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회의 삶터 깨운 ‘철마의 경적’ | |
[기획] 칭짱 철도 타고 티베트를 가다 ① ‘성스러운 땅’이 열리다 | |
이상수 기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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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숨은 ‘성스러운 땅’ 하늘 길 넘어 방문객 급증
티베트에는 유난히 성스러운 땅이 많다. 자치구의 수도인 라싸 자체가 ‘성스러운 땅’ ‘신의 도시’란 뜻을 가지고 있다. 티베트인들은 색감과 조형미가 뛰어나다. 아파트 창문에조차 조그마한 단청을 꾸민다. 화려한 색감은 티베트 자연의 수려한 풍광과 무관하지 않다. 현대사회에서 티베트인들 만큼 자연과 어울려 살아가는 겨레도 찾아보기 어렵다. 전통 장례인 ‘토쭌’(천장)은 죽은 이의 살과 뼈를 찢어 독수리나 물고기한테 주어 치른다. 이승을 떠난 부모형제의 살을 먹고 자란 새나 물고기를 만날 수도 있다고 믿기에 티베트인들은 새나 물고기를 사양한다. 티베트에서는 사람조차 먹이사슬의 둥근 원 안에 자리한다. 티베트인들은 한평생 ‘성스러운 땅’ 라싸를 맴돈다. 온몸을 땅바닥에 엎드리며 걸어(오체투지) 라싸까지 순례한다. 라싸에서는 달라이라마의 겨울궁전인 포탈라궁이나 유서깊은 조캉 사원(다자오쓰) 주위를 기도하며 맴돈다. 이들의 발걸음은 한평생 둥근 원을 그린다. 죽은 뒤에도 윤회의 둥근 고리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환생한다고 믿는다. 관음보살의 화신인 달라이라마나 무량광불의 화신인 판첸라마가 숨지면, 온갖 힘을 기울여 그가 환생한 어린이를 찾아낸다. 티베트에서는 삶과 죽음조차 윤회의 원 안에 있다.
윤회의 터전에 직선의 칭짱철도=모든 사람들이 동그라미를 그리며 살아가는 라싸에 가장 직선으로 달리는 교통수단인 열차가 지난 7월 첫 경적소리를 울렸다. 철마가 마지막으로 숨은 경건한 땅까지 들이닥쳐, 지난 200년 동안 자신이 수행했던 산업화와 근대화의 상징 구실을 마지막으로 수행한 셈이다. 2002년 중국 서남 열차의 종점이던 칭하이성 거얼무에서 첫삽을 뜬 칭짱철도는 지난해 10월12일 거얼무∼라싸 구간의 공사를 마친 뒤 시험 운행을 거쳐 지난 7월 1일 성대한 개통식을 열었다. 개통식에는 1988~92년 4년 동안 티베트 공산당위원회 서기를 맡았던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직접 참석했다. 평균 해발 4천m를 지나는 이 철길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고원을 운행해, 이미 ‘하늘의 길’이란 별명을 얻었다. 이 고원 열차는 칭하이성 서쪽의 거얼무에서 고원용 기관차로 머리를 바꿔단 뒤 칭짱고원을 오른다. 시닝에서 라싸까지는 26시간, 베이징에서 라싸까지는 48시간을 꼬박 달린다. ‘원형’의 문화 가로지른 ‘직선’ 어디로
퉈쥐를 지나 해발 4702m인 안둬에 이르면 이끼와 잔풀이 융단처럼 황무지를 감싸기 시작한다. 황무지 위로 풀빛이 짙어지면서 차창 밖에 등장하는 생명체 또한 양, 야크(들소), 노루, 까마귀 등 다양해진다. 철마가 춰나 호수를 지나면 풍광은 절정에 다가간다. 이끼와 잔풀은 고원의 바람에 나부끼며 무성해진다. 옛 서북방 민족들의 활동무대인 나취와 당슝을 지나면 눈산과 끝없는 고원, 부드러운 초원과 늪지대, 복류천과 강물 등 고원의 모든 풍광들이 한꺼번에 등장해 대단원에 이르렀음을 고한다. 평균 해발 4000m에서 연출되는 절경들은 두통과 호흡곤란, 협심증 등 고산병 증세를 대가로 요구한다. 칭짱열차는 객실 좌석마다 산소를 공급하며, 두 명의 의사가 비상 대기한다. 열차 운행 때마다 3~10여명이 산소마스크 신세를 진다. 이 철도 개통 이후 지금까지 고산병 증세로 숨진 사람은 아직 없다. 칭짱철도공사 외사판공실의 왕페이쉰(51) 주임은 “칭짱철도 개통 이후 9명이 사망했다는 일부 중국 매체의 보도는 오보”라고 밝혔다. 개발과 파괴의 두 모습, 칭짱철도=철도 개통 이전에 티베트로의 주요 교통수단은 불편한 버스나 비행기였다. 중국의 서민들은 감히 티베트 여행을 꿈꾸기 어려웠다. 화물열차가 운행되면 티베트를 오가는 물류비용은 더욱 떨어질 전망이다. 