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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개론

소외계층을 소외시키는 영상이미지

소외계층을 소외시키는 영상이미지


근래에 들어, 사회문제를 다루는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프로그램들의 모습이
소재나 형식면에서 부쩍 다양해지고 있다. 소재면에서 보면, 소위 '민주화'가
현재와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덜 성숙했던 시절의 전반적인 사회 정서구조에
비추어 볼 때 텔레비젼과 같은 '공적인' 토론의 장 메뉴로 등장하기에 쉽지 않
았던 '성차별'문제, '성폭행'문제, '부랑인'문제, 소위 '게이족'문제, '외국인 노
동자'문제, 그리고 각종 '환경'문제등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에 대한 실체가
속속들이 파헤쳐지고 있다.

형식적인 면에서도 전격적으로 유명 배우나 법조인과 같은 사회 저명인사를
앵커로 고용한다던가, 두 명 이상의 PD가 직접 앵커로 출연한다던가, 또는 다
큐드라마 또는 드라마다큐 불리는 새로운 장르의 도입으로 프로그램의 진행이
예전에 비해 훨씬 다양해지면서 시청자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하기야, 지
난 60 연대 초 TBC의 <카메라의 눈>을 그 시발점으로 잡는다면, 사회문제를
심층 보도하는 텔레비전 논픽션 프로그램의 역사도 어언 30년이란 세월이 흘
렀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한편, 촬영장비 면에서도 이동과 조작이 간편한 ENG카메라의 개발은 현장성
을 최고의 무기로 삼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제작에 더없이 커다란 영향을 미
쳤을 것이다. 80년대 초 편성된 KBS의 <추적 60분>이 단시일에 확고한 사회
고발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이유중 하나로 ENG 카메라의 등장을
드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리라.

하지만, 이러한 파격적인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용적인 차원에서, 그리
고 소재가 표현되는 시각적 차원에서 본질적인 문제들은 개선되고 있지 않다.
내용면에서 보면, 많은 소재들이 단순히 시청자들의 일시적인 눈요기 감으로
서 채택되어 문자 그대로 제대로된 '심층'보도가 되지 못하고 피상적인 '현실
보여주기' 차원에 머묾으로서 단순히 문제의 맛만 보여주는 예가 허다하다.
단적인 예로, 노인문제라든가 청소년 탈선문제 또는 장애인과 부랑인 문제 등
과 같은 가정관련 사회문제들에 관한 에피소드 들이 소위 가정의 달인 5월에
만 집중 편성되고 그 외의 시기에는 주요 관심대상에서 제외됨으로써 단지 한
철 인기 있는 '계절메뉴'로 밖에 구실을 못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문제들은 '계절적' 이어서는 안되며, 따라서, 우리 모두가 지속적
인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이고 진지한 태도로 텔레비전과 같은 공론의 장에 떠
올릴 때 비로소 우리 사회의 여론은 좀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한편, 이와 함께 우리 모두 간과해서 안될 것은(어쩌면, 양보다 질적인 면에서
는 더욱 중요할 수도 있는), 소외계층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에서조차 화면을
통해서 투영되는 그들의 시각적 이미지가 매우 부정적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러한 이미지는 시청자로부터 그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증대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귀찮고 성가신 존재로, 거리를 두면 둘수록 좋은 존재
로 부각시킴으로서 그들을 우리의 관심 영역에서 더욱 먼 주변으로 몰아내고
있다. 그러면, '우리'로 하여금 그들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영상 이미지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으며, 또한 그러한 이미지들은 어떻게 구축되는가?


