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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정애리의 삶

레이디경향 2005.6.21 (화) 18:07   레이디경향
남편과 별거 후에도 봉사 외길 걸어온 정애리가 사는 법
하루라면 그들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다. 이틀 정도는 그들을 위해 눈물을 흘릴 수 있다. 사흘간은 그들을 위해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다. 하지만 그날이 한 달, 두 달… 한 해 두 해 쌓여간다면 봉사와 희생은 그리 녹록하지 않은 결정이다.

탤런트 정애리(45)는 누구도 돌아보지 않던 길을 그렇게 다짐하며 17년간 걸어왔다. 아픈 이들이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한국의 산간 오지이든, 세계의 아스라한 변방이든 가리지 않고 찾아갔다. 매주 일요일이면 들르는 ‘`아기의 집-성로원’에서 시작된 그 따뜻한 마음은 노숙자와 독거 노인으로 이어졌고, 몽골과 인도의 배고픈 아이들에게도 미쳤다. 봉사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그녀는 “나눠주다 보니 더 넉넉해지고, 마음이 사랑으로 채워져 이제 더불어 행복해졌다”고 말한다.

정애리는 일요일이면 딸아이 지현이와 함께 늘 성로원에 간다. 그곳에서 하루를 보내는 일은 모녀에게 일상이 되어버렸다. 딸이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한 일인데, 벌써 그 딸아이는 초등학교 6학년이 되어 있다. 그렇게 봉사는 유전되고 전염되는 듯하다. 한창 놀고 싶을 나이라 귀찮아할 수도 있지만 지현이는 오히려 자기를 떼놓고 갈까 봐 전전긍긍한다. 교회 권사이기도 한 정애리와 딸 지현이의 일요일은 그 자체로 찬양이요, 찬송이다.

“가슴에 사무친 게 많은 사람들을 가까이서 만나고, 그들의 거친 손을 잡아줄 때마다 저는 정말이지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꺽꺽 소리내어 함께 울기라도 하면 좋겠는데 그럴 수도 없어요. 그들도 꾹꾹 누르며 살고 있는데 감히 제가 그럴 수 있을까요. 잘 먹고, 잘 입고, 편히 누워 자면서 부러울 것 없이 살고 있는 제가 그들 앞에서 그럴 수는 없지요. 그래서 정말 미칠 것처럼, 죽을 것처럼, 깊은 슬픔을 속 안에 꾹꾹 채워 담았습니다.”

얼마 전 이웃과 함께 울고 웃는 여자, 정애리의 희망 일기 45편을 모아 `「사랑은 버리는 게 아니잖아요」(랜덤하우스)를 펴낸 그녀는 책 속에 그간의 소회를 담담하게 기술하고 있다.

책 속에 녹아 있는 그녀의 세상살이는 읽는 이의 가슴을 알알이 울리며 주옥과 같은 이야기를 남기고 있다. 그들과 만나면서 한술 한술 같이 한 밥숟가락 수가 늘 때마다 사랑의 마음도 제대로 자라났다.

“모두가 한식구가 되어가는 게 좋았어요. 밥이란 게 참 묘하게 질긴 정이어서 이렇게 한상에서 한솥밥을 먹다 보니 밥그릇 수만큼 정이 깊어진다고 했습니다. 한 울타리의 `가족도 좋지만 한솥밥을 나눠 먹는 `식구라는 말이 딱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미 정애리의 선행은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소설가인 이외수 역시 그녀의 봉사에 큰 감동을 받았다.

“우리는 날마다 천사를 기다리면서 자신이 천사가 될 생각은 하지 않아요. 그래서 세상은 갈수록 척박해지고 인생은 날이 갈수록 암울해지죠. 우리가 타인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받아들이는 날이 오지 않는 한, 세상이 달라지는 날도 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요. 그러면 인생이 달라지는 날도 오지 않겠지요. 여기 한 명의 실존 천사가 있어요.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여자예요. 그러나 사람들은 그녀가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아낌없이 자신의 심장을 꺼내주었는지 모르죠. 바로 정애리가 그런 사람입니다.”

