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 방향 정문 광장 앞에는 좌우로 하늘을 찌를 듯 한 룽다와 향로가 2개씩 있고,
그 앞에 문성공주가 심었다는 버드나무(公主柳), 토번과 당나라의 평화협약을 담은 당·토번회맹비(唐吐蕃會盟碑)가 있다. 고대 티베트와 중국의 관계를 말해주는 상징적인 기념물이다.
그 앞에 있는 문이 바로 조캉사원의 정문이다. 문고리와 돌로 만들어진 바닥은 사람의 손길과 발길로 세월의 깊이를 만들었다. 순례자들의 신심만큼 닳고 닳은 돌의 굴곡에서 그들의 진심이 느껴진다. 정문은 고집스럽게 닫혀 있다. 언제부터인가 굳게 잠겨서 열린 적도 없고 어떤 경우에도 열리지 않는다고 한다. 점성가은 조캉사원의 정문에는 티베트의 힘을 상징하는 주술적 의미가 있다고 한다. 아마도 중국 정부는 티베트에 그 어떤 힘이 작용하기를 원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오늘도 조캉의 정문을 향해 끊임없는 오체투지를 하고 있는 그들의 소원은 무엇일까?
대법당 앞에는 벌써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들로 빼곡하다. 그 뒤를 이어 오는 순서대로 자리를 잡고 경배를 한다. 마치 애벌레의 굴신운동을 하듯 쉴 사이 없이 일어섰다 엎드리기를 반복하며 신심을 확인하고 있다. 티베트의 심장이라는 바코르광장이 이들의 신심을 자양분으로 거친 숨쉬기를 시작한 것이다.
오체투지는 인간이 가장 낮은 자세로 부처에게 다가서는 모습이라고 한다. 머리와 양 팔꿈치, 양 무릎의 다섯 부위가 땅에 닿도록 납작하게 엎드려 부처를 봉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새삼 이곳은 티베트라는 것을 실감한다.
오체투지를 마친 순례자들은 코라((Kora, 탑돌이처럼 성지를 도는 것)를 시작한다.
조캉사원을 중심으로 시계방향으로 한 바퀴 도는 바코르 코라(Bakor Kora)는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행렬에 서 있으면 저절로 밀려 갈 지경이다. 한 바퀴 돌면 사소한 죄가, 세 바퀴 돌면 이번 생의 업(業)이 소멸된다고 한다.
이생에서의 죄업을 정화한 다음, 깨끗해진 몸과 마음으로 다시 조캉사원 앞에서 오체투지를 반복한다. 자연스럽게 관광객들도 서로의 죄가 없어지길 기대하며 코라를 돌아본다.
경향 각지에서 몰려든 순례자들의 복장은 각양각색이고 표정은 구구절절하다. 그러나 부처를 향한 마음은 똑 같을 것이다. 순례자들이 무리로 움직여 마치 매스게임이라도 하는듯하고, 이방인들의 카메라 셔터소리는 폭포수 같다. 이곳만큼 동적인 곳은 없을 것 같다. 이제 조캉사원의 시간과 공간은 오로지 순례자들의 것이 된다.
바코르광장 좌우로는 갖가지 불구(佛具)와 골동품은 물론 지역특산품, 신발, 액세서리, 모자 등 각종 수공예품을 파는 가게들로 연이어져 있다. 깨끗하고 규모가 있어 선뜻 들어서기가 망설여진다.
몇 년 전만 해도 길게 난전을 이루고 있던 노점상들이 사라진 것은 당연한 일. 2003년 중국정부가 대대적인 정비를 하여 노점상에게 우선하여 상점을 분양했으나 지금은 후이족, 한족들이 그 자리를 꿰차고 있다고 한다. 안내인의 말을 빌리면, 티베트인은 손님을 대하는 것이 투박하고 상술이 부족해서 장사를 잘 못하는 것이 이유란다. 예전 보자기나 손수레에 물건들을 쌓아 놓고 호객하던 난전이 좋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인가?
