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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와 나

중국 서부 극지를 가다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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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출고시간 :2005-11-29 오후 5:19:16
URL : http://www.itimes.co.kr/News/Default.aspx?id=view&classCode=407&seq=232989
자연이 설계한 72개 꼬부랑길
중국 서부 극지를 가다 (6)누쟝산
 동쪽엔 췌얼(雀兒)산, 서쪽에는 티베트 국경에 접한 골짜기 마을 더거(德格). 아주 드물게 들르는 여행자나 트럭 운전수를 제외하면 세상과의 교류가 거의 없을 정도로 조용하고 초라한 동네다. 새로 지은 집들이 몇 채 있었지만 여전히 티베트식이고, 티베트 국경과 너무나도 가까운 곳이라 일말의 긴장감도 기대했으나 그동안 지나왔던 여느 마을과 다름없어 보인다. 50여 년 동안 중국의 지배를 받아 온 티베트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푸르른 아침 여명이 잔상처럼 뒤덮힌 마을은 차라리 고요하다.
 광활한 지평선을 향해 탐험대는 쏜살같이 달린다. 티베트인들의 집이 작은 돌 성곽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야크들이 어슬렁거리며 서리 내린 풀을 뜯고 있고 차소리에 놀란 양떼는 깡총 뛰어 달아난다. 그 넓은 초원에 드문드문 하얀 연기를 뿜어내는 검은 텐트가 점처럼 보였는데 세상과 등진 것처럼 사는 유목민들이다. 중국정부가 아무리 정착을 장려해도 전혀 상관없는 일처럼 자연스럽다. 그렇게 외진 곳에 사람들이 산다는 것이 신기하고, 점점 추워지는 겨울이 걱정되기도 한다.
 초원지대를 벗어나 ‘창쟝(長江) 천연보호구’에 들어서자 골짜기가 깊어지면서 물살도 빨라지기 시작한다. 계곡과 산비탈에 쓰러지듯 매달린 티베트 마을경치는 영하의 추운 날씨에 오히려 선명한 아름다움으로 다가 온다. 굽이굽이 산길을 돌아 해발 4천300여m의 고갯마루에 올라서자 입이 쫙 벌어질 만큼 아름다운 설경이 펼쳐진다. 감동은 거기까지였다.
 전날 티베트지역 안내인이 경고한데로, 장다(江達)현에 접어들자 드디어 공사구간을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공사구간 초입에선 벌써 화물차들이 엉켜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는데 우리 일행을 본 공사장 인부들이 손사래를 치며 갈 수 없다는 시늉을 한다. 하긴 노면을 보니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다. 현광민 대장과 쌍용자동차의 연구원들도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다. 여러 차례 공사장 인부와 지나가는 화물차 운전수에게 길 상태를 물어 보니 우리 탐험대 차량으로는 불가능하단다. 이런! 길은 외길이고 물러설 곳도 없는 탐험대는 무조건 전진하기로 결정했다.
 보통 도로공사를 하면 통행할 수 있는 여유를 남겨 놓거나 우회도로를 만드는 것이 우리네 상식. 그러나 중국식은 다르다. 기존 130㎞에 이르는 구간을 모두 뒤집어 놓고 공사를 하는 것. 그렇다고 동시다발적으로 전 구간에 걸쳐 공사를 하는 것도 아니다. 중장비라야 굴삭기 몇 대에 조그만 원동기로 돌리는 모래, 시멘트 혼합기가 군데군데 있을 뿐이다. 대부분은 사람들이 삽과 손으로 골재를 운반하고 있었는데 놀라운 것은 130여㎞에 이르는 공사구간에 총 작업인력이 수백 명 밖에 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가면 갈수록 이건 길이 아니라 거대한 함정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셈이었다. “통행하는 모든 차들을 부셔 진흙탕과 바위투성이인 이곳에 영원히 폐기처분 시키려는 음모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현광민 대장은 분을 삭이지 못한다. 빠지고 막히고 긁히고…. 세상에 길에서 당할 수 있는 일을 다 겪고 나서야 진흙과 바윗돌 길과의 전쟁이 끝났다. 130㎞ 구간을 통과하는데 무려 11시간이 걸린 것이다.
 비포장도로와의 전쟁은 탐험대원들에게 적지 않은 체력적 부담을 주었다. 그래서 이튿날 아침에 맞이한 창두(昌都)의 아침도 게슴츠레 다가왔다. 창두는 스촨(四川)성과 윈난(雲南)성, 그리고 티베트가 만나는 교통요지다. 도시 한가운데를 가로 지르는 란창쟝(瀾滄江, 메콩강의 중국식 이름)의 거센 물결이 인상적이다. 촨장북로를 달려 왔던 탐험대는 창두에서 촨장남로로 갈아 타기로 했다. 리오체(類鳥齊)를 지나 나취(那曲), 라싸로 이어지는 촨장북로는 지난 여름 수해로 유실된 도로와 사태가 난 곳이 많아 통행을 할 수 없다는 것. 빵다(邦達), 라오그(然鳥), 빠이(八一)를 통해 라싸로 가는 남로를 선택한다.
