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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열심히 벌어 베풀면, 기쁘지 아니한가

[특집]열심히 벌어 베풀면, 기쁘지 아니한가
[뉴스메이커 2006-07-14 10:15]
세계적 부호 ‘기부 천사’ 대열 줄줄이 동참… “죽은 후에도 부자는 부끄러운 일이다”

세계적인 부호들의 기부활동이 지구촌을 감동시키고 있다. 무엇보다 워런 버핏의 35조 원 기부는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진수를 보여줬다. 그러면서 영화배우 청룽(成龍), 애플컴퓨터 CEO 스티브 잡스 등이 기부 행렬에 동참했다. 이제 돈을 ‘어떻게 버느냐’ 뿐만 아니라 ‘어떻게 쓰느냐’가 부자들의 주요 관심사가 된 것이다. ‘가진 사람들’의 기부나 자선활동은 신자유주의 물결이 만들어놓은 계층간 갈등을 해소해야 하는 이 시대의 요구로, 하나의 사회정신을 이뤄가고 있다. 이에 맞춰 ‘뉴스메이커’는 두 차례에 걸쳐 기업과 부호들의 사회공헌 시리즈를 준비했다. 첫 번째는 전 세계에 부는 기부 열풍과 함께 국내 기업들의 나눔경영을 살펴보고, 두 번째는 기부문화를 확산시키고 있는 국내외 재단들의 활동상을 전한다. 〈편집자 주〉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버크셔헤더웨이 회장의 자선활동은 부자들의 인생에서 나눔의 철학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일깨웠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자신의 전 재산 440억 달러 중 85%인 370억 달러(약 35조 원)를 자선단체에 던졌다. 이중 300억 달러의 주식을 빌&멜린다게이츠재단에 전달해 사실상 마이크로소프트(MS) 빌 게이츠 회장에게 운용토록 했다. 빌 게이츠는 세계 1위의 재력가다. 버핏은 세계 2위의 부호다. 버핏이 게이츠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맡겨 굶주리고 헐벗은 이웃들을 위한 봉사를 대행토록 하겠다는 것은 그 자체가 한 편의 감동적인 드라마다.

“성공한 사람일수록 사회에 큰 빚”

부호들의 기부와 자선활동은 전 세계의 상류사회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웨버, 영화배우 청룽(成龍)·니콜라스 케이지, 미국 내 손꼽히는 거부이자 차기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마이클 블룸버그 등 전 세계 유명인사들이 기부 의사를 잇따라 밝히면서 워런 버핏, 빌 게이츠와 같은 대열에 속속 합류하고 있다. 빌 게이츠와 경쟁관계에 있는 애플 컴퓨터의 CEO(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도 정보기술(IT) 업계 부호들을 모아 새로운 거대 자선단체를 설립하는 계획을 검토하고 있으며, 섬너 레드스톤 비아콤 회장도 기부행렬에 동참한다는 소식도 있다.

사실 미국에서는 기부가 하나의 생활로 자리잡은 지 꽤 됐다.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 석유왕 존 D 록펠러 등은 이름만 들어도 기부나 재단을 떠올린다. 카네기는 “성공한 사람일수록 사회에 큰 빚을 지고 있기 때문에 죽은 후에도 부자인 것처럼 부끄러운 일은 없다”는 말도 했다.

물론 기부행위를 비롯환 사회공헌이 꼭 자발적인 것만은 아니다. 정치적인 이유나 기업의 전략으로도 이용된다. 최근 오라클의 래리 엘리슨 회장은 하버드대에 1억1500만 달러를 기부하기로 했다가 총장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약속을 번복하기도 했다. 엘리슨 회장 측은 “엘리슨 회장은 하버드대에 건강연구소를 설립하려고 했으나 이를 주도했던 래리 서머스 총장이 2월 물러남에 따라 결정을 재고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기부행위나 자선활동이 선순환을 일으켜 소비자의 사랑과 존경을 받음으로써 기업의 경영실적이 좋아진다는 것은 어느덧 정설이 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워런 버핏이나 빌 게이츠 정도는 아니지만, 기업과 오너들이 꾸준히 기부 등 사회공헌을 해왔다. 특히 국내 기업들은 일회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펼치며, 사회공헌 활동 조직도 체계화 돼 있다.

삼성 이건희 회장은 그룹 회장에 취임한 지 1년 후인 1988년 삼성그룹 창립 50주년 기념사에서 “삼성은 우리 국민, 우리 문화 속에서 성장해왔기 때문에 우리가 이룬 성과를 우리 사회에 환원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이미 1980년대부터 기부나 자선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것이다. 물론 이러한 철학은 현재까지 잘 지켜지고 있다. 이 회장은 신년사 등을 통해 “삼성은 국민의 기업, 국가를 대표하는 기업임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라며 “사회에 함께 호흡하고 시장의 신뢰와 고객의 사랑을 받는 기업이 되자”고 역설했다.