니마츠런 티베트자치구 부주석은 15일 “철도 이용 전 물류비용은 1t의 화물을 1㎞ 우송하는 데 5~6마오(약 62.5~75원)였으나, 철도를 이용할 경우는 1마오(약 12.5원)로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라싸시의 통계는 철도 개통 이후 라싸 방문객이 두 달 동안 50~60% 이상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철도의 개통이 티베트인들의 삶을 한결 윤택하게 만들어줄 것이라는 예상은 개발에 따르는 당연한 기대다. 티베트인들이 꾸려 온 자연 친화적인 삶을 파괴할 것이라는 우려 역시 따른다. 한족의 빠른 유입으로 티베트 지역의 ‘중국화’가 가속화할 것이라고 걱정하는 소리가 가장 높다. 라싸 지역에서 택시 운전기사는 80%가 한족이다. 라싸의 경제는 외지에서 온 투자자들이 쥐락펴락한다. 분명한 것은 칭짱철도가 원형의 윤회 터전인 티베트에 현대화된 직선의 삶을 옮겨올 것이라는 점이다. 그 직선의 삶이 외지인들에 의한 티베트 사회·경제 지배 현상의 심화일지, 아니면 티베트인들 스스로의 현대화된 삶일지는 두고 볼 일이다. 라싸/글 이상수 특파원 lee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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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니마츠런 티베트자치구 부주석 | |
관광산업 진흥시킬 계기 내년 인도국경까지 연장 | |
이상수 기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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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짱철도 개통이 티베트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다방면에 걸쳐 전면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거얼무에서 라싸까지 유통비용 원가가 크게 줄어 관광산업을 진흥시킬 계기가 마련됐다. 티베트의 생산품은 이전엔 물류비용 때문에 다른 곳에 가면 경쟁력이 없었다. 열차로 실어나르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다. -칭짱철도 연장 계획은? =7월1일 거얼무에서 열린 개통식 때 후진타오 주석은 내년부터 라싸와 르카즈를 연결하는 칭짱철도 연장공사를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르카즈는 인도와 매우 가까운 국경도시다. 올해 중·인 두 나라는 40년만에 국경무역을 재개했다. 르카즈까지 칭짱철도가 연장되면 국경무역 또한 촉진될 것이다. 앞으로 동남아와도 철도로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티베트에 한족 진출이 증가하는 데 대해 우려하는 티베트인들도 있다. =한족과 티베트족은 같은 중화민족이다. 아직도 티베트 인구의 절대 다수인 92%가 티베트인이다. 다른 민족의 티베트 이주를 제한할 필요는 느끼지 못한다. 한족들은 대체로 사업을 위해 티베트에 온다. 이들은 티베트 산업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라싸/이상수 특파원 |
핸드폰 든 승려들 옆 오체투지 신도 물결 | |
칭짱철도 따고 티베트를 가다 ② 변하는 티베트 변하지 않는 티베트 | |
이상수 기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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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코텍·맥도널드·스타벅스…라싸는 변신중 벼락부자가 된 ‘살아있는 부처’=티베트의 변화는 이곳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불교 승려들의 겉모습에서도 느껴진다. 선글라스에 번쩍이는 구두를 신고 핸드폰을 받으며 상점을 기웃거리는 승려들의 모습에선 경건함을 찾아보기 힘들다. 노지심을 연상시키는 이 승려들은 관광객을 만나면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한다. 사진이라도 찍으면 그 대가를 내놓으라고 손을 벌린다.
