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날씨가 기분을 돋우기도 했지만 라싸시내에서 편도 한 시간 남짓의 짧은 이동거리는 간덴사원 가는 길이 한결 홀가분하다. 이곳 티베트 땅은 항상 무엇엔가 가위눌린 듯 내내 여행길이 편치 않았다. 더구나 하루 평균 500킬로미터 이상을 달리는 강행군의 연속이었던 터라 라싸 근교에 있는 간덴사원(甘丹寺)을 가는 길은 그야말로 소풍 길. 라싸에서 동남쪽으로 약 50km 떨어진 라싸강(拉薩河) 강변에 있다는 간덴사원을 찾아 나선다.
라싸시내를 빠져 나와 동쪽으로 길을 잡아 간다. 건물에 가려졌던 포탈라궁이 온전히 보이자 라싸를 출입하는 라싸대교(拉萨大桥)가 나타난다. 편도 2차선이 빡빡한 좁은 도로 양 끝으로 무장경찰이 경계를 서고 있다.
참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다리를 주요시설이라고 통제하는 꼴이 볼썽사납다. 그러나 티베트독립을 주장하는 세력들의 시설폭파를 우려한 조치라는 안내인의 설명을 들으니 오히려 빙그레 미소가 지어진다. 그것이 이유의 전부는 아니지만, 여행 내내 티베트독립에 대한 의지를 어디에서도 확인할 수 없었던 터에, 역설적으로 다리 위의 무장경찰이 티베트 독립 세력이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간덴사원으로 가는 길은 아스팔트로 곱게 포장되었다. 그러나 좁은 촨짱꽁루는 수시로 지나는 대형화물차들이 공격적이어서 그 길을 나눠 쓰는 탐사대 차량은 가끔은 기겁을 하기도 한다.
중국인들의 운전습관 중에 가장 위험한 것은 전방주시를 잘 안한다는 점. 대화하기 좋아하는 중국 사람들은 운전 중에 옆자리의 사람과 대화를 하느라 종종 사고를 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이야기가 내내 머릿속에 맴돌아서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비교적 한적한 길에 들어서야 아름다운 키츄강(‘라싸강’이라고도 함)이 눈에 들었다. 키츄강을 따라 군데군데 늘어 선 마을 주변으로는 비닐하우스가 꽤 많이 보인다. 티베트 출신 가이드는 비닐하우스의 주인이 대부분 한족이라고 한다. 그럼 그렇지. 티베트인 유목민은 야크나 양 몇 마리가 전부요, 농사를 짓는 사람은 ‘칭커(青稞)’라는 보리농사가 전부인데 그것만으로는 아무리 몸부림을 쳐봐야 비닐하우스를 할 만 한 돈을 모으기가 어렵다고 한다. 상대적 빈곤이 심화되고 있어 오히려 몇 년 전부터 유목이나 농사를 포기하고 도시로 가는 등 이농현상이 심해 졌다. 빌어먹어도 도시가 낫다는 것.
중국정부가 자랑하는 기간시설인 도로의 혜택도 결국 한족이 가장 많이 받고 있는 셈이다. 공들여 지은 하우스 농산물이 이 촨짱꽁루를 통해 대도시로 공급되면 제대로 값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티베트 인민들의 삶의 질 개선과 경제적인 혜택을 위해서 만들었다는 길에서조차 티베트 사람들의 암울한 미래가 스쳐 지나간다.
1시간 정도 달려 오른쪽으로 크게 갈라진 도로로 들어선다. 간덴사원으로 가는 초입이다.
318번 국도에서 벗어나 약 9km 정도가야 한다.
라싸의 동쪽 외곽에 위치한 우(U)지방은 서쪽의 창(Tsang)지방(라싸 서쪽의 시가체지역)과 함께 오랫동안 티베트의 중심무대였다. 이 일대를 흐르는 얄룽장뿌강에서 통일티베트의 역사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한때 창지방으로 정치무대가 옮겨진 적도 있지만 5대 달라이라마가 티베트를 재통일하고 라싸로 수도를 옮긴 후 근대까지 정치적으로 중심 역할을 해 온 곳이다. 간덴사원은 그 시절 또 다른 정신세계의 중심 역할을 했던 대사원이다.
간덴사원(甘丹寺)은 초입부터 인상적이다.
급하게 꺾이는 갈지자의 산길이 굽이친다. 천국으로 가기 위한 시련처럼 유장하다. 이미 우리보다 앞서 순례 길을 찾아 나선 차량들이 천국으로 가기 위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언덕을 오르고 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멀리 키츄강이 모습을 드러내고 평화로운 대자연이 화폭처럼 펼쳐진다. 해발 4300미터에 있다는 간덴사원을 향해 오르는 길옆으로는 야크떼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고 길 바로 위까지 다가 온 구름들이 풍선처럼 매달려 있다.
지중해 산토리니의 하얀 지붕들이 파란하늘과 맞닿아 조화를 이루듯 신비하다.
간덴의 의미는 ‘즐겁고 유쾌하다’는 뜻과 함께 서방정토(西方淨土)의 의미도 있다.