이런 사회공헌 활동 배경에는 기업의 이익을 사회에 환원해 반기업 정서를 극복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지만, 국내에서도 이런 활동이 ‘성공하는 기업, 좋은 기업’이 되기 위한 경영전략으로 자리잡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현대차그룹이 2004년에 만든 ‘사회공헌 중장기 발전계획’에 따르면 2008년까지 ‘파이낸셜타임스’로부터 존경받는 기업 50위 안에 선정되고, 2010년까지 세계적인 경제잡지인 ‘포춘’지의 자동차부문 존경받는 기업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존경받는 기업=성공하는 기업’이라는 등식이 성립함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기부 등이 주로 오너 재산이 아닌 기업의 돈으로 이뤄지고 있다. 오너의 자금은 그리 많지 않다. 삼성 이건희장학재단의 경우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상무가 개인자금을 2400억 원 출연했다. 이런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다. 그래서 대다수 오너들은 사회공헌에 인색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국내는 주로 기업의 돈으로

또 오너의 기부가 정치적·전략적이라는 비난을 받는 경우도 있다. 최근 삼성에서 8000억 원, 현대차에서 1조 원을 오너의 돈으로 출연했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에서는 정치적·사회적 압력에 떼밀려서 한 것이라고 평가절하하고 있다. 즉, 검찰의 수사가 임박하면서 기부를 결정했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삼성과 현대차는 못마땅해 한다. 이중 한 기업의 임원은 “기부한 사람의 의도를 왜곡하면, 누가 기부를 하겠느냐”고 토로했다. 카네기와 록펠러도 생전의 공과에는 논란이 있었지만 죽기 전 막대한 재산을 기부하면서 지금은 추앙받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다.

더욱이 아직 우리나라에는 기부 문화가 완벽하게 자리를 잡지는 못했다. 미국에는 크고 작은 자선단체 수가 무려 6만 개가 넘는다. 연봉 3만 달러 수준의 직장인이 매년 1000달러 이상을 기부한다. 여기에 워런 버핏, 빌 게이츠 등 일부 갑부가 가세해 자선 모금액만 2000억 달러를 웃돈다.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재벌 오너가 기부를 적게 한다고 비난하기 전에 우리 자신이 낸 기부금 액수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대기업 사회공헌비용은 얼마

국내 대기업들이 사회를 위해 지출하는 비용은 얼마나 될까. 가장 많이 쓰는 곳은 삼성이다. 삼성이 지난해 각종 사회공헌사업에 투여한 자금은 4926억 원이나 된다. 현대차그룹도 2004년 사회공헌 활동에 549억 원을 투입했다. 국민기업임을 내세우고 있는 포스코도 808억 원을 사회공헌 활동에 지출했다. 다른 대기업들은 대체로 100억 원 안팎이다. 결국 기업 규모에 맞게끔 사회공헌도 하고 있는 셈이다. ㄱ기업 관계자는 “삼성이 가이드라인”이라며 “삼성이 앞서면 다른 그룹들은 거기에 맞춰 능력껏 따라간다”고 실토했다.

물론 워런 버핏의 기부금 35조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이 점에 대해선 기업들도 할 말이 많다. ㄴ기업 관계자는 “우리는 땀으로 번 돈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라며 “순이익을 넘는 규모의 사회환원은 불가하다”고 항변했다. 이 관계자는 “금융시장에 투자해서 번 돈을 기부한 워런 버핏과 단순비교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잘못됐다”고 꼬집었다.

그렇다면 일본 기업과 비교해보자. 전경련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의 사회공헌 활동 지출금액은 2000년 기준 경상이익의 6.3%로 일본의 2.3%(1999년 기준)의 3배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매출액으로 비교하면 국내 기업이 0.37%, 일본이 0.1%다. 역시 3배가 넘는다. 예컨대 현대차의 사회공헌비용은 그룹의 총매출액 59조의 0.09%다. 현대차 관계자는 “기부문화가 정착됐다고 평가되는 미국과 일본의 GM, 포드, 도요타 등은 2004년에 782억 원, 1270억 원, 1269억 원을 각각 사회공헌비로 내놓았다”며 “매출액 비중을 따져보면 0.04%, 0.06%, 0.07%로 현대차그룹보다 훨씬 낮았다”고 강조했다. 다만, 미국은 기업이 직접 활동을 하기보다는 기업이나 기업주가 설립한 재단을 통한 사회공헌이 이뤄져 직접적인 비교가 불가능하다. 즉, GM이나 포드가 다른 재단을 통해서 벌이는 활동은 빠진 것이다.

<조완제 기자 jw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