티베트 사람은 죄업을 씻기 위해 돌고 관광객은 도대체 뭘 사야 좋을지 몰라 흥정하느라 돌고 돌았던 바코르 순례길의 야단법석은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조캉사원과 달리 바코르 거리는 예전 같지 않다. 순례자들이 눈에 띠게 줄고 오히려 중국인과 외국인이 더 많아 보인다. 거기에 호객하는 상인들의 목소리가 더해져 천년 세월의 종교중심지 바코르는 티베트 최대의 전통시장쯤으로 전락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바코르거리(八角街, Bakor) 끝에 위치한 티베트식당 겸 카페인 ‘마케아메(Makye ame)’가 눈에 뛴다. 중국식으로는 마지아미(玛吉阿米) 즉, ’아직 결혼하지 않은 아름다운 아가씨‘라는 의미다. 건물은 짙은 황토색으로 채색하고 격자 유리창은 검은색으로 칠해져 있어 묵직한 전통의 멋이 느껴진다. 노란색과 하얀색 창틀로 단장은 바뀌었지만 간판색은 여전히 노란색계통을 고수하고 있다.
베이징, 윈난 등 여러 군데 지점이 있고, 모두가 문전성시를 이룰 만큼 장사가 잘되는 가게라고 한다. 특히 라싸는 그 원조니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곳이다.
약 320년 전 이야기다. 유일하게 사찰에서 수행을 쌓지 않고 달라이라마가 된 6대 달라이라마인 ‘상양 갸초(Tsang Yang Gyatso)’. 당시 16세의 소년으로 자유분방했던 그는 궁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밤마다 궁을 빠져나와 주색잡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라싸의 거리에서 아름다운 한 여인을 보고 연정을 품게 된다. 그 아름다움에 반한 상양 갸초는 꿈에서도 그녀 생각 뿐 이었다.
달라이라마가 되기보다는 평범한 한 인간으로 살기를 원했던 상양 갸초,
그 여인을 다시 만나려고 매일 밤 그녀를 기다렸으나 끝내 만나지 못했던 모양이다. 상심한 상양 갸초가 이름도 모르는 그녀를 마케아메로 이름 짓고 시를 읊으며 기다린 객잔이 현재의 마케아메 레스토랑 자리다.
지금의 마케아메는 염소고기와 야크스테이크 그리고 버터차로 유명하여 관광객들로 붐비지만 상양 갸초의 기구한 일생과 전설을 아는 이들이 굳이 확인하러 오는 명소이기도 하다.
3층 옥상은 소문난 뷰포인트로 자리 잡기가 쉽지 않다. 바코르를 찾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가장 잘 보고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인상적이다.
광장은 언제나 인산인해다. 다양한 복장과 방식으로 순례하는 사람들과 함께 동냥을 하는 남루한 사람, 최신식 핸드폰으로 통화하는 스님, 그들의 모습을 흥미롭게 담고 있는 관광객들의 셔터소리로 시끄럽다.
눈에 띠는 오체투지자가 있었다. 늦가을 날씨에도 반소매 차림으로 오체투지를 하는 소년은 이미 조캉사원 인근에서는 유명한 순례자다. 어제도 조캉사원 대법당 앞에서 한줌의 돈을 세던 그 친구였다. 하긴 이 많은 사람들 중에 저마다의 사연이 다를 터였다. 인터뷰를 했더니 흔쾌히 응해 준다.
라싸에 온지 벌써 8년이 됐다는 짜시쯔던은 열여섯 살의 소년이다. “조캉사원에 참배하러 왔던 가족이 자동차 사고를 당해 어머니는 죽고 아버지는 지금까지 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매일 조캉사원을 돌며 관광객이나 순례자들의 시주 돈으로 아버지 병원비뿐 아니라 생계를 이어 가고 있다고 했다. 짜시쯔던의 이마 가운데 생긴 굳은살에서 새삼 그의 신심과 가족애를 느껴본다. 아버지 병원비에 보태라는 심정으로 약간의 돈을 시주했더니 조금은 주춤하더니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준다. 몇 번이고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나눈 소년은 다시 시끌벅적한 바코르광장으로 오체투지를 하며 사라졌다.
바코르를 한바퀴 돌고 다시 찾은 조캉사원 입구에는 예의 애벌레처럼 연신 오체투지를 하며 아름다운 윤회를 준비하는 이들이 거친 숨소리로 가득하다. 어느 것 하나 똑같은 이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각양각색이지만 오직 하나, 부처를 향한 신심만큼은 어느 티베트 사람이든 똑같아 보인다.
어느 시간 어느 공간에서도 부처를 향한 불심이 함께하고, ‘옴마니반메홈(Om mani padme hum)’을 되뇌이며 가족의 건강과 이웃의 사랑, 세상에 널리 불법이 퍼져 평온하기를 바라는 이들의 순박하고 순수한 열정이 마음을 울리는 곳, 그것이 티베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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