필자의 개인적 경험에 의하면, 외국의 경우나 우리의 경우 할 것없이.대개의
사회 고발 프로그램들은 앵커가 그날의 주제를 간략히 소개하는 문제제기 방
식으로 시작 한다. 그리고, 이러한 도입부분의 샷들은 대개 스튜디오샷으로 구
성되는데, 이러한 샷에서 앵커는 프로그램의 주 진행자로서 그의 통제하에 있
는 리포터나 또는 그 외의 다른 등장인물들과는 달리, 유일하게(때로는 앵커의
통제하에 있는 리포터들도 시선 교류를 하기도 함) 각 가정 시청자들에게 직접
적인 시선교류(direct eye- contact)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런데, 일반
시청자는 이러한 스튜디오 샷에 극히 익숙하기때문에, 앵커의 시선교류가 현
실에 대한 어떤 관점창출 과정에서 행사하는 막강한 '위력'을 인식하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시선교류는 시청자와 앵커와의 거리감을 극복하여 '지금 여기에 (here
and now)' 라는현장감을 만들어내는 데 매우 효과적으로 작용하며 앵커는 이
러한 가상의 공간을 통하여 그의 전지전능한 (omnipotent) 힘을 발휘하기 때
문에, 시청자는 앵커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을 객관적인 '진리'로 받아들이
게 되는 것이다. 한편, 앵커 샷은 항상 미디엄 샷에 표준앵글로서 처리되며 스
튜디오 샷이 진행되는 동안에 카메라는 거의 움직임이 없는데, 이러한 방식은
앞서 언급한 앵커의 '힘'을 확고하게 하는데 크게 기여한다. 왜냐하면 심리학
적 관점에서 볼 때, 일반적으로 미디움 샷은 개인적으로 친근감을 줄 수 있는
거리에서 촬영되기 때문에 시청자의 입장에서 가장 차분하고 편안한 환경을
조성하는 샷으로서 어떤 정서적인 동요를 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다.

대개의 경우, 앵커 샷은 처음부터 이러한 미디움 샷으로 고정되어 있는 것이
보통이다. 간혹, 앵커 샷일지라도 데스크 앞에 앉아 있는 양커를 포함하여 스
튜디오의 내부 환경이 많이 노출되는 샷으로서 시작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러
한 경우에는 카메라가 서서히 그 움직임이 거의 의시되지 않을 정도로 느리게
줌 인 (zoom-in) 하기 때문에 시청자들로 하여금 안정된 정서상태를 잃지 않
게 한다. 결국, 카메라 시청자는 이러한 앵커 샷이 주는 편안함과 안정감으로
인하여 앵커의 멘트를 이성적이며 객관적인 것으로서 받아들이게 된다.

현장을 취재하는 리포터의 경우는 대개의 경우 앵커와는 조금 다른 거리에서
촬영되는데, 종종 무릎 부분에서 신체가 잘려지는 미디움 롱샷 (또는 knee
shot 이라고도 함)이나 전신이 화면에 차는 롱샷(또는 full-shot이라고도 함)이
사용된다. 하지만, 이러한 카메라 거리일지라도, 시청자의 심리적 차원에서 볼
때, 리포터는 그가 취재 보도하고 있는 배경의 피사체 또는 사건 현장으로부터
충분한 거리를 유지하여 현장에서 발생하고 있는 사건으로부터 유리되어 있는
느낌을 줄 정도이며, 따라서 리포터가 그 사건으로부터 독립되어 있는 객관적
인 존재로서 부각되게 된다. 또한 이러한 리포터의 객관성을 강화해 주는 또
다른 요인은 앵커 샷에서처럼 리포터 샷에서도 카메라의 격한 움직임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리포터를 미디움 샷까지 끌어 당겨야 할 필요가 있을 때는 앵
커 샷에서와 같이 서서히 주밍(zooming)하기 때문에 어떤 시각적인 혼란도 가
져오지 않는다.


이러한 리포터의 객관적 표현은 리포터의 현장보도 내용이 (앵커의 보도와 마
찬가지로) 사건에 대한 어떤 주관적인 판단이 개입되지 않은. 일종의 중립성
(neutrality)을 지니는 것으로 느껴지게까지 하는 효과를 갖는다. 결국, 어떤
사회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프로그램의 저테적인 의미를 결정 하는 것은 앵커
와 리포터에 의해서이며, 앵커와 리포터의 보도와 멘트 내용에 부여된 '객관성
'과 '진실성'은 카메라 작업에 의해서 더욱 강화되기 때문에 그들의 역할은 한
층 더 중요하다고 하겠다. 그러면 취재대상에 대한 시각적 이미지는 어떠한가?


