역사를 설명한다.

1999년 세워진 티베트박물관은 티베트의 역사를 ‘구석기에서 7세기까지’와 ‘7세기 이후 현대까지’로 양분한다. 641년 송찬간포는 티베트 최초의 통일왕국인 토번국을 세운 뒤 당나라 문성공주를 두 번째 부인으로 맞아들인다. 박물관은 이때부터 “티베트와 (중국)중앙정부 사이에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맺어졌다고 설명한다. 티베트 사회 내부에서 역사 변화와 발전의 원동력을 발견하려 하는 대신, 오로지 중국의 왕조와 티베트가 어떤 관계를 맺었느냐만 가지고 티베트인의 역사를 멋대로 재단하고 있는 셈이다.

선사문화, 역사시기, 민속문화 등 9개의 전시실로 이뤄진 이 박물관은 명·청 시기의 옥과 도자기를 전시하면서도 “티베트는 중국 영토에서 떼어낼 수 없는 일부분”이라는 주장을 주문처럼 되풀이하고 있다. 심지어 중앙정부에서 내린 옥도장 같은 기물 또한 “티베트 지배의 증거”라는 식의 비학문적인 주장까지 담고 있다.

동북공정의 미래?=“티베트가 중국 영토의 떼어낼 수 없는 일부분”이라는 주장을 집대성한 기념비적인 건물은 티베트자치구 당안국 안에 있는 당안관이다. ‘당안’이란 영어 ‘파일’(file)에 해당하는 중국말이다. 이 당안관 안에는 당나라 때 이후 지금까지 티베트와 중국 왕조 사이에 서로 교환한 문서와 조약, 관련 기초 사료 등 3000여건이 보관돼 있다. 당안관은 토번왕조가 보낸 사신, 조공, 책봉 등을 근거로 원나라 이후 티베트가 줄곧 중국의 지배를 받아왔다고 주장한다. 중국 당국은 ‘사신이나 조공이 당시 아시아에서 외교·무역관계를 맺는 형식의 일종이었다’는 현대 역사학계의 해석을 저버리고, ‘중국 황제만이 유일한 천자이고, 주변 모든 나라는 황제의 책봉을 받는 신하국’이라는 중국 봉건시대의 황실사관을 채택하고 있는 셈이다.




» 포탈라궁 앞에 세워진 중국식 대형 석사자상.

중국은 티베트 지역의 영토 지배에 대한 역사적 근거를 확보하기 위해 1986년 국가 예산 6480만위안(약 81억원)을 들여 ‘중국티베트학연구중심’을 세웠다. 동북공정에 앞선 ‘서남공정’의 심장부인 셈이다. 이곳은 1994년 원나라 때부터 중화민국 시기(1240~1949년)까지 중국어·티베트어·만주어·몽골어 등으로 기록된 티베트 관련 사료 3200여건을 집대성한 7권의 〈원나라 이래 티베트 지방과 중앙정부의 관계 사료 모음〉을 펴냈으며, 1996년엔 〈원나라 이래 티베트 지방과 중앙정부의 관계 연구〉를 펴내 티베트 지배에 대한 ‘정사’를 확립했다. 현재는 연구 성과를 집대성한 ‘티베트통사’를 편찬중이다.

포탈라궁 앞의 사자 석상과 티베트박물관, 티베트당안관, 티베트학연구중심 등은 중국 당국이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편입하려는 동북공정을 추진하면서 어떤 청사진을 가지고 있는지를 가늠하게 해준다. 동북공정의 대규모 역사 왜곡은 남북한의 항의로 주춤거리거나 물밑으로 들어갔지만, 티베트에서 대규모로 진행되고 있는 역사 왜곡은 누가 나서 항의해줄 것인가. 포탈라궁 앞의 사자 석상이 주인 잃은 궁전을 더욱 을씨년스럽게 만들고 있다.

