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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개론

다큐멘터리를 보는 두 개의 시선

다큐멘터리를 보는 두 개의 시선
 
출처 : FILM2.0  2005. 09. 08
 
 
다큐멘터리가 변하고 있다. 객관성, 거리두기, 현실에 대한 냉철한 응시를 미덕으로 삼았던
과거의 원칙들이 조금씩 허물어져 간다. 화석화된 규범을 깨부수고 새로운 영상 혁명을 도모한다.
다큐멘터리의 현재를 말하는 두 개의 시선을 전한다
 
오직 'real life'를 찍는 것이 다큐멘터리다
<달의 형상> 레오나르드 레텔 헬름리히 감독

 
현대 다큐멘터리의 위치에 대해 말한다면?
기술의 발전으로 장비가 저렴해져 영상 기기가 대중화되고 있다. 따라서 양질의 영상을 값싸게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발전은 보통 사람들의 접근을 쉽게 했다는 장점이 있지만 저급한 다큐멘터리가 양산되는 문제도 야기했다. 정말이지 지금은 무엇이 정말 좋은 다큐멘터리인지 선택하고 찾아내기가 과거에 비해 힘들어졌다.
전쟁이나 테러, 환경 문제 등 세계 정세가 다큐멘터리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는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변화들은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그런 삶의 모습은 그 자체로 큰 가치가 있다. 사람들이 가장 흥미를 갖는 이야기는 개개인이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이며,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자 한다.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상황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진다고 말할 수 있다.

최근엔 다큐멘터리에서도 금기가 사라져가는 것 같다. 사적 다큐멘터리, 시적 다큐멘터리, 극적 형식의 차용 등 다양하다.
그런 현상에 대해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쪽이다. 다큐멘터리는 완전히 열려 있으며, 굉장히 다양하게 만들 수 있다.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가장 큰 차이는 픽션은 재현이고 다큐멘터리는 진짜 삶의 모습을 찍는다는 것에 있다. 요즘 많은 영화들이 다큐의 형식을 차용하지만 그건 결국 재현일 뿐이다. 나는 오직 ‘real life’를 찍는 것만이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한다. 어떤 다큐멘터리는 배우를 쓰기도 하는데, 나는 특히 그런 영화는 쓰레기라고 생각한다. 배우를 사용하는 것, 꾸며진 이야기로 그려지는 다큐멘터리 드라마 등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그건 픽션이다.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는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를 매우 좋아한다. 나와는 스타일이 다르지만, 그의 방식은 매우 특별하며 자신의 뜻을 분명히 드러내는 그만의 스타일을 존중한다.

디지털 영상 문화의 보급과 확산이 다큐멘터리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는가?
질은 높아지고, 비용은 내려갔다. 형식과 내용이 다양해지고 있으나 워낙 편차가 크기 때문에 내용에 대해 매우 주의 깊게 봐야 한다.

다큐멘터리 역사에서 중요한 작가와 작품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는 네덜란드 출신의 요리스 이벤스 감독이다. 그는 거의 불가능한 일을 했다. 그는 인도네시아의 독립을 위해 네덜란드 정부에 저항하고, 인도네시아 독립전쟁에서 싸우기도 했다. 그는 진정한 투사였고, 그래서 영웅이라 불려도 좋은 사람이다. 그의 이름을 딴 암스테르담국제다큐멘터리페스티벌의 ‘요리스 이벤스상'이 굉장한 권위를 가질 정도로 위대한 영화 작가다. 특히 이벤스의 <인도네시아 콜링 Indonesia calling>은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인도네시아 독립전쟁 중 호주에 있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네덜란드 정부에 대항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다큐멘터리 제작자가 진실의 전달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사람들은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인도네시아 정부가 독립을 원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벤스 외에 버트 한스트라라는 감독이 있다. 어린 시절 나는 세상에 영화감독이 요리스 이벤스와 버트 한스트라, 두 사람만 있는 줄 알았다. 둘은 네덜란드에서 가장 유명한 감독이며, 그들의 작품은 시각적으로 매우 훌륭하다.

다큐멘터리 작가가 대상을 다루는 방식에 있어 주의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
다큐멘터리 작가는 필요 없다. 그냥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이 작가다. 다큐멘터리 제작자는 그냥 그들을 찍기만 하면 된다.

한국에서 다큐멘터리는 여전히 생경한 장르다. 관객들이 다큐에 대해 친밀감을 갖기 위해 어떤 태도가 필요할까?
무엇보다 다큐멘터리를 영화관에서 많이 상영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관객들의 영화를 보는 시각이 업그레이드되고, 다큐멘터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다큐멘터리는 제작자를 위한 영화가 아니다. 극장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관객들은 지금보다 다큐멘터리를 더 좋아하게 될 것이다. 다큐멘터리는 관객들을 끌기 위한 오락적 힘(entertain power)를 가져야 한다.
 
