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have a feeling

라마교, 카스트 그리고 마오주의-네팔 절대빈곤 마을 라마탈을 가다

라마교, 카스트 그리고 마오주의

네팔의 최하층민이 사는 절대빈곤의 마을 라마탈을 가다

행인들과 자동차가 거리를 가득 메운 카트만두 도심에서 30km만 벗어나면 완전히 다른 세계로 들어서게 된다. 카트만두에서 바크타푸르로 들어서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산악지역인 나가르코트를 향해 가다 보면, 라마교를 믿는 사람들의 산골마을 ‘라마탈’이 모습을 드러낸다. 거리는 가깝지만 도로 사정이 나빠 버스로 꼬박 2시간여가 걸려야 도착하는 이곳의 주민들은 네팔 카스트 제도에서 최하층민에 속하는 타망족이다.

어두움이 깃들기 시작하면서 마을 주민들이 흑백 텔레비전을 보기 위해 이장 집으로 모여든다. 방 한구석에선 희미한 전등불 아래서 여성들이 바느질에 열중하고 있고, 평상 위에선 아이들이 연습장을 펴놓고 숙제를 하고 있다. 35년 전 내 어릴 적 시골집으로 돌아온 듯한 착각에 사로잡혔다.


△ 흙집 학교에서 공부하는 아이들. 이들의 상급학교 진학률은 10%에 못 미치고 가난은 대물림된다.

전기는 저녁에만 몇 시간씩 들어오는 게 고작이다. 그래서 땅거미가 지면 마을 사람들의 발걸음이 바빠진다. 이장 집에만 있는 정미기계를 사용하기 위해 쌀을 짊어지고 와서는 마당에서 차례를 기다린다. 이곳의 지도자인 이장은 ‘라마’라고 불린다. 라마교도들이 사는 마을이기 때문에 이장이 곧 종교 지도자이기도 하다. 마을 이름 ‘라마탈’도 라마교도들이 사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마을 주민들은 대부분 맨발로 집안을 돌아다니고 산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닌다. 여성들도 신발을 신은 사람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맨발 일색이다. 아이들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아예 맨발로 뛰어다니면서 흙먼지투성이로 뒹굴며 논다. 라마탈의 집들은 어디서나 쉽게 접할 수 있는 돌과 진흙을 주재료로 지어졌다. 가난한 살림에도 모두 아름다운 색깔로 칠해져 있다.

언제부터인가 관광산업이 산꼭대기 지역인 나가르코트에 자리를 잡으면서 콘크리트와 벽돌을 쌓아올린 집들이 하나둘 늘고 있다. 처음 지었을 때는 커다란 유리창이 달려 겉보기에 좋지만, 몇 년 지나고 나면 산악지대의 자연 조건과 맞지 않아 흉물처럼 변하기 일쑤다. 그럼에도 라마탈에서 벽돌집은 부의 상징으로, 흙집은 가난의 상징으로 어느새 자리를 잡았다.

라마탈 사람들이 이곳 산을 개간해 농사를 짓고 살기 시작한 것은 약 2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산의 나무를 베어낸 뒤 계단식 농지를 만드는 식으로 경작지를 넓혀왔다. 부농들은 집 주위뿐 아니라 산비탈 아래의 평지에도 넓은 땅을 소유하고 있다. 반면 소농들은 집 주위의 작은 텃밭이나 농토가 전부다. 흉년이 오면 일용할 양식이 모자라 부농들에게 고리로 양식을 꾸어야 한다.

수입이 변변찮은 소농들에게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한 마리화나 밀매나 밀주 판매는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다. 많은 양의 마리화나가 요즘도 바구니에 담긴 채 지붕 위에서 말라가고 있다. 라마탈 사람들의 또 다른 수입원은 나가르코트나 카트만두의 호텔이나 음식점에서 일자리를 얻는 경우다. 하지만 마오주의자와 정부군의 충돌로 관광객들의 발길이 줄어들면서 이마저도 힘들어지고 있다.

길모퉁이 찻집에서 한가로이 카드놀이를 하는 청년들 사이로 100여 명의 중무장한 군인들이 지나간다. 군인들은 삼삼오오 무리지어 모여 있는 라마탈의 젊은이들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봤다. 마오주의자들에게 계속 밀리고 있는 네팔 정부군은 모든 젊은이들을 잠재적 마오주의 지지자로 보고 있다. 라마탈처럼 광범위한 실업자군이 형성된 농촌 산악지역은 마오주의 단체의 비옥한 토양이 되고 있다.

카스트 제도가 사회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네팔 사회의 교육 현실은 도틀리 초등학교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 학교 졸업생 중 10% 정도만 상급학교로 진학한다. 저학력의 타망족 대다수는 막노동이나 농사일을 하거나, 잠재적인 실업자군으로 절대빈곤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신분제의 굴레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장벽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산악지역에서 마오주의자들이 득세하는 중요한 이유의 밑바닥에는 네팔 사회를 옭죄고 있는 카스트 제도가 버티고 있었다.

라마탈=하영식 전문위원 youngsig@otenet.gr