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도시에서 아침 출근시간에 즈음해 움직이는 것은 일종의 도박이다. 지난 역시 마찬가지였다. 몇 년 사이에 엄청나게 커진 도시의 아침은 자전거와 오토바이, 차량에 엉켜 그야말로 인산인해.
겨우 도시를 빠져나와 정저우(郑州)로 가는 고속도로에 올라선다.
땅덩어리가 넓은 만큼 중국의 기상도 천변만화한다. 시시때때 밀려드는 짙은 안개와 비는 고속도로에서도 여행자를 긴장하게 만든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공룡트레일러(어떤 것은 1톤 트럭 16대를 세워서 실은 경우도 있다)가 수십 톤의 화물을 싣거나 사이드 미러가 아예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짐을 빼곡히 실은 차들이 하중을 이기지 못하고 기껏해야 시속 50~60㎞로 열을 지어 달리면 고속도로는 명절 귀성길처럼 주차장으로 변한다.
이런 것은 실제로 목도하지 않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경험이다. 더구나 브레이크를 잘 밟지 않는 운전습관과 수천 킬로미터에 이르는 장거리 주행의 피로는 곳곳에 전복, 충돌사고로 이어져 고속도로는 아수라장이 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도로는 성할 날이 없다. 곳곳에 고장난 차를 수리하고 길은 덧칠하기에 바쁘다. 그래서 '중국의 길은 언제나 공사 중'이다. 그 일차적인 원인은 과적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엽기적인 과적기술만큼은 세계최고 수준이다. 중국의 고속도로가 워낙 길다보니 한 번에 많이 싣고 가는 것이 이익임은 분명하다. 과적을 엄격하게 단속하면 물가가 상승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 같은 현실을 잘 알고 있는 중국정부가 경제발전의 첨병이요 서부개발의 주역인 그들을 쉽게 통제할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
중국의 고속도로는 지루하다. 어찌나 땅덩어리가 넓은지 한참을 달려도 한번 펼쳐진 풍경은 쉬이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찬찬히 살펴보면 반짝이는 새로움과 지혜가 돋보인다. 고속도로변 가로수는 세 겹 이상 켜켜이 조림되어 방풍림 역할뿐 아니라 토양의 사막화 현상도 막아 준다.
나무 사이사이에는 크고 작은 연못을 만들어 농업용수로 활용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지난에서 시작한 집단 옥수수 밭이 수백 킬로미터를 달려도 마치 똑 같은 그림을 펼친 듯하고, 그 다음 100킬로미터가 밭이면 200킬로미터는 논을 보고 달린다는 것이다. 중국이 얼마나 넓고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나라인지 피부로 느껴지는 풍경이다.
수백 킬로미터 넓게 펼쳐진 논에는 노랗게 물든 벼이삭이 안개비에 젖어 수줍게 숨어있다. 그 끝에 정저우(郑州-허난성 중북부 도시, 황하 하류에 위치)가 있다. 대평원으로 진입하면서 넓어지는 황하(黃河) 남쪽 유역, 숑얼산맥(熊耳山脈) 동쪽 끝에 있다. 이 도시를 중심에 두고 남북으로 타이항산맥(太行山脈)과 허난성 서부산맥의 가장자리를 따라 난 길, 동서로 황하, 시안을 따라 놓인 길이 교차한다.
정저우는 중국 최초의 왕조인 하(夏)나라 이후 약 20개 왕조가 도읍을 정했던 유서 깊은 도시다.
우리에게 정저우는 쑹산(嵩山) 자락에 위치한 샤오린스(少林寺)라는 등식으로 인식된다. 삼국지에 무수히 등장하는 인근의 뤄양(洛阳)과 카이펑(开封) 같은 도시에 비해 덜 알려졌지만 사실은 3,500년 역사를 자랑하는 곳으로 한때는 중국의 중심무대였다. 황하문명의 시작점이자 소위 중국을 ‘중원(中原)’이라고 칭했던 시절 중원은 정저우와 인근 뤄양(洛阳), 카이펑(開封- 기원전 전국시대의 위나라와 5대 10국의 5대와 북송이 수도로 삼은 곳) 등의 도시를 의미했다.