라싸/이상수 특파원 leess@hani.co.kr

» 라싸역 광장에 걸려있는 대형 오성홍기가 돌산 중턱의 마을 집들을 배경으로 펄럭이고 있다. 라싸/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단둘인 한국유학생 부부

문화에 매혹 흘러들어 티베트어 사전 편찬중

티베트 라싸 시내 동남쪽의 티베트대학에는 한국 유학생이 단 두 명 있다. 신정민(39)·공미옥(42) 부부가 그들이다. 이 대학 다뤄쌍랑제 부총장은 새 학기에 한국 유학생이 1명 더 늘어난다고 전했다.

두 사람은 2001년부터 간쑤성 간란 티베트자치주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다 티베트 문화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지난해 9월 이 대학 어학과정에 들어온 두 사람은 2년 과정을 마친 뒤에도 계속 라싸에 남아 티베트 문화를 공부할 생각이다.

티베트어-영어 사전, 티베트어-일어 사전 등은 일찌감치 나왔지만 아직 티베트어-한국어 사전은 나온 적이 없기 때문에 두 사람은 공부하면서 틈틈이 사전 편찬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티베트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많지만 가장 기초 도구인 사전이 없기 때문에 티베트를 알고 싶어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것 같다”는 신정민씨는 티베트어가 한국어와 매우 닮았다고 소개했다.

“티베트어는 표음문자로 주어-목적어-동사의 어순이 한국어와 같으며(중국어는 영어처럼 주어-동사-목적어의 어순), 한국어 만큼이나 까다롭고 복잡한 존댓말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어와 다른 점은 형용사가 명사를 뒤에서 수식하는 점 정도다.

특히 한자어가 70%나 차지하는 한국어와 달리 티베트어는 한자어의 영향이 거의 없어, 티베트 문화의 고유성을 잘 보여준다. ‘오토바이’, ‘컴퓨터’, ‘혁명’ 등 현대에 새로 생긴 낱말 정도만 한자어를 차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의 티베트 우대 정책 덕분에 티베트 대학 유학생의 한 학기 학비는 1050달러(약 105만원), 기숙사 비용은 월 1500위안(약 18만7500원)이다.

라싸/이상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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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등록 : 2006-09-24 오후 08:33:20 기사수정 : 2006-09-24 오후 08:37:19

[인터뷰] 귀국 티베트인 도르지츠단
1959년 인도로 탈출 98년 돌아와
“중국, 내게 배려…망명생활 낭비였다”
한겨레 이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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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연재 : 칭짱 철도 타고 티베트를 가다
도르지츠단(72)은 1998년 인도에서 티베트 라싸로 돌아왔다. 1959년 무장봉기 실패 이후 티베트가 극심한 혼란을 맞고 있던 1962년, 많은 티베트인들과 함께 무작정 국경을 넘은 그는 인도에 정착한 뒤 도로 건설 노동자, 인도인의 하인 등 막노동과 허드렛일로 생계를 유지해왔다. 1985년 중국이 티베트인의 귀국이나 방문을 장려한다는 소식을 접한 그는 인도주재 중국대사관에서 비자를 받아 라싸를 방문했다. 중국 정부의 지원으로 ‘번영한 라싸’를 본 그는 “30여년 인도 생활은 인생 낭비였다”고 탄식하며 98년 가족들과 함께 티베트로 영구 귀국했다.

중국 티베트자치주의 ‘귀국 티베트동포 영접위원회’는 그에게 7만위안(약 875만원)에 해당하는 25평 남짓한 아파트를 한 채 주었고, 명절 때마다 생필품을 보내주는 등 정착에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4일 라싸에서 만난 도르지츠단은 “인도에 살면서 어떤 사람도 현재의 중국 정부처럼 내게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며 “종교적 신념보다 살아남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의 ‘탈북자 정착 프로그램’과 같은 성격인 ‘티베트 동포 귀국 장려 정책’은 1979년 처음 시작됐다. 티베트자치주 귀국 티베트동포 영접위원회의 통계에 따르면 현재 인도·네팔·부탄 등지에 거주하는 해외 티베트인은 모두 15만명이며, 이 가운데 2000명이 1979년 이후 티베트로 돌아왔다. 물질적 보상을 앞세운 중국 당국의 새로운 티베트 동화정책인 셈이다.

