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1-30 13:54]
<쟈니윤쇼>에서 <무한도전>까지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은 시청률로 먹고 사는 방송사를 이끌어가는 두 개의 엔진이다. 드라마에서 낯익은 소재들이 무수히 반복되고 변주되는 것처럼, 예능 프로그램 역시 방송사를 불문하고 비슷비슷한 패턴을 반복해왔다. 연예인들은 부지런히 나와서 ‘토크’를 하거나, ‘웨이브춤’을 추거나, 게임을 하거나, ‘뿅망치’를 맞거나 피구를 하거나, 짝짓기를 하거나, 혹은, 연기를 했다. 때때로 새 앨범이나 드라마, 개봉할 영화의 홍보장이 되기도 하고 재기의 발판 내지는 개런티 상승의 포석이 되기도 했던 오락 프로그램의 변화 과정은, 결국 연예인이 소비되는-생존하는 방식에 대한 변천사와 동일하다.
오락 프로그램의 변화, 혹은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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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쟈니윤쇼>의 등장은 이른바 ‘연성 토크쇼’의 출발로 기록된다(<방송저널리즘>, 김춘옥, 커뮤니케이션 북스, 2005). <쟈니윤쇼> 이전에도 김동건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11시에 만납시다>류의 토크쇼가 없진 않았지만 교양의 함양(?)에 힘썼던 이전 ‘대담 프로그램’과는 달리 <쟈니윤쇼>는 ‘사사로운 재미’를 주된 가치로 삼았다. 그 유명하다는 <쟈니 카슨쇼>에도 초대받곤 했던 쟈니윤은 당시로서는 신선한 오프닝 멘트를 어눌한 듯 재미있는 말투로 선보였고 초대된 연예인들의 유머감각 역시 쟈니윤이나 조영남과 각을 주고 받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은 한국 오락 프로그램의 역사에서 한 획을 그엇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곧이어 등장한 <주병진쇼>의 성공을 포함해 TV 토크쇼의 안정된 정착은, 이후 <이홍렬쇼> <이승연의 세이세이세이> <김혜수의 플러스 유>의 연이은 성공으로 이어졌다.
오락 프로그램들 중에서 특히 토크쇼가 인기를 얻으면서, 시청자는 ‘말을 잘하는 연예인’이 누군지 알게 된다. 본업 말고는 자신들을 홍보할 기회가 없던 게스트들, 즉 연예인들은 토크쇼의 강력한 정체를 파악했다. ‘웃긴’ 연예인은 주가가 올라갔고 ‘썰렁한’ 연예인은 바로 입방아에 올랐다. 단지 ‘모델출신 배우’ 였을 뿐인 차승원이 보다 친근한 대중적 인지도를 확보한 것이 <김혜수의 플러스 유>를 통해 과시한 입담 때문이었다는 점은 시사적이다. 하지만 편안한 소파와 호응 좋은 방청객만 있으면 제작도 용이했던 토크쇼는 곧이어 게스트 고갈과 편성 남발이라는 원초적 암초에 부딪쳤다. 이것은 아무리 인기가 좋아도 토크쇼 2년이면 ‘더 이상 부를 사람이 없어지는’ 상황 탓이기도 했다. 게스트와 호스트가 1:1로 마주 앉아 도란도란 대화하던 점잖은 토크쇼는 결국 <서세원쇼>의 히트로 새로운 전기를 맡게 된다. 이른바 ‘집단 토크 배틀’이 시작된 것이다. <서세원쇼>로부터 토크라는 형식도 대결과 경쟁의 춘추전국시대에 들어섰다. 따라서 ‘왕년에 껌 좀 씹었던’ 혹은 ‘배설 개그’ 레퍼토리들이 인기를 끌자 연예인들의 솔직한 고백 혹은 아슬아슬한 뒷담화들은 금새 유행이 되었다. 이런 경향은 토크쇼와 오락 프로그램들의 근본적인 차이가 없어지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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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방송사마다 비슷한 컨셉트의 오락 프로그램들이 넘쳐나던 2001년 즈음, 반응이 신통치 않아 조기 종영되는 프로그램들도 줄을 이었다. 이 무렵 세계적인 유행이 된 ‘리얼리티 쇼’의 여파는 특이한 한국적 필터링(?)을 거쳐 ‘연예인 서바이벌 게임’의 형태로 자리잡게 된다. <산장미팅 장미의 전쟁>과 <목표달성 토요일>의 ‘애정만세’ ‘동거동락’ 등이 그것이다. 이 시기에는 유재석이나 강호동과 같은 스타 MC의 활약이 두드러지기도 했다. 또한 ‘오래 살아남고’ ‘선택 받기 위한’ 경쟁도 불가피해졌다. 출연자들은 앉아서 얘기하는 걸로는 모자라 뛰고 구르고 춤추기 시작한다. 때마침 초고속 인터넷이 방방곡곡으로 확산되던 무렵, 연예인들의 뛰고 구르고 춤추는 자태들의 동영상은 인터넷에서 공유되기 시작했다. 같은 맥락으로, <X맨>에 출연하는 것은 젊은 연예인에게 ‘지금 잘 나갑니다’ 같은 징표가 되었다. 분화되는 다종다기한 게임들은 머리도 좋아야 하고, 순발력도 있어야 하고 근력도 있어야 적응이 가능했다(무엇보다 ‘참을성’이 요구된다). 김종국과 윤은혜의 스캔들(?)이 시작된 것이 <X맨>의 ‘당연하지’ 게임 코너였던 것을 떠올린다면, <야심만만>에서의 솔직한 발언이나 <X맨>의 모창, <여걸식스>의 섹시댄스는 바로 ‘실시간 인기 검색어’를 통해 그 위력을 확인할 수도 있었다. 노래만 하거나 연기만 해서는 쉽게 오르지 못한다는, 그 ‘인기 검색어’의 성전을 이런 쇼에 출연하면 쉽게 드나들 수 있게 된 것이다. 다만 필요한 건 개인기일 뿐이다. 노래, 입담, 운동신경, 춤이 연예 프로그램의 핵심 요소들의 변화를 보여줬다면 그 다음 단계는 무엇이 될까? 방영중인 <황금어장>, <헤이헤이헤이 시즌2>(이하 ‘헤이2’) 그리고 <무한도전>이 아마도 그에 대한 답이 될 것 같다. 이 프로그램들이야말로 지금, 예능 프로그램이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방향을 가늠하게 해주는 척도로 활용될 수 있으리라는 얘기다.
