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 온 길은 실처럼 가늘어지고 엘레나산장은 장난감 집처럼 작아질 때까지 오르고 또 오른다.
촬영때문에 또 뒤처진 나도 힘겹게 가파른 능선에 붙잡혀 발을 한걸음씩 떼어 붙히고 있다.
이 마지막 능선을 돌아가면 페레 고개(Grand col Ferret, 2537m)가 보일 것이다.
페레 계곡이 아스라히 멀어지기 시작한다. 스위스가 가까워지고 있다.
급한 오르막이 끝나고 꽃밭 사면을 트레버스 하듯 걸으면 프랑스,이탈리아,스위스 3개국에 걸쳐 있는 몽돌랑(Mont Dolent, 3823m)과 아름다운 프레 드 바 빙하(Glacier de Pre de Bar)가 더 선명하게 더 가까이 보이는 듯 하다.
프레 드 바 빙하(Glacier de Pre de Bar)가 마치 머리 위에 있는 듯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남상익대장과 이재흥선배.
아름다운 빙하는 사람과 어우러지니 더 아름다워진다.
며칠째 말은 안하지만 송덕엽선배가 컨디션이 좋지 않은 듯 하다.
가끔은 나랑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정도였으니.
그 거리를 만회하고자 길과 길을 건너뛰 듯 급사면을 성큼성큼 축지법으로 선두를 따라 잡는다.
알핀로제가 흐드러진 마지막 피치.
어디선가 자전거를 타고 나타난 무리들이 나타났다. TMB코스에 MTB를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는 소리를
듣기는 했으나 실제로 보니 참 대단하다고 느끼게 된다.
대부분은 언덕길과 로드상태를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 보였지만 엎어지고 미끄러지고 하면서
자기들의 취미와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그들이 참 보기 좋았다.
특히 이 페레 고개로 가는 길에서 MTB를 하는 외국인들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사람이 걸어 오르기는 힘이 들지만 자전거로 다운 힐하기 좋은 코스기 때문이다.
컨디션이 썩 좋지 않았던 송덕엽 선배는 원래 MTB마니아.
이들을 보는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신이나서 응원을 해주었다.
다음 기회에는 '뚜르 드 몽블랑'을 MTB로 하고 싶다는 소망과 함께.
MTB를 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느라 잠시 멈추었던 발걸음을 다시 뗀다.
국경지대인 페레 콜(Grand col Ferret, 2537m)로 가는 마지막 능선은 완만하다.
매우 넓은 콜은 느긋하게 전망을 즐기기에도 좋다.
콜 주변에는 고산식물과 야생화가 많아 천천히 감상하면서 걸으면 어느새 페레 계곡이다.
약 900m나 되는 표고차를 올라서 도착한 페레 콜(Grand col Ferret, 2537m)이고 보니 감회가 남다른
모양이다. 스위스쪽에서 강하게 바람이 불어 춥기도 했지만 조금은 상기된 대원들은 모두 큰소리로 환호한다.
소위 대학로派인 전재현사장님과 김종선사장님은 국경을 넘어 스위스로 가서는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1931년에 세운 경계비가 스위스와 이탈리아의 국경임을 알리고 있다.
스위스쪽에서 보니 페레고개에 가려졌던 그랑드 조라스와 프레 드 바 빙하(Glacier de Pre de Bar)가 보인다.
국경지대라고 해봐야 검문소도 경비병도 없다. 경계석과 이정표만이 국경임을 표시하고 있다.
하긴 알프스가 자유로운만큼 굳이 이탈리아 땅이니 스위스 땅이니 인위적으로 선을 긋고 경계를 할 일도
아닌 것 같다.
왼쪽에 가늘게 난 길이 TMB노멀코스이고, 오른쪽 멀리에 그랑 콤방(Grand Combin, 4314m)의 웅장한 모습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스위스로 하산하기 전에 가이드와 함께 기념사진 찍기 위해 줄을 섰다.
국경경계비에서 첫 기념사진은 가장 연장자이시면서도 흐트러짐 없는 트레킹으로 연일 노익장을 과시하시는
정한영교수님 차지였다.
남들은 그렇게 기념사진을 찍고 다 스위스 쪽으로 가버리고 주변 스케치하느라 혼자 남은 내가
안되 보였던지 남상익대장님이 발길을 돌려 이 사진을 찍어 주었다.
낙오하는 일은 여러가지로 사람이 할 짓이 못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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