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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특집

[몽골 고비사막을 가다 ⑦ 끝]

한국과 몽골이 함께 만드는 행복의 숲
[몽골 고비사막을 가다 ⑦ 끝]

올해도 어김없이 ‘봄의 불청객’ 황사가 찾아왔다. 황사문제는 각종 호흡기 질환, 농작물 성장저해, 항공기 결항 등의 피해를 유발하며 연간 피해규모는 3조~5조원에 달한다. 피해 발생국이 늘어가면서 황사는 세계적 환경이슈가 되었고, 세계 각국은 대응책 마련에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에 환경부와 <국정브리핑>은 정연만 환경부 홍보관리관이 주요 황사발원지 몽골 '고비사막'을 찾아가 직접 취재한 내용을 7회에 걸쳐 연재한다. 심각한 사막화 실태를 생생한 사진과 함께 전달하고 이에 따른 향후 대책도 알아본다. <편집자>


정연만 환경부 홍보관리관
3월3일 몽골에서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오늘은 울란바타르 동쪽 150㎞에 위치한 바가노르 식림지를 방문하는 일정밖에 없어 비교적 여유가 있는 날이다. 그동안의 빡빡한 일정으로 마지막 날인 오늘은 모두 녹초가 되지 않았을까 했는데 아침에 보니 모두들 생기가 넘치는 모습이었다. 그동안의 피로가 몽골의 보드카에 녹아내려 버린 것일까? 아마 마지막 날이라는 생각이 마음을 편안하게 하나 보다. 역시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말이 새삼 되새겨졌다.

바가노르를 향해 우리 일행을 태운 버스가 힘차게 출발했다. 바가노르는 행정구역으로는 울란바타르시 바가노르구(區)로 평균 해발고도는 1,300m, 인구는 2만4천명인 탄광도시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석탄으로 울란바타르 사용량의 90%, 몽골 전체의 68%를 공급한다고 한다.

밖은 눈이 얼마나 많이 왔는지 차 안에서 바라보아도 눈이 부셨다. 눈을 입고 있는 몽골의 산하는 첫날 보았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을 우리에게 선물해 주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는 것을 알고 앵글 속에 담을 또 다른 모습을 연출한 것일까. 하얀 눈으로 덮인 지평선을 가느다란 길이 방향을 나타내고 있어 무척 인상적이었다. 저 길을 따라 한없이 걷다 보면 마치 설국에 도달할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했다.

바가노르로 이동 중에 만난 눈 쌓인 언덕의 양떼

점심시간이 지날 쯤 드디어 바가노르의 ‘한·몽 행복의 숲’과 ‘한·몽 평화의 숲’이 있는 지역에 도착했다. 두 숲은 탄광지대에서 날아오는 석탄먼지를 막기 위해 노천탄광 지대와 주거지 사이로 난 도로의 양쪽에 길다랗게 방풍림 형태로 조성됐다. 우리와 함께한 시민정보미디어센터에서 2002년부터 지금까지 이 일대 22㏊에 총 2만2000그루의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한·몽 행복의 숲’의 안내 표지판.

특이한 것은 나무를 심고 그 주위에 철조망을 쳤다는 점이다. 이는 마을 사람들이 나무를 훔쳐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방목하는 동물들이 어린 나무를 다 먹어 치우는 것을 막기 위함이라고 했다. 아직 채 자라지 않은 1∼2m 높이의 작은 나무들이지만 바가노르 식림지는 몽골 현지 주민들과 한국의 시민단체가 대규모 식림지를 잘 가꿔나갈 수 있다는 하나의 성공모델을 제시하고 있었다.

작은 나무 주위에 동물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철조망을 쳤다.