취재대상인 소외계층을 다룰 때는 앵커나 리포터 샷의 경우와는 사뭇 다른
관행에 의해서 접근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카메라와 피사체와의 거리
면에서 보면, 많은 경우 미디움 샷을 취하기도 하지만, 종종 클로우즈업이나
익스트림 클로즈업, 또는 롱샷이나 익스트림 롱샷 등을 사용하게 되며, 카메라
움직임 또한 전후 좌우 상하로 경우에 따라서는 매우 빠르고 거칠게 변화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우선 클로우즈업의 효과부터 살펴보자. 예를 들어, 빈민이라든가 부랑인,또는
외국인 불법취업자라든가, 막노동자 또는 동성연애자 등 사회적인 위상이 비
교적 낮은 소외 계층 사람들이 클로즈업으로 잡히는 경우, 이들의 이미지에는
실제보다 더욱 부정적인 가치들이 연관되어질 수 있는 위험이 존재한다. 다듬
지 않은 피부, 면도도 세면도 하지 않은 초췌한 모습,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보
이지 않는 동요된 모습 등 적나라한 얼굴 표정들 (대개의 경우 부정적 의미의
)이 시청자에게 주는 이미지는 잠정적인 동정표를 얻을 수 있을 지는 몰라도
결코 긍정적일 수는 없다. 최소한의 헤드룸이나 노우즈룸 (nose room)도 허용
되지 않는 익스트림 클로우즈업의 경우나 등장인물들의 떨고 있는 손, 씻지 않
은 더러운 발, 지저분한 음식. 또는 도저히 정상적이라고 불 수 없는 고령자의
지나치게 패인 주름살 등 신체의 특정 부위를 특히 강조하여 보여주는 클로즈
업 샷 등은 피사체 이미지의 부정적 측면이 더없이 드라마틱하게 부각될 수 있
는 기법이다.


하지만, 클로즈업 샷일지라도 이미 사회적으로 높은 사회적 지명도를 확보한
엘리트층 사람 들이나 유명 연예인 등이 등장하는 경우는 소외계층 샷의 경우
와는 달리. 오히려 긍정적인 이미지가 더욱 증대된다. 종종 뉴스 프로그램이나
대담 프로그램 등에서, 예를 들어 최진실과 같이 시청자에게 익숙한 유명인의
깔끔하게 분장된 얼굴 모습이나 미녀들의 늘씬한 하반신을 클로즈업으로 잡는
것이 가능한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카메라 움직임 또한 마찬가지로 어떤 극적 효과를 연출하게 된다. 필자의 텔레
비전 경험에 의하면 <사건 25시>, <그것이 알고싶다>, , <추적 60
분> 등 근래 종영되었거나 , 현재 방영되고 있는 다양한 사회 고발 프로그램들
에서, 10대 탈선 청소년들이라던가 집 없이 떠돌아다니는 부랑인들, 또는 사창
가 여인들이나 동성 연애자들 등, 소위 소외계층이라 분류되고 있는 사람들을
취재하는 경우, 내용면에서나 영상면에서 소외계층이 발생하게 된 근본적인
사회구조적 원인이나 과정들에 대한 심층조사보다는 그러한 근본적인 원인들
로 파생된 자극적이며 일상적인 효과들, 다시 말해서 그들이 현재 살아가고 있
는 구차한 생활모습들을 보여주기에 급급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관행을 카메라 움직임을 통한 영상적 측면과 연결하여 예를 들어보면,
10대 탈선 청소년들을 취재하는 경우, 종종 거칠고, 과격한 주밍(zooming), 패
닝(panning), 트래킹 (tracking), 그리고 핸드헬드(hand held) 카메라의 조작을
통한 화면의 흔들거림 등이 사용되고, 또한 표준앵글이 아닌 하이앵글이나 로
우앵글 샷등이 사용되므로써 마치 수사관이 범죄소굴에 들어가서 범인들을
체포하는 듯한 인상을 줄 정도의 매우 극적인 장면들이 연출 됨을 발견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과격한 화면의 움직임 이라던가 또한 설상가상으로,
지나친 로우앵글이나 하이앵글을 이용하여 범상치 않은 구도로서 피사체를
잡는 경우, 취재대상은 사회적으로 처벌받아야 할 범죄와 혼란의 원인으로서
만 부각되어, 그들이 한편 불평등한 사회구조가 낳은 희생자일 수도 있다는
대안적 사고방식이 공론의 장에 들어설 기회가 배제된다. 한마디로, 이러한
경우, 희생자인 그들이 오히려 사회적인 물의와 무질서를 초래하는 원인으로
서 그 위치가 전도될 수 있는 위험이 존재한다.