활불은 티베트인들의 정신적 기둥이다. 그러나 최근 티베트 불교계의 한 모퉁이에서는 활불의 타락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15일 라싸 조캉사원(다자오쓰)에서 만난 한 티베트 승려는 “활불이 막대한 부를 끌어 모으는가 하면 정치활동에 앞장서 신도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부주석인 파파라 거례랑제같은 인물이 대표적이다. 이 승려에 따르면 활불인 그는 라싸 서민들 사이에서 “티베트 최고의 갑부”로 알려져 있다. 나취현 샤오덩사원의 활불 주캉 투덩커주 7세 또한 정협 상무위원 겸 티베트 정협 부주석 자리에 앉아 있고, 활불 자례 뤄쌍단쩡은 티베트자치구 부주석이다. 이 승려는 “활불에게는 수많은 신도들이 막대한 헌금을 바치기 때문에 손쉽게 치부를 할 수 있다”며 “활불의 치부는 티베트 불교 타락상의 단면도”라고 말했다.
올해 서른네살의 런바잠추는 2004년 중국 간쑤성 샤허 라브랑쓰를 출발해 라싸까지 2년 동안 오체투지 삼보일배하며 왔다. 샤허에서 라싸까지는 직선거리로 2400㎞가 넘는다. 그는 1㎞쯤 앞에 먼저 짐을 끌어다 놓은 뒤 원래 지점으로 돌아가 짐 있는 곳까지 삼보일배하며 가는 방식으로 라싸까지 왔다. 이렇게 하면 하루 5㎞밖에 전진할 수 없다. 그가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이 고행에 나선 동기는 아버지와 형의 갑작스런 죽음이다. 2004년 그는 티베트 전통 방식에 따라 아버지와 형의 주검을 독수리에게 먹이는 ‘토쭌’(천장)으로 장례지낸 뒤 두개골의 이마 부분 뼈 두 개를 자신의 옷 가슴섶에 꿰매고 순례의 길에 올랐다. 자신이 절할 때마다 두 머리뼈도 함께 절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티베트 불교는 유목민의 불교다. 며칠 몇달 걸려 성지를 순례하는 건 그다지 큰일에 속하지 않는다. 중국정부는 티베트 유목민들을 정착시키기 위해 정착 지원금을 주는 등 ‘정주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칭짱철도의 개통도 새로운 도전이다. 이런 물질의 자극이 과연 윤회의 수레바퀴 자국을 따라 걷는 티베트인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할 수 있을까.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도 라싸 순례에 오르는 이들이 끝없이 재생산되는 걸 보면, 1천년 이상 이어져온 이들의 삶의 방식이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라싸/이상수 특파원 lee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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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이 맺어준 인연 성지순례로 다져요” | |
[인터뷰] 라싸 불교사원 앞에서 만난 금발 아내·티베트 남편 | |
이상수 기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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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이름이 ‘시이달’이라는 금발의 미국 여성 시다 바우 새지는 1996년부터 대구에서 탈춤과 택견을 배운 독특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봉산탈춤으로 연세대 국제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그는, 2000년 제1회 안동 국제 탈춤축제에서 티베트의 춤꾼 카쌍잠초 새지와 만나 결국 2005년 결혼했다. 한국이 인연을 맺어준 미국과 티베트 부부인 셈이다. “나, 한눈에 한국사람으로 보이지 않아요?”라며 능청을 떠는 시이달은 카쌍잠초와 결혼하기까지 “모든 게 운명”이라고 말한다. 