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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 홍콩 영화 전철 밟나>

<한국 영화, 홍콩 영화 전철 밟나>

비슷비슷한 졸속영화 양산에 우려 고조

(서울=연합뉴스) 정 열 기자 = 한국 영화가 최근 수년간 양적인 팽창에도 불구하고 수익성과 해외수출, 주요 국제영화제 입상 실적이 급속히 악화되고 거품론이 확산되면서 1970~80년대 급성장했다가 순식간에 거품이 꺼져버린 홍콩 영화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21일 영화계에 따르면 한국 영화가 양적으로는 한 해에 100편 이상 제작될 정도로 급팽창했으나 최근 '영화가 돈이 된다'는 인식이 충무로에 퍼지자 돈벌이만 겨냥해 졸속으로 기획된 비슷비슷한 소재의 영화가 양산되면서 1990~2000년대 홍콩 영화와 흡사한 궤적을 따라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홍콩 영화는 1970~80년대까지만 해도 한 해에 300편 이상의 영화가 제작되면서 아시아권을 중심으로 큰 인기를 끌었으나 돈벌이에 맛을 들인 홍콩의 영화제작자들이 과거에 히트친 영화들을 졸속으로 복제한 아류작들을 양산하면서 1990년대 이후 관객의 외면을 받기 시작해 결국 몰락의 길을 걸었다.

최근 한국 영화 시장은 가히 '코미디의 전성시대'라 할 만큼 충무로 영화제작자들 사이에서 소위 '돈이 된다'고 인식되고 있는 고만고만한 코미디 영화들로 홍수를 이루고 있는 실정이다.

당장 설 연휴에 상영된 영화만 해도 5편의 한국영화 중 4편이 코미디일 정도로 장르의 쏠림 현상이 심각하다.

지난해 연말 이후에 개봉됐거나 개봉될 예정인 코미디 영화만 해도 'Mr.로빈 꼬시기' '조폭 마누라3' '미녀는 괴로워' '언니가 간다' '마파도2' '최강 로맨스' '김관장 대 김관장 대 김관장' '1번가의 기적' '바람피기 좋은 날' '복면달호' '마강호텔' 등 손으로 다 꼽을 수 없을 정도다.

이 중에는 간혹 '미녀는 괴로워' 같이 흥행에 크게 성공한 작품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작품의 완성도는 물론이고 흥행에서마저도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하는 등 비슷비슷한 양상의 코미디 영화에 식상한 관객의 외면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사실 이 같은 코미디 영화들은 불과 1~2년 전만 해도 흥행 '대박'을 터뜨렸던 '투사부일체'나 '가문의 위기' '마파도' 등과 같은 코미디 영화들의 흥행 성공에 고무받아 만들어진 작품들이라 할 수 있지만 관객은 더이상 1~2년 전에 나왔던 영화와 비슷한 영화를 보고 싶어하지 않게 된 셈이다.

이러한 양상은 1980~90년대 홍콩 영화의 그것을 그대로 빼닮은 것으로, 당시 홍콩 영화는 '영웅본색' '천녀유혼' '취권' '도신' 등 한 작품이 히트를 치면 코앞의 이익에 눈이 먼 영화제작자들이 비슷비슷한 아류작들을 무한복제로 쏟아냄으로써 새로운 것을 원하는 관객의 외면을 자초했다.

배우 역시 저우룬파(周潤發), 장궈룽(張國榮), 리롄제(李連杰), 류더화(劉德華) 등 영화의 흥행을 어느 정도 보장하는 소수의 배우들만을 수십 번씩 우려먹다 보니 다른 배우들은 성장할 기회조차 갖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캐스팅할 수 있는 배우의 풀이 좁아지는 현상을 초래했다.

영화감독인 나비픽처스 김성수 대표는 "최근 기획력이 빈약한 비슷비슷한 영화들이 양산되고 있는 한국 영화 시장의 문제점은 1990년대 이후 몰락의 길을 걸었던 홍콩 영화의 그것과 흡사한 측면이 있다"면서 "영화제작자들이 변화된 관객의 성향을 정확히 읽어내고 끊임없이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려는 치열한 도전정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영화평론가 조희문 씨는 "홍콩 영화의 몰락은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면서 자유로운 창작환경이 크게 저해된 데 근본적 원인이 있으나 히트작들을 졸속으로 무한복제하는 양상은 최근 국내 영화계와 닮은꼴"이라며 "국내 영화제작자들의 각성과 뼈를 깎는 자정노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passi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