잦은 롱샷, 특히 익스트림 롱샷의 경우도 소외계층에 대한 부정적인 효과를
야기한다는 점에서는 클로즈업의 경우와 다를 바 없다. 종종 우리는 학생 데모
대나 부랑인 또는 탈선 청소년이나 공원의 노인들이 지나치게 먼 거리에서
익스트림 롱샷으로 처리되는 것을 목격할 수 있는데, 이러한 샷이 가지는 심리
적인 효과는 그들이 각각의 주체적인 인간으로서 가지는 독자적인 자율성 또는
개인성이 침묵당하고 단지 하나의 군중, 즉 집단적 존재(collective)로서만 부각
되며, 따라서 프로그램 제작자의 입장에서 고도의 '중립성'을 유지할 수 있을
지는 모르나, 취재대상의 얼굴표정이나 동작 등을 통한 그들의 감정표현이 드
러나지 않아 결국 그들이 '비인간화'(depersonal-alization)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 결과, 우리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파헤쳐 그 문제점을 지적하고 가능한 해결
방안을 제시해 보자는 프로그램의 의도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프로그램의 역
기능적 측면만이 돌출되어, 시청자들의 관심과 동정심은 소외계층 사람들에게
서 더욱 멀어지게 되며, 동시에 사회구조적으로 소외된 소외계층 사람드의 소외
정도가 더욱 심화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한편, 문화적 관점에서 이러한 심
리적 효과를 살펴보면, 그것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바빠지는 동시에 더욱 개인
주의적 성향이 고조되고 있는 현대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사회전반적 정서
구조 (structure of feeling) 와 무관하지 않다.

실제, 우리가 누군가에게 연민의 동정심을 느낀다는 것 과 그러한 동정심을 바
탕으로 그들을 위한 즉각적인 행동을 실천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일 수 있다.
종종 소외 계층에 대한 우리들의 동정심은 단순히 위에서부터 아래를 내려다
보며 갖게 되는 일종의 엘리트주의적 사고 방식으로 설명될 수 있는 자기만족
적 자위행위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아무리 그들에 대한 진솔한 동정심을 가지
고 있다고 해도, 실은 그들을 '귀찮고 성가신 존재' 로,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
해야만 될 것 같은 존재로 대하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현상은 현
대 자본주의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소위 '우리 대 그들' 이라는 중산층을 중심
으로 하는 사회적 차별화 멘탈리티를 반영한다고 하겠다. 우리나라에 '심리적'
중산층이 실제 중산층의 숫자를 능가한다는 통계결과가 가능한 것도 바로 이러
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한편, 사회고발 프로그램들에는 항상 앵커나 리포터 그리고 소외계층이 아닌
제3의 인물들이 등장하게 되는데, 이들은 그날의 이슈와 관련된 직업에 종사
하는 전문 직업인, 종교인, 공무원, 학교선생, 의사, 법조인,(그리고 경우에 따
라서는 주류사회의 관점을 대비시키기 위하여) 일반시민 등으로 구성되며, 대
부분 리포터와의 인터뷰 삿을 통하여 앵커의 메시지를 확인하고 강조해 주는
기능을 한다. 이때 이들과의 인터뷰는 대개 그들의 직장 사무실이나 학교 연구
실 등에서 이루어지는데, 이들은 대개의 경우 미디움 샷을 받기는 하지만, 직
접적인 시선교류를 통하여 시청자와 만나지는 않는다. 따라서 이들 등장인물
들의 시각적 힘은 미디움 샷으로 촬영된다는 점에서 또한 카메라의 움직임이
어느 정도 고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안정된 시각을 유지하기 때문에, 그들의
인터뷰 내용은 어느 정도 신빙성을 확보한다. 하지만, 시각적 차원에서 그들의
영향력은 시청자와 직접적인 시선 교류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스토리의
전반적인 진행을 통제하는 앵커나 리포터의 영향력에는 견줄 수 없다.

하지만 당일 소재 속의 주인공들인 소외계층 사람들의 이미지에 내포된 힘에
비하여 상위를 차지한다고 보겠다.

이상으로 사회고발 프로그램과 같은 텔레비젼 논픽션 물에 있어서 의식적이든
또는 무의식적이든 하나의 관해으로서 실천되고 있는 카메라 기법과 그러한 기
법들이 실제 취재현장에서 당양한 등장인물들을 만나게 될 때 어떠한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효과들로 인하여 시청자들이 자칫 소외계층
에 대한 옳지 않은 또는 편중된 가치관을 갖게 될 수 있음 에 대하여 간단히 논
의하였다. 사회적인 소외계층이나 일탈행위에 대하여 접근하는 사회학적 관점
의 하나로서 이미 널리 알려진 '희생자 질책 이론 (victim blaming theoty)' 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이 함축하고 있는 내용의 핵심은 이미 앞서 언
급한 바와 같이, 사회적 문제의 원인으로서 인식되어 짐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희생자 질책과정이 어떻게 일어나는 가에 대하여 미국의 사회학자
Ryan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 모든 것은 아주 부드럽게 진행되며, 따라서 완전히 이성적인 과정으로
보여진다. 우선, 제기할 사회문제가 무엇인지 규정한다. 둘째로, 그러한
문제로 인하여 영향받은 사람들을 조사하고, 박탈과 불공평으로 인한 결과
로서 그들이 그 외의 사람들과 어떻게 다른가를 보여준다. 셋째로, 그러한
다른 점들을 사회문제 자체를 야기하는 원인으로서 규정한다. 마지막으로
두말할 것도 없이 정부관료로 하여금 그러한 다른 점들을 교정시키기 위한
인간주의적 차원에서의 대책을 마련하도록 한다.

