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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특집

[몽골 고비사막을 가다] ④ 사막에서의 둘째날

사막화와 사라진 호수들
[몽골 고비사막을 가다] ④ 사막에서의 둘째날

올해도 어김없이 ‘봄의 불청객’ 황사가 찾아왔다. 황사문제는 각종 호흡기 질환, 농작물 성장저해, 항공기 결항 등의 피해를 유발하며 연간 피해규모는 3~5조원에 달한다. 피해 발생국이 늘어가면서 황사는 세계적 환경이슈가 되었고, 세계 각국은 대응책 마련에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에 환경부와 <국정브리핑>은 정연만 환경부 홍보관리관이 주요 황사발원지 몽골 '고비사막'을 찾아가 직접 취재한 내용을 7회에 걸쳐 연재한다. 심각한 사막화 실태를 생생한 사진과 함께 전달하고 이에 따른 향후 대책도 알아본다. <편집자>

정연만 환경부 홍보관리관
처음 맞는 사막의 아침. 관광객용 게르여서 그런지 물차로 물을 실어다 주어서 아침에 간단한 샤워를 할 수 있었다. 물론 절수를 위한 장치를 달아 한국에서처럼 콸콸 나오는 물에 몸을 씻을 수는 없었지만 사막에서는 세수도 못할 것이라는 걱정을 잠재워 주어서 고맙고 놀라울 따름이었다.

우리와 동행한 몽골의 자연환경부 국장은 “예년 같으면 지금 눈이 펑펑 와야 하는데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비가 내린다”며 최근 들어 이런 현상이 심하다고 걱정스레 얘기한다. 게르 뒤쪽의 언덕에 올라 사막의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지평선에서 연노랑의 안개가 이는 것을 보면서 어린 시절 시골에서 보았던 황토길이 생각났다. 이른 아침을 재빨리 해치우고 사막에서의 둘째날이 시작됐다.

‘불간군 스리 캐멀 로지’ 관광 게르 캠프.

40분 남짓을 달리면서 중간 중간 토양 침식이 일어나고 있는 현장들을 스쳤다. 사막화가 한창 진행 중임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마침내 ‘바얀자그’라는 거대한 침식지대에 도착했다. 문득 미국에서 본 거대한 캐년들의 일부를 보는 느낌이었다. 고비가 붉은 속살을 드러내고 바람에 제 살이 깎여 나가고 있는 고통의 현장을 목격하면서 자연의 비애가 느껴져 왔다.

붉은 황토 언덕이 된 ‘바얀자그’.

이 지역 모래 바람은 붉은 색을 띄고 있어 ‘홍사’라고 할 정도였다. 이러한 몰골로 고통받는 바얀자그도 한 때는 나무로 덮여 있었다고 한다. 이 지역의 이름도 ‘자그’라는 나무가 많아서 지어졌다고 한다. 몽골어로 ‘바얀’은 ‘풍부’ 내지 ‘많다’는 뜻이며, ‘자그’는 염분이 많은 사막지역에서도 잘 자라는 나무로 나무 윗부분보다는 물을 흡수하는 뿌리부분이 더욱 발달되어 있는 나무라고 한다. 지명처럼 바얀자그는 이전에 무성하게 숲을 이루다가 1988년부터 점차 감소하기 시작해 이렇게 황폐화되었다고 한다.

바얀자그의 허무를 뒤로하고 달리는 차장에 조그만 빗방울이 계속 떨어져 내렸다. 취재에는 불편함이 있겠지만 몽골의 자연과 몽골인을 위해 풍부히 내렸으면 하는 혼자만의 발원을 해 봤다. 중간중간에 조그만 나무 숲들이 마지막 몸부림을 치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자그 또는 삭사울나무의 뿌리들이 공중에 허옇게 노출돼 있었다.

한참을 달려 드디어 ‘울란호수’를 찾았다. 하지만 찾기까지는 어려움이 꽤 있었다. 지도에서는 그 표식이 커서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거대한 호수는 물이 마르고 황폐화되어 그 지역 안내원조차 못 찾아 헤매는 불상사가 발생한 것이었다.

말란버린 울란호수.
울란호수는 호수에 물이 가득했을 때는 길이 25㎞, 폭 20㎞로 오문고비에서 최고로 큰 호수였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눈에 들어온 호수는 물이라고는 한방울도 찾아볼 수 없었다. 거북이 등짝처럼 쩍쩍 갈라진 바닥만이 흉하게 드러내고 있을 뿐이었다.

이 지역 만달오브군의 자밍앙허(44) 군수와 호수 인근 만달 마을 이장 바트후(70)씨의 말에 의하면 1980년대부터 물이 말라가다가 1997년경에 다시 물이 가득 찼었는데 강물의 흐름이 중단되면서 2000년경부터는 호수가 완전히 말라버렸다고 한다. 그 마을에서 태어나 1964년까지 이장을 지냈다는 바트후씨는 낡은 흑백 사진을 보여 주면서 호수의 시간궤적을 설명했다.

흑백 사진 속에는 사람 키보다 더 큰 풀들이 호숫가 주변을 무성히 둘러싸고 있었다. 42년전인 1965년 울란호수의 풍경이었다. 그 당시에는 호수 근처에 낙타가 1만 마리나 사는 등 가축들도 많이 키우고 철새들도 많이 찾아 왔었다고 한다. 하지만 호수가 마르고 방목이 어려워지면서 가축도 줄고 주민들도 떠나고 있다고 한다.