시이달은 중국어를, 카쌍잠초는 영어를 아직 배우기 전인 까닭에 의사소통이 어려웠던 두 사람은, 안동에서 만난 지 두 시간만에 카쌍잠초가 시이달 숙소로 전화를 걸어 무작정 “아이 러브 유”라고 고백하는 바람에 인연이 이어졌다. 이후 시이달의 근거지인 한국과 카쌍잠초의 고향인 중국 간쑤성 간난저우 마취현 아완창향을 오가며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문화와 언어를 접근시켰다. 2005년 8월 간난저우에서 티베트 전통 방식으로 혼례를 올린 두 사람은 “티베트의 전통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지난 6월25일 고향을 걸어서 출발했다. 많은 티베트 젊은이들이 오체투지 순례 전 우선 걸어서 라싸까지 가며 ‘훈련’을 한다. “2600㎞를 걸으면서 우리는 서로에게 영어와 티베트어를 가르쳐줬고, 전설·고향·별 이야기 등 수없이 많은 대화를 나눴어요. 티베트 불교의 성지순례 관습이 없었더라면 우린 이렇게 행복한 시간을 가질 수 없었을 겁니다.” 11일 라싸에 도착한 시이달 부부는 19일까지 조캉사원에서 매일 오체투지하다 고향으로 돌아갔다. 두 사람은 라싸까지 오는 길에서 만난 수많은 이들의 이야기를 수첩에 빼곡히 기록했다. “순례의 기록이 충분히 쌓이면 책으로 펴내 티베트인들의 삶을 세상에 알리는” 게 이들의 꿈이다. 라싸/이상수 특파원 |
발닿는 곳곳 ‘예부터 중국땅’ 주문 | |
서남공정이 가져온 역사 왜곡 흔적들 사자상에도, 당안관에도 티베트는 없었다 | |
이상수 기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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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티베트에서 본 동북공정의 미래
티베트의 상징인 포탈라궁은 199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해발 3600m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지역에 위치한 궁전인 포탈라궁은 건축 양식과 문양에서 티베트 특유의 섬세함과 화려함, 장엄함이 배어나온다. 뜬금없는 사자 석상=포탈라궁 앞에는 중국의 한족들이 좋아하는 사자 석상이 두 개 놓여 있다. 이 사자 석상은 중국 중앙정부가 소수민족의 문화유산을 ‘중국화’하기 위한 세심한 배려에서 배치한 것이다. 중국 랴오닝성 펑청시에 있는 고구려 산성인 봉황산성 입구에도 랴오닝성 정부가 성을 복원하면서 가져다 놓은 사자 석상이 있다.(〈한겨레〉 8월4일치) 포탈라궁 앞의 사자 석상과 마찬가지 맥락이다. 두 곳의 공통분모는 사자 석상에 그치지 않는다. 라싸의 포탈라궁에서 택시로 10분 거리에 있는 티베트박물관에 가면, 지안박물관에서 읽어본 듯한 설명문이 티베트의 역사를 설명한다. 1999년 세워진 티베트박물관은 티베트의 역사를 ‘구석기에서 7세기까지’와 ‘7세기 이후 현대까지’로 양분한다. 641년 송찬간포는 티베트 최초의 통일왕국인 토번국을 세운 뒤 당나라 문성공주를 두 번째 부인으로 맞아들인다. 박물관은 이때부터 “티베트와 (중국)중앙정부 사이에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맺어졌다고 설명한다. 티베트 사회 내부에서 역사 변화와 발전의 원동력을 발견하려 하는 대신, 오로지 중국의 왕조와 티베트가 어떤 관계를 맺었느냐만 가지고 티베트인의 역사를 멋대로 재단하고 있는 셈이다. 선사문화, 역사시기, 민속문화 등 9개의 전시실로 이뤄진 이 박물관은 명·청 시기의 옥과 도자기를 전시하면서도 “티베트는 중국 영토에서 떼어낼 수 없는 일부분”이라는 주장을 주문처럼 되풀이하고 있다. 심지어 중앙정부에서 내린 옥도장 같은 기물 또한 “티베트 지배의 증거”라는 식의 비학문적인 주장까지 담고 있다. 동북공정의 미래?=“티베트가 중국 영토의 떼어낼 수 없는 일부분”이라는 주장을 집대성한 기념비적인 건물은 티베트자치구 당안국 안에 있는 당안관이다. ‘당안’이란 영어 ‘파일’(file)에 해당하는 중국말이다. 이 당안관 안에는 당나라 때 이후 지금까지 티베트와 중국 왕조 사이에 서로 교환한 문서와 조약, 관련 기초 사료 등 3000여건이 보관돼 있다. 당안관은 토번왕조가 보낸 사신, 조공, 책봉 등을 근거로 원나라 이후 티베트가 줄곧 중국의 지배를 받아왔다고 주장한다. 중국 당국은 ‘사신이나 조공이 당시 아시아에서 외교·무역관계를 맺는 형식의 일종이었다’는 현대 역사학계의 해석을 저버리고, ‘중국 황제만이 유일한 천자이고, 주변 모든 나라는 황제의 책봉을 받는 신하국’이라는 중국 봉건시대의 황실사관을 채택하고 있는 셈이다.