이러한 이론적 설명에 근거하여 볼 때 자칫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무심코 잡
은 카메라 샷이 구축하는 영상 이미지가 소외계층 사람들을 피해자라기 보다는
피의자로서 부각시키게 되고, 나아가서 이러한 이미지가 시청자들의 기억속에
장기적으로 누적되게 되면, 그들은 더욱 주류사회로부터 소외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편향된 현실구축 과정으로 인하여 사회 정의를 실현하
고자 하는 사회고발 프로그램들이 그 본래 취지와는 달리, 부지불식간에 소외
계층에 대하여 폭력 아닌 폭력을 행사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텔레비젼 문화학자인 피스크(Fisk)에 의하면, 텔레비젼 프로그램의 리얼리즘은
그 프로그램이 무엇에 대하여 이야기하는가 또는 무엇을 보여주는가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프로그램을 통하여 현실이 표현되고 이해되는 '형식
(Form)'에 의해서 결정된다. 그리고 이러한 형식에는 우리들이 습관적으로 사
용하고 있는 여러가지 표현수단들, 예를 들어, 음향효과라든가, 컴퓨터 그래픽,
조명, 또는 그 외의 다양한 카메라 작업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리얼리즘관에 기초하여 영상 이미지에 대하여 이야기한다면, 어떤 현실
을 텔레비젼을 통해 보여줄 때, 그 현실의 의미는 화면 속의 영상들이 얼마나
객관적인 실제 현실모습을 충실히 보여주었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 세상을 표현하는 담론적 영상관습에 의존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가 화면을 통하여 보여주는 현실은 현실 바로 그 자체의
자연스런 모습이 아니라, 문화적 관습 속에서 자의적으로 구축된 현실이다.
따라서 우리가 아무리 객관적인 방법을 통하여 현실을 보여주려고 해도, 일단
텔레비젼 화면을 지나간 현실에는 많은 문화적 요소들의 개입이 내재한다. 모든
샷은 특정한 관점을 표현할 수밖에 없다. 동일한 대상일지라도, 이미 앞서 살펴
본 바와 같이 , 그것을 어떠한 방식으로 촬영하느냐에 따라서 그 의미는 무궁무
진하게 달라질 수 있다. 클로즈업으로 처리할 것인가. 미디움 샷으로 처리할 것
인가? 인위적인 조명을 사용할 것인가? 자연적인 조명을 사용할 것인가? 편안
한 음악을 사용할 것인가, 긴장감을 조성하는 음악을 사용할 것인가? 카메라 움
직임은 어떻게 할 것인가? 등등 모든 방식에 의해서 현실의 의미는 달라진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사회고발 프로그램식 다큐멘터리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초기 영화인 그리어슨의 관점에 동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현실 세계를
독창적으로 다루는: 유형의 영화를 다큐멘터리 필름이라고 규정했다. 이러한
그의 정의에 의하면 다큐멘터리물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큐멘터리의
' 창조성' 측면과 현실성의 측면을 모두 이해하여야 한다.
그에게 있어서 훌륭한 다큐멘터리는 제작자의 명쾌한 관점과 목적이 제대로
드러나는 제작물을 의미하는 것이지, 중립적인 입장을 제대로 지키는 또는 현
실을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표현한 제작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의 주류사회 영역으로부터 소외되어 자신들의 목소리가 거세된
소수 소외계층을 소재로 하는 심층보도 프로그램의 경우, 우리는 특별히 그들
이 더 소외되는 결과가 나오지 않도록 내용적인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내용을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좀 더 진지하고 조심스러운 태도로 접근해야 할 것
이다. 특히 텔레비젼은 영상매체이기 때문에, 시각적인 부분이 차지하는 역할
이 막중하므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제작계에서 관행처럼 사용되고 있는
카메라 촬영기법은 무엇인지 그러한 기법이 초래하는 효과는 무었인가에 대해
재삼 신중히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