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 누아르 계곡(Nant noir)수림지역의 급경사 지대를 걷다보면 어느 순간 삼림한계를 벗어나 레 헤르바제르(Les Herbageres, 2033m)를 넘어서면 시야가 크게 열린다.
급경사면에 2개의 만년설 구간이 있는데 이걸 패스하면 프랑스는 다 온 셈이다.
멀리 2,191m의 발므고개(Cold de Balme)가 보인다.
샤모니 계곡 상단, 그러니까 샤모니 북쪽 끄트머리에는 프랑스와 스위스의
국경을 이루는 발므 고개(Col de Balme, 2191m)와 발므산장이 있다.
발므산장은 오래된 모습 그대로 아주 소박하게 언덕 위에서 고개를 지키고 있다.
줄곧 왼쪽 저 멀리에 펼쳐진 '에귈 드 로제' 침봉군과 그 아래의 낭 누아르 계곡(Nant noir)을 바라보며
걷는다. 발아래에 펼쳐진 알파인 초원에는 젖소들이 열심히 풀을 뜯고 있다.
점점이 흩어져 있는 그들이 내는 울음소리와 함께 목가적인 알파인 풍경을 느낄 수 있다.
그렇게 평탄한 길을 따라 걸으며 주변 경관을 즐기다보면 드디어 발므고개에 도착한다.
원래 이 발므 언덕은 알파인 목장으로 유명했던 곳이라고 한다.
이곳은 2000m 이상의 드넓은 알파인 언덕이 이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몽블랑 산군을 북서쪽에서 한눈에 조망할 수 있어 많은 트레커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그 혼란한 틈에서 스위스와 프랑스 두나라의 영토를 알리는 경계비를 마치 구도자처럼 깔고 앉은 이 분은
누구? 바로 정한영 교수님이다.
80세 고령임에도 한번도 일행들에게 부담을 주거나 처지는 일없이 묵묵히 세상을 즐기신 고수의 길고도
달콤한 휴식의 모습이다. 경계비가 얌전히 의자가 되었다.
이곳은 알프스에서 가장 눈과 비가 많이 내리는 곳 중 하나다.
샤모니 계곡을 타고 오르는 구름이 이 고개를 넘으면서 눈과 비를 뿌리고
몸을 가볍게 한 후 이 국경 고개를 넘는 것.
고개의 특성이 그렇듯 샤모니도 예외는 아니다.
변덕이 죽 끓듯하는 날씨 11일전과 별반 다름이 없다.
짙게 드리운 구름이 에귀 디 미디와 몽블랑의 대부분을 가려 버렸다.
뒤늦게 도착한 나도 국경이 접한 곳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내 사진의 대부분은 남상익대장님이
찍어 주셨다. 남대장님이 아니었으면 내가 '뚜르 드 몽블랑'을 했다는 증거를 찾기 힘들 정도다.
내가 이렇게 속물근성을 구현하고 있을 때.
트레킹의 고수들은 샤모니계곡으로 펼쳐진 장쾌한 경관을 감상하거나
아름답고 달콤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모처럼 단체사진을 찍는데 이 한몸을 섞을 수 있었다.
언제나 13번째로 오는 나를 기다려 단체사진을 찍을 수는 없는 일.
발므산장 오른쪽으로 가면 끄와 드 포르(Croix de For)를 거쳐 포르클라 고개로 가는 길.
우리는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하산할 예정이다.
오랜만에 프랑스 샤모니와 재회한 발므고개(Cold de Balme)에서 잠깐 휴식을 취한 후, 포세트(Posettes)
산등성이를 따라 샤모니 계곡 상류의 1417m높이의 Trelechamp로 향한다.
알핀로제 넘어 저 멀리 지렁이 같은 길을 따라 왼쪽으로 내려갈 것이다.
뒤를 돌아보니 발므고개가 까마득하다.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르 뚜르(le Tour)방향이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곤돌라 케이블을 볼 수 있는데 그 곤돌라를 타고 내려갈 수도 있다.
포세트(Posettes)산등성이를 내려서면 그야말로 비단같은 길이 펼쳐진다.
사진에서처럼 붉은색의 알핀로제와 노란색, 하얀색 등 갖가지 야생화가 초원을 꽉 채우고 있다.
왼쪽 사면으로는 전체가 알핀로제 밭이다.
멀리 뚜르 빙하(Gl. du Tour)와 구름에 살짝 가린 사르도네 봉우리와 어우러진다.
알핀로제 밭에 빠진 가이드 베르나뎃뜨와 룰루가 꽃보다 아름답게 환하게 웃는다.
사면 기슭으로 르 뚜르마을이 보이고 멀리 샤모니도 얼굴을 빼꼼히 내민다.
주변에는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연이어 있어 매우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이 사면을 지그재그로 30여 분을 내려가면 드디어 오늘의 숙소인 트렐 레 샹 산장(Trelechamp, 1417m)에
도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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