중국은 티베트 지역의 영토 지배에 대한 역사적 근거를 확보하기 위해 1986년 국가 예산 6480만위안(약 81억원)을 들여 ‘중국티베트학연구중심’을 세웠다. 동북공정에 앞선 ‘서남공정’의 심장부인 셈이다. 이곳은 1994년 원나라 때부터 중화민국 시기(1240~1949년)까지 중국어·티베트어·만주어·몽골어 등으로 기록된 티베트 관련 사료 3200여건을 집대성한 7권의 〈원나라 이래 티베트 지방과 중앙정부의 관계 사료 모음〉을 펴냈으며, 1996년엔 〈원나라 이래 티베트 지방과 중앙정부의 관계 연구〉를 펴내 티베트 지배에 대한 ‘정사’를 확립했다. 현재는 연구 성과를 집대성한 ‘티베트통사’를 편찬중이다. 포탈라궁 앞의 사자 석상과 티베트박물관, 티베트당안관, 티베트학연구중심 등은 중국 당국이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편입하려는 동북공정을 추진하면서 어떤 청사진을 가지고 있는지를 가늠하게 해준다. 동북공정의 대규모 역사 왜곡은 남북한의 항의로 주춤거리거나 물밑으로 들어갔지만, 티베트에서 대규모로 진행되고 있는 역사 왜곡은 누가 나서 항의해줄 것인가. 포탈라궁 앞의 사자 석상이 주인 잃은 궁전을 더욱 을씨년스럽게 만들고 있다. 라싸/이상수 특파원 leess@hani.co.kr
단둘인 한국유학생 부부
문화에 매혹 흘러들어 티베트어 사전 편찬중
티베트 라싸 시내 동남쪽의 티베트대학에는 한국 유학생이 단 두 명 있다. 신정민(39)·공미옥(42) 부부가 그들이다. 이 대학 다뤄쌍랑제 부총장은 새 학기에 한국 유학생이 1명 더 늘어난다고 전했다. 두 사람은 2001년부터 간쑤성 간란 티베트자치주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다 티베트 문화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지난해 9월 이 대학 어학과정에 들어온 두 사람은 2년 과정을 마친 뒤에도 계속 라싸에 남아 티베트 문화를 공부할 생각이다. 티베트어-영어 사전, 티베트어-일어 사전 등은 일찌감치 나왔지만 아직 티베트어-한국어 사전은 나온 적이 없기 때문에 두 사람은 공부하면서 틈틈이 사전 편찬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티베트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많지만 가장 기초 도구인 사전이 없기 때문에 티베트를 알고 싶어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것 같다”는 신정민씨는 티베트어가 한국어와 매우 닮았다고 소개했다. “티베트어는 표음문자로 주어-목적어-동사의 어순이 한국어와 같으며(중국어는 영어처럼 주어-동사-목적어의 어순), 한국어 만큼이나 까다롭고 복잡한 존댓말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어와 다른 점은 형용사가 명사를 뒤에서 수식하는 점 정도다. 특히 한자어가 70%나 차지하는 한국어와 달리 티베트어는 한자어의 영향이 거의 없어, 티베트 문화의 고유성을 잘 보여준다. ‘오토바이’, ‘컴퓨터’, ‘혁명’ 등 현대에 새로 생긴 낱말 정도만 한자어를 차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의 티베트 우대 정책 덕분에 티베트 대학 유학생의 한 학기 학비는 1050달러(약 105만원), 기숙사 비용은 월 1500위안(약 18만7500원)이다. |
기사등록 : 2006-09-24 오후 08:33:20 기사수정 : 2006-09-24 오후 08:37:19 |
[인터뷰] 귀국 티베트인 도르지츠단 | |
1959년 인도로 탈출 98년 돌아와 “중국, 내게 배려…망명생활 낭비였다” | |