라싸/이상수 특파원





[인터뷰] 귀국 티베트인 도르지츠단
1959년 인도로 탈출 98년 돌아와
“중국, 내게 배려…망명생활 낭비였다”
한겨레 이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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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연재 : 칭짱 철도 타고 티베트를 가다
도르지츠단(72)은 1998년 인도에서 티베트 라싸로 돌아왔다. 1959년 무장봉기 실패 이후 티베트가 극심한 혼란을 맞고 있던 1962년, 많은 티베트인들과 함께 무작정 국경을 넘은 그는 인도에 정착한 뒤 도로 건설 노동자, 인도인의 하인 등 막노동과 허드렛일로 생계를 유지해왔다. 1985년 중국이 티베트인의 귀국이나 방문을 장려한다는 소식을 접한 그는 인도주재 중국대사관에서 비자를 받아 라싸를 방문했다. 중국 정부의 지원으로 ‘번영한 라싸’를 본 그는 “30여년 인도 생활은 인생 낭비였다”고 탄식하며 98년 가족들과 함께 티베트로 영구 귀국했다.

중국 티베트자치주의 ‘귀국 티베트동포 영접위원회’는 그에게 7만위안(약 875만원)에 해당하는 25평 남짓한 아파트를 한 채 주었고, 명절 때마다 생필품을 보내주는 등 정착에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4일 라싸에서 만난 도르지츠단은 “인도에 살면서 어떤 사람도 현재의 중국 정부처럼 내게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며 “종교적 신념보다 살아남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의 ‘탈북자 정착 프로그램’과 같은 성격인 ‘티베트 동포 귀국 장려 정책’은 1979년 처음 시작됐다. 티베트자치주 귀국 티베트동포 영접위원회의 통계에 따르면 현재 인도·네팔·부탄 등지에 거주하는 해외 티베트인은 모두 15만명이며, 이 가운데 2000명이 1979년 이후 티베트로 돌아왔다. 물질적 보상을 앞세운 중국 당국의 새로운 티베트 동화정책인 셈이다.

라싸/이상수 특파원

달라이라마 영향력 막강…평화노선으로 자치 투쟁
홍콩 수준 자치 요구에 중국 “수용 불가”
달라이라마 영향력 커 비폭력 노선 견지
한겨레 이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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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시닝에서 달리던 칭짱철도 열차가 티베트 고원지역으로 들어서자 9월인데도 차창 밖엔 눈발이 쏟아졌다. 눈발 속에서 양떼들이 풀을 찾아 이동하고 있다. 라싸/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기획연재 : 칭짱 철도 타고 티베트를 가다
[칭짱철도타고 티베트를 가다]
④ 독립인가 동화인가

티베트 달력으로 새해 첫날은 지난 2월28일이었다. 올해의 경우 중국 설(1월29일)과 한달 정도 차이가 났다. 새해 첫 명절인 ‘전소법회’ 때 티베트인들은 가장 좋은 옷으로 차려입고 티베트 불교사원을 찾는다. 티베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치장은 소매와 발목에 수달피를 대고 어깨에서 허리까지는 타잔처럼 표범 가죽을 맞모금으로 걸치는 차림이다. 그러나 올해 전소법회 때는 이렇게 동물 가죽으로 치장한 이들이 현저하게 줄었다. 티베트자치구 인민정부의 관계자도 16일 “올해는 동물 가죽 치장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고 인정할 정도였다. 왜 이런 갑작스런 변화가 생겼을까?

달라이라마를 위해 밥을 짓더라도=16일 라싸의 고찰 조캉사원(다자오쓰) 앞에서 만난 한 티베트인은 이런 변화가 “달라이라마의 호소”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1959년 이후 인도에 망명중인 달라이라마는 새해를 앞두고 연 집회에서 동물 가죽 옷을 입지 말라고 동포들에게 호소한 바 있다. 달라이라마는 “당신이 가죽옷을 한 벌 입으면 누군가는 동물 한 마리를 죽인다”고 말했다.