 빵다 대초원을 몇 시간이나 달려서 도착한 빵다 삼거리. 교통의 요지답게 적지 않은 식당과 차량 수리점, 그리고 가수(加水)라고 쓰여 있는 간이 물장수가 보인다. 고갯길이 하도 많은 중국에서는 대형화물차들이 고개를 오르기 전 탱크에 물을 채워, 내리막 길을 내려갈 때 과열된 브레이크에 물을 뿌려 식히는 것이 일상적이다. 삼거리를 지나 오르기 시작한 이에라(業拉)산도 해발 4천615m로 오르는 것도 만만치 않지만 고개를 넘어서면 커브길이 많기로 유명한 누쟝산(怒江)산 72고개 꼬부랑길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가르릉 가르릉’. 탐험대 차량은 희박한 산소 때문에 완전연소를 시키지 못하고 천식환자처럼 쿨럭거린다. 마침내 도착한 고갯마루에 서면 탄성과 함께 한숨이 탁 쉬어진다. 실타래를 사려 놓은 것처럼 배배꼬여 있는 꼬부랑길이 표고차 800m에 이르는 곳까지 길을 내어 놓은 것이다. 짙어 가는 가을 단풍과 계단식 논밭과 어우러진 티베트식 집들이 그림처럼 비탈에 서있다. 노면상태는 비교적 좋으나 밀가루같은 비포장도로의 먼지는 탐험대 일행을 한참이나 붙잡고 놓아 주질 않는다.
 누쟝산을 내려오면 이내 누쟝대협곡이 보이는데 협곡 사이가 좁아 하늘이 잘리고, 정상을 보기란 더더욱 어려울 정도로 좁고 깊은 협곡이 시작된다. 누쟝(怒江)은 이름처럼 ,흐르는 물살이 마치 성난 것처럼 급하다고 하여 지어졌다는데 상류지역이라 그런지 마치 호수처럼 잔잔하게 흐르고 있어 72고개를 돌아 내려 온 탐험대에게 평온함을 준다. 하지만 이 강은 티베트 동부의 탕구라 산맥(唐古拉山脈)에서 발원하여 남쪽의 윈난(雲南)성과 미얀마 동부를 거쳐 약 2천400㎞를 흐른 후 벵골만으로 빠지는 강으로 동남 아시아의 대하천이다. 어느 강이나 마찬가지지만 누쟝(미얀마에서는 살윈 강)의 시작도 미미한 것은 똑 같다.
 누쟝 스케치를 마치고 막 떠나려고 할 때였다. 멀리 점 같은 움직임이 포착됐다. 직감적으로 카메라를 줌인 시킨다. 일어섰다가는 엎드리고 엎드렸다가 일어서고…. 오체투지를 하는 순례자였다. 급하게 탐험대 일행을 붙잡아 세워 두고는 촬영을 했다. 라싸로 가다보면 수도 없이 볼 수 있다던 순례자를 처음 만난 것. 해가 기울기 시작해 일행들 마음은, 끝이 어딘지 모를 협곡을 빠져나가는 것이 급하기도 했지만 겨울이 오는 길목에서 오체투지자를 또 만나리란 보장이 없어 촬영팀은 욕심을 냈다.
 세 걸음을 걷고 합장한 후 온 몸을 땅에 던져 신심을 던지는 순례자들. 머리와 두 손과 두 발을 땅에 짚어 가장 겸손한 자세로 몸을 낮춰 신을 만난다는 오체투지(五體投地). 차가 지날 때마다 밀가루를 뒤집어쓰듯 먼지를 홈빡 맞으면서도 멈춤이 없이 오체투지를 해오던 순례자들을 마침내 대면하게 됐다.
 새까만 얼굴에 땀과 흙에 뒤범벅이 된 얼굴이 오히려 우스꽝스러운 순례자들. 낯선 사람들의 접근에 다소 경직되어 보이던 얼굴이 우리 신분을 밝히고 인터뷰 요청을 하자 이내 밝게 웃는다. 나취에서 왔다는 3명의 남자는 야팔(52), 웬지자(37), 자파(33). 이들은 한마을에 사는 이웃사촌들로 벌써 8개월째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고 한다. 조캉사원을 간다는 이들은 하루에 겨우 5~8㎞ 정도 걷지만 라싸에 가겠다는 의지가 대단해 보였다.
 왜 라싸에 가느냐는 우문을 던졌더니 조금 망설이던 자파가 “라싸에 가서 빌 것이 너무 많다.”고 간단한 대답뿐이다. 중국어를 거의 못하는 이들과 속 깊은 얘기를 할 수는 없지만 그 빌 것이 무척 궁금하여 몇 번을 되물었으나 가족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한다는 소망까지만 더 들었을 뿐 그것이 끝이었다. 앞으로 3개월쯤이면 라싸에 도착할 예정이라는 이들은 탐험대가 준 생수병을 연신 흔들어 보이며 감사의 뜻을 전하고 또 길을 떠난다.
 그러나 누쟝협곡에서 라싸까지의 거리는 1천200㎞. 8개월 동안 왔다는 낙추에서 누쟝협곡까지의 거리보다 훨씬 멀다. 더구나 늦가을을 넘어 겨울이 다가오고 있는 것까지 고려하면 빨라야 내년 봄은 되야 그들의 여정이 끝날 것이다. 그것도 모르는 채 순례자들의 오체투지는 계속되고. 그들이 이 겨울을 무사히 넘겨 안전하게 라싸에 당도할 수 있기를 모두 기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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