칭찬 릴레이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이며 여행가인 한비야도 정애리의 칭찬에 침이 마른다.

“정애리 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똑똑하다, 차갑다, 예쁘다 일거예요. 나 역시 쓰나미 현장을 같이 가기 전에는 그렇게 생각했으니까요. 한번은 우리가 배와 그물을 지원하는 어촌마을에 갔는데, 마침 첫배가 바다로 나가는 날이었어요. 파도가 몹시 거셌지만 첫배가 뜬다는 사실에 주민들은 흥분을 했고, 그 기뻐하는 순간을 촬영하려면 자기가 배에 타야 한다며 주저 없이 마구 흔들리는 배에 올라타는 게 아니겠어요? 어찌나 놀랐는지… 그러나 배에서 내리는 그녀를 꼭 껴안아주지 않을 수 없었어요. 한밤중에 쓰나미 경보로 비상대피하는 등, 동고동락 후 밝혀진 그녀의 정체는 바보처럼 몸을 아끼지 않는 사람, 약자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땡볕에 그을린 웃는 얼굴이 너무나 사랑스런 정애리가 정말 자랑스러워요.”

하지만 그녀의 직업은 연기자다. 연기자로서도 그녀의 성과는 큰 여울을 이루고 있다. 최근 TV 드라마 ‘상두야 학교 가자’, ‘왕꽃선녀님’, ‘파리의 연인’ 등에서 연기력을 과시했다. 1978년 탤런트로 데뷔한 이래 정애리는 수십 편의 드라마와 연극, 영화에 출연해 백상예술대상 연기상, MBC·KBS 연기상, 서울 연극제 최우수 연기상 등을 수상하며 최고의 연기자로 평가 받아왔다.

하지만 연기만큼 봉사에도 온 힘을 쏟았다. 월드비전·연탄은행·생명의 전화·독거노인·평화의 마을 등에서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고 북한동포돕기 `생명의 이음줄 운동 후원, 한국 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연예인 자문위원 등 다양한 사회 봉사 활동에 참여해왔다. 또한 `‘밝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사람’으로 행정자치부 선정 대통령표창을 받기도 했다.

정애리, 자신의 상처를 잊고 봉사하다
탤런트 정애리가 오랫동안 별거하고 있는 사실을 고백했다. 정애리는 그녀의 에세이집에서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이야기한 글 말미에 자신의 솔직한 심경을 가감 없이 담아냈다.

정애리는 `‘사람, 사람들 그리고 한 사람’이란 단락에서 ‘남편과 헤어져 사는 시간이 조금씩 길어졌다. 어느날 부터인가 서로에게 닿아 있는 믿음이 조금씩 변해서였을 것이다. ‘변했다’라는 말이 얼마나 깊은 슬픔인지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그렇게 되었다. 그도, 나도… 사소한 상처가 쌓여 깊어졌다고 말하면 맞을까’라고 별거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녀는 무엇보다 고마운 것은 어른들의 상처를 보듬어준 어린 딸아이의 마음이다… 글쓰기를 마친 후 아이와 앉아 아빠 얘기를 나눴다. 남편과의 일을 고백하자고 마음먹은 일이 혹시라도 아이에게 상처가 되지는 않을지… 나의 염려는 그 한가지였으니까. 떨어져 지내는 아빠의 이야기를 책 속에 담으려 한다는 말을 들은 아이는 꼭 그렇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며 이 사실을 고백하기까지 고민이 많았음을 밝혔다.
정애리의 가슴 저미는 고백이다.

자신의 일엔 성심을 다하고, 남들을 위해선 최선을 다하는 여자. 그녀의 삶에도 그 사랑 넘쳐나길.


글 / 강석봉 기자  사진 / 랜덤하우스 중앙

 
출처 : 블로그 > 닥터상떼 | 글쓴이 : 닥터상떼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