의문은 또 생긴다. 언론 통제가 삼엄한 중국 내 티베트인들이 달라이라마의 호소를 어떻게 알았을까? 이 티베트인은 지난해 말 중국 정부로부터 정식 비자를 받고 인도를 방문한 이들 가운데 4000여명이 달라이라마의 집회에 참석했으며, 몰래 국경을 넘은 이들도 4000여명에 이른다고 귀띔했다. 이들이 돌아온 뒤 달라이라마의 메시지를 친지들에게 전했다는 것이다. 망명지의 달라이라마는 여전히 티베트인들에게 정신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셈이다. 그 영향력은 어느 정도나 될까?

16일 라무체사원 앞에서 만난 또 다른 티베트 청년은 12월에 인도 다람살라로 갈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어머니는 살아생전 달라이라마를 직접 한번 보는 게 소원이다. 그러나 너무 늙고 건강도 좋지 않아 인도에 직접 갈 형편이 못 된다. 그래서 내가 갈 생각이다.” 그럴 경우 그는 중국 땅을 다시 밟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청년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네가 달라이라마를 만난다면 다시는 나를 보러 오지 않아도 좋다. 그를 위해 밥을 짓거나 빨래를 하거나 청소를 한다면, 너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일거리를 찾은 것이다. 그게 나를 보러 오는 것보다 더 소중하며, 박사 학위를 따는 것보다 더 소중하다.” 이 청년은 어머니의 말이 “티베트인의 일반적 관점”이라고 덧붙였다.

» 들녁에서 걸어온 한 남매가 곧게 뻗은 도로가에서 낯선 이방인들을 만나자 걸음을 멈췄다. 남매는 부끄러운 듯 시선을 먼곳으로 돌렸으나, 엷은 미소를 지으면서 오랫동안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라싸/김종수 기자jongsoo@hani.co.kr
티베트 미래의 전환점=1959년 이후 망명정부를 이끌어온 달라이라마는 중국과 엄청난 유혈투쟁을 대가로 치러야 할 ‘티베트 독립’보다는 ‘고도의 티베트 자치’를 요구하는 중도노선을 걸어왔다. ‘고도의 자치’란 ‘홍콩 수준의 자치’를 뜻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지난 2001년엔 망명 티베트인의 직접선거를 통해 삼동 린포체를 ‘정부 수석부장’(행정부 최고 수장)으로 선출함으로써 정치와 종교를 분리시키는 개혁을 완수했다. 그는 또 어린이들 가운데 ‘환생’을 찾아내는 전통 달라이라마 계승 방식 대신 가톨릭의 교황처럼 선출방식을 도입하는 종교개혁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티베트 망명정부와 중국 당국은 ‘티베트 문제’에 관해 줄곧 평행선을 그어왔다. 16일 라싸에서 만난 쑹빙린 티베트자치구 외사판공실 부주임은 “티베트는 이미 자치를 실시하고 있다”며 “달라이라마의 개인 자격 방중은 환영하지만 망명정부의 수반 자격으론 안 된다”고 못박았다.

1989년 라싸 소요사태 이후 티베트는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 티베트의 안정에는 중국 정부의 막대한 지원과 더불어 달라이라마의 비폭력·평화 노선도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아주주간> 최근호는 71살 고령의 달라이라마 이후엔 티베트 망명정부가 비폭력·평화 노선 대신 무장투쟁을 포함한 더욱 급진적인 수단을 채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한다. 지금은 달라이라마의 권위에 가려 있지만, 젊은 망명 승려들이나 티베트청년회 등 급진 단체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티베트 독립을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고 주장해 왔기 때문이다. 티베트청년회를 4년간 이끌어온 푼촉 청년회장은 달라이라마의 비폭력 노선에 이견을 숨기지 않으며, “청년회는 티베트를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도 동원할 것이며, 무장투쟁이 독립을 가져온다면 전면 지지할 것”이라고 말해 왔다. 이 때문에 티베트의 미래는 앞으로 몇 해가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끝>




라싸/이상수 특파원 leess@hani.co.kr

△1888년, 1903년 영국 두 차례에 걸쳐 티베트 침략. 1903년 라싸 점령 뒤 13세 달라이라마 추방하고 <라싸 조약> 맺음.