간덴사원은 겔룩파 종파의 창시자인 총카파가 1417년에 설립한 최초의 겔룩파 종파의 사원이다. 간덴사원을 세운지 2년 후에 총카파가 죽자 그의 제자인, 케드룹 제(Kedrup Je)와 겔찹 제(Gyeltsab Je)가 원장을 이어받아 전통을 이었다. 이들은 총카파의 사상을 심화하고 체계화시켜 교단의 기초를 잡았다. 현재 티베트 불교의 실세인 겔룩파(노란모자를 써서 황모파라고도 함)는 그렇게 성장하면서 정교합일의 법왕제인 ‘달라이라마’제도를 정착시킨다.
그래서 간덴사원이 비록 겔룩파 창시자가 설립하고 이 종파의 효시라 해도 간덴의 주인은 달라이라마가 아니다. 역사상 간덴사원의 원장은 독립적으로 총카파의 법통을 잇는 정신적 수장인 간덴 트리파(Ganden Tripa)로 겔룩파를 대표하는 달라이라마와는 구별되어 왔다. 다시 말하면 간덴 트리파는 티베트 불교에서 달라이라마, 판첸 라마 다음의 제 3의 권력자라고 보면 된다.
그만큼 전통과 함께 막강한 힘도 있었던 유서 깊은 사원이다. 그런 경외심은 사원입구에서 깨지기 시작한다. 간덴사원의 원경을 찍으려 카메라를 들자 입구에서 보초를 서던 젊은 승려 한명이 찍지 말라는 듯 손사래를 치며 달려 나와 손에 든 입장권을 흔들어 보이며 돈을 내란다. 입장료 징수가 얼마나 철저하던지 방문하는 차량의 문을 열어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인원을 헤아린다. 티베트에 승려다운 승려가 별로 없다 해도 너무한다 싶다. 그러나 어쩌랴 세상이 그렇게 만들어 놓은 걸. 입구에 들어서니 주차장은 대형버스들로 만원이다. 대부분이 현지인으로 이미 꽤 많은 순례자가 밀려들었다. 대법당으로 가는 길 옆에는 먹을거리와 경전을 파는 좌판들이 순례자들과 엉겨 아수라장이다.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신기했던지 어린 꼬마들이 우르르 몰려 왔다가 카메라를 들이대자 일순 “와~”하고 꽁무니를 뺀다. 멀리서 신비롭게 보이던 사원은 색이 바랬고 곳곳이 허물어져 있다. 어린 승려들은 삼삼오오 사원 여기저기를 배회하거나 양지 바른 곳에서 하품을 하고 있다. 누가 시주를 했는지 음식물을 안고 후미진 구석에 앉아 열심히 먹고 있던 어린 승려는 우리랑 눈이 마주치자 슬며시 돌아앉는다.
티베트에서 승려는 단순히 승려만은 아니었다. 사원은 학문의 전당이요 신앙의 원천이다. 그래서 승려는 최고의 엘리트이자 존경받아 마땅한 사람들이지만 중국의 침략과 문화혁명이라는 회오리는 그들을 한갓 오물을 치우고 쓰레기를 줍는 존재로 만들어 버렸다.
사진촬영비용으로 얼마간의 돈을 주고 노승 주재하의 법회를 찍을 수 있었다. 수많은 순례자들이 그들의 예불모습을 보고 기도를 드리고 있건만 정해진 시간에 쇼를 하듯 건성건성 하는 젊은 승려들에게서 어떤 영감이나 총기를 발견할 수 없었다.
티베트에 대한 측은지심이 있던 터에 그런 풍경은 실망스럽지만, 걱정스럽기도 하다.
승려들은 60여 전 티베트를 이끌던 주체가 아니었던가?
간덴사원은 1959년, 티베트 민중봉기가 일어났을 때 중국인민해방군이 전투기로 공중폭격을 해 대부분의 건물이 파괴됐다. 문화혁명기에는 마오쩌뚱의 홍위병들에 의해 승려들이 대부분 강제 환속되거나 살해당했다. 수차례의 탄압 끝에 지금은 300여명 남짓 승려들만 남아있으나 그나마도 제대로 된 승려인지는 의문이다.
어쨌든 간덴사원이 집중 공격의 대상이 된 것은 중국공산당이 사원을 봉건주의와 미신의 상징이라 매도한 탓도 있지만 오랫동안 간덴사원이 정치권력의 중심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티베트인 안내인은 “문화혁명 때 이 간덴사원의 승려들이 홍위병들에게 극렬하게 저항했기 때문”이라고 귀띔한다.
1981년 소수민족에 대한 유화정책을 쓰면서 간덴사원도 재건이 시작됐다. 중국 정부가 공인한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 중의 하나로 지정되어 옛 모습이 부분적으로 복원되고 있으나 완전 복구까지는 아직도 요원하다.
간덴사원의 뒤쪽은 그 옛날의 상처를 증언이라도 하는 듯 여전히 폐허의 잔재가 남아 있고, 승려들은 사원을 관리하며 호구를 삼는 존재로 전락했다.
티베트의 정신적 지주였던 간덴사원이 예전의 권위와 기상을 되찾기에는 힘에 부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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