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포기얌다(工布江達)현을 지나 미라산(米拉山)을 오른다. 촨짱꽁루 중 마지막 고개다.
5000미터가 넘는 고개라 정상부위에는 벌써 잔설이 내려있다.
한참을 오르다 보니 고갯마루에 ‘메드로미라산(墨竹米拉山)휴게소’가 눈에 들어온다.
티베트 여느 고개와 다를 바 없는 산정이지만 티베트 동부와 서부가 갈리는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고개다.
도로변엔 ‘米拉山口(해발 5.013m)’라는 입간판과 함께 티베트를 통일한 ‘송첸감포의 고향, 아름다운 메드로공카(松贊干布故里 美麗墨竹工卡)’라고 쓴 붉은색 현판이 서있다. 송첸감포(松贊干布, 617~650)왕의 출생지가 메드로공카현에 속한 자마향(甲玛乡)의 장파미지우린(强巴米久林)이기 때문이다.
송첸감포(松贊干布, Srong btsan sGampo 617~650) |
송첸감포의 출생 년도는 정확하지 않으나 티베트에서는 당 고조가 제위에 올라 당나라가 건국되기 1년 전인 617년에 태어났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가 13세가 되던 629년 전통에 따라 왕위에 오른 것으로 추측된다. 일시적으로 티베트 일대를 통합한 남리송첸(南日松贊, gNamri Srong btsan)이 중앙집권화 시도를 하다가 얄룽왕조 내부 귀족들의 반발로 629년 경 독살당한 후 33대 왕좌에 올랐을 때는 힘없는 군주였다. 그러나 왕위에 오른 후 타고난 지혜와 통솔력으로 곧바로 군사력을 결집해 인근 왕국을 평정하고 티베트 일대를 통일한다. 찬보(干布-‘용감무쌍한 사내’라는 말로 정교합일의 법왕(法王)을 뜻함)에 즉위한 이후 우선 단행한 일은 수도를 옮기는 일. 본래 얄룽왕조의 본거지는 윰프라캉이 있는 얄룽계곡 일대였는데, 이 지역은 귀족 세력의 근거지이기도 했다. 송첸캄포는 귀족들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자 수도를 633년 라싸로 옮긴다. 라싸를 중심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티베트 문자를 제정하였다. 가르통첸(Gar Tongtsen, 禄東贊)과 톤미 삼보타(Thonmi Sambhota, 吐彌桑布札) 같은 인재를 등용하여 외교에 힘쓰는 등 토번제국의 기틀을 마련하고 티베트 역사의 본격적인 시작점을 만들게 된다. |
그러나 송첸감포의 고향이기도 하고 티베트의 발상지라고해도 과언이 아닌 산난지방(山南市)을 그냥 지난다. 일정 때문에 티베트 건국설화를 품은 최초의 왕궁 윰블라캉(Yumbu-Lha Khang, 雍布拉康)도 아쉽게도 지나칠 수밖에 없다.
미라산(米拉山) 정상에 부는 바람에 맞춰 춤을 추는 오색 타루초가 현란하다.
표지석에 새겨진 높이를 확인하자 왜 심장박동이 거칠어지고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알게 된다. 고갯마루에 있던 행상과 움막들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기념품을 파는 가게 몇 개가 생겼다. 예전에는 없던 블랙야크 두 마리 동상이 기세 좋게 서있다.
야크 목과 뿔에 누군가의 행운을 기원하는 카타(哈达, khata 또는 Hada)가 덕지덕지 감겨 한껏 기세를 올리고 있는 야크의 목을 조르고 있다. 티베트의 순수한 신심도 이젠 관광객들의 염원 뒤편으로 밀려난 것처럼 보여 씁쓸하다. 산바람에 날려 부딪치는 카타의 파열음이 왠지 슬프게 느껴진다.
(2019년 4월. 티베트 라싸(拉薩)-린즈(林芝) 구간 내 미라산터널(米拉山隧道)이 개통됐다. 4,740m에 위치한 터널이 준공되면서 라사에서 린즈까지 소요시간이 8시간에서 4시간으로 줄고, 겨울철 안전문제도 해결됐다)
미라산을 경계로 풍경은 완전히 달라진다. 산 고개를 넘어서면 더 이상 삼림은 구경할 수 없다. 해발 5,200m 고개를 향하던 중 아쉽게도 가을이 끝나버렸다. 산마루에 올라서자 진눈깨비가 쏟아지더니 하얀 설산의 봉우리들이 성큼 다가선다. 이제 고개를 넘어 90킬로미터 정도 더 가면 라싸가 있다. 라싸가 바로 코앞에 다가 선 것이다.