드라마는 힘이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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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어장>과 <헤이2>는 외견상 여러모로 비슷한 포맷으로 구성된다. ‘집단 고정 호스트’와 매주 바뀌는 게스트와의 토크는 양념이고, 본체는 이들이 같이 만드는 ‘드라마’가 된다. <황금어장>에 강호동, 정선희라는 걸출한 MC를 중심으로 신정환 같은 감초 카드, 임채무, 김성주 같은 의외의 카드를 함께 갖추고 이들이 가진 이미지를 극대화 혹은 배반하는 배역을 맡는다. ‘우리동네 실화극장’ 이라는 컨셉처럼, 시청자들이 보내주는 사연을 중심으로 재연되는 <황금어장>은 멀쩡한 임채무의 작업 멘트, 번듯한 김성주의 ‘아줌마 분장’ 등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다. 가요시장이 침체되어서 신비주의 전략으로 버티기 힘들었다는 김종서의 고백이 있지만, 엄밀히 말해서 <황금어장>은 토크쇼보다는 연예인 주연의 (코믹)‘서프라이즈’ 에 더 가깝다.
<헤이2>는 3년 전 종영된 <헤이헤이헤이>의 후속편이다. 매번 망가지기를 망설이지 않았던 신동엽과 김원희는 3년이 지난 지금에도 노련한 팀웍을 과시한다. 게스트들도 그야말로 열연을 펼치고, 이들의 다소 과장된 코믹연기는 어김없이 캡쳐되거나 쉽게 기사화되곤 한다. 짖굳은 농담 같은 이야기들이 ‘멀쩡한’ 연예인을 통해서 재현된다는 즐거움(?), 광고와 영화를 넘나드는 패러디, 오늘은 누가 또 망가질까하는 기대감이 프로그램의 동력이다. 이런 식의 ‘드라마타이즈(dramatized) 버라이어티쇼’는 각종 드라마를 유난히 좋아하는 시청자들의 성향을 반영한다. 이런 쇼에 초대 받으려면? 연기자가 아니어도 연기 공부는 필수가 되겠다.
무규칙 이종 리얼리티 버라이어티쇼, 그리고?
하지만 <무한도전>의 장르를 한 마디로 규정하기는 쉽지 않다. 프로그램의 포맷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스트가 나올 때도 있고, 안 나올 때도 있고, 모여서 게임만 할 때도 있고 정말 ‘무모한 도전’을 하러 갈 때도 있다. 메인 MC 유재석을 중심으로 포진된 고정 출연자 6명박명수, 정준하, 정형돈, 노홍철, 하하는 자신들의 캐릭터를 거리낌없이 드러낸다. 닭집하는 박명수는 술집하는 정준하를 놀려대며, 살찐 정형돈에게 ‘건방진 뚱보’ 라고 칭하기를 망설이지 않는다. 노홍철은 한 문장을 평균적으로 3번씩 말하며 (그래서 자막에는 보통 X3 표시가 나간다) 정형돈과 하하의 어색한 관계는 만천하에 공개된다. 유재석은 이번 주말이면 ‘마봉춘’과의 열애설에 대해서 멤버들의 가감없는(?) 질문세례를 받게 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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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올림픽 이후, '대화하는 방법에 익숙하지 못했던 국민을 위한 선진적 기획' (<텔레비전 문화의 기호학> 백선기, 커뮤니케이션북스, 2002) 에서 시작된 <쟈니윤쇼> 이후 한국의 오락 프로그램은 대중의 호기심이 연예인의 자기 PR과 만나는 가장 극적인 방법으로 진화해 왔다. 이런 '수요와 공급'이 있는 한 오락 프로그램은 계속 변화해 나갈 것이다. 그렇다면 관건은 역시, 시시각각 변하는 수요곡선, 즉 대중의 취향이 어디로 진화해가는 가를 놓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는 이들의 재기발랄한 실험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글 : 조지영 TV평론가(t-vie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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