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봄의 불청객’ 황사가 찾아왔다. 황사문제는 각종 호흡기 질환, 농작물 성장저해, 항공기 결항 등의 피해를 유발하며 연간 피해규모는 3~5조원에 달한다. 피해 발생국이 늘어가면서 황사는 세계적 환경이슈가 되었고, 세계 각국은 대응책 마련에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에 환경부와 <국정브리핑>은 정연만 환경부 홍보관리관이 주요 황사발원지 몽골 '고비사막'을 찾아가 직접 취재한 내용을 7회에 걸쳐 연재한다. 심각한 사막화 실태를 생생한 사진과 함께 전달하고 이에 따른 향후 대책도 알아본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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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만 환경부 홍보관리관 | 사막에서의 세 번째 날. 어제 밤에는 캄캄해서 몰랐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집 모래 마당에 왜소한 나무가 세 그루 심어져 있었다. 밀려오는 모래 바람을 조금이라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든지 시도해 보려는 몽골인들의 삶의 한 단면이었다.
오늘은 차로 630㎞를 달려야 하는 강행군이 기다리고 있다. 서울에서 차량을 예약할 때 한 차에 기사를 포함해 4명이 탈 수 있도록 배차를 했는데, 차가 부족해 한 차에 5명씩 타게 됐다. 얼마쯤 가다가 마을을 끼고 흐르던 강이 없어지는 지점에서 차를 세웠다. 이전에는 무척이나 큰 강이었다고 한다. 헝가이 산맥에서 발원하여 유유히 사막을 적셔 주었던 강이 마지막 몸부림치고 있는 흔적이 보였다.
긴 강의 설움이 어디로 맺히는지 보기 위해 우리는 또 길을 재촉했다. 1시간 정도를 달려 ‘어르그 호수’(해발 1221m)에 도착했다. ‘어르그’란 말은 ‘성자’라는 뜻이다. 처음에는 그 이름을 붙인 이유가 잘 이해가 안 됐는데 물이 찬 호수와 눈 덮인 산맥을 이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니 성자라는 뜻의 이름이 제격이었다. 그런데 그 성자 내지 성스러운 곳이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었다. 호수 위 언덕에서 바라다본 어르그 호수는 바닥에 물이 하얗게 얼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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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얼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어르그 호수’. | 하지만 막상 호수로 뛰어 가보니 아뿔싸 얼음이 아니라 땅바닥에 남아있는 염분이 그렇게 보였던 것이었다. 호수 위로는 여전히 흰 눈을 이고 높은 산들이 구름을 허리에 두르면서 신비감을 더하고 있었다.
어르그 호수는 이테쿤보그드산(해발 3957m) 등 고비 알타이산맥 바로 북쪽의 호수로 서울의 1/4이나 되는 거대한 호수(14만ha)였고, 7~8년 전만 해도 매년 1000여명의 관광객이 찾아와 수영을 즐기던 곳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거대한 호수는 2004년 완전히 말라 버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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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그 호수 바닥에 남아있는 염분. | 보그리드 강저리크 군수는 “어르그 호수는 5∼6종의 물고기와 몽골에 있는 모든 새들이 살던 곳이었다. 그리고 호수와 눈 덮인 높은 산, 모래언덕을 함께 볼 수 있는 천혜의 장소였기에 예전에는 관광객 숙박을 위한 캠프만 3∼4곳이 있었다”며 옛날을 그리워했다. 하지만 호수가 말라버린 현실 앞에 “어르그 호수는 주민들의 자랑이었는데 물이 마르면서 무엇보다 주민들의 정신적인 충격이 컸다. 그리고 매년 1천명 이상 오던 관광객도 끊기고 이제는 호수를 연구하는 사람만 온다”며 걱정스러운 표정이 한가득이었다.