관객에게 파고들 노력이 다큐멘터리에 필요하다
EBS 국제다큐멘터리페스티벌 정민아 프로그래머
 
다큐멘터리의 정신이나 감독들의 태도가 과거에 비해 많이 바뀐 것 같다.
지난해 11월 암스테르담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시네마베리테 특별전이 있었다. 60년대 시네마베리테의 주요작들을 상영하고 70대 노인이 된 시네마베리테 감독들이 포럼을 열었는데 그들은 요즘 세태에 대해 비판적인 말을 많이 했다. 주관적인 다큐멘터리나 사적 다큐멘터리, 마이클 무어의 대중주의에 대한 지적이 대부분이었다. 아직 시네마베리테의 정신이 유효하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정신이나 태도의 관점에서 과거와 현재의 차이가 뭔가?
요즘 다큐는 너무 다양하다. 기술도 많이 발전했고. 하지만 장비의 발전에 의해 다큐멘터리가 진화하는 건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다큐는 기다림과 노력, 대상에 대한 애정, 성의가 중요하다. 장비로 인해 생긴 변화라면 일반인들도 쉽게 다큐멘터리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점이다.

현대영화의 지형에서 표현 형식으로서 다큐멘터리가 지니는 특장점은 무엇일까?
다큐멘터리는 극영화보다 훨씬 실험적인 시도가 가능하고 다양한 형식 실험도 가능하다. 현대로 넘어오면서 그 가능성이 더 커졌다. 극영화는 '진화'하지만 다큐멘터리는 '변화'만이 있다. 60~70년대 다큐멘터리에도 아방가르드적인 측면들이 많았다. 경계가 허물어지는 건 현대 영화의 특징인데, 다큐멘터리에서도 그런 현상이 보인다. 키아로스타미도 다큐멘터리 감독이라고 하지 않는가? 예전처럼 다큐멘터리에 대한 합의된 규정을 만들기는 힘들 것 같다.

새로운 형식의 다큐멘터리를 무조건 비판하는 것보다 다큐멘터리의 표현 가능성을 확대한 것으로 평가하는 게 좋지 않나.
그건 취향과 스타일에 따라 다르다. 현실의 기록이나 조작, 또는 연출이냐에 대한 논쟁도 제각각이다. 관객에게 긴장감을 주기 위해 극영화의 장치를 종종 도입하기도 한다. 또는 다큐멘터리를 아트영화 찍듯이 극도로 스타일화하는 작가도 있다. 그런 시도는 이제 다큐멘터리의 한 갈래로 인정되는 분위기다.

다큐멘터리가 이전엔 거대한 진실에 접근하고 본질적인 질문을 던졌다면 지금은 그 목적부터가 완전히 다른 것 같다.
최근 다큐멘터리는 지적 만족, 교양의 의미가 강화된 것 같다. BBC나 NHK 등 방송 다큐멘터리의 영향이 크다. 또 하나는 현장성을 통해 관람의 쾌락을 주는 것이다. <작은 새>라는 일본 다큐멘터리를 보면 종군 기자가 이라크에 폭탄이 떨어지는 현장에 서서 자신의 모습을 찍는다. 이라크 주민들의 생생한 인터뷰를 담아 실제 거기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다. 비극적 사건이지만 현장감에서 느껴지는 즐거움이 있다. 이처럼 앎의 즐거움, 봄의 즐거움을 전해주는 다큐멘터리들이 많아졌다.

관찰 다큐멘터리의 전형인 자연 다큐멘터리는 어떤 평가를 받는가?
권위있는 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자연 다큐멘터리는 소외돼 있다. 환경영화제에 따로 모여 있다. 자연 다큐멘터리를 찍는 감독들은 목숨을 내놓고 영화를 만들지만 그런 노력이 인정을 받지는 못한다. 매년 영화제 수상작을 분석해보면 인기 있는 작품의 경향이 있다. 사적인 작품들보다 사회적 이슈, 마이너에 대한 시각을 다룬 영화가 인정을 받는다.

해외 영화제에서 한국 다큐멘터리에 대한 반응은 어떤가?
한국 다큐멘터리도 형식이 많이 다양해진 것 같다. 예전에는 정치적 이슈나 집단의 목소리를 담은 작품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개인적인 주제를 다룬 작품들도 많다. 하지만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가 아직 다큐멘터리의 기반이 턱없이 취약하다. 유럽에는 국가별로 다큐멘터리 영화제가 거의 있다. 아시아에는 야마가타영화제, 대만그린다큐영화제, 한국의 인디다큐페스티벌, EBS 다큐페스티벌 정도가 고작이다. 무엇보다 아시아에는 다큐멘터리 행정가들이 없다.

영화제가 아니면 다큐멘터리 작품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다. 노출의 윈도가 너무 제한적이다.
미국의 다큐멘터리 전문 채널 PBS에서 다큐멘터리 작품을 방송하면 배급사의 요청이 쇄도한다고 한다. 다큐멘터리는 극영화와는 다른 보급 방식이 필요하다. PBS에 POB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프로모션을 함께 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예컨대 레즈비언 다큐멘터리가 있다면 레즈비언 그룹을 계속 찔러서 배급의 통로를 뚫어주는 것이다. 감독이 직접 프로모션, 마케팅에 관여해 방송을 한다. 그렇게 관객에게 파고드는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