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사위는 캄캄하고
적막한 밤이지만,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 때문에 탐험대는 서두르고 서둘러 길을 떠난다. 징그럽던(?) 위수(玉樹)도 멀어진다. 비가 오면
고원지대는 눈으로 변할 것이고 도로 또한 빙판이 될 가능성이 높다. 걱정이 커져 간다.
나를 비롯한 고산병 환자들의 상태가 많이 호전된
것이 다행이다. 이틀간 여덟병의 혈관확장제와 이뇨제 수혈로 오히려 다른 대원보다 컨디션이 좋아 졌다. 그러나 아직 단정하긴 이르다. 수시로
4천~5천에 이르는 고갯길을 넘어서는 일정에 언제 어디서 누가 다시 발병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촬영을 하는 입장이라 수시로 야외촬영이나
달리는 차의 루프에 오르내리는 탓으로 고산병을 예방하기는커녕 체온을 쉽게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아 내심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차안에만 앉아 있을 수도 없는 노릇. 더구나 라싸 이후부터는 해발 5천m급 고개와 평원이 수두룩하고, 해발 6천700m라는 계산대판을 넘어야
하기 때문에 오기만으로 덤빌 수 없어 이래저래 걱정만 쌓여 간다.
위수를 떠나면 바로 티베트로 가는 것이 아니라 스촨(四川)성으로
우회하게 된다. 바로 촨장공로∼스촨성 청두(成都)에서 티베트까지 연결되는 국도다. 무수한 대설산(大雪山)을 넘고 강을 가로 지르고, 수시로
흘러내리는 토사와 빙하, 그리고 늪지대를 통과해서 만든 도로라 험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곳. 그만큼 기이한 풍경과 경치는 티베트로 가는 길
중 으뜸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동시에 험준한 산세만큼 깎아지른 절벽과 예측할 수 없는 산사태는 이 여행길이 결코 희희낙락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득 한시 한 구절이 생각난다.
‘촉도지난(蜀道之亂) 난어상청천(亂於上靑天) !’
그랬다. 이곳은 곧 당나라
대시인 이백이 노래한 촉도(蜀道)가 아니겠는가? 푸른 하늘을 오르기보다 더 어렵다고 노래한 촉나라 가는 길이 이곳 촨장공로다. 촉도야말로 촉나라
스촨으로 가는 길이 아니었던가. 학이 날아도 지날 수 없고, 원숭이조차 매달릴 것을 걱정한다고 노래했던 곳. 한 사람이 관문을 지키면 만 사람도
열지 못하며 지키는 사람이 어쩌다 친한 이 아니면 이리와 승냥이로 돌변한다는 모질고도 험난한 길, 촉도를 노래하면서 이백은 세상살이의 어려움과
인심의 험함을 풍자했다. 그 촉도에 남로와 북로 두개의 큰 길이 열려 있었고 내가 그 길에 있는 것이다.
위수에서 스촨성의 북부 지역인
더거(德格)로 가는 길(이 길이 촨장공로로 연결된다)도 해발 4천m 이상인 구릉지대가 마니깐꺼(馬尼干戈)까지 약 200㎞가 이어진다.
고지대에서의 활동은 저산소로 인해 쉽게 피곤해지고 특히 졸음증이 유별나다. 간밤에 탐험대의 활동모습을 담은 사진과 글을 홈페에지에 올리느라 잠
못 이룬 현광민 탐험대장의 눈꺼풀은 계속 처지고, 동승한 나와 통역담당 박철국 대원은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잠을 쫓으며 분투하는 가운데
탐험대는 싱싱 달려간다.
해발 4천700m 안바라산(安巴拉山)의 허리를 한참이나 돌아 고갯마루에 서니 ‘四川界’와 ‘靑海界’라는 글씨가
한 표지판에 쓰여 있다. 이곳이 스촨성과 칭하이성의 경계. 올라 온 만큼 내려 갈 생각을 하니 머리가 어찔하다.
탐험대는 어디에서나
호기심의 대상이다. 오늘은 학교에 가는 듯한 초등학생들이 달리는 탐험대 차량에 대고 느닷없이 거수경례를 한다. 전조등과 비상등, 그리고 스티커로
화려하게 장식한 채 달리는 우리 일행이 조금은 부담스런 존재였을까? 파란색 트레이닝복을 유니폼처럼 입고 빨간색 머플러를 두른 꼬마들이 한참동안
그 자리에 서있는 것이 사이드 미러에 찍힌 듯 하다.
하긴 우리는 달리고 달려야 목적지에 갈 수 있으니 정신없이 달려가지만 우리를 보는
티베트인들이 탐험대의 차량을 보고 느끼는 것은 제각각일 것이다. 기분 나쁠 수도 있고 위압적일 수도 있으며, 한편으로는 낯설음으로부터 오는
신기함일 수도 있다. 표현방법은 다르지만 대부분 수줍게 손을 흔들어 주거나 미소를 보내 주었다. 그것이 티베트인들의 해맑고 순수한 모습이라
여기며 한참을 달린 끝에 닿은 곳이 써쒸(色須)라는 마을이다.
도로주변 공사가 한창인 마을 어귀를 들어서자 시내 한 복판은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이 역시 식당이었지만 미장원, 잡화점, 화장품가게, 은행, 전화국을 골고루 갖춘 동네다. 물론 송아지만한
개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헤진 장삼을 걸친 라마승들이 오가며, 옆구리에 칼을 차고 오토바이를 탄 티베트인이 어지럽게 섞여 있지만 쉴 새 없이
오가는 트럭과 경운기는 사뭇 활기를 느끼게 한다.