△1907년 8월31일 영국·러시아 <영·러 동맹조약> 체결. 중국의 티베트에 대한 ‘영토 주권’을 부인하고 ‘종주권’을 가지고 있다고 기록.

△1942년 티베트 정부 ‘외교국’ 만들고 외무대신 임명.

△1947년 3월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범아시아회의’에 티베트 대표 참가. 회의장의 아시아 지도에 티베트가 독립 국가로 표시되고 만국 국기에 티베트기가 걸림. 중국 대표단 항의로 수정.

△1949년 중국 인민해방군 티베트 침투 작전 개시. 마오쩌둥 주석 “티베트 자치” 약속. 미국 언론 “미국은 이미 티베트를 독립 자유 국가로 승인할 준비가 돼 있다”고 보도.

△1950년 10월7일 중국 인민해방군 티베트 진주. 티베트의 무장 저항 시작.

△1950년 11월 14대 달라이라마 텐진갸초, 티베트의 정치·종교 업무 정식 관장.

△1950년 11월1일 애치슨 미 국무장관, 공개적으로 “중국의 티베트 ‘해방’은 ‘침략’”이라고 공개 비난. 같은 달 미국, 유엔에 티베트 결의안 제출, 중국 반대로 통과 안 됨.

△1951년 5월23일 티베트를 중국에 병합하기 위한 ‘티베트 평화 해방 방법에 관한 중앙인민정부와 티베트지방정부의 협의’(17조 협의) 서명.

△1951년 10월26일 중국 인민해방군 라싸 입성.

△1952년 3~4월 티베트인 루캉와와 롭쌍타시가 이끄는 지하조직 ‘티베트 인민회의’ 라싸에서 봉기, ‘17조 협의’에 반대하고 인민해방군의 티베트 철수를 주장.

△1954년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달라이라마를 전인대 상무위 부위원장으로 선출. 달라이라마, 베이징으로 가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덩샤오핑 등과 회담. 인도, 중국과 협정 통해 중국의 티베트 군사 점령을 문제 삼지 않기로 함.

△1955년 티베트인 칼룬쏘캉과 왕친거럭이 이끈 무장봉기 발생.

△1956년 티베트 무장 반란세력 라싸의 중국 인민해방군 포위 공격, 사상자 수백명 발생.

△1957년 1월 중국 저우언라이 총리 인도 방문 때 달라이라마와 판첸라마에게 마오쩌둥 주석의 편지 전달. 편지는 “제2차 5개년 계획(1958~1962년) 기간 동안은 티베트 개혁에 착수하지 않는다. 이 기간이 지난 뒤 티베트의 개혁에 착수할 것인지는 그 때 티베트의 상황과 조건에 따라 결정한다”는 내용.

△1957년 5월 티베트인 칼룬류사 툽텐타르바와 쥬메도르지의 주도로 지하 독립운동단체인 ‘추시강추(사수육강)’ 조직, 이어 ‘위교군(衛敎軍)’ 창설한 뒤 “티베트 독립” 주장하며 무장투쟁 벌임. 중국 인민해방군과 격렬한 교전. 티베트의 참도(중국명 창두), 딩친(딩칭), 낙추(헤어허), 로카(산난) 등 지역에서 중국인 관리 살해, 교통 시설 파괴, 인민해방군 공격.

