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반란
<앵커 멘트>
장마가 지나가고 난 뒤 올해 여름은 유난히 무더웠습니다. 이런 무더위는 지구온난화와 무관치 않습니다. 바다도 예외는 아닙니다.
표면의 수온 상승으로 생태계가 변하면서 해조 숲이 사라지고 어장이 황폐화 되고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깊은 바다 속 수온은 오히려 더 낮아지는 양극화 현상이 빚어지고 있습니다. 심상치 않은 바다의 이런 변화를 두고 인간에
대한 바다의 반란이라는 표현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리포트>
하늘에서 본 우리 바다의 모습은 푸름을 간직한 채 어제도 오늘도 변함이 없습니다. 하지만 바닷물 속은 적지 않은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수온이 올라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몇 년 전부터는 쓰시마난류를 따라 올라온 아열대 어종들이 동해안
일대에 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3년 전 타이완 일대에서 서식하는 초대형 노랑가오리들이 동해에서 100여 마리나 잡혔고 지난해에도 동해중부 연안에 나타났습니다.
보라문어와 붉은 바다거북, 만새기, 은행게, 그리고 백미돔 같은 남방 어종들도 잇따라 어부의 그물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독을 가진 노무라입깃 해파리 등 아열대성 대형 해파리가 남해안과 서해안 일대에 가득 몰려들기 시작한 것도 불과 몇 년 전부터입니다.
바다속에서는 해조숲이 사라지는 갯녹음현상을 불러와 제주도와 동해안 일대를 사막과 같이 황폐한 바다로 만들고 있습니다.
취재팀은 아직까지 학계나 언론을 통해서 보고된 적이 없는 남해의 갯녹음 현상을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남해수산연구소의 도움을 받아
여수에서 남쪽으로 약 40킬로미터 떨어진 소리도로 향했습니다.
이곳은 쓰시마난류가 제주도해역을 거쳐 동해안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곳입니다. 1차 조사 지점을 정했습니다.
감태 같은 해조류가 드문드문 남아 있긴 하지만 해조숲은 거의 사라지고 바다속 바위에는 주로 키 작은 유절 산호조류들이 가득 붙어 있습니다. 갯녹음을 일으키는 원인 생물인 유절산호조류가 많다는 것은 갯녹음 초기 현상을 보여주는 징푭니다. 갯녹음이 더 진행되면 좀더 작은 종류의 분홍색을 띤 무절산호조류가 바위에 붙어 번식하다가 이것들마저 죽게 되면 바위가 하얗게 변하면서 갯녹음 말기인 백화현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인터뷰> 김대권 박사(남해수산연구소 자원관리조성팀) : "또 하나 특이한 현상은 이게 남방계 맨드라미 종류입니다.
서귀포 앞바다에 가면 많이 볼 수 있는데 이곳까지 가입됐다는 것이 특이한 현상이고..."
바닷물 온도가 올라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겁니다. 좀더 해양 쪽으로 향한 곳에 2차 조사지점을 정했습니다. 이 지역은 주위
모든 바위들이 이미 하얗게 변해버려 갯녹음 말기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해조류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완전히 사막화된 바다로 변했습니다.
<인터뷰> 최인호 박사(남해수산연구소 연구원) : "수심 8미터까지는 톳이라든지 일부 해조류가 부착되었지만,
수심8미터에서 이하로 15미터가지 갈수록 심각한 갯녹음 상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위 위에는 해조류를 먹고사는 고둥들이 가득 붙어 있고 바위틈 사이에서는 작은 보라성게들이 다량 서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이
'알'이라고 부르는 이 성게들의 생식소는 먹이인 해조류가 없어 성숙하지 못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남해에서도 갯녹음이 심각하다는 것이 이번
취재에서 처음으로 확인된 것입니다.
<인터뷰> 김대권 박사(남해수산연구소) : "일단 남해안의 갯녹음은 첫째는 수온의 지속적인 상승이 1차적으로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고, 두번째는 조식성동물에 의한 영향. 성게라든지, 소라, 전복 같은 해조류를 먹는 생물종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해조류를
전부 먹어치우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갯녹음 현상을 일으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 거죠."
갯녹음 현상은 근처 다른 곳에서도 발견됐고 특히 거문도 해역에서는 심각한 갯녹음 말기현상이 확인됐습니다. 남해의 갯녹음 발생 지역을
보면 쓰시마난류가 지나가는 길과 거의 일치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취재팀은 동해 바다속 갯녹음 실태도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한때 이곳은 미역과 다시마가 가득했던 곳이지만 과도한 채취와 수온상승으로 몇 년 전부터 황폐화된 곳입니다. 급기야 지난해와 올해
인공적인 해조숲 조성을 위해 다년생 해조류인 감태를 붙인 인공어초가 투입됐습니다.
동해에서 갯녹음 현상이 가장 심각했던 삼척시 호산항입니다. 갯녹음을 치유하기 위해 지난 2002년 가장 먼저 인공어초가 투입된 이후
3년 간 방치됐던 곳입니다. 바다속에 들어가 보니 당시 풀 한 포기 없던 이곳에는 지금은 뜻밖에도 30여종의 각종 해조류가 가득 번식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 완전히 사막과 같았던 이곳이 건강한 바다숲으로 다시 탄생한 것입니다. 성게들 또한 상품성이 뛰어날 정도로 생식소가 꽉 차
있습니다. 다시마와 쇠미역 등을 붙인 인공어초를 바다속에 투입하는 작업이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그 결실이 확인된 것입니다.