고원지대에 덩그러니 이런 마을이 있다는 것에 갸우뚱하는 나에게 동행했던 칭하이성
안내인 리꾸이칭(李貴靑)주임이 “소수민족은 아주 구차하게 살기 때문에 스스로 발전하기는 어려워 중앙정부에서 투자를 했고, 1985년 볼품없던
시골마을이 20여 년 동안 발전을 거듭해 아스팔트도로가 나고 아파트도 들어섰다”고 일러준다. 그 길을 통해 이 지역 농축산물이 스촨성 성도인
청뚜에까지 간다는 것이다.
아직도 많은 구간이 비포장도로이기는 하지만 예전보다 훨씬 좋아진 도로는 이 지역에도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고
있는 셈이다. 중국정부의 정책적 장려도 있지만 이 같은 환경의 변화와 도시화는 실제로 티베트인들의 삶의 방법에도 적잖은 변화를 촉진하는 것으로
보인다. 써취만 해도 사천성에서 이주해 온 한족들이 상권을 장악했지만 티베트인 역시 전통적인 유목생활을 포기하고 장사를 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아스팔트도로는 티베트인들의 변화의 중심에 있는 셈이다.
마니깐꺼에 가까워질수록 풍경은 아름다워지고 문득 나 자신이 이미
티베트에 깊숙이 들어와 있음을 느낀다. 마니깐꺼는 서양식 이름으로 ‘신비롭고 아름다운 서쪽의 작은 마을’이라는 뜻이 있단다. 티베트 땅으로 다시
가기 위해서 거쳐야 할 마을. 원래는 캉빠(康巴)라 불려지던 동티베트 지역이었으나 중국의 침략 이후 행정구역 개편을 통해 스촨성에 편입된
마을이다. 마을사람들은 붉은 실타래로 머리를 묶어 여전히 캉빠인임을 자랑하고 있었다.
성냥갑 모양처럼 납작한 집들이 늘어 선 황토빛 마을
너머에 하얗게 비춰진 설산의 모습이 다가 올 겨울처럼 늠름하게 서있다. 바로 췌얼산(雀兒山)이다. 마니깐꺼 삼거리를 끼고 우회전한 탐험대는
본격적으로 췌얼산 고개를 향하면서 신루하이(新路海)를 만난다. 바다(海)가 붙은 이름에 비해 그리 크다고 할 수는 없지만, 췌얼산의 눈과 빙하가
녹아 모인 호수 주변에는 단풍이 곱게 물들고 있었다.
대원들이 아름다운 풍광에 빠져 정신없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을 때 중국감독관이 짜증을
내며 이 지역을 빨리 통과하잖다. 뜬금없는 일이라 이유를 물어 보니, 티베트인들은 외지인에게 적대적이고 술을 먹으면 칼을 휘두르고 강도짓을
한다는 것. 하긴 그 사이에 동네꼬마들이 열댓 명이 모여들어 탐험대 차량을 둘러싸고 신기한 듯 만져보고 쓸어보고, 약간은 취해 보이는 아저씨 한
명은 우리 일행을 향해 뭐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어 중국감독관이 우려할 만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현광민 대장도 혹시나 해서
바로 출발 준비를 시킨다. 그러나 기회 있을 때마다 티베트인들이 거칠고 난폭하고 도둑이 많으니 소지품 조심하라는 중국감독관의 경고를 어디에서도
확인할 수 없었던 탐험대원들에게 여전히 티베트인들을 폄하해 바라보는 중국인들의 인식이 왠지 씁쓰름했다.
해는 점점 산너머로 넘어가고
도로변에 드리운 산 그림자는 짙어만 간다. 탐험대의 발걸음도 바빠졌다. 해발 5천50m인 췌얼산을 넘어야 스촨성의 가장 변방에 위치한 더꺼에
도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췌얼산 고개는 천장공로에서도 가장 높은 지점. 지겹도록 꼬부라진 오르막길을 오르는 탐험대 차량은 거친 숨을 몰아쉰다.
고지대로 올라갈수록 희박해진 공기는 사람뿐 아니라 차들에게도 중대한 시험을 하고 있다. 이 고개를 넘어야 더꺼를 갈 수 있고 더꺼를 가야
티베트에 본격 진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탐험대는 동부 티베트에서 라싸로 가는 유일한 통로에 있었다.
<여행
메모>
촨장공로(川藏公路)는 1954년에 개통했으며 이것은 청두(成都)에서부터 캉팅(康定)을 거쳐 신뚜치야오(新都橋)에서
북로(北路)를 타고, 다시 깐즈(甘孜)를 거쳐 창뚜(昌都)까지 닿은 후, 계속해서 나취(那曲), 라싸(拉薩)로 들어선다. 이 길은 현재
일반적으로 촨장북로(川藏北路)라고 일컫는다. 하지만 창두(昌都)에서 나취(那曲)까지는 도로 상황이 매우 불편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차량은
창두(昌都)에서 빵다(邦達), 린즈(林芝)를 지나는 촨장 남로를 이용해서 라싸(拉薩)로 간다.
촨장남로(川藏南路)는 캉팅에서 이당, 망캉을
거쳐 라싸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촨장공로는 북로든 남로든 험하기로 유명한 도로. 하지만 2천km가 넘는 천장공로를 통한 여정은
천변만화하는 자연경관, 끝없는 초원, 하늘을 가릴 듯 빽빽한 원시산림, 예측할 수 없는 토사와 빙하의 위험 등이 예사롭지 않은 곳으로 그 풍경과
경치는 티베트로 가는 길 중 가히 으뜸이다. / 백민섭 전 경인방송
프로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