△1959년 3월10일 라싸에서 티베트 위교군 전면 무장봉기. 달라이라마, 이날 오후 3시 티베트에 주둔 중이던 인민해방군 병영 강당에서 상연될 연극 관람 예정. 하루 전인 9일 저녁 모번 라싸 시장이 “인민해방군이 내일 달라이라마를 연극에 초대한 뒤 베이징으로 납치하려 한다”며 “노부링카(달라이라마가 기거하던 여름궁전)으로 가 달라이라마에게 인민해방군 병영에 가지 말 것 청원하자”고 주장. 10일 새벽부터 2000여명의 군중이 노부링카 앞에서 “티베트 독립” “한족 몰아내자” 등 구호 외치며 시위. “인민해방군이 달라이라마를 연극에 초대한 뒤 독살하려 한다”는 유언비어 퍼짐. 소요 사태 확산. 티베트인으로 인민해방군 부사령원(부사령관) 자리에 오른 쌍포 체왕런친 등 시위대에 구타당함. ‘티베트자치구’ 주비위원회 위원인 켄총팍발라 쏘남걀초, 시위대에 구타당해 사망. 시위 주도 세력, ‘인민대표회의’, ‘티베트 독립국 인민회의’를 개최하고 “티베트 독립” 선언. 무장 소요 확산. 인민해방군 진압 시작.

△1959년 3월17일 달라이라마, 어깨에 영국제 장총 한 자루를 멘 병사로 위장한 뒤 80여명의 호위단과 함께 포탈라궁을 빠져나옴.

△1959년 3월31일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로 망명, 이 즈음 10만 이상의 티베트인이 국경을 넘어 인도로 망명. 인도 북부 다람살라(Dharamsala)에 정착.

△1959년 중국공산당, 티베트에서 정·교분리, 전통 농업·목축업의 사회주의적 개조에 착수.

△1960년 9월2일 각 지역에서 선출한 13명의 티베트 대표 다람살라에 모여 달라이라마 앞에서 취임 선서. 정식으로 티베트 망명정부와 의회 세움.

△1963년 달라이라마 ‘티베트 민주 헌법’ 초안 발표.

△1965년 티베트자치구 출범.

△1966~1976년 중국 ‘문화대혁명’ 기간 동안 티베트에서 수천 곳의 사원과 수도원이 파괴 약탈당하고 승려들이 환속 당함. 티베트에 인도를 겨냥한 중국의 핵미사일 기지가 설치되고 티베트의 주요 강물이 오염되기 시작함.

△1985년 미국 하원 의원 91명 ‘티베트 지원 결의문’에 서명,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임위원장에게 보냄.

△1987년 티베트 라싸에서 승려들이 주도한 소요 사태 발생.

△1987년 달라이라마, 워싱턴 미 국회 인권위원회에서 연설. 다섯 가지 평화 정책 제의. 티베트를 평화구역으로 만들 것, 중국은 식민정책을 포기할 것, 티베트의 민주·자유와 기본 인권을 보장할 것, 핵 관련 행위 중단하고 환경 복구와 보호에 힘쓸 것, 티베트 위상 정립을 위한 진지한 협상의 문을 열 것 등.

△1988년 달라이라마, 스트라스부르 유럽 의회에서 연설. 티베트를 무장해제지역으로 만들어 세계 최대의 자연 공원으로 만들 것 제안. 중국 당국, 티베트 망명정부와 대화 일방 중단.

△1989년 10대 판첸라마 입적.

△1989년 라싸를 중심으로 소요 사태 확산, 티베트에 계엄령 선포. 10월 달라이라마, 노벨평화상 수상.

△1992년 중국 당국, 티베트 망명정부와 접촉 재개.

△1994년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제3차 ‘중공중앙 티베트공작 좌담회’ 티베트 지원 위한 62개 항목 확정.

△1995년 중국 정부 주도로 11대 판첸라마 확정.

△1999년 중국 당국, 1989년에 선포했던 계엄령 해제.

△2000년 1월1일, 중국 당국에 의해 승인을 받았던 17대 카르마파 린포체, 인도의 다람살라로 망명.

△2001년 티베트 망명정부, 망명 티베트인의 직접 선거를 통해 쌍둔 린포체를 ‘정부 수석부장’(행정부의 최고 수장)으로 선출, 정치-종교 분리, 티베트 망명정부 민주주의 발전의 전환점 마련.

△2002년 6월30일 제4차 ‘중공중앙 티베트공작 좌담회’, 칭짱철도 건설 포함 티베트 지원 117개 항목 확정.

△2006년 7월1일 중국 칭하이성 거얼무와 티베트 라싸를 연결하는 ‘칭짱철도’ 개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