처음에는 가난한 지역민들이 심은 나무를 땔감으로 쓰는 일이 많아 ‘왜 나무를 심어야 하는지’부터 교육을 해야 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주민들의 마음을 크게 움직이게 한 것은 중국 네이멍구 사막에 80만 그루의 나무를 심은 부부의 이야기를 다룬 비디오물이라고 한다. 이후 주민들은 자기들도 나무를 심어 잘 가꾸면 자기네 지역도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지금은 자녀의 생일 등 특별한 날에는 기념식수를 할 정도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고 시민정보미디어센터의 김한나 부장이 당시의 설명을 곁들였다.

나무에 심은 사람의 이름표가 각기 달려있다.

시민정보미디어센터도 초기에는 2000년 울라바타르 시내에 나무심기 운동을 시작했으나 실패한 이후 몽골 정부의 소개로 바가노르구에 새로이 시작했다고 한다. 처음의 실패를 경험으로 이제는 성공하고 있다고 오기출 총장이 자부심에 찬 경과 설명을 했다. 이제는 그곳이 징기스칸 대몽골제국 선포 800년 대회에서 식림분야 1위로 뽑힐 정도로 몽골에서도 알려지고 있어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우리는 ‘한·몽 행복의 숲’을 관리하고 있는 다쉬돈도크(48)씨를 만나 숲을 관리하는 방법과 어려움 등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다쉬돈도크씨는 조성된 숲 근처의 게르에 살면서 나무를 관리하며 급여를 받고 있었다. 식림사업과 일자리 창출과의 연계를 통한 사업효과 제고 방안이 몽골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원래 시골에서 가축을 키웠는데 이제는 나무를 키우는 일에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몽골의 나무 남벌 및 도벌의 기저에는 가난이 깔려있었다. 그러기에 가난의 문제와 연계되지 않은 식림사업은 아마 그 효과를 제대로 거두기 힘들 것으로 보였다. 그는 아직 많지 않은 나이임에도 벌써 뛰어다니는 손자들이 있어 소개해 준 게르에는 명절이라고 할아버지한테 인사 온 귀여운 손자들이 둘이나 있었다.

우리나라의 여러 단체에서도 몽골에 나무 심기 행사를 벌이곤 한다. 하지만 일회성 이벤트로는 척박한 환경에서 심은 나무가 제대로 뿌리 내리기가 어렵다. 지역주민의 참여가 먼저 우선되어야 하며, 심은 나무에 대한 사후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시민정보미디어센터는 올해부터 그곳에서 서쪽으로 150㎞ 떨어진 바양노르에서 새로운 식림사업을 할 계획이라고 했다. 오기출 총장은 “바양노르는 황사 진원지 중에 하나이자 그린벨트사업 대상 지역이기도 하다. 주민들에게 300그루의 나무를 나눠주고 관리를 맡기는 대신 우물과 토지 사용권을 부여하는 새로운 형태의 식림사업을 구상 중이다”고 말했다.

‘한·몽 행복의 숲’의 관리를 맡고 있는 다쉬돈도크씨(48)와 손자들.

다쉬돈도크씨의 손자가 흔드는 고사리 같은 손을 뒤로하고 우리는 식사를 하기 위해 이동했다.
그동안 우리를 위해 물심양면 도움을 아끼지 않은 몽골의 그린벨트 국장과의 마지막 시간이었다. 음식점에는 그 지역의 부시장에 해당하는 부위원장도 참석했다. 그동안 우리를 위해 애쓴 그들에게 감사할 따름이었는데 오히려 그린벨트 국장이 우리를 위해 보드카 한 병을 선물로 제공했다. 그러면서 몽골 언론에서 우리가 자연환경부 장관을 방문한 내용을 방영하면서, 우리가 눈을 몰고 와서 몽골에 오랜만에 반가운 큰 눈이 내렸다는 방송을 했다고 전해주었다. 우리나라도 반가운 손님이 오면 눈이 온다는 말이 있는데 많은 부분에서 우리와 몽골은 닮은 점이 많은 것 같았다.