이상수 기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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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티베트자치주의 ‘귀국 티베트동포 영접위원회’는 그에게 7만위안(약 875만원)에 해당하는 25평 남짓한 아파트를 한 채 주었고, 명절 때마다 생필품을 보내주는 등 정착에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4일 라싸에서 만난 도르지츠단은 “인도에 살면서 어떤 사람도 현재의 중국 정부처럼 내게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며 “종교적 신념보다 살아남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의 ‘탈북자 정착 프로그램’과 같은 성격인 ‘티베트 동포 귀국 장려 정책’은 1979년 처음 시작됐다. 티베트자치주 귀국 티베트동포 영접위원회의 통계에 따르면 현재 인도·네팔·부탄 등지에 거주하는 해외 티베트인은 모두 15만명이며, 이 가운데 2000명이 1979년 이후 티베트로 돌아왔다. 물질적 보상을 앞세운 중국 당국의 새로운 티베트 동화정책인 셈이다. 라싸/이상수 특파원 |
[인터뷰] 귀국 티베트인 도르지츠단 | |
1959년 인도로 탈출 98년 돌아와 “중국, 내게 배려…망명생활 낭비였다” | |
이상수 기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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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티베트자치주의 ‘귀국 티베트동포 영접위원회’는 그에게 7만위안(약 875만원)에 해당하는 25평 남짓한 아파트를 한 채 주었고, 명절 때마다 생필품을 보내주는 등 정착에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4일 라싸에서 만난 도르지츠단은 “인도에 살면서 어떤 사람도 현재의 중국 정부처럼 내게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며 “종교적 신념보다 살아남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의 ‘탈북자 정착 프로그램’과 같은 성격인 ‘티베트 동포 귀국 장려 정책’은 1979년 처음 시작됐다. 티베트자치주 귀국 티베트동포 영접위원회의 통계에 따르면 현재 인도·네팔·부탄 등지에 거주하는 해외 티베트인은 모두 15만명이며, 이 가운데 2000명이 1979년 이후 티베트로 돌아왔다. 물질적 보상을 앞세운 중국 당국의 새로운 티베트 동화정책인 셈이다. 라싸/이상수 특파원 |
달라이라마 영향력 막강…평화노선으로 자치 투쟁 | |
홍콩 수준 자치 요구에 중국 “수용 불가” 달라이라마 영향력 커 비폭력 노선 견지 | |
이상수 기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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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독립인가 동화인가 티베트 달력으로 새해 첫날은 지난 2월28일이었다. 올해의 경우 중국 설(1월29일)과 한달 정도 차이가 났다. 새해 첫 명절인 ‘전소법회’ 때 티베트인들은 가장 좋은 옷으로 차려입고 티베트 불교사원을 찾는다. 티베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치장은 소매와 발목에 수달피를 대고 어깨에서 허리까지는 타잔처럼 표범 가죽을 맞모금으로 걸치는 차림이다. 그러나 올해 전소법회 때는 이렇게 동물 가죽으로 치장한 이들이 현저하게 줄었다. 티베트자치구 인민정부의 관계자도 16일 “올해는 동물 가죽 치장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고 인정할 정도였다. 왜 이런 갑작스런 변화가 생겼을까?