미라산(米拉山)고개를 넘은 차량은 오른 만큼 내려가야 한다. 초원지대를 한참을 지나면 메드로공카(墨竹工卡, Medro gongkar)에 도착하게 된다. 라싸지구(Lhasa地區-지구란 우리나라의 道에 해당한다)의 8개 현 중의 하나인 메드로공카는 인근에 드리쿵사원(直貢寺)이 있다. 티베트에서 천장(天葬)을 하는 대표적인 곳으로 유명하다. 사원을 연결하는 거점도시로 숙박시설과 식당 등이 잘 갖춰져 있다.
도로변에 신축한 주택과 새로 짓는 집들이 많다. 주로 시멘트와 벽돌이 많은 것으로 봐서 . 흙이 주재료인 티베트의 전통적인 방식은 아닌듯하다.
드리쿵사원은 318번 국도에서 북동쪽 약 60km 쯤 떨어진 곳에 있다. 라싸강이 내려다보이는 절벽에 깎아지른 듯 세운사원은 규모가 만만치 않다. 장대한 아름다움과 함께 천장대로서 명성이 높다. 죽음을 보는 일이 큰 흥밋거리가 된 것이다.
문화혁명 당시 피해를 입었지만 비교적 원형이 많이 남은 사원으로 800여년의 역사가 있다. 드리쿵사원 본당 뒤 언덕으로 30분 정도 걸어야 해발 4800m 고지에 위치한 천장터에 닿을 수 있다.
티베트인들은 윤회사상을 믿는다. 죽은 후 자기 육신을 독수리들이 먹고 승천해야 다음 생에 좀 더 나은 세상을 맞이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죽음은 곧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는 의미다. 이것이 바로 전생, 금생, 내생의 삼세윤회(三世輪廻)와 환생(還生)이다. 장례문화는 그 나라의 종교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땅도 척박하고 화장할 여건이 되지 않는 티베트의 자연환경도 천장(天葬)을 하게 된 주요한 이유이지만 티베트인들이 자연과 교감하는 방식이기도하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시신을 오래 동안 방치하지 않고 짧은 시간에 처리하기 위해 시신을 잘게 나누어 새들이 먹도록 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아마도 중국정부의 영향이 아닌가 싶다.
1950년 인민해방군의 침공 이후 '하나의 중국(只有一個中國)' 을 모토로 하는 중국정부의
‘한화(漢化)’정책은, 일면 해괴해 보이는 천장이 천여 년 동안 이어지고 있는 것이 마뜩치 않은 일이었다.
티베트의 관습보다는 중국의 국가이미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1980년대부터 티베트 현대화 정책이 시작되면서 전통적인 가치관에 균열이 생긴 것은 중국 정부의 간섭과 통제가 작용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관광 상품으로 개발되어 여행사를 통해 천장(天葬)을 볼 수 있다. 티베트인들의 신앙과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이방인이 보기엔 잔인하기 그지없는 이 풍습을, 나는 실제로 촬영하면서 1시간 이상 천장의 과정을 지켜보았지만 어떤 역겨움이나 잔인함을 느끼지 못했다. 그 문화를 이해하고 그들만의 방식을 이해했기 때문일까?
메드로공카에서 버스 또는 미엔빠오처(面包車)로 불리는 빵차 등을 이용하여 드리쿵사원에 갈 수 있다.
메드로공카 올드 타운에서 출발하여 왕꾸얼산(旺古兒山) 정상부근에 위치한 간덴사원(甘丹寺, Ganden monastery)입구를 지나 약 20 여 분 후면 탁체(達孜)에 도착하게 된다. 라싸강변에 위치한 조그만 마을로 중심부에 있는 쌍아사(桑阿寺)와 그 주변의 옹기종기 한 티베트식 마을이 어우러져 정겹다.
미라산을 넘어서도 동반자가 된 라싸강(拉萨河)은 여전히 여유롭다. 날씨에 따라 풍경은 시시각각으로 변하지만 그 변화무쌍에 감탄하게 되는 원시적 낭만을 느끼기에 충분한 길이다. 라싸의 동쪽 관문인 탁체(达孜)에서 터널 3개를 지나면 라싸대교. 멀리 마르포리(Marpori, 紅山)에 웅좌를 튼 포탈라궁이 석양에 빛나고 있다.
드디어 라싸에 도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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