식사를 마치고 헤어지는 순간, 부위원장이 다음 여름에 꼭 한번 더 방문해 줄 것을 당부하며 준비한 선물을 나에게 주었다. 조그만 몽골식 물통과 기념 팬든트였다. 그 팬든트에는 민화가 그려져 있었는데 그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곁들여주었다. 그림에는 큰 나무가 있고 나무에는 맛있는 과일이 열려 있는데, 어느 동물도 혼자의 힘으로는 따 먹을 수 없을 정도로 키가 큰 나무였다. 그래서 동물들이 힘을 합쳐 맨 밑에 코끼리가, 그 등 위에 원숭이가, 원숭이 위에 토끼가, 토끼 위에 닭이 올라 과일을 따서 서로 함께 먹는 그림으로 몽골인의 의식세계를 나타내고 있는 민화라고 했다. 그 민화를 보면서 오늘날 몽골이 처한 사막화와 황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결국은 코끼리에 해당하는 선진 개발국과 약한 동물에 해당하는 후진 저개발국간의 협조가 없고서는 온난화, 사막화 및 황사 문제 등의 현안과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듀, 몽골…정부정책 이해 계기

모든 공식일정을 마치고 이제는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울란바타르로 향했다. 오는 중간 도로상에 나무를 묶음으로 팔거나 화물 차량에 석탄을 가득 싣고 파는 광경이 종종 목격됐다. 몽골의 경우, 연료 사정이 좋지 않아 도벌이 끊이지 않고 있어 나무를 개인적으로 파는 것은 법으로 금지하고 있음에도 어린이를 동원해 길에서 팔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도 시골에서는 나무를 연료로 사용했다. 지방의 소도시에서 살던 우리 집도 나무를 연료로 사용했다. 소득이 마땅치 않을 때에는 나무를 확보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 산도 헐벗어서 이를 방지하기 위해 행정기관에서 수시로 단속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후 소득이 늘고 산림녹화 사업이 진전됨에 따라 전국의 산이 수풀로 우거져 이제는 오히려 산에 들어갈 수 없는 지경이지만 말이다. 우리의 경험이 몽골에서도 이뤄지기를 마음 속으로 간절히 바랬다.

저녁을 마치고 일찌감치 공항으로 향했다. 비행기 출발시간은 밤 12시. 2시간 정도의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기자들은 모여서 그동안 취재하면서 방문했던 지역명과 인터뷰한 사람의 한국식 표현 등에 대해 합동 토론을 했다. 마지막 공항에서까지 취재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자 나 자신도 정말 이번 취재기획을 참 잘했구나 하는 마음에 왠지 기분이 뿌듯해졌다.

비행기 탑승 시간이 다가오자 갑자기 인천 공항에 안개가 심해 2시간 정도 더 연착된다는 방송이 대합실을 메웠다. 피로가 서서히 밀려오고 있었다. 그동안 참으로 의미 있는 시간들이었지만 공항에서 보내는 시간만큼은 빨리 돌아가고 싶었다.

3월 4일 새벽 2시. 비행기가 하늘을 날자 몽골의 산하가 저 아래 아스라이 멀어져 갔다. 이번 몽골 방문은 정말 고맙고 행운이 함께 한 여정이었다. 아듀! 몽골!

이번 몽골 방문은 현장에서 생동감 있게 취재한 관계로 많은 언론사에서 특집으로 대대적으로 보도함에 따라 국민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리고 기자들의 황사에 대한 기존 인식을 많이 바꾸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모두들 막연하게 알던 황사 현상에 대해 정확한 이해와 황사 정책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고들 한다. 그러한 인식하에 보도를 하다 보니, 그 보도들이 국민들에게 황사를 보다 잘 이해시킬 수 있었고 아울러 국가 정책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다고 생각한다.

기자들도 국가 정책에 가졌던 편견을 많이 불식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들 한다. 나에게도 단순한 보도자료 제공이 아니라 국민들의 관심을 가져올 수 있는 현장과 연계된 기획 홍보를 많이 발굴하여야겠다는 생각을 다지게 된 좋은 기회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