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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와 나

[헬로! 티베트 22편] 티베트 신심(神心)의 상징- 조캉사원 ①

새벽의 조캉사원 전경
 

포탈라궁이 외국인과 중국인 관광객들로 붐비는 곳이라면 조캉사원은 티베트 각지에서 온 순례자들로 붐빈다. 예전 같지 않게 거리와 상점들은 말끔히 정비되어서 오히려 당황스럽다. 조캉사원으로 가기 위해서는 광장 입구에 설치된 X-Ray 검사대를 통과한 후에나 가능하다. 검사대는 하나이고 순례자와 관광객은 끝없이 몰려든다. 입장은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조캉사원(大昭寺, Jokhang)을 가운데 두고, 팔각형 모양으로 도로가 에워싸고 있어서 팔각거리 즉 바코르(八角街, Bakor)라고 부르는데, 그 곳을 중심으로 주변에 라싸의 구도시가 자리 잡고 있다. 조캉사원 안팎으로 이어지는 거미줄 같은 길마다 순례자들의 발길로 부산하다. 대부분은 작은 마니차를 돌리며 ‘옴마니반메훔(唵麽抳鉢銘吽, 관세음보살의 자비를 뜻하는 주문으로, ‘오! 연꽃 속의 보석이여!’라는 뜻이 있다)을 반복적으로 읊조리며 조캉사원으로 향하고, 가끔은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도 보인다.

여명도 트지 않은 신 새벽, 바코르광장은 순식간에 인산인해를 이룬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새벽을 낮 삼아 순례를 돌며 신심을 확인하고 있다. 티베트 사람들은 성지순례를 필생의 업으로 생각한다. 가능하면 성지 중의 성지인 카일라스로 가고 싶어 하지만 그 길이 너무 멀고 험난해서 대부분은 조캉사원으로 대신한다. 조캉사원이 늘 만원인 까닭이다.

조캉사원 정문 앞의 순례자들
 

사원 앞에 있는 두개의 향로에서 향이 피어오르면 어둠의 장막을 걷어 내고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지기 시작한다. 집집마다 피워대는 향까지 합쳐져 조캉사원 일대는 짙은 안개와 진한 향내로 코끝이 퀭하고 정신이 혼미하다. 그러나 불현듯 정지했던 필름이 돌아가듯 만물이 꿈틀거리며 거대한 움직임이 시작되는 느낌을 받는다.

조캉사원은 어떤 곳인가?

라싸의 구시가지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조캉사원은 티베트 전통 불교사원이자

전국 중요문물 보호지로 135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2000년 11월, 조캉사원은 포탈라궁의 확장사업으로 세계유산 리스트에 포함되어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외국인의 눈에는 포탈라궁이야말로 티베트의 역사와 문화, 정치와 종교가 총결집된 ‘티베트의 모든 것’이라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티베트인들에게는 포탈라궁보다 조캉사원이 ‘종교의 구심점’이자 ‘정신의 구심점’ 노릇을 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티베트의 신도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 바로 조캉사원(大昭寺)이기 때문이다.

흔히 ‘티베트의 심장’이라 불리는 조캉사원은 티베트 불교의 총본산이자 최고의 성지다.

티베트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조워불상(Jowo Sakyamuni-12세 때의 석가모니 불상)을 모셨기 때문이다.

본래 조캉사원은 7세기 640여 년쯤 당시 토번 왕국의 송첸감포 왕에 의해 건축되었는데,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 온다.

주역과 천문지리에 능통했던 문성공주는 라싸의 형상에서 거대한 나찰녀(羅刹女, 고대 인도종교의 신으로 사람을 잡아먹고 악행을 저질렀으나 부처에게 귀의한 후 불법을 수호하는 신이 되었다고 함)의 모습을 목격했다고 한다. 포탈라궁과 주변의 산은 나찰녀의 유방(乳房)에 해당하는 곳으로, 그녀는 나찰녀가 내뿜는 불길한 기운을 제거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문성공주는 남편 송첸감포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만다라(曼陀羅)처럼 방사형으로 사찰들을 세우고 그 중심에는 사원을 배치했다. 수천 마리의 양떼를 동원해서 퍼온 흙으로 만다라의 중심이자 나찰녀의 심장에 해당하는 우탕호수(Wotang Lake)를 매립하고 3년간의 난공사 끝에 세운 것이 조캉사원이다.

