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가면서 길게 늘어 선 백양나무가로수의 단풍이 무르익어간다. 바람이 센 골짜기 부근에서는 벌써 잎이 다 떨어져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고 있다. 아직 다 일어서지 못한 아침햇살이 라싸의 병풍인 강디스(岡底斯, Gangdisi)산맥을 비스듬히 비출 때쯤 길을 나선다. 남쵸호수(納木錯)를 가기 위해서 109번 국도인 칭짱꽁루(靑藏公路:칭하이성 시닝 ⇨ 티베트 라싸 간 자동차 도로) 초입에 들어섰다. 칭짱꽁루는 라싸에서 칭하이성(靑海省)의 거얼무(格爾木)까지 1200km를 잇는 유일한 도로다. 가끔씩 지나가는 침대버스는 머리 위에 달린 많은 짐이 버거웠는지 검은 연기를 토해 내며 느릿느릿 라싸를 향해 달리고 있다.
칭짱꽁루는 강디스산맥과 탕굴라산맥을 가로 지르다가 때로는 양옆에 나란히 끼고 뻗어 있다. 해발 5천 미터가 넘는 산맥 두개가 끝없이 이어지는 골짜기에 시냇물처럼 흐르는 칭짱꽁루는 아름답기도 하거니와 티베트를 세상에 드러내는 소중한 길이기도 하다.
이 길을 지난 2006년도 정리한 소회가 새삼스럽다.
"...그러나 소문처럼 우리 탐험대가 지나는 칭짱꽁루 옆으로는 라싸-거얼무를 잇는 철도부설공사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공사구간의 대부분이 해발 4천미터 이상으로 작업인부의 고산증과 얼음산이 많아 실현 불가능한 '과대망상적 광기'라는 비판이 터져 나왔던 공사였다.
총 길이 1천142킬로미터에 투입되는 예산만도 24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드는 이 공사는 2007년도까지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한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앞서 중국인들은 세계가 놀랄만한 그 무언가를 이룩할 필요성이 절실했던 모양이다. 이 철도가 완공되면 이제 30시간 이상 냄새나는 버스에서 시달리며 라싸를 향하던 육로여행은 과거의 추억이 될지 모른다.
그러나 정작 우려되는 것은 멸종위기종인 티베트 영양과 검은 목 학 등이 서식하는 여러 개의 자연보호구를 침입한다는 것과 지난 50여 년간 자행되던 티베트 수탈의 역사가 새롭게 시작된다는 점일 것이다. 지금까지 육로로만 운반해 가던 자원들이 철길을 통해 대규모로 신속하게 중국내륙인 동쪽으로 이동할 수 있는 계기가 된 셈이기 때문이다.
정작 티베트인들이 경계하는 것은, 계획대로 양방향으로 매일 여덟 편의 기차가 다니게 되면서 증가될 야심찬 한족의 이주라고 한다. 신장성(新疆省)과 내몽골, 칭하이 등지의 중국화 작업이 성공적으로 수행된 이후 티베트가 집단이주의 표적이 되어 왔다. 이후 20여 년간 꾸준하게 한족 이주정책이 진행하어 왔다. 그래서 라싸도 벌써 구성인구 비율이 티베트인 50%, 한족 50%라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이고 이미 한족이 상권을 장악해 버린 것이 현실인 시점에 당연한 걱정으로 보인다.
그래서 결국 티베트-칭하이간 철도부설공사는 중국정부가 정책적으로 추진하는 서부대개발의 야심찬 경제수탈의 실크로드요, 티베트민족말살의 구심점이 되는 악의적인 사업이라고 의심하는지 모르겠다..."
(출처:인천일보 <중국 서부 극지를 가다 ⑩> 2006년 1월4일. 글 백민섭
중국 최대의 지열지대로 유명한 양바징(羊八井, Yangbajain)을 지나면서 강디스산맥은 자취를 감추었다. 10월의 아름다운 햇살이 녠칭탕굴라 산맥 기슭에 펼쳐진 구릿빛 대초원에 따갑게 내리 쬐고 있다. 라싸에서 160여 km를 달려서 닿은 곳은 티베트 남부와 북부의 경계지대로 알려진 담슝(當雄, 4300m)으로 ‘선택된 아름다운 곳’이란 뜻이 있다. 지도책에는 현소재지임을 알리는 빨간색으로 크게 표시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동서의 길이가 약 1.5km 남짓한 소규모의 시골마을이다. 예의 대로변에 야크와 양, 돼지, 개들이 종횡무진 난무하는 동물원 같은 마을이다.