중원을 잡는 자, 천하를 잡는다고 했다. 아마도 과거 중국 영토의 한가운데 위치한다는 상징적 의미와 황하라는 수로를 통해 교통과 물류가 발달하고 곡창지대라는 여건을 가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덩샤오핑이나 장쩌민도 정저우를 비롯한 허난성(河南省)의 몇 개의 도시가 중국 역사의 중심이라고 했다.
오늘날의 정저우는 허난성(河南省)의 성도(省都)로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자 중국을 사통팔달로 연결하는 철도 교통의 심장부다.
인천공항에서 2시간 남짓 비행거리임에 비해 우리에게 비교적 덜 알려진 곳. 최근에 경제가 급부상한 광둥성(廣東省)과 산둥성(山東省)에 추월당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국 행정구역 중 최대 인구를 자랑하는 경제 후발지역으로 1억 명 이상이 살고 있는 대도시다.
'정저우를 지나지 않는 기차는 없다'라고 할 정도로 철도가 눈부시게 발달했다. 우루무치에서 란저우, 시안을 지나 동으로는 장쑤성(江蘇省)의 롄윈항(連雲港)까지 연결되는 룽하이선(陇海线-甘肅省 蘭州와 江蘇省 連雲港간 철로)과 중국의 남북을 잇는 징광선(京廣線-베이징과 광저우를 남북으로 잇는 철도)이 만나는 교통의 요충지이다. 신 실크로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중국과 유럽을 잇는 10,214km 열차 노선( 2013년 7월 개통)의 중국의 기점이 바로 정저우다.
중국은 현재 서부 대개발의 두 중심지, 즉 시베이(西北)의 시안(西安)과 친링산맥(秦嶺山脈, Ch'in Ling)을 넘어 시난(西南, 중국 6대 지리대구의 하나로써, 중국 서남부의 충칭 시, 쓰촨 성, 윈난 성, 구이저우 성, 티베트 자치구를 포함한다)의 청두(成都)를 잇는 고속도로를 건설 중인데, 정저우는 이 도로의 중심이기도 하다.
최근 들어 2·7기념탑 광장(1923년 노동자 시위 때 유혈 진압된 참사를 공산정부가 들어서면서 기념하기 위해 만든 탑)을 중심으로 구도심과 현재 CBD(Central Biz Dixtrict)역할을 하는 정둥신취(郑东新区)를 중심으로 신도시가 어우러져 옛 영화를 구현하기 위해 일취월장하는 모습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정저우를 지나 30분 정도 달려 싼먼샤(三門峽)에 이르면 멀리서도 확연히 탁한 황하(黃河)가 들어온다. 언뜻 보아도 그 폭이 한강의 몇 배는 됨직하다.
황하는 멀고도 먼 칭하이(靑海)성에서 발원한 강이다.
물줄기는 칭하이성 남동부를 흐르면서 쓰촨성(四川省)과 경계를 이루고, 간쑤성(甘肅省)과 시닝(西寧), 란저우(蘭州)를 거쳐 산시성(山西省)의 싼먼샤(三門峽), 화베이평야(華北平野)를 거쳐 산둥성(山東省)의 보하이만(渤海灣)으로 들어간다.
장장 5400여 킬로미터를 흐르는 이 강은 한족과 소수민족들의 젖줄인 동시에 문화의 원천이기도 하다. 그동안 저 물로 인해 수많은 이들이 웃기도 하고 울부짖기도 하였을 것이다. 지난 3천년 동안 1천500회 이상 범람해 제방을 무너뜨리고 26번이나 물줄기를 바꾸었다는 황하가 무겁고 넉넉하게 흐르고 있다.
일모도원(日暮途遠)이라 했던가. 해는 떨어지고 아직도 가야할 길은 200여㎞가 남았다. 고속도로를 점령한 대형 트레일러 무리를 피해 곡예하듯 달린 끝에 도착한 시안(西安)의 화려한 야경이 등대처럼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13개 왕조가 수도로 삼고 70여명의 황제가 살았다는 3천년 역사의 중심지다.
머나먼 실크로드의 출발지 시안에 피곤으로 뒤범벅이 된 채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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