사원이 완공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송첸감포왕이 죽자 당나라의 침략을 걱정한 문성공주는 시집올 때 모셔와 라모체사원(小昭寺)에 봉안해오던 석가모니 불상을 이곳으로 옮겼다. 공주가 모셔온 불상은 석가모니의 12세 때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티베트 사람들은 조워(jowo)라고 부른다.

그 후부터 사원은 ‘조워 부처님을 모신 사원(캉, khang)’ 즉 조캉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1950년 중국이 티베트를 점령하고 문화혁명(1966~1976년, 6200 여개의 티베트 사원 중 몇 개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원이 파괴되었으며, 수십만 명의 승려가 강제로 환속 당했다)을 거치면서 조캉은 한때 돼지우리로 사용할 정도로 폐허가 되다시피 했다. 공산주의와 불교는 공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때 포탈라궁과 노블링카궁(羅布林佧, Norbulingka palace-달라이 라마의 여름 궁전)은 물론이고, 간덴사원과 라모체사원을 비롯한 대부분의 라싸 인근의 사원도 파괴되었다. 또한 수만 명의 승려와 신도들이 그때 학살당했다. 조캉사원은 1979년이 되어서야 승려들이 다시 수행을 하기 시작했고, 현재의 모습은 1992~1994년에 재건축한 것이다.

서쪽 정문 오른쪽 끝에 있는 매표소가 출입구다. 조캉사원에 내부에 들어서면 작은 광장이 있고 정면으로 대법당이 눈에 든다.

짙은 고동색의 천에 하얗게 그려진 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암수의 사슴이 법륜상을 가운데 두고 있는 그림. 부처님이 인도의 샤르나트에서 처음 설법을 할 때 한 쌍의 사슴도 설법을 들었다는 것에 유래한다)휘장이 대법당 상부를 감싸고 있다.

조캉사원의 녹원전법상이 그려진 1층 회랑
 

광장 왼쪽으로 난 골목 같은 길이 대법당으로 이어진다. 본전으로 가기까지 회랑은 벽화로 채워져 있다. 티베트에 얽힌 무수한 설화와 역사가 명료하게 정리된 곳이다. 여기부터 촬영금지다.

1층 대법당은 조워불상을 모신 조캉사원의 핵심이다. 티베트인들에게 조워불상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려면 이곳에 오면 된다. 끝없이 이어진 순례자들의 줄은 모두 본당 안의 본존불인 조워를 보기 위한 발걸음이다. 조워, 즉 석가모니불상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미륵불(Jampa), 왼쪽에 구루 링포체(Guru Rinpoche, 8세기 티베트에 탄트라불교를 전파한 인도 승려)를 모시고 있다. 이들 불상을 모신 1층 대법당을 중심으로 모두 18개의 크고 작은 법당들이 호위하듯 에워싸고 있다.

2층에서 본 조캉사원 전경
 

2층으로 가면, 우선 정면에 녹원전법상을 중심으로 화려한 황금지붕탑을 만나게 된다.

본당을 지키는 사자상이 인상적이다. 본당 좌측에 위치한 건물은 송첸감포왕이 법왕전으로 사용했던 건물로 크기는 작지만 기품이 있다. 본당 건너편의 옥상은 최고의 전망대로 바코르광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문 앞에서 오체투지를 하는 순례자들의 모습은 물론 멀리 포탈라궁을 포함한 라싸 시내의 풍경까지 제대로 조망할 수 있다. 2018년2월, 원인모를 화재로 일부 손실된 것으로 알려졌었다. 당시 경찰 발표로는 문화재는 전혀 손상이 없다고 했으나 자세한 내용은 아직까지 확인된 바가 없다.

보수공사 때문에 전망이 수려하고 인상적인 3층 옥상이 폐쇄된 것이 아쉽다. 조캉사원 옥상에서 바라보는 것이 최고의 절경이라는 포탈라궁을 부디 이곳에서 다시 볼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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