<인터뷰> 김영대 박사(동해수산연구소양식연구팀) : "다시마나 쇠미역 등은 성장이 가장 빠르고 또 조식동물이 선호하는
해조류입니다. 이런 종들을 대규모로 조성하여줌으로써 조식동물들이 이곳으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사이에 다른 해조류들이 포자를 번식하고
생장이 가능했기 때문에 지금의 바다숲이 살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문제는 동해에 광범위하게 분포돼 천적 없이 무한정 증식을 계속하고 있는 성게류입니다.
<인터뷰> 김영대 박사 : "성게 같은 경우 일본 수출 길이 막혀 거의 방치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성게는 해조류를 굉장히
많이 먹는 동물입니다. 이 동물이 바다에 그냥 방치됨으로써 갯녹음이 심화되는 원인 중의 하나입니다."
전반적인 수온상승 추세와는 달리 올해 비정상으로 오래 지속되고 있는 동해의 저수온 현상도 해조숲 회복에 기여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취재팀은 바다속 저수온 현상을 확인하기로 했습니다. 서해와 남해에 비해 맑은 동해 바다속은 마치 용궁과 같습니다.
인공어초에 붙어 있는 붉은 산호와 각종 저서생물들은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습니다. 수심 15미터에서부터 30미터 가까이 내려간 곳의
수온은 겨우 섭씨 8도 안팎. 한겨울에나 피어나던 말미잘들이 촉수를 활짝 펴고 있습니다.
<인터뷰> 임용한(전문 다이버) : "말미잘들이 많이 피어 있는데 지금 이 시기에는 말미잘이 필 수 없는 시기거든요.
그리고 고기들도 거의 보이지 않는 상태고 수온이 차서 활동을 많이 안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입수했을 때 볼 수 있는 고기들이 거의 없어요."
두꺼운 잠수복을 입었지만 물에 들어간지 얼마 안 돼 몸이 떨릴 정도로 한기를 느낍니다. 섭씨 8도의 수온은 예년에 비해 5도 이상
낮은 수칩니다. 지난 90년대부터 여름에 나타나기 시작해 바로 사라지는 동해 냉수대가 올해는 한달 이상 장기간 머물러 있고 이제는 표층까지
올라와 부산 기장과 감포, 거제도 근해까지 계속 세력을 키우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근철(전문다이버/경북 죽변) : "오늘 수온이 수심 15미터에서 8도 정도. 예년 같으면 13도에서 14도가
돼야하는 데, 너무 오래 한달 넘게 수온이 떨어지고 있다. 20년 동안 다이빙을 하면서 처음인 것 같다."
낮은 수온 탓에 어민들도 큰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1킬로미터나 되는 그물을 걷어올렸지만 잡힌 것은 겨우 가자미
3마리뿐입니다.
<인터뷰> 홍병호(강원도 강릉시 어민) : "보시다시피 거의 다 걷었는데 고기 세 마리를 잡았으니까 어느 정도 품값을
벌어야 되는데 기름값도 못하고 있질 않습니까."
<인터뷰> 박영규(강원도 사천면 어민) : "예년에는 며칠 잠깐 그러나 말았는데 올해가 제일 수온이 차다."
그렇지만 동.서.남해의 표면 수온은 장기적으로 점차 올라가고 있습니다. 지금 추세라면 동해의 표면 온도는 서서히 올라가 35년
뒤에는 동해의 수온이 지금의 남해 정도로 바뀔 것이라는 게 학자들의 예측입니다. 반면에 동해와 서해의 중저층 바다속 수온은 낮아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인터뷰> 서영상(국립수산과학원 해양연구팀장) : "표층은 계속 가열되고 저층은 여름에 특히 성층이 강하게 형성되니까
표층이 더욱더 가열되고 온도가 올라가니까 위,아래 물이 잘 섞이지 않는 것. 밑에 물은 더 차가워지고 여름이 깊어갈 수록 밑에 물은 더
차가워지고, 표층 물은 더욱 수온이 올라가죠. 그렇게 양극화 현상이 발생합니다."
<인터뷰> 한인성 박사(국립수산과학원 해양연구팀) : "표층 수온이 상승하면서 그 수온이 동해 전체 순환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동해 중저층에서 나타나는 수온하강 현상은 표층수온의 지구온난화하고도 일부는 관계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결국 동해의 저수온 현상도 지구온난화현상의 일부라는 얘기입니다. 문제는 최근 들어 바다표면과 바다속 수온의 양극화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고 그 변화도 급작스럽게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서해에서도 이러한 수온변화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주로 바다속 표층을 떠다니는
난류성 어종인 오징어가 올 여름 많이 잡혀 전국의 오징어 배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러나 깊은 곳 냉수대에서는 한류 어종인 대구와 가자미가
평년보다 많이 잡히고 있습니다.
<인터뷰> 전풍용(서산수협중매인조합장) : "동해안에서만 잡히던 고기들이 서해안에서 많이 잡히고 있습니다. 현재 오징어가
아니더라도 대구 같은 것도 엄청난 양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동쪽과 서쪽 그리고 남쪽 바다에 많은 것을 의지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인류가 화석연료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면서 이제 그
바다가 예측 불가능한 반란의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 반란으로부터 바다의 생물과 우리를 지켜내는 일은 그것을 조장해온 우리의 몫이자
의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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