의문은 또 생긴다. 언론 통제가 삼엄한 중국 내 티베트인들이 달라이라마의 호소를 어떻게 알았을까? 이 티베트인은 지난해 말 중국 정부로부터 정식 비자를 받고 인도를 방문한 이들 가운데 4000여명이 달라이라마의 집회에 참석했으며, 몰래 국경을 넘은 이들도 4000여명에 이른다고 귀띔했다. 이들이 돌아온 뒤 달라이라마의 메시지를 친지들에게 전했다는 것이다. 망명지의 달라이라마는 여전히 티베트인들에게 정신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셈이다. 그 영향력은 어느 정도나 될까? 16일 라무체사원 앞에서 만난 또 다른 티베트 청년은 12월에 인도 다람살라로 갈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어머니는 살아생전 달라이라마를 직접 한번 보는 게 소원이다. 그러나 너무 늙고 건강도 좋지 않아 인도에 직접 갈 형편이 못 된다. 그래서 내가 갈 생각이다.” 그럴 경우 그는 중국 땅을 다시 밟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청년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네가 달라이라마를 만난다면 다시는 나를 보러 오지 않아도 좋다. 그를 위해 밥을 짓거나 빨래를 하거나 청소를 한다면, 너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일거리를 찾은 것이다. 그게 나를 보러 오는 것보다 더 소중하며, 박사 학위를 따는 것보다 더 소중하다.” 이 청년은 어머니의 말이 “티베트인의 일반적 관점”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티베트 망명정부와 중국 당국은 ‘티베트 문제’에 관해 줄곧 평행선을 그어왔다. 16일 라싸에서 만난 쑹빙린 티베트자치구 외사판공실 부주임은 “티베트는 이미 자치를 실시하고 있다”며 “달라이라마의 개인 자격 방중은 환영하지만 망명정부의 수반 자격으론 안 된다”고 못박았다. 1989년 라싸 소요사태 이후 티베트는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 티베트의 안정에는 중국 정부의 막대한 지원과 더불어 달라이라마의 비폭력·평화 노선도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아주주간> 최근호는 71살 고령의 달라이라마 이후엔 티베트 망명정부가 비폭력·평화 노선 대신 무장투쟁을 포함한 더욱 급진적인 수단을 채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한다. 지금은 달라이라마의 권위에 가려 있지만, 젊은 망명 승려들이나 티베트청년회 등 급진 단체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티베트 독립을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고 주장해 왔기 때문이다. 티베트청년회를 4년간 이끌어온 푼촉 청년회장은 달라이라마의 비폭력 노선에 이견을 숨기지 않으며, “청년회는 티베트를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도 동원할 것이며, 무장투쟁이 독립을 가져온다면 전면 지지할 것”이라고 말해 왔다. 이 때문에 티베트의 미래는 앞으로 몇 해가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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