바트후씨가 물이 풍부했던 울란호수의 옛모습 사진을 보이고 있다.

자밍앙허 군수의 말에 의하면 호수가 마르면서 2000년 이후에만 20억 투그릭 상당(몽골인들의 월평균보수액이 5~6만원이라고 하니 우리나라 돈으로 약 17억여 원 되는 이 액수는 상당히 큰 금액이다.)의 경제적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이렇게 호수가 마르게 된 것은 울란호수에 물을 공급하던 언귀강 발원지점에 금광을 비롯한 광산개발이 집중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강물을 많이 끌어 쓰고 중간에 물이 땅속으로 흡수되면서 사막화 현상이 심해지고 결국 호수가 말라버린 것이다.

수천 수만년 동안 조상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곳이 인간의 탐욕으로 이젠 붉은 진흙 바닥만 남아 황사라는 또 다른 재앙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몽골에서 비단 울란 호수만이 아니었다. 1990년대 이후 강수량이 줄면서 684개의 강과 1484개의 지류, 760개의 호수가 똑같은 운명에 처해 말라버렸다고 한다.

쓸씁한 마음을 잠시 뒤로하고 점심 먹을 곳을 찾던 중 유목민 게르를 발견했다.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가보니 젊은 부부만이 살고 있었다.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기 위해 도시의 친척집에서 살고 부부가 낙타 80마리를 키우며 산다고 했다. 게르 안은 조그마한 공간이었지만 깨끗하고 몽골 유목민의 주거문화를 조금이나마 맛보게 해 주었다.

이들은 가축방목을 통해 가죽제품을 만들어 울란바타르나 중국에 팔면서 생계를 유지했는데 이제는 그것도 황사가 심해지면서 가축이 살찌지 않아 어려움이 많다고 했다. 특히 작년 겨울에는 무서운 황사가 들이닥쳐 80L짜리 통에 물을 가득 채워서야 겨우 집이 날리지 않게 고정할 수 있었다고 한다.

따뜻한 몽골 유목민을 떠나 다음 일정을 향해 출발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사막이라는 기분을 마음껏 즐기면서 차량은 뱀처럼 꼬리를 물고 늘어져 갔다. 중간 중간 사막에서 만나는 동물들의 잔해는 사막의 삭막함을 더하게 했다. 아마 그 동물들은 방목지에 나와 풀을 먹고 돌아가다 지쳐 쓰러져 영원히 깨어나지 못하였으리라. 나뒹구는 뼈들, 때로는 반 정도 부패가 된 사체들에 대한 이야기를 사막의 바람만이 누군가에게 실어 보내고 있을 뿐이었다.

사막에서 만난 말의 사체.

한참을 가다 우브르항가이도 보그드군을 방문했다. 낯선 이에게 간식을 접대하는 정성이 우리의 옛 모습을 닮았다. 친한 친구가 방문하면 권한다는 코 담배를 우리 일행에게 권하기도 했다. 바트울지 보그드군 시민위원장이 모래 이동 현상을 심각하게 설명했다. 모래이동으로 마을 모양이 해마다 바뀐다고 했다. 모래 바람에 집이 묻힐 것 같으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본 그 집들도 담벽에 벌써 반 정도의 높이까지 모래가 쌓여 있었다.

우브르항가이도 보그드군 마을내 모래 이동 장면.

보그드군을 떠나 숙소를 향해 가는데 서서히 해가 산맥 너머로 넘어가고 있었다. 갈 길은 멀고 어둠과 앞차에서 일으키는 먼지가 시야를 좁혀 조급한 마음이 더욱 일기 시작했다. 사막의 길은 통념적으로 생각하는 길이 아니라 모든 사막이 길이 될 수 있고 가는 그곳이 길이었지만 조심하지 않으면 차가 곤두박질칠 수 있는 매우 험난한 길이었다.

마침내 우리가 머무르고자 하는 바얀홍고르도 보그드군의 바크마을에 밤 10시가 넘어서야 도착했다. 근데 숙소에 보일러가 고장 나서 임시변통으로 마을 유지들 집에 민박을 해야 한다고 해서 우리는 3~5명씩 나누어 몽골 주민의 집에 투숙하게 됐다.

저녁을 준비했다고 하나 늦은 시간이기에 우리는 미안한 마음에 가져간 컵라면 2개를 4명이 나눠 먹고 거실로 가 침낭을 깔고 잠을 청했다. 누웠을 때는 난방이 어느 정도 되어 춥지 않았는데 새벽이 되니 추위가 조금씩 느껴졌다. 몽골인들은 우리보다 훨씬 추위에 강한 것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아이들이 드럼통처럼 생긴 물통 앞에서 세수를 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물은 근처 우물에서 길러온다고 하는데 아이들은 물을 아끼기 위해 손으로 물통을 살며시 툭툭 치고 그러면 물꼭지에서는 물이 조금씩 나왔다. 세수도 물 한 컵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 모습을 본 우리는 물 사용하기가 미안해 물티슈로 고양이 세수를 했다. 사막지대 몽골 가정에서의 물절약 시스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었던 민가에서의 하룻밤이었다. (5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