매년 5월과 10월은 담슝초원이 가장 아름다운 시기로 초원에서 방목하는 하얀 양떼와 검은 소떼 풍경이 녠칭탕굴라산맥(念靑唐古拉山脈)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담슝에서 20여 km를 더 달려야 남쵸(納木錯, Namtso lake-티베트어로 ‘하늘의 호수’(天湖)를 의미)호수 관리사무소에 닿는다. 도착하자마자 악다구니하는 동네꼬마들과 호객꾼이 순식간에 들이닥쳐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다. 서둘러 입장권을 사고 도망치듯 탕굴라산맥을 향해 올라간다. 경사가 가파르고 눈이 살짝 덮인 미끄러운 도로를 살금살금 기어오르자 갑자기 강풍이 휙 넘어 온다. 라켄라(那根拉, Lakenla, 5190m)고개다. 그 밑으로 멀리 남쵸호수가 눈에 든다. 눈이 시리게 푸른 하늘빛과 히말라야 준령의 백설을 함께 담은 호수, 그 앞에 정원처럼 펼쳐진 초원은 천상의 풍경 그 자체다. 남쵸(納木錯,해발 4718m)호수는 중국에서는 칭하이호수(靑海湖) 다음으로 큰 염호(鹽湖)다. 동서가 70여km 남북이 30여km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다. 서울의 두 배 쯤 되는 호수는 차라리 바다라고 해야 걸맞다.
라켄라고개에서 본 남쵸는, 엄마 품에 안긴 아이처럼 눈 아래에 있지만 역시 ‘하늘의 호수’라는 뜻에 걸맞게 한 눈에 담을 수가 없을 만큼 장대하다. 녠칭탕굴라 산맥을 휘돌아 라켄라산을 넘어서 20여 분을 더 달려야 남쵸호수를 제대로 볼 수 있다.
전설에 의하면 남쵸는 녠칭탕굴라산과 연인사이로 제석천(帝釋天-불교의 수호신)의 딸이었다. 지각운동으로 지면이 가라앉아 호수가 형성되면서 두 연인이 서로 떨어져서 마주 보게 되었다. 오랜 세월동안 넨칭탕굴라산은 그리운 마음에 하얀색 눈(雪)을 푸른 눈물로 바꾸어서 흘려보냈고, 모인 눈물이 호수가 되었다. 이로써 서로 떨어져 있던 두 연인의 마음이 하나로 합쳐져서 영원한 만남을 이루게 되었으니 남쵸호수의 푸름은 바로 아름다운 사랑의 결실이다.
이런 티베트의 신화는 넨칭탕굴라산을 연인과 부부의 사랑을 영원히 이어주는 곳이라는 믿음을 갖게 했다. 남쵸호수에 부부석과 합장석을 비롯해 전설과 연관되는 명소들이 많은 것은 그런 사연 때문이다.
녠칭탕굴라산맥의 눈과 얼음이 녹아 만든 호수에는 크고 작은 섬 다섯 개와 반도가 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짜시(札西)반도를 향해 미끄러지듯 질주한다.
끝없이 펼쳐지는 호수의 크기에 놀라고 하얀 산맥과 어울린 절묘한 풍경에 연신 감탄사를 토해 낸다. 조물주가 만든 호수라지만 히말라야산맥 사이에 이처럼 거대하고 맑은 호수가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황홀함과 신비함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남쵸호수의 상징 같은 합장바위(合掌石)가 눈에 든다. 커다란 바위 두개가 마치 손을 맞대어 합장한 것처럼 보여서 붙은 이름이란다. 바위 곳곳에 셀 수 없이 얽혀진 카다와 타르초가 티베트인들의 신심을 짐작케 한다.
남쵸호수가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달라이라마가 입적하면 대를 이을 환생자에 대한 계시를 이곳에서 받기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티베트사람들은 가장 성스러운 호수로 여기며, 가장 대표적인 순례 코스중의 하나로 꼽는다.
티베트 순례자들이 평생에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 중에 하나일 수밖에 없다. 특히 양띠 해에 남쵸호수를 돌면 다른 해보다 더 빨리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에 12년마다 남쵸호수는 그야말로 북새통이 된다.
바다 같은 호숫가 주변에는 오색찬란한 룽다(風馬)와 타루초가 겨울바람에 펄럭이고, 호수 여기저기에는 누군가가 만들었을 마니석과 돌탑 등이 산재해 있다. 그러나 쉴 새 없이 코라를 돌며 옴마니반메훔을 외쳐야 할 호숫가에는 단 한명의 순례자도 없이 기념품을 파는 행상과 조랑말을 태워주는 장사꾼뿐이다. 어찌 성지라는 이 넓디넓은 호수에 순례자가 한 명 없을 수 있단 말인가. 겨울을 맞고 있는 남쵸호수는 녠첸탕굴라의 의연한 자태와 바다 같은 파도가 거친 파열음으로 시선을 끌고 있으나, 그럴수록 광활한 호수에는 외로움과 씁쓸함이 퍼져가고 있다.
저작권자 © OBSW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티베트와 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헬로! 티베트 28편] 푸른 보석 , 얌드록쵸(羊卓雍错) (1) | 2022.09.19 |
---|---|
[헬로! 티베트 27편] 파란하늘·하얀집 '여기는 동화 세상' - 간덴사원 (0) | 2022.09.14 |
[헬로! 티베트 25편] 티베트 불교의 대승원(大僧院), '대뿡사원(哲蚌寺)' (0) | 2022.09.02 |
[헬로! 티베트 24편] 티베트 최대의 불교대학, 세라사원 (0) | 2022.08.29 |
[헬로! 티베트 23편] 티베트 신심(神心)의 상징- 조캉사원 ② (0) | 2022.08.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