이렇게 어르그 호수처럼 물이 말라 없어진 호수 등으로 인해 유달리 황사가 심해지고 있다고 한다. 돌람도르츠 보그드군 부군수는 “전에는 봄에만 오던 황사가 지금은 사계절 내내 불어닥친다. 1년에 300일 정도는 황사가 온다. 호수뿐 아니라 주변 샘들도 같이 마르고 황사로 인한 모래 이동도 심해 초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며 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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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사로 인해 모래 이동이 심한 어르그 호수. | 울란 호수와 어르그 호수의 실상을 보면서 새삼 온난화에 따른 건조화 내지 사막화의 심각한 고통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지구 온실가스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에서 내보내고 피해는 가난한 국가가 고스란히 입는 현실에 마음이 착잡해질 뿐이었다. 인근 모래가 이동하는 현장과 모래 이동으로 강물이 모래에 묻혀버린 현장을 방문하고 나서 다시 울란바타르로 향했다. 울란바타르 호텔의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 시원한 맥주 한 잔 했으면 하는 생각이 절실했다.
해발 4000m가 넘는 산맥을 넘는데 함박눈이 내렸다. 이례적으로 따뜻하던 날씨도 점점 추워졌다. 평상시 고비사막의 날씨라고 하니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편하게 사막을 횡단했는지 감사할 따름이었다. 눈이 오니 운전기사도 길을 잃어 버렸다. 아무런 이정표도 없는 사막에서 길을 찾는 것 자체가 신기했지만 어릴 적부터 자연에서 자라왔기 때문인지 산등성이 모습만으로도 잘 찾던 사람들이었다.
눈은 계속 내리고 가야할 길은 많이 남았고 당초 계획보다 훨씬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중간 중간 눈 덮인 지역에서 만나는 양 떼와 말 떼는 무척 인상적이었다. 생명은 역시 강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하얗게 눈으로 덮혀 가는 지역에서 먹이를 찾아 소리치는 양 떼들의 울음소리가 나를 무척 슬프게 했다. 갓 태어난 어린 양이 얼어 죽지 않도록 목동이 가방에 넣어 다니는 모습에서 몽골인들의 마음을 읽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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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양이 얼어 죽지 않도록 목동이 감싸고 있다. | 여러 번 유목민들에게 길을 물어 오후 5시경에야 아르와헤르시란 곳에 도착했다. 중국식당에 들러 허기진 배를 열심히 채웠다. 남아 있는 길로 보아서는 언제 울란바타르에 도착할 수 있을지 몰라 일단 많이 먹어 두는 것이 상책이었다. 늦은 점심을 먹고 복잡하게 엉켜 있는 것 같은 아르와헤르시를 떠나 다시 울란바타르를 향해 출발했다.
한참을 달리니 드디어 도시로 이어지는 고속도로를 만났다. 눈이 펑펑 내리는 중이었지만 고속도로인 만큼 차들의 왕래가 드문드문 있었다. 그 가운데 우리 일행을 태운 7대의 차량이 대형을 유지하며 이동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루종일 눈 속을 쉬지 않고 늦은 밤까지 험한 길을 달리는 운전기사들이 졸지나 않을까 걱정이 됐다. 중간 중간 10분씩 휴식을 하며 운전기사들은 잠을 깨려고 서로 눈싸움도 하고 달리기도 했다. 그런 모습을 보며 피곤할 터인데도 우리를 생각하는 운전기사들의 따뜻한 마음씨가 고마웠다.
정말 끝없는 길이었다. 밤은 깊어만 가고 눈보라는 그칠 줄 몰랐다. 마침내 새벽 1시가 넘어서야 울란바타르에 도착했다. 자연의 힘과 인간의 탐욕을 느끼게 한 1200㎞의 일정. 그 긴 과정을 마치면서도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사막에 대한 그 무엇을 느낄 수 있었다.
“고비사막은 정복할 수 없다.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텅 빈 곳을 바라보는 것조차 견디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곳에는 텅 빈 공간과 평온함과 손님에 대한 환대가 너무나 많다. 인간의 본성이 그곳보다 더 평화로운 데는 없을 것 같았다”고 말했던 라인홀트 메스너의 느낌에 이제는 어느 정도 공감이 가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맴돌았다. (6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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